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위의 자작나무 창비시선 290
장철문 지음 / 창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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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비 긋는 날씨였지만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아 우중입산을 하다.

이 시집은 오가며 읽어볼 요량으로 챙겨온 시집이었다. 

산중에 비는 더 거세져 바위에 걸터앉아 우산 쓰고 시집을 읽는 청승을 연출하다.

시 속에 빠져들고, 어지간해서는 읽지 않는 '해설'까지도 '해설자는 대체 이 시들이 펼쳐놓은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궁금하여' 읽어보다.(나보다는 조금 더 단순하게 읽은 것 같은데...) 시집을 곁에 두는 것이 삶에서 필요한 일임을 새삼 깨닫다.

시인은 말한다. '다시 또 받아쓸 언어들이 찾아와준다면...'

세상을 향하여 한껏 열려진 시인의 안부가 궁금하다.(시 몇 편을 '페이퍼 쓰기'로 퍼나르는 실례를 감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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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를 찾아서 창비시선 207
정희성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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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를 찾지 않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한 현상이 단지 세태라고 할 수 없는 시대적, 문화적 환경이 있을 겁니다. 여하튼 시를 접하기에는 너무도 호흡이 빠른 시대입니다. 우리 역시도 자유로울 수 없어서 이렇듯 가쁘게 살아가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예전에 시로 읽던 시인들의 요즘 '시'(말로 짓는 절)은 어떨지 한번 베껴봅니다.

정희성.
[답청](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91), 그리고 최근 2001년에 그 네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를 냈습니다. 회갑이 가까운 시인으로서는 왠지 시집목록이 얄팍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더 속에 더 깊은 울림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시집을 읽다보면 이 시인이 시집을 십수권 상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의 새로운 감흥이 있습니다.

사족 없이 최근 시집에서 몇 편 퍼올려봅니다.
(다만 시인을 대신해서 추려보는 작업에서 글쓴이의 의도가 개입되겠지요^^)

<민지의 꽃>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을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발표 안된 시 두 편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
부자로 살고 싶어서
발표도 안한다
시 두 편 가지고 있는 동안은
어느 부자 부럽지 않지만
시를 털어버리고 나면
거지가 될 게 뻔하니
잡지사에서 청탁이 와도 안 주고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거지는 나의 생리에 맞지 않으므로
나도 좀 잘 살고 싶으므로


<동년일행>
괴로웠던 사나이
순수하다 못해 순진하다고 할 밖에 없던
남주는 세상을 뜨고
서울 공기가 숨쉬기 답답하다고
안산으로 나가 살던 김명수는
더 깊이 들어가 채전이나 가꾼다는데
훌쩍 떠나
어디 가 절마당이라도 쓸고 싶은 나는
멀리는 못 가고
베란다에 나가 담배나 피운다




"1977년 신춘문예에 당선되고부터 이 짓을 해왔으니 어언 30년 세월 동안 나는 '말 줄이기' 훈련을 해온 셈이다. 묵언으로써 말을 하는 경지를 넘본 것은 아니로되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피곤하다. 일상에서도 그러하고 시에서도 그러하다. 그렇게도 말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쩌자고 국어선생 노릇을 하고 시인이 되었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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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 풀빛시선 31
김남주 / 풀빛 / 198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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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발표된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다.

이 책은 1991년에 수유리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이다. 그때의 헌책방 순례는 가벼운 주머니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구하고자 했던 책을 일반서점보다 더 풍부하게 골라볼 수 있었다는 생각...

당시만 해도 '헌책'을 읽는 즐거움에는 그 책에 남겨진 메모나, 선물한 글귀들이었다. 이 책도 나중에 확인해보니 누군가에게 선물했던 책이었다. "정욱아.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수철'(혹 그때 이 책을 선물하거나 선물받은 분이 나타나면 같이 소주라도 한잔 나누고 싶다)

이 책에는 또한 메모지가 한 장 끼여있다. '알려드립니다. 이 시집의 31,32면과 75,76면은 편집상의 부주의로 여백 처리 되었습니다. 시집의 내용은 빠뜨림이 전혀 없사오니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 도서출판 풀빛'... 펴낸 날이 1989년 11월 25일이고, 김남주 시인은 그해 12월 21일에 형집행정지로 출감했으니, 아마도 급히 찍어내느라 그랬을까... 여하튼 이러한 메모장이 어수룩하긴 하지만,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리라.

이 시집은 그간의 옥중시집과는 다르게 수감중에 쓰여진 시와 출감후에 쓰여진 시가 함께 묶여있다.

접어두었던 몇 구절

어머니 이제 내 책상에서/꽃병일랑 치워주세요 이제 그 자리에/살해된 동지의 얼굴이 새겨진 입상이 놓여질 것입니다/어머니 이제 내 책꽂이에서 꽃을 노래한 시집이 있거들랑 치워주세요/그 자리에 바위산과 투쟁을 노래한 전사의 시가 들어찰 것입니다(詩 40이란 숫자는)

우리 같은 농투산이들이야/하루라도 일 못하면 삭신이 욱신거려서도 못산다야/일 않고 배 부르면 죄 돼야 죄 돼(詩 할머니 세상)

어디 한번 일어나보시오/그러면 나같은 사람도 일어나/그와 함께 일어나 소리를 합쳐/오월의 노래를 부르겠소/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피묻은 오월의 노래 목이 터져라 부르겠소/그러면 나같은 사람도 일어나/그와 함께 일어나 어깨동무하고/금남로를 전진하겠소/압제자에게 죽음을! 외치며/배고픈 다리를 건너/부자들의 배때기에 창끝을 들이대겠소/오월의 영웅들이 남기고 간 무기를 들고/통일의 길로 나서겠소/해방의 길로 나서겠소(詩 솔직히 말하자-표제시)

돌아와 (윤)상원의 무덤 앞에 '왜 맨주먹에 빈손으로 왔느냐고?/그래 그래 내 손에는 꽃다발도 없고/네가 좋아하는 오징어발에 소주병도 없다/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으로 외치는 시인.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 출감하여 작가회의 등에서 활동하고, 출간활동도 활발히 했지만, 감옥에서의 기나긴 고통은 그를 옥죄어 출감한지 5년도 채 안되어 눈감게 했다. 그를 눈감게 한 것이 단지 암세포였을까? 지나간 시인들의 시를 다시금 평가하는 작업은 단지 강단에서 이루어질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시인의 말처럼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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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창비시선 241
이상국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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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다섯번째 시집이다. 네번째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1998)를 읽다가 느꼈던 감상이 새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새로움'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의 고향은 설악산 아래 양양이다. 그는 거기서 태어나서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번도 근처를 벗어나 살지 않았다고 한다.'(김윤태, <어느 농사꾼..> 해설에서)

단지 그뿐일까? 그보다는 시인의 시선과 사유가 현실에 깊이 착근해있기에 가능한 표현들, 즉 단순한 일상의 삶에서 길어올리는 시어들이 주는 생생함이었던 것 같다. 지나친 '사유의 확장'으로 인해 부유하는 詩語들에 의해 익숙해지거나 뜻도 모르고 주억거리는 유희에서 벗어나게 했던 기억이었다.

여전하다.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이제 터널로 다닌단다. 그래서 용대리 민박집 아주머니의 장나들이도 원통을 향하지 않고, 속초에 있는 이마트로 가신단다) 건너의 영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국립공원과 대형 콘도와 몇몇 해수욕장을 연상시키는 시선에 그치지 않고, 불에 타버린 산림과 어두운 골목길의 절망과, 어부들의 수고로움에까지 가닿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분량이 작은 시집 한 권을 읽는다는 것으로, 그 안에 담긴 뜻의 어느 만큼을 과연 이해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든다. 또한 흔히들 시집 말미에 '시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해설이 있는데, 때로는 그 해설이 시 읽기를 방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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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 문학동네 시집 71
김용택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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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최근작일 <그래서 당신>.

역시나 일상 속에 마주 대하는 자연, 아니 자연 속에 파묻혀 그 세계를 직관하는 시인의 시세계는 여전하다.

꽃(홍매/오동꽃...)과 나무와 새와 나비, 그리고 강과 산, 달과 비.. 그리고 그리움과 사랑과 '숨'!

이 시대 시와 시인의 역할과 관련하여 통렬히 외치는 시 한 편을 옮겨본다.

<포구> (/는 행 바꿈)

시인들은 떠났다/시인들이 떠난 자리에/시의 시체들이 널려 있다/혁명의 찬란한 아침을 거닐자던 시인들은/자신들을 위한 혁명을 완수하고/나무 대신/새로운 세기의 양지 쪽에 등을 기댔다/권력은 부패하고/자본은 총을 들고/제국은 살찌리라/배불러 등이 썩어가는 시인들은/밑도 끝도 없는 세계를 떠돈다/시가 식어버린 세상은/얼마나 뭣 같은가/오랜 세월 희망은 시인들의 것이다/아니, 혁명은 영원히 시인들의 것이다/거부하라 저항하라 망명하라 세상의 절망에 가 닿아라/시인이 어찌 사랑을 버리랴/시가 어찌 자유를 탕진하랴/오!/지구의 푸른 포구로/은어들이 떼지어 돌아온다/경배하라/노래하라/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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