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경작생 범우문고 103
박영준 지음 / 범우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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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을 범생이라 부르는 건 담임을 담탱이라 부르는 맥락과 같다. 곱지 않은 시선이다. 그 이유는 모범생을 시기, 질투하는 면도 있겠지만, 모범생이 이기적인 까닭이 크다. 교실에선 담임이 지주이고 학생이 소작인인데 범생은 마름 노릇을 한다. 박영준의 <모범경작생>도 일제강점기 조선 농민이 착취를 당하는 상황에 등장인물 김길서는 일제가 주는 모범경작생의 감투를 쓰고 사적 이익만 챙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모범경작생은 누구인지 비교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밑줄 쫙>

(생략)

길서는 그 마을에서 가장 칭찬을 받는 사람이다. 물론 사촌 형 뻘이 되면서도, 기억이 같은 몇 사람은 길서를 시기하고 속으로 미워까지 했으나, 동네 전체로 보아 소학교 졸업을 혼자 했고, 군청과 면사무소에 혼자서 출입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게도 지지 않으리만큼 동네 사람들을 가르치고 지도했다. 나이 젊은 사람으로 일을 부지런히 해서 돈도 해마다 벌며, 저축을 하여 마을의 진흥회니, 조기회니, 회마다 회장을 도맡고 있는 관계로 무식하고 착한 농부들은 길서를 잘난 위인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략)

요사이에 감옥에 가장 많이 갇힌 죄수들은 일하기 싫어서 남들까지 일을 못하게 한 놈들이래요. 말하자면 공산주의자라나요. 공연히 알지도 못하고 그런 놈들의 말을 들었다가는 부치던 땅까지 못 부치게 될 것이니 결국은 농군들의 손해가 아니겠소.

(생략)

그들은 할 수 없으므로 성두의 말대로 길서를 시켜 읍내 지주 서재당에게 가서 금년만 도지[소작료]를 좀 감해 달래 보자고 했다. 그러나 길서는 자기와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정해 놓은 도지를 곡식이 안 되었다고 감해 달라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소작쟁의와 같은 당치 않은 짓이라고 해서 거절했다. 그리고는 며칠 있다가 일본 시찰단으로 뽑혀서 떠나가 버렸다.

(생략)

마을 사람들은 길서의 장난으로 호세까지 올랐다는 것을 다음에야 알고 누구 하나 그를 곱게 이야기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생략)

논에 박은, ‘김길서라고 쓴 말패는 간 곳도 없고, ‘모범경작생이라고 쓴 말뚝은 쪼개져서 흐트러져 있었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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