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학교 - 성미산학교의 마을 만들기
성미산학교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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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거리’(사회적 거리)격리’(자가 격리)가 필수가 된 시점에 도시는 모여 살기에 적절한 공간이 아니다. 애초에 도시(都市)는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市場)이므로 사람이 잠을 자고 쉬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는 과밀한 거대 도시를 줄여야 한다. 작고 작게 띄엄띄엄...

 

달리 얘기하자면 교환의 범위와 크기를 줄여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자급자족하는 쪽으로. 거대 도시가 아니라 마을에 모여 살아야 한다. 그 속에서 먹고 자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 마을의 중심에는 학교가 있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마을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생각이 마음 속 깊이 뿌리 내리도록 키워야 한다.

 

도시에서 마을 학교를 꿈꾸고 현실로 일궈 내는 실험이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다. 바로 이 성미산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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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볼 때 도시에서도 살림에 필요한 것을 자급해야 한다. 필요한 전부를 자급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겠지만(적절한 교환과 분업은 필요하다) 자립도를 꽤 높은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

지금 성미산학교의 가장 큰 과제는 마을에서 먹고사는모델을 몇가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마을 경제를 살리는 길이고, 학생들의 대안적 진로를 여는 일이고, 마을의 일꾼을 배출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졸업 이후 마을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는 풀무학교에 물어야 한다. 홍순명 선생이 들려주는 졸업생 이야기에는 졸업생 00이 마을에서 00을 했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물론 풀무학교는 농촌에 있고, 농업학교로 출발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도시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의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이 단순히 관심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마을과 학교, 자신을 둘러싼 관계들을 고려하여 필요한 일을 찾아 배우면서 해결해 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속에서 배움의 과정을 스스로 기획해야 할 때도 있고 기존의 질서 속에서 겸손하게 일을 배워야 할 때도 있고 낯선 문화를 접하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해야 할 때도 있다. 이를 통해 좁게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감각을 갖게 될 것이고 넓게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실천의 밑거름을 마련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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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삶을 짓다 - 자립과 공존을 꿈꾸는 청년들의 함께 살기 실험
김소연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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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가 아니라 loVely - 론리플래닛 대신 이 책을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매고 손에는 론리플래닛을 쥐고 여행하는 게 내 젊을 때의 로망이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Lonely Planet, 외로운 별이라니ㅠ.ㅠ 젊을 때나 혼자 있는 게 멋있어 보이겠지. 늙어서는 독거노인, 고독사... 끔찍한 단어이다.

 

론니플래닛은 버리자. 대신 땅에서 삶을 짓다를 쥐고 배낭여행을 떠나자. 이 책에 연락처와 주소가 있다. 그 곳에서 가서 한달을, 일년을 살아보자. 그렇게 십년 이상 살 수 있다면 이 지구는 loNey planet이 아니라 loVely planet이 될 것이다.

 

: ‘남원시 작은자유, 해남군 미세마을, 완주군 씨앗, 청송군 창조지역사업단, 제천시 농촌공동체연구소, 괴산군 문화학교숲, 금산군 별에별꼴, 산청군 민들레공동체, 정선군 마을에너지공방, 홍성군 젊은협업농장을 찾아가면서 이 책에 소개된 노래 작은 자유’, 밴드 요술당나귀의 노래를 듣는 것도 행복. ‘싸이의 노래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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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비가 내리던 하늘 사이로 삐져나온 노을빛이 논의 표면을 비춰 굵은 빗줄기들이 논 전체에 파장을 일으키는데 그 장면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정말 감동과 경탄의 순간이었다. 시끄러운 이앙기의 엔진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살면서 그런 경탄할 아름다움의 순간을 몇 번이나 마주할 수 있을까. 자연에 맞닿아 일하며 이런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힘든 시간들도 많았지만 그렇게 자연 속에서 위로의 순간을 종종 경험했기에 지금까지 농사일을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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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교사 양성과정
홍세화.이상대.이계삼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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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론하는 교사가 되지 말자


불온(不穩)은 온당(穩當)하지 않는 것 즉 맞지 않다는 것이다. 맞지 않으니 평온(平穩)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말로는 불량(不良, 어질지 않음), 불순(不純, 순수하지 않음), 불손(不遜, 겸손하지 않음) 등이 있다. 이 중에 불순(不順, 순종하지 않음)과 가장 짝을 잘 이룰 것이다.

 

그런데 맞지 않는 것과 순종하지 않는 것이 왜 어울릴까? 맞지 않으면 순종하지 말라는 거다. 옳지 않으면 옳다고 가르치지 말라는 거다.

 

불온(不穩, 옳지 않음)한 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교사이지, 부론(不論, 말하지 않음)한다면 가짜 교사이다.

 

부론하는 교사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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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처럼 정답이 있는 학문은 학생들을 줄 세우고자 한다면 줄 세울 수 있습니다. 그조차 옳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국어 능력을 어떻게 자로 재듯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습니까. 학생이 인간과 세상을 보는 감수성과 감각, 이해력, 논리력, 사고력을 어떻게 칼로 자르듯 점수를 매길 수 있나요? 불가능합니다. 근데 우리 학교에서 이렇게 하고 있어요.

스피노자는 생각의 성질 = 고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생각이란 한번 자리 잡으면 안 떠난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사람은 한번 형성한 생각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단 갖게 된 생각을 꽉 껴안고 산다는 겁니다. 그렇게 때문에 지배 세력이 교육을 장악하는 것이죠. 어린 학생들에게 그들의 가치관을 심어 주려고요. 특히 한국처럼 인문사회과학을 주입식으로 배우는 나라에서는 자신이 평생 삶의 푯대로 삼고 살아갈 생각을 주입식, 암기식으로 형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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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 거부 선언 - 폭력을 행하지도 당하지도 않겠다는 53인의 이야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기획 / 교육공동체벗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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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體罰)은 몸에 주는 벌이다. ()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니 체벌은 정당한가? 죄지은 사람에게 벌주면 그 사람이 나중에 같은 죄를 짓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니까? 그러나 과연 그럴까? 몸에 벌을 받는다고 죄를 짓지 않을까? 그게 몸에 벌을 받을 만큼의 죄인가? 죄란 무엇인가?

 

힘센 이의 말을 약한 이가 안 듣는 게 죄이고, 힘센 이가 약한 이에게 주는 게 벌이다. 개가 사람의 말을 안 들으면 죄이고, 말 잘 들으라고 때리는 게 벌이다. 그러나 개가 사람보다 힘이 세면 오히려 사람이 죄를 짓고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체벌을 거부하는 것은 힘센 이가 약한 이에게 가하는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니, 힘센 이에겐 성찰이 될 것이요, 약한 이에겐 저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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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생일 때, 강아지 조아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 생활한다는 건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내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 조아에게 스읍소리를 내며 겁주는 일이나 손가락으로 콧등을 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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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 어느 교사의 마지막 인생 수업
다비드 메나셰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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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공부하는 저희 입장에서 힘든 것을 이해해주시고 같이 잘못된 교육 방식에 대해 얘기 나눠주셔서 좀 통쾌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아요. 선생님 삶의 끝에서라는 책 읽어보세요. 선생님께 너무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교원평가 학생만족도 조사에서 한 학생이 내게 써준 글이다. 이 책을 사서 읽어보니 놀랍게도 저자 메나셰랑 나랑 같은 게 많았다. 태어난 해가 같고, 부모님이 헌책방을 운영했던 점이 같고, 교직에 진출한 해도 같고, 국어교사란 점도 부부교사란 점도 같았다.

 

그러나 나머지는 너무 달랐다. 그는 너무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출근해서 연달아 수업하고, 상담하고, 회의하고, 코치에 인솔자에, 집에 가서도 채점하고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일이 곧 자신이었다. 나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랬지만 지금은 저녁이 있는 삶,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중요시 한다. 저자에게 아이가 없었던 것이 일을 중시하게 된 요인일 것이다.

 

의미 없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졸업한 제자들을 만나러 마이애미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국토횡단여행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동행을 물어보나 아내는 거부한다. 여행 끝에 부부는 이혼하고 저자는 삶의 마지막을 제자들과 함께 한다. 저자는 책 말미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는데 끝까지 아내를 언급하지 않는다.

 

내게 이 책을 추천해준 학생의 의도는 아마도 내가 메나셰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는 교사가 되길 바란 것이 아닐까? 그 뜻은 참으로 고마우나 사실 큰 부담이 된다. 나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좋은 아빠와 남편이 더 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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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생들이 제출한 에세이를 몇 시간이 걸리건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종이에 피라도 쏟은 것처럼 섬뜩하게 보일 때까지 빨간 펜으로 평을 열심히 적어주는 편이었다. 학생들이 에세이를 쓰는 데 시간을 들였으니 나도 그것을 읽고 더 나아지도록 도와주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의사들은 내가 치료 덕에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내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내 일이었다. 학생들은 내 생명의 진수이자 나의 숨,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였다. 학교에 있으면 아프지 않았다. 가르침에 열정을 쏟아붓는 시간만이 존재했다. 암과 벌이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일을 그놈이 가로막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날, 나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다시는 출근할 수 없게 되었다고 알렸다. 진심으로 유감입니다. 나아지시길 빌었는데 말이죠. 혹시라도 병세가 호전되면 언제든 돌아오십시오. 단 이 분간의 통화로 그렇게 허무하게, 일생을 바친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 첫새벽에 일어났던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상대방도 그만큼 나를 그리워하는 거라고들 말하지만, 지금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만큼 당신이 나를 그리워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시인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시구가 떠올랐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벌써, 내가 가르쳐보지 못할 반들, 앞으로 만나보지 못할 학생들이 그리워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줄곧,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자 항상 해온 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일이 백만번도 더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정말로 알았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사는 법을 배운다.

 

같이 갈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폴라는 딱 잘라 거절했다. “우리는 각자 인생에서 원하는 게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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