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 - 트럼프에 관한 가장 치명적이고 은밀한 정신분석 보고서
메리 트럼프 지음, 문수혜.조율리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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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때문에 난리다. 우리 나라도 윤석렬 때문에 난리를 치르고 있는데, 비슷한 점이 있다.

 

윤석렬의 아버지는 윤기중 교수는 대한민국 학술회 회원으로 선출될 정도로 사회 저명인사이다. 그러나 아들 윤석렬을 대학생 때까지 고무 호스로 체벌했을 정도로 엄했다. 또한 지인인 이종찬 광복회장에게 '우리 아들이 뭐 모르고 자라서 좀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에 너무 집착하는 성질이 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꼭 좀 충고를 해 달라'라고 죽기 전에 당부했다고 하니, 윤석렬은 내내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트럼프 역시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병약했고, 아버지는 일밖에 몰랐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승자가 되길 가르쳤고 그 과정에서 실패한 큰 아들(트럼프의 형)은 가혹하게 버림 받고 죽었다.

 

그 결과 트럼프는 평생을 승자인 척하며 살았다. 앞머리 숱이 없어서 옆머리로 가린 것처럼. 물론 그 과정에선 숱한 부정이 있었다. 심지어 SAT도 돈을 주고 대리시험을 치렀으니. 2번이나 대통령이 된 그는 현재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본인이 조카인 메리 트럼프에게 한 행동이나, 아버지인 프레드 트럼프가 말년에 아무리 치매가 들었다고 하지만 손녀인 메리 트럼프에게 한 성추행적 행동들이 근거이다.


"도널드는 세 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한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우리 속담처럼, 육아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애 하나 잘못 키우면 지구가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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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린 할머니가 감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자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히 아이들의 주 양육자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잘 돌봤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어린 자식들을 돌보는 일이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마치 아이들은 날 때부터 스스로 알아서 잘 자랄 수 있다고 믿었던 듯, 그는 하루에 12시간씩 주 6일을 트럼프매니지먼트에서 일만 하며 보냈다.

프레드의 무관심 속에서 가장 위태로웠던 아이들은 도널드와 로버트였다. 영유아가 보이는 일종의 애착행동에는 양육자의 긍정적이고 평안한 반응이 뒤따라야 한다. 아이가 미소 지으면 양육자도 미소 지어야 하고, 아이가 울면 양육자는 즉시 아이를 안아줘야 한다. 아마도 프레드는 집안 상황이 정상적이었더라도 그러한 애정 표현의 필요하다는 사실을 귀찮게 여겼을 것이다.

도널드와 로버트는 애정에 굶주렸다.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뿐아니라 그의 부재에 큰 괴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아들들의 괴로움이 커갈수록 프레드는 이들을 더욱 멀리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고, 자식들이 정서적으로 굶주려하는 모습을 귀찮아했다. 이러한 태도는 가족들 사이에 위험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가장 취약한 상태에서 부모에게 위로와 안정을 이끌어내도록 설계된 두 아이의 본능적인 행동이 아버지의 분노와 무관심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도널드와 로버트에게 애정을 필요로 하는 일은 곧 굴욕, 체념, 절망의 동의어가 됐다. 프레드는 집에 있을 때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이 어떻게 해서든 요구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길 바랐다.

 

일반적으로 가정의 규칙은 사회의 규칙을 반영하므로, 아이들은 세상에 나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가정에서의 규칙을 통해 아이들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의 장난감을 빼앗으면 안 되고, 친구를 때리거나 놀려서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는 이 모든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집에서 배운 규칙(최소한 남자들에게 해당되었던 규칙)어떻게 해서든 강해져야 한다’, ‘거짓말은 해도 된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건 나약한 것이다등이었는데, 이는 (당연히) 학교에서 맞닥뜨린 규칙과 충돌했다. 세상을 향한 프레드의 기본 신념은 승자는 오직 한 명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패자였으며, 이는 공유하는 능력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생각이었다. 도널드는 프레드를 통해 아버지의 규칙을 따르지 못하면 가혹할 뿐 아니라 때로는 공개적인 굴욕을 당하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권위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계속 아버지의 규칙을 따랐다. 도널드가 이해하는 옳은 것그른 것은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규칙과 당연히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도널드는 위험을 피하고자 시험을 잘 치는 똑똑한 아이 조 샤피로(Joe Shapiro)에게 SAT를 대신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 당시에는 신문등에 사진이 붙어 있지도 않았고 신분증이 기록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쉽게 대리시험을 칠 수 있었다. 한 번도 돈이 모자랄 적이 없었던 도널드는 그의 몫을 두둑이 떼어주었다.

 

맨션의 모든 세간에는 금박이 입혀져 있었다. 거실의 규모는 약167제곱미터에 높이는 약 13미터에 달했다. 맨션의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한 대로 화려했지만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밤 저녁식사 자리에는 나, 도널드, 말라뿐이었다

나는 수영복에 반바지만 입은 채 점심식사를 위해 테라스로 향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골프복을 입고 있던 도널드가 이전에는 한 번도 나를 본 적 없다는 듯이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세상에, 메리, 가슴 죽이는데!”

여보!” 말라가 짐짓 경악한 척하며 도널드의 팔을 살짝 때렸다.

 

내가 서재에 들어갔을 때 할아버지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안녕.” 할아버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잘 지내시죠?”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더니 지갑을 꺼냈다. 할아버지의 지갑은 너무 두꺼워서 주머니에 들어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지갑 속에 반쯤 벗은 여자의 사진을 넣고 다녔다. 내게 열두살 때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가 다시 그 사진을 보여줄까 걱정이 되었다.

이것 좀 보렴.” 당시 할아버지가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며 내게 말했다. 나이가 많아봐야 열여덟 살은 넘지 않았을 법한 여자가

짙은 화장을 한 채 카메라를 향해 순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자는 드러난 가슴을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도널드는 할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사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조언을 구하듯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그저 사람을 힐끗거릴 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물으며 웃었다.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를 그때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할아버지는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즐거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 하고 말하며 비웃음을 짓는 게 전부였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일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할아버지의 이상한 행동들은 그의 수표책을 숨기는 등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소비를 하며 할머니를 비난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하면 할아버지는 절묘한 모습을 보이며 할머니를 충격에 빠뜨린 표정을 짓게 했다.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돈 걱정을 했고, 자신의 재산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며 두려워했다. 할아버지는 인생에서 단 한 푼도 가난했던 적이 없는데도 가난에 집착하게 되었다. 가난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고문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다시 잠잠해졌지만, 할머니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계속됐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퇴근한 할아버지는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은 후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옷과 양말, 신발만 신고 내려오는 경우가 잦았다는 것이다. “다들 잘 있냐? 잘 있다고? 그래. 잘 자, 여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몇 분 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어느 날 밤, 할머니와 내가 서재에 앉아 있을 때 할아버지가 다가와 물었다. “이봐 여보, 저녁은 뭐 먹나?”

할머니의 대답을 들은 후 할아버지는 서재를 나갔다. 몇 분 뒤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와 물었다. “저녁은 뭐 먹나?” 할머니가 또 대답했다.

 

오빠는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내가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와 거의 비슷했다. 그래도 할머니가 오빠에게 가한 마지막 일침은 내용이 약간 달랐다. “너희 아버지는 두 손에 하나씩 들고 비밀 동전 두 닢도 없이 죽었어.”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돈뿐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자격 있는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추잡한 여자(Nasty Woman)’라 부르며 조롱한 일부터 뉴욕타임스소속 장애인 기자 서지 코발레스키(Serge Kovaleski)를 비하한 일에 이르기까지, 도널드가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내뱉은 모든 발언 중 내 예상은 벗어난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것을 나는 실제 가족 식사 자리에서 본 도널드의 태도들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보기에 못생기고 뚱뚱하며 게으른 여자들을 자주 입에 올렸다. 자기보다 성공했다고 더 영향력 있는 남자들은 루저라고 놀렸다.

할아버지와 메리앤 고모, 엘리자베스 고모, 로버트 삼촌은 도널드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으며 거들었다. 이렇듯 트럼프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동들이 흔하게 일어났곤 했다. 내가 놀란 점은 그가 그런 짓을 하고도 늘 처벌을 모면했다는 사실이었다.


도널드는 세 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그에게는 성장·학습·발달 능력이 없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능력도 없으며, 자신의 반응을 절제하거나 정보를 받아들여 취합할 기술도 없다. 그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이 지지자 중 대다수가 유세 현장이 아닌 곳에서 만났다면 그와 말도 섞지 않았을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을 달래기 위해 욕구를 채워 넣어야 했는데,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무리 채워도 갈 수 없는 독에 붓자마자 사라질 ‘칭찬’이라는 물을 계속해서 필요로 했다.

무엇도 도널드의 욕구를 완전하게 채우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인 나르시시즘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도널드는 단순히 유약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허상을 믿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허상이라는 것 또한 모를 리 없다. 그 때문에 타인의 지지와 인정을 통해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보호하려 안간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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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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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살 것인가?’로 검색하면, 315건이 나온다. 판매량순으로 정렬하면,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1위이다. 그다음이 2위가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이다.


315권의 책을 다 봐도 대부분 ‘how to live’ 즉 인생론이고, 간혹 ‘where to live’ 즉 주거론이지, ‘how to buy’ 즉 구매법에 대한 책은 한 권도 없다.


쇼핑중독자를 위한 책은 없나? 아니 굳이 중독이 아니더라도 우리 일생, 우리 일일의 상당 부분이 무엇을 사는 데 시간과 돈을 들이는데 말이다.


여하튼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50대의 필자가 이제껏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독자가 50대면 공감할 것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특히 이빨 빠지고 눈 침침해진다는 대목에서ㅠ.


필자의 인생론은 거칠게 정리하자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되, 이왕이면 타인의 복지에도 관심을 가지란 거다.


백퍼만땅공감

 

다만, 좀 안타까운 구석이 있다. 차라리 문재인 대신 유시민이 출마했다면? 최소한 이낙연과 윤석렬 같은 사람은 안 나오지 않았을까? 문재인은 64세에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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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리더십 세대교체는 사회적 정치적 현상이지만 그 배후에는 생물학적 필연성이 놓여 있다. 조용하고 순조로운 교체든 시끄럽고 폭력적인 변화든 어쨌든 세대교체는 반드시 일어난다. 물론 꼭 예순다섯 살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약간은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나이가 너무 많이 들면 남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일과 자리는 피하는 게 현명하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국회의원이나 장관, 기업의 최고 경영자도 사양하는 게 좋다. 좋은 일 하자고 나섰다가 외려 큰 민폐를 끼칠지 모른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일시적으로 15퍼센트 정도의 대선 여론 조사 지지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선 예비 후보로서의 정치 행위를 일체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지지율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이 잠시 내 이름으로 가등기된 것일 뿐이기에 자격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은 내게 민주당과 합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서라고 간곡하게 권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에게 정치 참여와 대통령 출마를 권했다.

 

나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법을 좋아한다. 생물학적 접근법에 따르면 진보주의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다. 이러한 의미의 진보주의자는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또는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한다.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진화가 인간에게 설계해놓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가족과 친척이 아닌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을 자발적으로 내놓는 것은 기나긴 생물학적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새롭게 나타난 행동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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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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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 판단은 필요악

 

분별(分別)과 판단(判斷)은 좋은 거다. 이게 있으면 똑똑한 거고, 없으면 멍청한 거니까. 그런데 왜 그럴까? 단어를 살피면 이들의 공통점은 가르고[] 자르는[] 거다. 즉 칼[]과 도끼[]로 잘라내는 것을 왜 좋다고, 똑똑하다고 생각했을까?

 

감탄고토(甘呑苦吐)란 말이 있다. 나쁜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게 본능이고 좋은 거다. 즉 달면 대개 이로운 거니 삼켜야 하고, 쓰면 대개 해로운 거니 뱉어야 한다. 그게 자기 보호 본능이다. 그런데 이처럼 직접 맛 보는 것은 힘들고 위험하다. 그래서 슬슬 똥과 된장을 굳이 맛보지 않고도 판단하기 시작한 거다.

 

그런데 이처럼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간접 경험을 통해, 즉 고정관념과 편견에 따라 사물을, 인간을 분리, 구분, 분별, 판단하다보니 또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바로 잘못된 구분이다. 예를 들어, 다른 인종끼리 결혼하지 말라. 동성동본끼리 결혼하지 마라. 동성끼리 연애도 결혼도 안된다는 구분이다.


약자를 배려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장애인차, 경차, 친환경 전용주차 구역은 필요한 분별이다. 한편 우리 학교는 설립자의 가족들만 주차를 하는 '온리패밀리존'이 있다. 강자를 배려(?)하는 분별은 불필요를 넘어 불법이다.   

 

서로 가르는 자르는 분별과 판단은 최소일수록 선이고, 최대일수록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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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화된 정보를 스테레오타입, 또는 고정관념이라고 부른다. 스테레오타입은 1700년대에 신문 지면과 같은 한 페이지를 통째로 찍어내는 금속 인쇄판을 지칭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 1922년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월터 리프먼이 그의 책 여론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오늘날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리프먼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각인된 그림을 가지고 경험하지 않은 세상을 그린다고 생각했다. 바깥세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폭은 좁다. 그런데 스테레오타입은 효율적으로 무언가 아는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여론을 형성한다. 문제는 이렇게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부 특징을 과잉 일반화하는 결과, 즉 편견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약함, 불행, 부족함, 서툶을 볼 때 즐거워한다고 했다. 웃음은 그들에 대한 일종의 조롱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을 우월성이론이라고 한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ㅇ르 적용하는 것이 도리어 누군가를 불리하게 만드는 간접차별의 예들이다. 내가 유학을 한 학교에서는 비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에게 입학 후 일정 기간 동안 시험시간을 더 주는 정책이 있었다.

 

능력은 한가지가 아니며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을 특정한 평가기준으로 단정지어 판단해버리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첫 차별의 경험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편애다.

 

카페나 식당에서 영유아와 아동의 입장을 거부하는 노키즈존논쟁이 한참이더니, 중고등학생의 입장을 거부하는 노스쿨존도 나타났다. ‘노장애인존은 어떤가? 한 식당에서는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장에인에게 자리가 없다며 입장을 거부했다.

 

1959년 미국의 한 판사는 백인과 유색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인종을 백인, 흑인, 황인, 말레이인, 홍인으로 창조하였고, 서로 다른 대륙에 살게 하였다. 그의 섭리를 방해하지 않고서는 그런 결혼의 이유가 없다. 그가 인종을 구분했다는 사실이, 인종을 혼합할 의사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1958년 민법의 제정과 함께 등장한 동성동본 금혼규정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채 가정을 꾸려야 했고 연인들이 이를 비관하여 자살하기도 했다. 이 제도는 1997년이 되어서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사라진다.

 

동성동본 금혼의 시대를 지나, 오늘날에는 동성결혼 인정하면 가정, 사회, 국가가 무너진다며 동성 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주장이 거세다. 2001년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한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1,200~1,400쌍의 동성커플이 결혼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무너지지않았으며, 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 등 역시 동성결혼이 인정되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의 하나로 건재하다.

 

선거와 입법 등의 절차는 대개 다수결의 원칙을 택하는데, 이 의결 방식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려지는 결정이 소수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 복종하는 태도는 민주주의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복종은 전체주의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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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 - 한 칸짜리 작은 집을 지으며 건축의 세계를 탐구하다
마이클 폴란 지음, 배경린 옮김, 나기운 감수 / 펜연필독약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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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 지어진 소로우의 엉성한 오두막집과 그것에 대한 소로의 찬양은 후대 미국 건축에 분명한 족적을 남겼다. 자연을 향한 투명성과 탁트인 공간의 추구가 바로 그가 남긴 유산이다.”

 

소로가 매사추세츠주 월든 호숫가에서 직접 지은 오두막은 10피트 × 15피트 (3m × 4.5m), 높이 약 8피트(2.4m)였고, 재활용해서 지었다고 한다.

 

한편 폴란이 설계와 시공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조수 정도로 참여하여 지은 집은, 9×12피트 (2.7m × 3.6m), 높이 약 9피트(2.7m)의 오두막이다.

 

비슷한 크기이고, 구조도 경량목구조로 비슷하다. 다만 소로는 월든이란 책에서 집을 짓는 과정보다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고, 폴란은 주말 집짓기란 책에서 월든보다는 더 집짓기에 치중한 이야기를 한 점이 다르다.

 

내 꿈도 비슷하다. 4.8m × 2.4m × 2.4m 크기의 경량목구조 오두막을 내 손으로 지으면서 글을 쓰고 싶은 거다.

 

경골 구조는 나무를 이용하는 기술이긴 하지만 기계 시대의 산물이다. 일정한 규격의 목재를 언제든지 생산해 낼 수 있는 증기동력 제재소와 공장제 못의 발명 없이는 상용화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경골 구조 건축물은 시카고에 지어진 성 마리아 성당이다. 1833년 세 명의 인부가 석 달간 작업하여 완성한 건물이다

 

집을 짓는 방법은 참 다양하지만 혼자 지어도 크게 어렵지 않게 제법 괜찮은 집을 짓을 수 있게 해주는 공법이 경량목구조이다. 콘크리트 기초와 아스팔트슁글 지붕마감만 제외하면 모든 걸 나무로 다 지을 수 있다. 각재로 기둥을 세우고, 합판으로 벽을 붙이고. 이 재미있고 보람있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땅만 있으면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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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수학무기 -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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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 수학무기의 저자는 정규직 교수직을 그만두고 헤지펀드의 금융분석가가 되었다. 수학적 능력으로 정당한 돈을 벌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보니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수학이 부당한 거래의 수단으로 오남용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신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악용하여 일부 나쁜 사제들이 마치 신을 본 것처럼 들은 것처럼 거짓말을 해도 착한 신도들은 속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수학의 이해하기 어려운 속성을 악용하여 일부 나쁜 수학자들이 착한 시민들을 속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복잡한 금융상품을 판매하여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경우이다.


설령 좋은 의도로 수학을 사용한 사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예를 들면 교사 평가 시스템이다. 좋은 교사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나쁜 교사에게 나쁜 점수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에 있어 좋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랑, 희망, 믿음 등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것들은 수학적으로 계량하기 힘든, 즉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따라서 수치화가 가능한, 즉 눈에 보이는 영역만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가령,학생의 시험성적이다. 그러나 학생성적은 교사평가의 참고가 될 수는 있겠으나 그것으로 인해 월급이나 고용이 좌지우지되면 안되는데 종국 그렇게 된다면, 선한 의도와 다르게 수학이 악용된 사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수치화 할 수 있다고 비본질적인 영역만 평가하여 이를 맹신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둘째, 수학으로 평가하기 힘든, 눈에 안보이지만 본질적인 영역을 평가하려는 시도는 최대한 면밀히 실험하여, 발생하는 오류를 꼼꼼하게 교정해야 한다. 문제점이 충분히 잡힌 다음에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수학자의 능력보다는 양심이다. 그리고 그 양심을 지키기 위해선 수학자 개인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이들이 함께 양심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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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경제의 원동력인 수학 모형 프로그램들은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선택에 기반을 둔다. 분명 이런 선택 중 일부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모형은 인간의 편견, 오해, 편향을 코드화했다.

수학 모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을 닮았다. 신처럼 불투명해서 이해하기 힘들다. 각 영역의 최고 사제들, 즉 수학자와 컴퓨터 과학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내부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신의 평결처럼, 잘못되거나 유해한 결정을 내릴지라도 반박하거나 수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부자는 더

욱 부자로 만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런 유해한 모형들의 적절한 이름을 생각해 보았다. 바로 대량살상수학무기 Weapons of Math Destruction’, 줄여서 WMD.

 

2007년 워싱턴 DC 시장으로 취임한 에이드리언 펜티는 관내 부실 학교들을 개혁하겠다고 강력하게 선언했다. 펜티는 워싱턴 교육감 자리를 신설하고, 교육 개혁가인 한국계 미국인 미셸 리를 그 막중한 자리에 앉혔다.

워싱턴 교육 당국은 학생들의 성적이 부진한 것이 교사들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2009년 리 교육감은 무능한 교사들을 가려내기 위한 계획을 시행했다.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리 교육감은 임팩트IMPACT’라는 교사 평가 기법을 개발했다. 임팩트의 평가에 따라 2009~2010년 학년 말에 워싱턴 교육청은 평가점수가 하위 2%에 해당하는 교사들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다음 학년 말에는 하위 5%206명의 교사들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워싱턴의 교사들은 수년에 걸쳐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교사 평가 점수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평가 방식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평가 시스템이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설명하기가 매우 복잡하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시험 성적이 나쁘면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둘 경우, 교사와 행정관은 최대 8000달러의 상여금을 받을 수 있었다. 교사들이 낮은 고과 점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아니면 탐욕에 눈이 멀어서든 학생들의 답안을 수정했다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된다.

 

모형이란 원래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복잡성이나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미묘한 차이를 완벽히 반영한 모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싱턴 공립학교의 교사평가모형을 생각해보자. 가치부가모형은 학생들의 시험 성적을 토대로 교사들을 평가한다. 교사가 수업할 때 학생들의 참여를 얼마나 이끌어냈는지, 특정한 수업 기술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교실을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 개인적인 문제나 가정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도와주었는지 같은 요소는 철저히 배제한다. 가치부가모형은 지나치게 단순하며, 효율성을 위해 정확성과 통찰을 희생한다.

 

당시 나는 헤지펀드가 도덕적으로 중립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나쁘게 보아도 금융 시스템의 포식자 정도일 거라고 여겼다. 그랬기에 헤지펀드의 하버드로 불리는 디이 쇼에 선뜻 입사한 것이다. 그곳 사람들에게 내 지식으로 돈을 벌 수 있음을 증명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 마냥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교수 연봉보다 세 배나 많은 돈을 받게 되어 개인적으로 금상첨화였다.

그러나 곧 금융 세상에 발을 담글 당시에는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내가 믿었던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나는 온몸으로 그 과정을 혹독하게 겪여내면서 수학이 얼마나 음흉하고 파괴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교훈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명확히 정의하기보다는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수학 공식들을 의도적으로 이용했다.

 

사립학교, 고액 SAT 과외, 파리나 상하이 어학연수 등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교외의 부자 동네에 거주하는 젊은이는 금수저인데도 자신을 특권층으로 만들어 준 것이 자신의 능력, 근면함, 탁월한 문제 해결력이라고 자부한다. 이는 돈이 모든 의심을 잠재운 결과다. 게다가 이런 계층의 사람들이 똘똘 뭉쳐 서로 칭찬하는 사회(mutual admiration society)를 형성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시스템을 악용한 것과 대단한 행운이 결합된 결과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성공을 적자생존의 사회적 다윈주의가 작동한 결과임을 납득시키려 한다.

 

배움, 행복, 자신감, 우정 등등 학생 각자가 대학에서 4년간 경험하는 다양한 측면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유에스 뉴스는 교육의 우수성과 상관성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리 데이터를 사용하기로 했다. 먼저 SAT 점수와 학생 대 교수 비율, 입학 경쟁률을 조사하고, 신입생 잔류율과 졸업률을 분석했다. 또한 동문들이 모교에 기부하는 비율도 계산하였는데, 모교에 기부하는 동문은 재학 시절에 받은 교육에 만족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측했기 때문이다.

유에스 뉴스1988년 처음으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대학 순위를 발표했는데, 이는 매우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순위가 전국적인 표준으로 확장됨에 따라 피드백 루프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가령 유에스 뉴스에서 낮은 순위를 받으면 대학의 평판이 손상되고 전반적인 여건이 악화됐다. 우수한 학생들과 훌륭한 교수들이 해당 대학을 기피하고, 동문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면서 기부금을 줄였다. 그러다 보면 다음해 해당 대학의 순위는 더욱더 떨어졌다.

대학 행정관들은 자기 대학의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가령 텍사스에 위치한 베일러 대학교는 입학 예정자들의 SAT 점수를 끌어올리고, 그래서 학교의 순위도 올라가기를 기대하면서, SAT를 다시 치르는 학생들의 응시료를 대신 부담해주었다. 심지어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버크넬 대학교와 캘리포니아에 자리한 클레어몬트 매케나 칼리를 포함해 규모가 작은 명문대학들은 유에스 뉴스에 신입생들의 SAT 점수를 부풀리는 등 허위 데이터를 제공했다. 뉴욕 주에 위치한 아이오나 칼리지는 2011년 직원들이 시험점수, 입학 경쟁률, 졸업율, 신입생 잔류율, 학생 대 교수 비율, 동문 기부금 등 거의 모든 항목의 숫자를 조작했노라고 시인했다.

유에스 뉴스모형 같은 WMD는 모든 사람이 정확히 똑같은 목표를 따르도록 강제한다. 이는 사람들을 무한경쟁에 내몰고 이전에는 겪지 않았을 다양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한다.

유에스 뉴스는 대학 순위 측정 항목으로 학비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대학 총장들의 손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쥐어주었다.

1985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대학 교육비는 500% 이상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의 거의 네 배에 이른다.

유에스 뉴스 & 월드 리포트는 쇠퇴를 거듭하다가 2010년 종이 잡지 인쇄를 중단했다. 그러나 대학 순위 사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의과대학, 치과대학, 인문과 공학 분야의 대학원 프로그램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이제는 고등학교의 순위까지 집계하고 있다.

 

2014유에스 뉴스가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에선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압둘라지대학(KAU)의 선전이 돋보였다. 불과 2년전에 신설된 KAU 수학과가 케임브리지와 MIT를 포함한 몇몇 전통적인 수학 강호들을 제치고 하버드의 뒤를 이어 세계 7위에 선정된 것이다.

KAU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한 다수의 수학자들과 접촉했고, 그들에게 겸임교수직과 72000달러라는 높은 연봉을 제시했다. KAU와 계약한 수학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년에 3주간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KAU는 교수들에게 톰슨 로이터스 인용 색인 웹사이트에 등록된 근무처 정보를 KAU로 변경하도록 요구했는데, 이 웹사이트는 유에스 뉴스가 순위를 산정할 때 참조하는 핵심 출처였다. KAU의 순위는 급등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중샹의 학생들은 중국의 대입시험인 가오카오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명문대학에 많이 진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2년 중샹 교육 당국이 어떤 과목 시험에서 동일한 답안지를 99개 발견한 뒤 의심은 확신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2013년 가오카오 고사장에 도착한 중샹의 학생들은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고사장에 들어가려면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고 휴대전화를 강제로 제출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생이 지우개처럼 생긴 소형 송신기를 뻬앗기는 등 부정 행위가 적발됐다. 고사장 안에서는 각기 다른 교육구에서 파견된 54명의 조사관이 배치돼 수험생들을 따라다녔다. 일부 조사관은 고사장 건너편에 있는 호텔을 수색했는데 그곳에서 송신기로 수험생들과 연락하기 위해 대기하던 사람들을 무더기로 찾아냈다.

부정 행위 단속에 학생들은 활화산 같은 반응을 보였다. 2000여 명이 고사장이었던 학교 앞 거리에 모여 우리는 공정함을 원한다. 우리에게 부정 행위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공정함이란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투석 시위를 벌였다. 이런 구호가 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시위자들은 더없이 진지했다. 학생들에게 가오카오는 너무나 많은 것이 걸려 있는 시험이었다. 그들은 시험 성적에 따라 엘리트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거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방도시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갈림길에 서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다른 지역의 학생들도 자신들처럼 부정 행위를 저지른다고 믿었다. 그래서 중샹의 학생들을 대상으로만 부정 행위를 단속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부정 행위가 규범이 된 시스템에서 정직하게 규칙을 따르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좋은 사례가 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사이클 경주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의 랜스 암스트롱과 그와 함께 금지 약물을 복용한 팀 동료들에게 7년이란 세월을 빼앗긴 사이클 선수들에게 물어보라.

불공정한 조건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위를 차지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앞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중국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등학교 진학 상담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가 <유에스 뉴스> 모형이 만든 시스템을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미국에서도 정확히 적용되는 사실이다.

 

지금의 대학 입학 게임은 비록 이익을 얻는 일부가 있지만, 교육적으로는 사실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려스럽고 복잡한 대학 입시 시스템은 18세 때 대학 관문을 통과한 학생들을 최신 방식으로 재분류하고 점수를 매겨 서열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들은 전문 강사의 감독 아래 미세조정된 틀에 맞춰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거나 더 많은 장애물을 통과할 뿐, 정작 대학 교육에 관한 중요한 지식을 배우지는 못한다.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입시 컨설턴트를 찾기 위해 온라인을 뒤지는 학생들도 있다. 요컨대 부유층부터 노동자 계층까지 모든 학생이 거대한 기계에 맞도록, WMD를 충족시키도록 단순히 훈련될 뿐이다. 이같은 시련을 견뎌낸 다음에도 그들 중 상당수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등록금 때문에 수십 년간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을 떠안게 된다.

 

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신뢰는 정량화하기 어렵다. 이를 측정하는 것은 모형 개발자들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다. 반면 유유상종의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모형은 개발하기가 훨씬 쉽다. 이런 모형은 범죄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 프레드폴 같은 범죄 예측 모형이 만들어낸 피드백 루프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경찰의 감시를 정당화하고 이를 더 강화시키고 있다.

 

교육계의 WMD는 대학의 입학 과정을 오염시키고 부유층과 중산층 모두를 피해자로 전락시켰다. 형사 사법 시스템의 WMD는 수백만 명에게 범죄자라는 올가미를 씌웠다. 대부분 가난하고 또한 대학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이다.

인간에게서 지원자들을 차별하는 법을 배운 컴퓨터는 인간들보다 한 술 더 떠서 기가 막힐 만큼 효율적으로 차별적인 심사를 했다.

 

나는 일정관리소프트웨어가 지독히도 끔찍한 WMD라고 생각한다. 일정관리프로그램은 대규모로 적용되고 있는 데다 빠듯하게 먹고사는 사람들마저 착취한다.

일정관리모형은 정의 구현이나 모두의 이익이 아니라 효율성과 수익성에 맞춰 최적화된다. 이는 자본주의의 본질이기도 하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잠재적인 비용 절감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고, 부자연스러운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는 대항 세력이 필요하다. 효율성의 오남용을 고발하고 기업들을 질책해 옳은 일을 하게 만드는 대항 세력 말이다.

부당한 노동환경을 활발히 보도하는 언론도 대표적인 저항 세력이다. 노동자들을 조직적으로 규합하고 대변해 줄 강력한 노동조합, 그리고 기업이 저지르는 최악의 방종 행위를 억제하는 법률을 제정할 의지가 있는 정치인들도 필요하다.

 

누군가의 감정 상태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이될 수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리에 그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만든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마음만 먹으면 수백만 명의 감정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작할 수 있다. 만약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선거일에 사람들의 감정을 조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데이커 처리 과정은 과거를 코드화할 뿐, 미래를 창조하지 않는다. 미래를 창조하려면 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우리는 더 나은 가치를 알고리즘에 명백히 포함시키고, 우리의 윤리적 지표를 따르는 빅데이터 모형을 창조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가끔은 이익보다 공정성을 우선시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갈수록 광범위하게 지배하는 수학 모형을 규제하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출발점을 모형 개발자들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이 그러하듯이, 데이터과학자들도 자신들이 만든 모형이 오남용되고 잘못 해석될 가능성에 대항할 일종의 히포크라스테스 선서를 해야 한다.

 

공정성과 공익은 오직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으로, 정량화하기 힘들다. 그런데 모형은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다. 그저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배제할 뿐이다. 그러나 효율성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알고리즘에 인간적인 가치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WMD들이 득세하게 된다. 일터에서 우리를 기계 부품처럼 취급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취업 기회를 빼앗아가고, 건강에 이상이 있는 직원을 배척하며, 온갖 불평등한 만행을 저지르는 치명적인 수학 모형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WMD들을 규제하고 길들이며 무장해체시키기 위해 우리는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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