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월전 우리고전 다시읽기 39
신원문화사 편집부 엮음 / 신원문화사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에 원수 말하기를,

네가 수적 되어 강상으로 다니며 장사배를 탈취하여 먹었느냐?

하니 맹길이,

흉년을 당하와 기갈을 견디지 못하여 적당을 데리고 수적이 되어 사람을 살해하였나이다

원수 또 묻기를,

아무 연분에 엄자릉 조대에서 홍시랑 부인을 비단으로 동여매고 그 품에 안은 아이를 자리에 싸서 강물에 넣은 일이 있느냐? 바로 알리라.”

맹길이 그 말을 듣고 끓어 앉으며,

이제는 죽게 되었사오니 어찌 기만하리오까. 과연 그러하였나이다

하니 원수,

나는 그 때 자리에 싸여 물에 넣은 계월이로다.”

하니 맹길이 그 말을 들으니 정신이 아득한지라, 원수 친히 내려 맹길이 상투를 잡고 모가지를 동여 배나무에 매어 달고,

너 같은 놈은 점점이 깎아 죽이리라.”

하고, 칼을 들어 점점이 외려 놓고 배를 갈라 간을 내어 하늘에게 표백하고 천자께 아뢰되,

폐하의 넓으신 덕택으로 평생 소원을 다 풀어사오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나이다

하니 천자 칭찬하시기를,

이는 경의 충효를 하늘이 감동하심이라.”

하고 즐겨하시더라.

 

위는 고전소설 <홍계월전>의 절정 장면이다. 도적 맹길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홍계월이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서 복수를 하는 장면이다. 이 소설은 여성 주인공이 우월한 능력으로 남편과 천자를 살리고 나라를 구한다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안타까운 면이 있다.

 

일단, 비록 여성의 우월한 능력을 주제로 삼기는 했으나 결말에 가서는 고작 남편의 인정을 받고 자자손손 높은 벼슬를 누린다는 것뿐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라를 구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그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생각해 보라 비록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도적이긴 하나 그가 도적이 된 까닭은 흉년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성이 기근 때문에 먹을 것이 없을 때 천자란 사람은 호의호식을 했다. 그랬다면 천자야말로 가장 큰 도적이 아니겠는가? 큰 도적을 살리기 위해 작은 도적을 죽인 꼴이다. 게다가 살점을 도려내고 간을 빼내며 잔인하게 죽였다.

 

역사상 조선사회만큼 여성의 인권이 유린당했던 시절은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홍계월전은 매우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소설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오늘날 읽기에는 많은 한계를 가진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 1894년 여름 -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 지음, 정현규 옮김, 한철호 감수 / 책과함께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94년 오스트리아인 에른스트폰헤세가 쓴 조선여행기이다. 그런데 아마도 우리가 지금 아프리카 초원이나 남미 정글에 가서 여행기를 쓴다면 이런 책이 나올 것 같다.

 

예를 들어, "어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른 곳에서는 통 볼 기회가 없던 아녀자들 20여명과 마주쳤다. 얼굴 생김새를 보면 일본 여인이었지만, 나는 일본에서 그렇게 체격이 장대하고 건강하며 햇볕에 그을린 아가씨들을 본 적이 없다. 모두 스무 살이 안 되어 보였다. 노출된 풍만한 가슴과 옆이 터진 짧은 치마를 입은 모습이 강렬하고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였다"라고 부산 해녀를 묘사한 부분이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 부족 아가씨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비슷하리라.

 

"조선에서 집안을 돌보는 것은 여자의 몫이다. 여자들은 감동적인 부지런함과 감탄할 만한 인내력으로 그 의무를 다한다 ... 나는 남자들이 일하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집안이나 집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조그만 중국식 파이프를 입에 물고 빈둥거리거나 골목길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거나 잠을 잤다. 반면에 작고 추하며 고생 때문에 여윈 여자들은 살림을 도맡으며 요리하고 빨래를 했다. 모든 노동은 여자들의 몫이다. 바로 여기서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민족일수록 문화수준이 낮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조선의 여성들은 짐 싣는 동물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다. 남자들은 이른바 노예를 갖기 위해 여자와 결혼한다. 여성들은 이름도 없다. 이들은 없는 존재로 치부되며, 이들에게 적용되는 법도 없다. " 놀라운 것은 내가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과 똑같다는 점이다. 베트남 여자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남자들은 아침부터 길거리에서 술을 먹고 있었다.

 

"모든 것이 착취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데, 결국 백성들이 모든 것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고 법에 호소할 수도 없다. 그래봐야 더 큰 권력을 지녔거나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는 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재력은 다름이 없다.

 

"조선에서 보고 들은 것을 종합해 볼 때, 나는 조선인들이 이웃해 있는 만주인이나 중국인에 비해 훨씬 오락을 즐기는 민족이라고 부르고 싶다" 남성은 여성을 착취하고, 지배층은 피지배층을 착취하니 남성 양반들이나 오락을 즐겼나보다. 아니면 착취받는 자들이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 과도하게 오락을 즐겼나보고.

 

"조선의 학자들은 현재 수많은 중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중국어, 즉 현대의 공용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전혀 발음할 수도 없고 말해온 적도 없는, 왜곡되고 장식이 많으며 부자연스러운 문어를 쓴다. 그래서 그 글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읽어야 한다. 이처럼 전혀 불가능한 언어로 조선인들은 문집을 쓰고, 이 문집을 중국의 옛 현인들의 말과 역사적인 예들, 속담, 선례로 가득 채우는데, 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시험관조차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글일수록 사람들은 글을 쓴 사람을 대단하게 여긴다." 자기도 이해 못하는 것을 현학적으로 인용해다가 쓰는 건 요즘도 마찬가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훈의 <광장>을 감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무거운 주제에 어려운 문장들 때문입니다. 다만 은근히 야한(?) 장면들 때문에 졸린 눈을 뜨게 해줘서 어렵지만 읽어낼 수는 있으니 일단 도전해 보는 게 좋습니다. 그냥 광장이란 제목만 읽은 것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번 더 읽어 보는 게 중요합니다. 몇 번이고 읽다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맛이 있는 소설입니다. 그만큼 담긴 게 많은 지혜로운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스스로 읽고 고민하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얘기했는데도 평생 광장을 읽지 않겠다고 단호히 결정한 사람만 계속 이 글을 읽기 바랍니다. 제목만 읽지 말고 최소한 서문 정도 더 읽는 건 어떨까요? 광장은 작가가 매우 아끼는 작품인 듯 수십년에 걸쳐 여러번 개작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서문도 새롭게 썼는데 1961년판 서문이 광장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제안합니다. 1960년대 대표소설 광장의 서문 한 장 정도는 읽어 주시는 게 교양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혈거인의 동굴로부터 정신병원의 격리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밀실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그곳에 이르는 길에서 거상(巨象)의 자결을 목도한 사람도 있고 민들레 씨앗의 행방을 쫓으면서 온 사람도 있다.

그가 밟아온 길은 그처럼 갖가지다.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라느니 하는 소리는 아주 당치 않다. 거상의 자결을 다만 덩치 큰 구경거리로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 들판에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 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 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이명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가 풍문에 만족지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태도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 <광장> 1961년판 서문

 

생각해 봅시다.

1. 밀실, 광장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 제목을 <밀실, 광장, 3, 그리고 자살>이라고 짓지 않고 <광장>이라 지은 까닭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숙향전.숙영낭자전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5
이상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씨남정기는 착한 처 사씨가 악한 첩 교씨의 음모로 쫓겨나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자리에 돌아와 교씨를 응징한다는 이야기다. 처첩갈등이 주축이고, 현모양처, 조강지처는 권선하고 악첩은 징악한다는 기본 줄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처첩갈등의 근본원인은 가부장제이고, 주범은 남자이다. 따라서 교씨는 상대적으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숙영낭자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첩으로 있던 매월은 숙영낭자의 등장으로 찬밥 신세가 되어 음모를 통해 신분역전을 꿈꾸다가 결국 남편한테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선군은 크게 노하고 칼을 들고 뜰로 내려와서 매월의 목을 베고, 배를 갈라서 간을 꺼내어 낭자의 시체 앞에 놓고 두어 줄 제문을 읽었다"

 

사씨남정기에서 교씨를 첩으로 들이라고 남편한테 추천한 사람은 사씨였고, 숙영낭자전에서도 매월을 첩으로 들이라고 남편한테 추천한 사람은 다름아닌 숙영낭자였다. 남존여비, 가부장제 조선시대에 남녀갈등이란 애초에 존재조차 할 수 없었으니 여여갈등이란 어이없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고전소설 속 시대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읽어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범경작생 범우문고 103
박영준 지음 / 범우사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범생을 범생이라 부르는 건 담임을 담탱이라 부르는 맥락과 같다. 곱지 않은 시선이다. 그 이유는 모범생을 시기, 질투하는 면도 있겠지만, 모범생이 이기적인 까닭이 크다. 교실에선 담임이 지주이고 학생이 소작인인데 범생은 마름 노릇을 한다. 박영준의 <모범경작생>도 일제강점기 조선 농민이 착취를 당하는 상황에 등장인물 김길서는 일제가 주는 모범경작생의 감투를 쓰고 사적 이익만 챙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모범경작생은 누구인지 비교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밑줄 쫙>

(생략)

길서는 그 마을에서 가장 칭찬을 받는 사람이다. 물론 사촌 형 뻘이 되면서도, 기억이 같은 몇 사람은 길서를 시기하고 속으로 미워까지 했으나, 동네 전체로 보아 소학교 졸업을 혼자 했고, 군청과 면사무소에 혼자서 출입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게도 지지 않으리만큼 동네 사람들을 가르치고 지도했다. 나이 젊은 사람으로 일을 부지런히 해서 돈도 해마다 벌며, 저축을 하여 마을의 진흥회니, 조기회니, 회마다 회장을 도맡고 있는 관계로 무식하고 착한 농부들은 길서를 잘난 위인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략)

요사이에 감옥에 가장 많이 갇힌 죄수들은 일하기 싫어서 남들까지 일을 못하게 한 놈들이래요. 말하자면 공산주의자라나요. 공연히 알지도 못하고 그런 놈들의 말을 들었다가는 부치던 땅까지 못 부치게 될 것이니 결국은 농군들의 손해가 아니겠소.

(생략)

그들은 할 수 없으므로 성두의 말대로 길서를 시켜 읍내 지주 서재당에게 가서 금년만 도지[소작료]를 좀 감해 달래 보자고 했다. 그러나 길서는 자기와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정해 놓은 도지를 곡식이 안 되었다고 감해 달라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소작쟁의와 같은 당치 않은 짓이라고 해서 거절했다. 그리고는 며칠 있다가 일본 시찰단으로 뽑혀서 떠나가 버렸다.

(생략)

마을 사람들은 길서의 장난으로 호세까지 올랐다는 것을 다음에야 알고 누구 하나 그를 곱게 이야기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생략)

논에 박은, ‘김길서라고 쓴 말패는 간 곳도 없고, ‘모범경작생이라고 쓴 말뚝은 쪼개져서 흐트러져 있었다.

(생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