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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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이 20년 징역과 7년 칩거 후에 국내를 여행하며 쓴 여행기입니다. 수차례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마음을 경건하게 해주는 경전입니다.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얇은 책이지만 결코 짧지도 얇지도 않은 삶의 깨달음을 담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함께 들고 다니며 읽어도 좋습니다.

 

 

<밑줄>

갇힌 사람들에게 출소의 가장 큰 의미는 독보’(獨步)입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위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고의 논리학인 수학은 언제나 등식을 기본으로 합니다.

평등의 철학 위에서 문제의 해결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난중일기에는 군관, 병사 그리고 마을의 고로(古老)와 노복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운집 속에 서 있는 충무공의 모습이야말로 그의 참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탁월한 전략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연전연승 불패의 신화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군량도 병력도 이 풍부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최초의 비구니 마하프라자파티가 싯다르타를 기른 그의 이모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런 의미로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녀가 생후 이레 만에 어머니를 여읜 어린 싯타르타를 길러내었듯이 지금도 백흥암의 비구니 스님들은 말없이 또 한 사람의 싯다르타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바로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 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調)는 글자 그대로 말씀()을 두루() 아우르는 민주적 원리이며 화()는 쌀()을 나누어 먹는() 밥상공동체임에 틀임없습니다.

 

완만하면서도 무덤덤한 능선은 무언의 메시지였습니다. 무등산은 최고의 산이 아니라 무등(無等)의 산, 곧 평등(平等)의 산이었습니다. 평등은 단지 차별의 철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이야말로 자유의 최고치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고 평화로운 물이지만 이제부터는 하늘로 오르는 도약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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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불통 송강평전
박영주 지음 / 고요아침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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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곡 바라보며 정철을 한하노라

 

정철은 1536년 중종 31년에 서울에서 태어난다. 정철의 큰누나가 인종과 결혼을 한다. 정철은 어릴 때 궁궐에 가서 인종의 이복동생인 경원대군(명종)과 친하게 지낸다.

 

인종이 즉위 8개월만에 죽게 되면서 배 다른 동생 명종이 12살에 왕위에 오른다. 명종의 외삼촌이 득세를 하면서 인종의 외삼촌 세력을 반역죄로 모함해 죽이는 을사사화가 일어난다. 인종과 인척관계였던 정철 일가는 유배를 당하고 정철의 매형과 큰형은 죽임을 당한다. 10살의 정철은 이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이다. 권력을 잡지 못하면 죽는다는...

 

정철 일가는 7년 유배 생활을 마치고 담양 창평으로 이사를 한다. 여기에서 정철은 10년을 공부하여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명종 17년 정철은 관리의 비리를 조사하여 문책하는 사헌부 지평을 맡게 된다. 이때 명종의 사촌형 경양군이 처가 재산을 빼앗으려고 처남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정철은 형을 좀 봐달라는 명종의 부탁을 거절하고 원칙대로 하다가 경양군이 옥사를 한다. 이후 명종과 사이가 틀어진다. 정철은 이미 을사사화 때 명종에게 느낀 배신감으로 보복한 것이 아닐까?

 

선조가 즉위하면서 을사사화로 화를 입은 사림파가 복권된다. 이로 인해 정철은 선조를 사미인곡/속미인곡에서 미인이라 칭송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림도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면서 서인인 정철과 이이는 당쟁의 갈등 속에 귀향을 자주 한다. 게다가 20년 지기인 이이가 49세로 죽자 정철은 크게 낙심을 한다.

 

동인인 정여립이 반란을 꾀한다는 소문을 들은 정철은 선조에게 이 사건을 알리고, 선조는 정철에게 사건의 해결을 맡긴다. 정철은 선조의 지시대로 천여명에 가까운 동인 세력을 죽게 하는데 이를 기축옥사라 한다. 기축옥사로 인해 전라도가 반란의 혐의를 입고, 이후 전라도 출신은 관직 진출이 어려워진다.

 

정철은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라고 선조에게 건의했다가 선조와 사이가 멀어진다. 게다가 동인들의 끊임없는 모략으로 유배를 당해 159358세에 죽음을 맞는다. 죽어서도 동인의 보복으로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다가 100년만에 복권이 된다.

 

정철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은 을사사화와 기축옥사이다. 을사사화는 왕의 인척 간 권력 다툼이었고, 기축옥사는 사림의 동서인 간 권력 다툼이었다. 지배층끼리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번은 피해자로, 또 한번은 가해자로 살다가, 죽어서도 편치 못했다.

 

그의 작품 관동별곡은 선조가 정철에게 벼슬을 줘서 기뻐하는 노래요, 사미인곡/속미인곡은 안 그래서 슬퍼하는 노래이다. 을사사화 때 큰형과 매형이 죽은 한을 기축옥사 때 풀었으니 선조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결국 선조도 정철을 토사구팽하고 말았다. 한껏 날다가 추락해 죽느니 차라리 날지 말았으면 어떠했을까? 그토록 좋아하던 술이나 먹고 살았으면 말이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셈하며 무진장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가나
비단 상여에 만인이 울며 따라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굵은 눈, 회오리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어쩌리

(정철 - 장진주사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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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20
이태준 지음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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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말아야 - 이태준의 밤길석양을 읽고

 

이거, 왜 뒈지지 않어?” (이태준 - 밤길 )

황서방은 죽어가는 자식을 남몰래 밤길에 생매장한다. 가난하기 때문이다.

 

내가 타옥을 사랑하는 거나 아닐까?’ (이태준 - 석양 )

매헌은 시골 간다는 핑계로 타옥을 만나 석양을 즐긴다. 부유하기 때문이다.

 

내 자식을 죽일 만큼 가난하지도 말고, 남 자식을 사랑할 만큼 부유하지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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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인의 드라마작가를 말하다 - Drama,작가 vs 작가 방송문화진흥총서 96
신주진 지음 / 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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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1981)의 김정수(1949~), 한지붕 세가족(1986)의 김운경(1954~), 사랑이 뭐길래(1991)의 김수현(1943~), 아들과 딸(1992)의 박진숙(1947~), 모래시계(1995)의 송지나(195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1996)의 노희경(1966~), 허준(1999)의 최완규(1964~), 대장금(2003)의 김영현(1966~), 파리의 연인(2004)의 김은숙(1973~) 작가 등 2000년 전후의 드라마 작가에 대해 방대한 분량으로 서술하고 있다.

다만 2010년 이후의 작품에 대해 후속 저술이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시크릿가든(2011), 태양의 후예(2016), 도깨비(2017), 미스터션샤인(2018)의 김은숙 작가를 비롯하여, 동백꽃 필 무렵(2019)의 임상춘, 응답하라 1988(2015)의 이우정 작가 등 요즘 한창인 작가에 대해서도 집필을 기대해 본다.

 

<밑줄>

텔레비전 드라마는 우리사회에 방송이 시작된 지 수십년 동안 할 일 없는 아녀자들이 집안 일을 하는 짬짬이 왔다 갔다 하며 보는 싸구려 오락물로 치부되었다. 가끔 가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가 등장해도 그것은 이러저러한 사회적 요인들이 작용해 이루어진 사회현상일 뿐 드라마 자체에 대한 분석이나 비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시청률이 높을수록 보통은 저급한드라마가 대중들의 인식과 정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는 윤리적인 단죄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졌다.

90년대 벽두에 등장한 주찬옥의 드라마는 그러한 드라마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 편견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전환적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갈등이 센 극적인 사건보다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적인 사건들에 주목하고, 외부의 사건들이나 자극에 반응하는 수동적인 인물들 대신 자신의 주관과 소신, 성격들이 뚜렷한 주인공들이 등장하였으며, 그 인물들의 행위에는 내면의 심리와 자아성찰이 실리게 되었다. 문학에서의 자아개념에 맞먹는 이러한 적극적이고 반성적인 여성주체의 등장은 주찬옥에서 노희경, 인정옥으로 이어지는 의식적인 탈신파의 흐름을 형성하였으며, 명실상부한 마니아 드라마의 원류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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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비룡소 클래식 14
생 텍쥐페리 글 그림, 박성창 옮김 / 비룡소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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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가 생쥐처럼 들리는 것은 그가 영화 해리포터의 생쥐인간 피터 페티그루를 닮아서일까? 그러나 그의 키가 188cm라고 하니 생쥐처럼 작지는 않았다. 그 큰 키에 비행기 조종사는 안 어울릴 듯하나 1차 세계대전때부터 비행기를 몰았고, 끊임없는 비행기 사고에서 기사회생하더니 결국 2차 세계대전에서 비행기 추락사를 하게 된다.

 

어린 왕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작은 별에서 장미와 갈등을 일으키다가 다른 작은 별들을 여행한다. 마지막으로 찾은 커다란 별, 지구에서 사막 여우를 만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장미에게 되돌아 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에게 네가 바친 그 시간들이야.”

 

우리도 어린왕자처럼 그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지구라는 별을 여행하는 중일지 모른다고 생텍쥐페리가 말해놓곤 어린왕자처럼 지구를 떠났다. 다만 어린왕자는 뱀에 물려, 그는 비행기와 떨어져, 우리는 어떻게? 

 

<밑줄>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많지 않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만약 여러분이 새로 사귄 친구 얘기를 하면 어른들은 결코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어른들은 여러분에게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 친구도 나비를 수집하니?”라고는 절대로 묻는 법이 없다. 대신 그 애는 몇 살이지? 형제는 몇 명이고? 몸무게는 몇 킬로그램이나 나가니?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야?”라고 묻고서는 그걸로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각자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켜야 하는 법이니라. 권위는 올바른 이치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하느니라. 만약 네가 네 백성들에게 바다에 뛰어들라고 명령한다면 그들은 반란을 일으킬 것이니라. 짐이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은 짐의 명령이 사리에 맞는 까닭이니라.

 

뭘하고 있어요?

술 마시지.

왜 마셔요?

잊기 위해서지.

잊다니 뭘 잊는다는 거죠?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지.

뭐가 그리 부끄러워요?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게 부끄러워!

 

별을 소유하는 게 아저씨에게 무슨 소용이 있어?

부자가 되는 거지.

부자가 되는 게 무슨 소용 있어?

다른 별들이 발견되면 그걸 또 살 수 있거든.

 

안녕. 아저씨, 왜 방금 가로등을 껐어?

안녕. 그건 지시사항이야.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대답했다.

지시사항이라 게 뭐야?

가로등을 끄는 거지. 잘 자.

그리고 그는 곧 가로등을 켰다.

왜 또다시 켰어?

지시 사항이야.

 

네가 날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

 

무엇인가 길들이지 않고서는 그걸 정말로 알 수는 없어. 사람들은 이제 뭔가를 진정으로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물건을 가게에서 살 뿐이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이제 그들은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어떻게 하는 거지?

인내심이 있어야 해. 처음에는 내게서 조금 떨어져서 이렇게 풀밭에 앉는 거야. 나는 너를 흘끔흘끔 곁눈질로 쳐다보지.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날마다 넌 조금씩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에게 네가 바친 그 시간들이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넌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니까.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누군가에게 길들어졌을 때는 울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일 거야. 하지만 그게 아냐. 갈 길이 너무 멀어서 그러는 거야. 내 몸까지 가져 갈 수는 없거든. 너무 무거워서. 내 몸은 버려야 할 낡은 껍데기 같은 거야. 낡은 껍데기를 버린다고 슬퍼할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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