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록 이태준 문학전집 15
이태준 지음 / 깊은샘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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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줄 알았는데 안 무섭다ㅋㅋ 이태준을 소설이 아닌 수필로 만나서 참신하고, 짧은 수필(제목 조차도 짧다)에서 결코 짧게만 느껴지지 않는 여운을 느낄 수 있어 참신하다. 철원 출신인 그가 30대에 성북동에 집을 짓고 살면서 쓴 수필이라는 데 요즘 단독주택, 전원주택에서 마당에 나무와 꽃을 가꾸며 사는 사람들에게 공감될 부분이 많다.

 

<밑줄>

 

뉘 집에 가든지 좋은 벽면을 가진 방처럼 탐나는 것은 없다. 넓고 멀직하고 광선이 간접으로 어리는, 물 속처럼 고요한 벽면, 그런 벽면에 낡은 그림이나 한 폭 걸어놓고 혼자 바라보고 앉았는 맛, 그런 벽면 아래에서 생각을 소화하며 어정거리는 맛, 더러는 좋은 친구와 함께 바라보며 화제 없는 이야기로 날 어둡는 줄 모르는 맛, 그리고 가끔 다른 그림으로 갈아 걸어 보는 맛, 좋은 벽은 얼마나 생활이,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일까? (이태준 )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고 불구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창조하거나 개작할 재주는 없을 것이다. (이태준 화단 )

 

발은 얼마나 고마운 것이랴! 눈이나 입처럼 그다지 아쉬운 것은 아닐는지 모르나 언제든지 제일 낮은 곳에서 제일 힘들여 모든 것을 받들고 서고 또는 다닌다. (이태준 )

 

지구의를 놓고 보면 육지보다도 수면이 훨씬 더 많다. 지구가 아니라 수구라야 더 적절한 명칭일 것 같다. 사람들이 육지에 산다고 저희 생각만 해서 지구라 했나 보다. 사람이 어족이었다면 물론 수구였을 것이요, 육대주라는 것도 한낱 새나 울고 꽃이나 피었다 지는 무인절도들이었을 것이다. (이태준 바다 )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 (이태준 가을꽃 )

 

인생의 외로움은 아내가 없는 데, 아기가 없는 데 그치는 것일까. 아내와 아기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 (이태준 고독 )

 

서점에서는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페이지를 읽어보는 맛, 전차길이 멀수록 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 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이태준 )

 

나는 낙화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꽃이 열릴 나뭇가지는 자주 손질을 하였으나 꽃이 떨어질 자리는 한번도 보살펴 주지 못했다. 이제 그들의 놓일 자리가 거칠음을 볼 때 적지않은 죄송함과 나도 꽃을 사랑하는 사람인가?’하고 부끄러움을 누를 수 없다. (이태준 낙화의 적막 )

 

남의 집이라도 높은 취미로 지은 집을 보면 그 집 주인을 찾아보고 싶게 정이 드는 것이다. 늘 지나다니는 거리에 그런 아름다운 집들이 좀 있었으면 얼마나 걸음이 가뜬가뜬 할까. (이태준 집 이야기 )

 

뒷산은 처음에는 산대로여서 우리는 올려다보는 풍치가 그럴 듯했는데 올 여름에는 산임자가 와서 바로 우리 마당에서 빤히 쳐다보이게 집을 난짝 올려앉혔다. 그리고 우리 집을 그냥 내려다보면서 두부장수를 부르고 고기장수를 부른다. 키 큰 사람이 내 키 너머로 남과 이야기할때의 불쾌감이 그대로 나는 것이다. 어서 키 큰 상록수를 사다 뒤를 둘러막고 뒤를 많이 보게 하였던 마당차림을 인제부터는 앞을 많이 보는 마당으로 고쳐야겠다. 이웃에 존경하는 말만을 쓰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부덕이 아닐까! (이태준 옆집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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