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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분별, 판단은 필요악
분별(分別)과 판단(判斷)은 좋은 거다. 이게 있으면 똑똑한 거고, 없으면 멍청한 거니까. 그런데 왜 그럴까? 단어를 살피면 이들의 공통점은 가르고[別] 자르는[斷] 거다. 즉 칼[刀]과 도끼[斤]로 잘라내는 것을 왜 좋다고, 똑똑하다고 생각했을까?
감탄고토(甘呑苦吐)란 말이 있다. 나쁜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게 본능이고 좋은 거다. 즉 달면 대개 이로운 거니 삼켜야 하고, 쓰면 대개 해로운 거니 뱉어야 한다. 그게 자기 보호 본능이다. 그런데 이처럼 직접 맛 보는 것은 힘들고 위험하다. 그래서 슬슬 똥과 된장을 굳이 맛보지 않고도 판단하기 시작한 거다.
그런데 이처럼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간접 경험을 통해, 즉 고정관념과 편견에 따라 사물을, 인간을 분리, 구분, 분별, 판단하다보니 또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바로 잘못된 구분이다. 예를 들어, 다른 인종끼리 결혼하지 말라. 동성동본끼리 결혼하지 마라. 동성끼리 연애도 결혼도 안된다는 구분이다.
약자를 배려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장애인차, 경차, 친환경 전용주차 구역은 필요한 분별이다. 한편 우리 학교는 설립자의 가족들만 주차를 하는 '온리패밀리존'이 있다. 강자를 배려(?)하는 분별은 불필요를 넘어 불법이다.
서로 가르는 자르는 분별과 판단은 최소일수록 선이고, 최대일수록 악이다..
<밑줄>
단순화된 정보를 스테레오타입, 또는 고정관념이라고 부른다. 스테레오타입은 1700년대에 신문 지면과 같은 한 페이지를 통째로 찍어내는 금속 인쇄판을 지칭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 1922년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월터 리프먼이 그의 책 ‘여론’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오늘날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리프먼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각인된 그림을 가지고 경험하지 않은 세상을 그린다고 생각했다. 바깥세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폭은 좁다. 그런데 스테레오타입은 효율적으로 무언가 아는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여론을 형성한다. 문제는 이렇게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부 특징을 과잉 일반화하는 결과, 즉 편견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약함, 불행, 부족함, 서툶을 볼 때 즐거워한다고 했다. 웃음은 그들에 대한 일종의 조롱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을 우월성이론이라고 한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ㅇ르 적용하는 것이 도리어 누군가를 불리하게 만드는 간접차별의 예들이다. 내가 유학을 한 학교에서는 비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에게 입학 후 일정 기간 동안 시험시간을 더 주는 정책이 있었다.
능력은 한가지가 아니며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을 특정한 평가기준으로 단정지어 판단해버리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첫 차별의 경험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편애다.
카페나 식당에서 영유아와 아동의 입장을 거부하는 ‘노키즈존’ 논쟁이 한참이더니, 중고등학생의 입장을 거부하는 ‘노스쿨존’도 나타났다. ‘노장애인존’은 어떤가? 한 식당에서는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장에인에게 ‘자리가 없다’며 입장을 거부했다.
1959년 미국의 한 판사는 백인과 유색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인종을 백인, 흑인, 황인, 말레이인, 홍인으로 창조하였고, 서로 다른 대륙에 살게 하였다. 그의 섭리를 방해하지 않고서는 그런 결혼의 이유가 없다. 그가 인종을 구분했다는 사실이, 인종을 혼합할 의사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1958년 민법의 제정과 함께 등장한 동성동본 금혼규정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채 가정을 꾸려야 했고 연인들이 이를 비관하여 자살하기도 했다. 이 제도는 1997년이 되어서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사라진다.
동성동본 금혼의 시대를 지나, 오늘날에는 “동성결혼 인정하면 가정, 사회, 국가가 무너진다”며 동성 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주장이 거세다. 2001년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한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1,200~1,400쌍의 동성커플이 결혼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무너지지’ 않았으며, 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 등 역시 동성결혼이 인정되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의 하나로 건재하다.
선거와 입법 등의 절차는 대개 다수결의 원칙을 택하는데, 이 의결 방식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려지는 결정이 소수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 복종하는 태도는 민주주의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복종은 전체주의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