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 2 - 산문
김수영 지음 / 민음사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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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시로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면 산문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김일성 만세라는 그의 시에서 언급된 60년대 언론, 정치의 현실은 그의 산문 곳곳에서 역설되고 있다.

 

김수영의 시에서는 그를 체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만 이해하기 쉬운데, 그도 그럴 것이 서정적인 연애시가 없기 때문이다. 김수영 자신도 그런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산문에서는 자신도 연애시를 쓸 수 있다는 변명(?)을 하고 있다.

 

그의 시 ,죄와 벌, 미인, 여편네의 방에 와서에서 알 수 있듯 그의 부부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아내가 김수영이 북한군으로 징병되어 전쟁 중에 사망한 것으로 오해해 남편의 고교 선배와 살림을 차렸던 것이 평생 한이 되어나 보다. 산문에서도 김수영의 아내 타박(?)은 여실히 들어난다.

 

김수영은 술 먹고 귀가하던 중 버스에 치여서 죽었다. 그가 평소 술을 좋아했고, 술 안 먹는 젊은이들을 걱정했던 사람이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마지막을 암시한 것이었을까?

 

<밑줄>

언론자유나 사상의 자유는 헌법조항에 규정이 적혀있다고 해서 그것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해서는 큰 잘못이다. 이 두 자유가 진정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위선 자유로운 환경이 필요하고 우리와 같이 그야말로 이북이 막혀있어 사상이나 언론의 자유가 제물로 위축되기 쉬운 나라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 두 개의 자유의 창달을 위하여 어디까지나 그것을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하지 방관주의를 취한다 해도 그것은 실질상으로 정부가 이 두 자유를 구속하게 된다는 결과는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정부가 지금 할 일은 사회주의의 대두의 촉진 바로 그것이다. 학자나 예술가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국가를 초월한 존재이며 불가침의 존재이다. 일본은 문인들이 중공이나 소련같은 곳으로 초빙을 받아 가서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을 배우기도 하고 비판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언론의 창달과 학문의 자유는 이러한 자유로운 비판의 기회가 국가적으로 보장된 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김수영 일기 )

 

지식인이라는 것은 인류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사람이다. 우선 일본만 보더라도 이런 지식인들이 많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지식인이 없지는 않는데 그 존재가 지극히 미약하다. 지식인의 존재가 미약하다는 것은 그들의 발언이 민중의 귀에 닿지 않는다는 말이다. 닿는다 해도 기껏 모기소리만큼밖에 들릴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인의 소리가 모기소리만큼밖에 안 들리는 사회란 여론의 지도자가 없는 사회이며, 따라서 진정한 여론이 성립될 수 없는 사회다. 즉 여론이 없는 사회다. 혹은 왜곡된 여론만 있는 사회다. 우리나라의 소위 4대신문의 사설이란 것이 이런 왜곡된 가짜여론을 매일 조석으로 제조해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씌여지고 있다. (김수영 - 모기와 개미 )

 

우리집 여편네의 경우를 보니까, 여자는 한 40이 되니까 본색이 드러난다. 이것을 알아내기에 근 20년이 걸린 셈이다. 오랜 시간이다. 한 사람을 가장 가까이 살을 대가며 관찰을 해서 알게 되기까지 이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니 여자의 화장의 본능이 얼마나 뿌리깊은 지독한 것인가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헷세의 향수라는 소설에 나오는 꼽추모양으로, 사람을 알려면 별로 많은 사람을 사귈 필요가 없다. 나의 경우에는 여편네 하나로 족한 것같은 생각조차도 든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을 보면 된다. <>이란 한계점이다. 고치려야 고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숙명이다. <>에 한두번이나 열 번 스무번이 아니라 수없이 부닥치는 동안에 내딴에는 인간 전체에 대한 체념이랄까 그런 것이 생긴다. (김수영 - )

 

나이가 들어가는 징조인지는 몰라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빈도가 잦아진다. 모든 것과 모든 일이 죽음의 척도에서 재어지게 된다. 자식을 볼 때에도 친구를 볼 때에도 아내를 볼 때에도 그들의 생명을, 그들의 생명만을 사랑하고 싶다. 화가로 치자면 이제 나는 겨우 나체화를 그릴 수 있는 단계에 와있을지도 모른다. 잘하면 이제부터 정말 연애시다운 연애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쓰게 되면 여편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쓸 수 있을 연애시를, 여편네가 이혼을 하자고 대들만한 연애시를 그래도, 뉘우치지 않을 연애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김수영 - 나의 연애시 )

 

30대까지는 여자와 돈의 유혹에 대한 조심을 처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오히려 그것들에 대한 방심이 약이 되고 있다. 되도록 미인을 경원하지 않으려고 하고, 될 수만 있으면 돈도 벌어보려고 애를 쓴다. 없는사람의 처지를 있는사람이 모른다고 하면서 있는 사람을 나무라는 없는사람의 가치관에 대한 공감도 소중하지만, 사실은 있는사람의 처지를 알아주는 있는사람들의 가치관에 대한 없는사람으로서의 공감이 따지고 보면 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도 그렇지만 오늘날도 역시 가난하게 살기는 쉽지만 돈을 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태와, 또한 나이가, 게다가 여직까지 쌓아온 선비로서의 지나친 수양의 탓 때문인지, 좌우간 요즘의 나로서는 미인과 돈에 대한 방심이 그것들에 대한 지난날의 조심보다도 몇 곱절 더 어렵다. (김수영 미인 )

 

혁명 후의 우리 사회의 문학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 비해서 술을 훨씬 안 먹습니다. 술을 안 마시는 것으로 그 이상의, 혹은 그와 동등한 좋은 일을 한다면 별 일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 술을 안 마신다면 큰일입니다. 밀턴은 서사시를 쓰려면 술 대신에 물을 마시라고 했지만, 서사시를 못 쓰는 나로서는,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술을 마신다는 것은 사랑을 마신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였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또 혁명의 시대일수록 나는 문학하는 젊은이들이 술을 더 마시기를 권장합니다. 뒷골목의 구질구질한 목로집에서 값싼 술을 마시면서 문학과 세상을 논하는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지 않는 나라는 결코 건전한 나라라고 볼 수 없습니다 (김수영 - 요즘 느끼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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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지음 / 민음사 / 198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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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작품은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시인 신동엽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공통점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바꾸려하는 의지일 것이다. 그런데 차이점은 신동엽은 비교적 서정적이라면 김수영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동엽보다는 김수영을 이해하고 감상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김수영은 버스에 치여서 48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죽었다. 그런데 그의 죽음에 의혹이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왜냐면 이승만, 박정희에게 그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김수영도 김지하처럼 오래 살았다면 어떻게 변절할지 모르는 일이지만...

김수영의 작품은 1960년 한해에 남긴 게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뛰어나다. 그 이유를 살피면 아마도 김수영은 겁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불의한 현실에 저항할 용기가 없었던 그에게 1960426일 이승만이 하야를 선언한 그날부터 봇물 터지듯 시를 썼다. 이듬해 516일 박정희 집권까지 1년여 간은 평생 가장 행복했던 한 때였을 것이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

기념탑을 세우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이제야말로 아무 두려움 없이

그놈의 사진을 태워도 좋다

협잡과 아부와 무수한 악독의 상징인

지긋지긋한 그놈의 미소하는 사진을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안 붙은 곳이 없는

그놈의 점잖은 얼굴의 사진을

동회란 동회에서 시청이란 시청에서

회사란 회사에서

××단체에서 ○○협회에서

하물며는 술집에서 음식점에서 양화점에서

무역상에서 개솔린 스탠드에서

책방에서 학교에서 전국의 초등학교란 초등학교에서 유치원에서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

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이었느니

썩은놈의 사진이었으니

아아 살인자의 사진이었느니

 

너도 나도 누나도 언니도 어머니도

철수도 용식이도 미스터 강도 류중사도

강중령도 그놈의 속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무서워서 편리해서 살기 위해서

빨갱이라고 할까보아 무서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편리해서

가련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

신주처럼 모셔놓던 의젓한 얼굴의

그놈의 속을 창자밑까지도 다 알고는 있었으나

타성같이 습관같이

그저그저 걸어만 두었던

흉악한 그놈의 사진을

오늘은 서슴지않고 떼어놓아야 할 날이다

 

밑씻개로 하자

이번에는 우리가 의젓하게 그놈의 사진을 밑씻개로 하자

허허 웃으면서 밑씻개로 하자

껄껄 웃으면서 구공탄을 피우는 불쏘시개로도 하자

강아지장에 깐 짚이 젖었거든

그놈의 사진을 깔아주기로 하자

 

민주주의는 인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자유는 이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아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아무도 붙들어갈 사람은 없다

 

군대란 군대에서 장학사의 집에서

관공리의 집에서 경찰의 집에서

민주주의를 찾은 나라의 군대의 위병실에서 사단장실에서 정훈감실에서

민주주의를 찾은 나라의 교육가들의 사무실에서

4.19후의 경찰서에서 파출소에서

민중의 벗인 파출소에서

협잡을 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는

공관리의 집에서

역이란 역에서

아아 그놈의 사진을 떼어 없애야 한다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다소곳이

조용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영숙아 기환아 천석아 준이야 만용아

프레지던트 김 미스 리

정순이 박군 정식이

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떼어 치우고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다소곳이

조용하게 미소를 띠우면서

극악무도한 소름이 더덕더덕 끼치는

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떼어 치우고

(김수영 -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1960.4.26)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어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 푸른 하늘을 1960.6.15)

 

 

이유는 없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적막이 오듯이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같기도 한 것이니

 

이유는 없다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은 나가다오와 가다오의 차이가 있을 뿐

말갛게 개인 글 모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미국인과 소련인도 똑같은 놈들

가다오 가다오

사월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잿님이 할아버지가 상추씨, 아욱씨, 근대씨를 뿌린 다음에

호박씨, 배추씨, 무씨를 또 뿌리고

호박씨, 배추씨를 뿌린 다음에

시금치씨, 파씨를 또 뿌리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일년 열두달 쉬는 법이 없는

걸찍한 강변밭같기도 할 것이니

 

지금 참외와 수박을

지나치게 풍년이 들어

오이, 호박의 손자며느리값도 안되게

헐값으로 넘겨버려 울화가 치받쳐서

고요해진 명수할버이의

잿물거리는 눈이

비둘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동안에

나쁜 말은 안하니

가다오 가다오

 

지금 명수할버이가 멍석 위에 넘어져 자고 있는 동안에

가다오 가다오

명수할버이

잿님이할아버지

경복이할아버지

두붓집할아버지는

너희들이 피지도를 침략당시에는

그의 아버지들은 아직 젖도 떨어지기 전이었다니까

명수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잿님이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두붓집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가다오 가다오

 

선잠이 들어서

그가 모르는 동안에

조용히 가다오 나가다오

서푼어치 값도 안되는 미소인은

초콜렛, 커피, 페치코오트, 군복, 수류탄

따발총....을 가지고

적막이 오듯이

적막이 오듯이

소리없이 가다오 나가다오

다녀오는 사람처럼 아주 가다오!

(김수영 가다오 나가다오 1960.8.4)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김수영 - 김일성 만세 1960.10.6.)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이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1960.10.30.)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하여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원을 받으러 세 번씩 세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십사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 때문에 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196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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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물레 - 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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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을 앞두고 누구를 지지하냐는 마을 주민의 물음에, 녹색당을 지지한다고 했다가 아무 반응도 못 얻었다. '노동'도 모르는 사람에게 '녹색'을 얘기했으니...교회에서 주일 음식 설거지를 하다가 사람들이 마구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하루종일 분류하고 있는 걸 보고 한 교인이 녹색당을 지지하니까 쓰레기 분류하고 있다고 웃음 섞인 얘기를 한다. 노동은 빨갱이로 녹색은 분류수거 정도로만 이해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외로울 땐 의지하고 싶은 게 있다.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과 살아계신 김종철 선생님의 글이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은 가슴으로, 김종철 선생님의 글은 머리로 읽힌다. 둘을 함께 읽으면 좋은데, 권선생님의 '당신들의 하나님'과 김선생님의 '간디의 물레'를 이어 읽어 보길 바란다.

 

<밑줄>

간디가 구상했던 이상적인 사회는 자기충족적인 소농촌공동체를 기본단위로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인 국가기구의 소멸과 더불어 마을민주주의에 의한 자치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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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록 이태준 문학전집 15
이태준 지음 / 깊은샘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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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줄 알았는데 안 무섭다ㅋㅋ 이태준을 소설이 아닌 수필로 만나서 참신하고, 짧은 수필(제목 조차도 짧다)에서 결코 짧게만 느껴지지 않는 여운을 느낄 수 있어 참신하다. 철원 출신인 그가 30대에 성북동에 집을 짓고 살면서 쓴 수필이라는 데 요즘 단독주택, 전원주택에서 마당에 나무와 꽃을 가꾸며 사는 사람들에게 공감될 부분이 많다.

 

<밑줄>

 

뉘 집에 가든지 좋은 벽면을 가진 방처럼 탐나는 것은 없다. 넓고 멀직하고 광선이 간접으로 어리는, 물 속처럼 고요한 벽면, 그런 벽면에 낡은 그림이나 한 폭 걸어놓고 혼자 바라보고 앉았는 맛, 그런 벽면 아래에서 생각을 소화하며 어정거리는 맛, 더러는 좋은 친구와 함께 바라보며 화제 없는 이야기로 날 어둡는 줄 모르는 맛, 그리고 가끔 다른 그림으로 갈아 걸어 보는 맛, 좋은 벽은 얼마나 생활이,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일까? (이태준 )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고 불구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창조하거나 개작할 재주는 없을 것이다. (이태준 화단 )

 

발은 얼마나 고마운 것이랴! 눈이나 입처럼 그다지 아쉬운 것은 아닐는지 모르나 언제든지 제일 낮은 곳에서 제일 힘들여 모든 것을 받들고 서고 또는 다닌다. (이태준 )

 

지구의를 놓고 보면 육지보다도 수면이 훨씬 더 많다. 지구가 아니라 수구라야 더 적절한 명칭일 것 같다. 사람들이 육지에 산다고 저희 생각만 해서 지구라 했나 보다. 사람이 어족이었다면 물론 수구였을 것이요, 육대주라는 것도 한낱 새나 울고 꽃이나 피었다 지는 무인절도들이었을 것이다. (이태준 바다 )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 (이태준 가을꽃 )

 

인생의 외로움은 아내가 없는 데, 아기가 없는 데 그치는 것일까. 아내와 아기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 (이태준 고독 )

 

서점에서는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페이지를 읽어보는 맛, 전차길이 멀수록 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 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이태준 )

 

나는 낙화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꽃이 열릴 나뭇가지는 자주 손질을 하였으나 꽃이 떨어질 자리는 한번도 보살펴 주지 못했다. 이제 그들의 놓일 자리가 거칠음을 볼 때 적지않은 죄송함과 나도 꽃을 사랑하는 사람인가?’하고 부끄러움을 누를 수 없다. (이태준 낙화의 적막 )

 

남의 집이라도 높은 취미로 지은 집을 보면 그 집 주인을 찾아보고 싶게 정이 드는 것이다. 늘 지나다니는 거리에 그런 아름다운 집들이 좀 있었으면 얼마나 걸음이 가뜬가뜬 할까. (이태준 집 이야기 )

 

뒷산은 처음에는 산대로여서 우리는 올려다보는 풍치가 그럴 듯했는데 올 여름에는 산임자가 와서 바로 우리 마당에서 빤히 쳐다보이게 집을 난짝 올려앉혔다. 그리고 우리 집을 그냥 내려다보면서 두부장수를 부르고 고기장수를 부른다. 키 큰 사람이 내 키 너머로 남과 이야기할때의 불쾌감이 그대로 나는 것이다. 어서 키 큰 상록수를 사다 뒤를 둘러막고 뒤를 많이 보게 하였던 마당차림을 인제부터는 앞을 많이 보는 마당으로 고쳐야겠다. 이웃에 존경하는 말만을 쓰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부덕이 아닐까! (이태준 옆집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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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 마음을 얻는 지혜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2
조신영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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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든 가정에서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남자가 청력을 잃으면서 죽어가는 과정에 경청의 중요함을 깨닫는 소설이다. 가벼운 자기계발서 정도라고 생각했으나 의외로 귀담아 들을 말들이 많다.

 

<밑줄>

왜 사람들이 선배님을 이토벤이라고 부르는지 이유를 알고 계세요? 선배님이 귀머거리 베토벤처럼 남의 말을 듣지 않아서예요. 언제나 듣는 척하지만 결국은 과장님 입장에서 판단한 대로 모든 결론을 내리시니, 누군들 이 과장님과 일하는 게 재미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언제 한번이라도 내 말에 제대로 귀 기울여 본 적이나 있어요?

 

당신이 말하는 알았어의 의미는 도대체 뭐죠? 당신은 나에 대해서, 그리고 현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잖아요. 더 이상 나한테 알았다는 말, 하지 마세요.

 

장자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음악소리가 텅 빈 구멍에서 흘러나온다

마음을 텅 비우면 사람에게서 참된 소리가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텅 빈 마음이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의 편견과 고집을 잠시 접어 두라는 의미입니다.

 

() 자를 부수로 자세히 뜯어보면... 듣는다는 것, 그것은 왕 같은 귀를 갖는다는 뜻... 듣는 다는 것은 열 개의 눈을 갖는 행위... 상대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거죠... 들을 청의 마지막 조합은 바로 일심, 즉 한마음이지요. 들을 때는 상대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눈이 둘, 귀도 둘, 그러나 입이 하나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논이라는 그리스 철학자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듣되 적게 말하라는 뜻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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