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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 풀빛시선 31
김남주 / 풀빛 / 1989년 11월
평점 :
절판
1989년에 발표된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다.
이 책은 1991년에 수유리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이다. 그때의 헌책방 순례는 가벼운 주머니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구하고자 했던 책을 일반서점보다 더 풍부하게 골라볼 수 있었다는 생각...
당시만 해도 '헌책'을 읽는 즐거움에는 그 책에 남겨진 메모나, 선물한 글귀들이었다. 이 책도 나중에 확인해보니 누군가에게 선물했던 책이었다. "정욱아.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수철'(혹 그때 이 책을 선물하거나 선물받은 분이 나타나면 같이 소주라도 한잔 나누고 싶다)
이 책에는 또한 메모지가 한 장 끼여있다. '알려드립니다. 이 시집의 31,32면과 75,76면은 편집상의 부주의로 여백 처리 되었습니다. 시집의 내용은 빠뜨림이 전혀 없사오니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 도서출판 풀빛'... 펴낸 날이 1989년 11월 25일이고, 김남주 시인은 그해 12월 21일에 형집행정지로 출감했으니, 아마도 급히 찍어내느라 그랬을까... 여하튼 이러한 메모장이 어수룩하긴 하지만,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리라.
이 시집은 그간의 옥중시집과는 다르게 수감중에 쓰여진 시와 출감후에 쓰여진 시가 함께 묶여있다.
접어두었던 몇 구절
어머니 이제 내 책상에서/꽃병일랑 치워주세요 이제 그 자리에/살해된 동지의 얼굴이 새겨진 입상이 놓여질 것입니다/어머니 이제 내 책꽂이에서 꽃을 노래한 시집이 있거들랑 치워주세요/그 자리에 바위산과 투쟁을 노래한 전사의 시가 들어찰 것입니다(詩 40이란 숫자는)
우리 같은 농투산이들이야/하루라도 일 못하면 삭신이 욱신거려서도 못산다야/일 않고 배 부르면 죄 돼야 죄 돼(詩 할머니 세상)
어디 한번 일어나보시오/그러면 나같은 사람도 일어나/그와 함께 일어나 소리를 합쳐/오월의 노래를 부르겠소/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피묻은 오월의 노래 목이 터져라 부르겠소/그러면 나같은 사람도 일어나/그와 함께 일어나 어깨동무하고/금남로를 전진하겠소/압제자에게 죽음을! 외치며/배고픈 다리를 건너/부자들의 배때기에 창끝을 들이대겠소/오월의 영웅들이 남기고 간 무기를 들고/통일의 길로 나서겠소/해방의 길로 나서겠소(詩 솔직히 말하자-표제시)
돌아와 (윤)상원의 무덤 앞에 '왜 맨주먹에 빈손으로 왔느냐고?/그래 그래 내 손에는 꽃다발도 없고/네가 좋아하는 오징어발에 소주병도 없다/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으로 외치는 시인.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 출감하여 작가회의 등에서 활동하고, 출간활동도 활발히 했지만, 감옥에서의 기나긴 고통은 그를 옥죄어 출감한지 5년도 채 안되어 눈감게 했다. 그를 눈감게 한 것이 단지 암세포였을까? 지나간 시인들의 시를 다시금 평가하는 작업은 단지 강단에서 이루어질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시인의 말처럼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