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교회교육을 디자인하다
권순웅 외 지음 / 들음과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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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에서 코로나 이후의 교회교육에 대한 책을 냈습니다. 총신대 유아교육과/기독교교육과 교수들과 예장합동계열 교회(주다산, 하남) 목사들의 공동작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생긴 문제를 가정예배, 소규모 온라인 공부, 자연 속에서의 오프라인 만남 등으로 해결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코로나로 인해 생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드러난 기존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말입니다.

 

따라서 코로나는 문제를 일으킨 악마가 아니라, 문제를 알려준 천사입니다.

 

<밑줄>

상호작용(소통)으로 교회의 변화가 있다. 성도의 피드백을 경청해야 한다. 불평을 조언으로 받으라.

 

여러 옵션과 개인 스타일의 사역. 성도의 기회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괄적인 방식은 비효율 문제를 넘어 거부감을 준다.

 

가정 예배는 가능한 온 가족이 모두 모인다. 찬송가 한 장을 부르고, 본문 말씀을 2회 이상 읽고 가족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각자 깨달은 점을 나눈다. 가장이나 예배 인도자가 가정 예배 순서지를 참고하여 말씀 내용을 종합하여 정리한다. 다음으로, 본문을 다시 읽고 주기도문으로 마친다.

 

구글 미트를 사용하여 온라인 제자훈련을 진행하는 담당 교역자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노트북을 사용했고, 학생들은 모바일 또는 pc를 통해 접속한다. 학생들이 한 주간 삶 속에서 은혜 받은 이야기 및 제자 훈련 과제를 어떻게 실천했는지 나눈다.

 

주일 오후 3시에는 온라인 음악 방송을 진행했다. 청년 임원들이 직접 구성하여 진행한 찬양과 기도 공유 프로그램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교회에 직접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해 영적인 침체로 힘들었던 청년들을 위해 진행한 청년부 라이브 토크쇼로 일상의 은혜를 나누며 영적 회복을 도모했다.

 

변화를 거부하면 도태되고, 변화를 받아드리면 생존하고, 변화를 주도하면 길을 낸다.

 

교회는 본질인 공동체성을 지키고자 했고 아쉽게도 이는 교회의 공공성의 결여로 비추어지게 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으로 성도들조차도 교회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따라서 안전을 위한 방역은 물론이고 예배를 향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지양하고 개개인 또는 소그룹으로 활동하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매주 15가정 정도를 선발하여 토일에 하남 교회 수양관에서 캠핑을 한다. 의미 있는 영화를 통해 부모와 자녀가 서로 공감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한다. 영화 감상 후 모닥불 토크 타임을 준비한다.

 

전통적인 가정예배는 대부분 부모 중심으로 구성되어 실행되고 있다. 즉 부모가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며 기도 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의 가정예배는 다분히 인도자 중심이어서 유초등부 자녀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결국 예배의 참여동기 및 예배 몰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 19 시대 가정예배는 자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 기반의 가정 예배이어야 한다.

 

랜선 주제 합창제는 여름성경학교 주제가를 개인이 녹화하여 하나로 합쳐 편집하는 프로그램이다. 교회마다 여름성경학교 주제와 그에 따른 주제가가 있다. 주제가를 학생들에게 파일로 보내주고 학생은 그 음악 파일을 틀어 놓고 이어폰으로 들으며 노래를 녹음한다. 녹음은 가급적 카메라가 있는 컴퓨터나 노트북을 활용하고 녹음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녹음한 후 저장한다. 이후 녹음파일을 교사 또는 교역자에게 보내고 교회에서는 학생들이 보내온 이 파일들을 편집하여 하나의 합창 파일을 만든다. 그리고 이 완성된 파일을 학생들에게 다시 보내서 자신들의 완성한 프로젝트를 다 같이 감상한다.

 

오프라인에서 했던 것을 그저 온라인으로 옮겨놓는다면 현장에서 했던 프로그램의 효과가 반감될 뿐이라며, 온라인에서는 새로운 성격의 시도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시도의 일환으로 최근 사역자들이 기획하여 가족과 공동체, 사역자를 서로 이어주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대화와 찬양, 무대 위와 무대 밖 성도들의 인터뷰가 어우러진 정서적인 온라인 라이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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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범우문고 2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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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1970년대 초반에 주로 신문사에 투고한 글들을 모아둔 책이다. 1932년생이시니 40대 초반에 쓰신 글이다. 비교적(?) 젊은 시절이라 그런지 사회에 날 선 비판이 곳곳에서 보인다. 현실 참여적이고, 타종교에 대해서 포용적인 태도가 50년이 훌쩍 지난 이 시점에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꿔 말하면 50년이 넘도록 사회가 변화하지 않았다는 얘기ㅠ.

 

서민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 장려되고 있는 건축양식이 아파트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본래의 건축 목적을 외면한 채 호화판으로 기울고 있으니 어떻게 된 노릇인가. 심지어 한 가구에 2천만 원짜리까지 있으니, 그것도 파격적인 가격이라고 한다니 서민들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아파트와 도서관 )”

 

요즘 아파트가 한채에 77억이 넘는다는 사실을 하늘에 계신 법정스님껜 안 알리는 게 낫겠다. 아니 알려야겠다. 부활하시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부동산의 무소유, 공유를 위하여.

 

 

<밑줄>

복원된 불국사에서는 그윽한 풍경 소리 대신 씩씩하고 우렁찬 새마을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것 같다. (복원 불국사 )

 

누가 나를 추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 일도 못 된다.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에. (오해 )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설해목 )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관념이니까.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동화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미리 쓰는 유서 )

 

<리그 베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하나의 진리를 가지고 현자들은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

여러 종교를 두고 생각할 때 음미할 만한 말씀이다. 사실 진리는 하나인데 그 표현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가끔 성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일이지만, 불교의 대장경을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 조금도 낯설거나 이질감을 느낄 수 없다. 또한 기독교인이 빈 마음으로 대장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문제는 그릇된 고정관념 때문에 빈 마음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 데서 이해가 되지 않고 있을 뿐인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표현을 빌리면, 종교란 가지가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가지로 보면 그 수가 많지만, 줄기로 보면 단 하나뿐이다. 똑같은 히말라야를 가지고 동쪽에서 보면 이렇고 서쪽에서 보면 저렇고 할 따름인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하나에 이르는 개별적인 길이다. 같은 목적에 이르는 길이라면 따로따로 길을 간다고 해서 조금도 허물될 것은 없다. 사실 종교는 인간의 수만큼 많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특유한 사고와 취미와 행동양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목으로 기독교와 불교를 볼 때 털끝만치도 이질감이 생길 것 같지 않다. 기독교나 불교가 발상된 그 시대와 사회적인 배경으로 해서 종교적인 형태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질의 것이다. 종교는 인간이 보다 지혜롭고 자비스럽게 살기 위해 하나의 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서로 사랑하느냐에 의해서 이해의 농도가 달라질 것이다. 진정한 이해는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요한의 첫째 편지> 412) ” (진리는 하나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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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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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이 20년 징역과 7년 칩거 후에 국내를 여행하며 쓴 여행기입니다. 수차례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마음을 경건하게 해주는 경전입니다.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얇은 책이지만 결코 짧지도 얇지도 않은 삶의 깨달음을 담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함께 들고 다니며 읽어도 좋습니다.

 

 

<밑줄>

갇힌 사람들에게 출소의 가장 큰 의미는 독보’(獨步)입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위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고의 논리학인 수학은 언제나 등식을 기본으로 합니다.

평등의 철학 위에서 문제의 해결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난중일기에는 군관, 병사 그리고 마을의 고로(古老)와 노복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운집 속에 서 있는 충무공의 모습이야말로 그의 참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탁월한 전략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연전연승 불패의 신화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군량도 병력도 이 풍부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최초의 비구니 마하프라자파티가 싯다르타를 기른 그의 이모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런 의미로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녀가 생후 이레 만에 어머니를 여읜 어린 싯타르타를 길러내었듯이 지금도 백흥암의 비구니 스님들은 말없이 또 한 사람의 싯다르타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바로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 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調)는 글자 그대로 말씀()을 두루() 아우르는 민주적 원리이며 화()는 쌀()을 나누어 먹는() 밥상공동체임에 틀임없습니다.

 

완만하면서도 무덤덤한 능선은 무언의 메시지였습니다. 무등산은 최고의 산이 아니라 무등(無等)의 산, 곧 평등(平等)의 산이었습니다. 평등은 단지 차별의 철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이야말로 자유의 최고치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고 평화로운 물이지만 이제부터는 하늘로 오르는 도약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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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불통 송강평전
박영주 지음 / 고요아침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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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곡 바라보며 정철을 한하노라

 

정철은 1536년 중종 31년에 서울에서 태어난다. 정철의 큰누나가 인종과 결혼을 한다. 정철은 어릴 때 궁궐에 가서 인종의 이복동생인 경원대군(명종)과 친하게 지낸다.

 

인종이 즉위 8개월만에 죽게 되면서 배 다른 동생 명종이 12살에 왕위에 오른다. 명종의 외삼촌이 득세를 하면서 인종의 외삼촌 세력을 반역죄로 모함해 죽이는 을사사화가 일어난다. 인종과 인척관계였던 정철 일가는 유배를 당하고 정철의 매형과 큰형은 죽임을 당한다. 10살의 정철은 이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이다. 권력을 잡지 못하면 죽는다는...

 

정철 일가는 7년 유배 생활을 마치고 담양 창평으로 이사를 한다. 여기에서 정철은 10년을 공부하여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명종 17년 정철은 관리의 비리를 조사하여 문책하는 사헌부 지평을 맡게 된다. 이때 명종의 사촌형 경양군이 처가 재산을 빼앗으려고 처남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정철은 형을 좀 봐달라는 명종의 부탁을 거절하고 원칙대로 하다가 경양군이 옥사를 한다. 이후 명종과 사이가 틀어진다. 정철은 이미 을사사화 때 명종에게 느낀 배신감으로 보복한 것이 아닐까?

 

선조가 즉위하면서 을사사화로 화를 입은 사림파가 복권된다. 이로 인해 정철은 선조를 사미인곡/속미인곡에서 미인이라 칭송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림도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면서 서인인 정철과 이이는 당쟁의 갈등 속에 귀향을 자주 한다. 게다가 20년 지기인 이이가 49세로 죽자 정철은 크게 낙심을 한다.

 

동인인 정여립이 반란을 꾀한다는 소문을 들은 정철은 선조에게 이 사건을 알리고, 선조는 정철에게 사건의 해결을 맡긴다. 정철은 선조의 지시대로 천여명에 가까운 동인 세력을 죽게 하는데 이를 기축옥사라 한다. 기축옥사로 인해 전라도가 반란의 혐의를 입고, 이후 전라도 출신은 관직 진출이 어려워진다.

 

정철은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라고 선조에게 건의했다가 선조와 사이가 멀어진다. 게다가 동인들의 끊임없는 모략으로 유배를 당해 159358세에 죽음을 맞는다. 죽어서도 동인의 보복으로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다가 100년만에 복권이 된다.

 

정철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은 을사사화와 기축옥사이다. 을사사화는 왕의 인척 간 권력 다툼이었고, 기축옥사는 사림의 동서인 간 권력 다툼이었다. 지배층끼리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번은 피해자로, 또 한번은 가해자로 살다가, 죽어서도 편치 못했다.

 

그의 작품 관동별곡은 선조가 정철에게 벼슬을 줘서 기뻐하는 노래요, 사미인곡/속미인곡은 안 그래서 슬퍼하는 노래이다. 을사사화 때 큰형과 매형이 죽은 한을 기축옥사 때 풀었으니 선조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결국 선조도 정철을 토사구팽하고 말았다. 한껏 날다가 추락해 죽느니 차라리 날지 말았으면 어떠했을까? 그토록 좋아하던 술이나 먹고 살았으면 말이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셈하며 무진장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가나
비단 상여에 만인이 울며 따라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굵은 눈, 회오리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어쩌리

(정철 - 장진주사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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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20
이태준 지음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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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말아야 - 이태준의 밤길석양을 읽고

 

이거, 왜 뒈지지 않어?” (이태준 - 밤길 )

황서방은 죽어가는 자식을 남몰래 밤길에 생매장한다. 가난하기 때문이다.

 

내가 타옥을 사랑하는 거나 아닐까?’ (이태준 - 석양 )

매헌은 시골 간다는 핑계로 타옥을 만나 석양을 즐긴다. 부유하기 때문이다.

 

내 자식을 죽일 만큼 가난하지도 말고, 남 자식을 사랑할 만큼 부유하지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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