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 2 - 산문
김수영 지음 / 민음사 / 199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수영을 시로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면 산문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김일성 만세라는 그의 시에서 언급된 60년대 언론, 정치의 현실은 그의 산문 곳곳에서 역설되고 있다.

 

김수영의 시에서는 그를 체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만 이해하기 쉬운데, 그도 그럴 것이 서정적인 연애시가 없기 때문이다. 김수영 자신도 그런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산문에서는 자신도 연애시를 쓸 수 있다는 변명(?)을 하고 있다.

 

그의 시 ,죄와 벌, 미인, 여편네의 방에 와서에서 알 수 있듯 그의 부부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아내가 김수영이 북한군으로 징병되어 전쟁 중에 사망한 것으로 오해해 남편의 고교 선배와 살림을 차렸던 것이 평생 한이 되어나 보다. 산문에서도 김수영의 아내 타박(?)은 여실히 들어난다.

 

김수영은 술 먹고 귀가하던 중 버스에 치여서 죽었다. 그가 평소 술을 좋아했고, 술 안 먹는 젊은이들을 걱정했던 사람이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마지막을 암시한 것이었을까?

 

<밑줄>

언론자유나 사상의 자유는 헌법조항에 규정이 적혀있다고 해서 그것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해서는 큰 잘못이다. 이 두 자유가 진정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위선 자유로운 환경이 필요하고 우리와 같이 그야말로 이북이 막혀있어 사상이나 언론의 자유가 제물로 위축되기 쉬운 나라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 두 개의 자유의 창달을 위하여 어디까지나 그것을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하지 방관주의를 취한다 해도 그것은 실질상으로 정부가 이 두 자유를 구속하게 된다는 결과는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정부가 지금 할 일은 사회주의의 대두의 촉진 바로 그것이다. 학자나 예술가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국가를 초월한 존재이며 불가침의 존재이다. 일본은 문인들이 중공이나 소련같은 곳으로 초빙을 받아 가서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을 배우기도 하고 비판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언론의 창달과 학문의 자유는 이러한 자유로운 비판의 기회가 국가적으로 보장된 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김수영 일기 )

 

지식인이라는 것은 인류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사람이다. 우선 일본만 보더라도 이런 지식인들이 많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지식인이 없지는 않는데 그 존재가 지극히 미약하다. 지식인의 존재가 미약하다는 것은 그들의 발언이 민중의 귀에 닿지 않는다는 말이다. 닿는다 해도 기껏 모기소리만큼밖에 들릴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인의 소리가 모기소리만큼밖에 안 들리는 사회란 여론의 지도자가 없는 사회이며, 따라서 진정한 여론이 성립될 수 없는 사회다. 즉 여론이 없는 사회다. 혹은 왜곡된 여론만 있는 사회다. 우리나라의 소위 4대신문의 사설이란 것이 이런 왜곡된 가짜여론을 매일 조석으로 제조해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씌여지고 있다. (김수영 - 모기와 개미 )

 

우리집 여편네의 경우를 보니까, 여자는 한 40이 되니까 본색이 드러난다. 이것을 알아내기에 근 20년이 걸린 셈이다. 오랜 시간이다. 한 사람을 가장 가까이 살을 대가며 관찰을 해서 알게 되기까지 이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니 여자의 화장의 본능이 얼마나 뿌리깊은 지독한 것인가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헷세의 향수라는 소설에 나오는 꼽추모양으로, 사람을 알려면 별로 많은 사람을 사귈 필요가 없다. 나의 경우에는 여편네 하나로 족한 것같은 생각조차도 든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을 보면 된다. <>이란 한계점이다. 고치려야 고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숙명이다. <>에 한두번이나 열 번 스무번이 아니라 수없이 부닥치는 동안에 내딴에는 인간 전체에 대한 체념이랄까 그런 것이 생긴다. (김수영 - )

 

나이가 들어가는 징조인지는 몰라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빈도가 잦아진다. 모든 것과 모든 일이 죽음의 척도에서 재어지게 된다. 자식을 볼 때에도 친구를 볼 때에도 아내를 볼 때에도 그들의 생명을, 그들의 생명만을 사랑하고 싶다. 화가로 치자면 이제 나는 겨우 나체화를 그릴 수 있는 단계에 와있을지도 모른다. 잘하면 이제부터 정말 연애시다운 연애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쓰게 되면 여편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쓸 수 있을 연애시를, 여편네가 이혼을 하자고 대들만한 연애시를 그래도, 뉘우치지 않을 연애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김수영 - 나의 연애시 )

 

30대까지는 여자와 돈의 유혹에 대한 조심을 처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오히려 그것들에 대한 방심이 약이 되고 있다. 되도록 미인을 경원하지 않으려고 하고, 될 수만 있으면 돈도 벌어보려고 애를 쓴다. 없는사람의 처지를 있는사람이 모른다고 하면서 있는 사람을 나무라는 없는사람의 가치관에 대한 공감도 소중하지만, 사실은 있는사람의 처지를 알아주는 있는사람들의 가치관에 대한 없는사람으로서의 공감이 따지고 보면 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도 그렇지만 오늘날도 역시 가난하게 살기는 쉽지만 돈을 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태와, 또한 나이가, 게다가 여직까지 쌓아온 선비로서의 지나친 수양의 탓 때문인지, 좌우간 요즘의 나로서는 미인과 돈에 대한 방심이 그것들에 대한 지난날의 조심보다도 몇 곱절 더 어렵다. (김수영 미인 )

 

혁명 후의 우리 사회의 문학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 비해서 술을 훨씬 안 먹습니다. 술을 안 마시는 것으로 그 이상의, 혹은 그와 동등한 좋은 일을 한다면 별 일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 술을 안 마신다면 큰일입니다. 밀턴은 서사시를 쓰려면 술 대신에 물을 마시라고 했지만, 서사시를 못 쓰는 나로서는,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술을 마신다는 것은 사랑을 마신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였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또 혁명의 시대일수록 나는 문학하는 젊은이들이 술을 더 마시기를 권장합니다. 뒷골목의 구질구질한 목로집에서 값싼 술을 마시면서 문학과 세상을 논하는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지 않는 나라는 결코 건전한 나라라고 볼 수 없습니다 (김수영 - 요즘 느끼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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