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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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시씨가 번역한 걸 읽었는데 검색이 되지 않아서 이시형씨가 번역한 이 책에 리뷰를 단다) 

1. 

"이 지상에는 두 가지 인간의 타입이 존재한다. 선의의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이다. 그러나 전자만으로 또는 오직 후자만으로 된 그룹은 존재하지 않는다. ······ 어느 강제수용소에서 나는 SS대(역주: 히틀러의 친위대원)인 수용소장을 알게 되었다. 그는 결코 전형적인 SS대는 아니었다. 제 돈으로 피수용자를 위하여 몰래 의약품을 사서 넣어 주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한편 나는 바로 그 수용소에서 피수용자의 두목도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피수용자임에도 같은 피수용자를 그것도 병자들마저 인정사정없이 때리곤 하였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떠오른다. 하지만 순수한 선도 악도 없다는 건, 선악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과는 별개다.  


2. 

 

"수용소 생활을 모르는 외부 사람들에게는 강제수용소 속에 자연을 사랑하는 생활 또는 예술을 사랑하는 생활이 있다고 하면 경탄할 것이지만 만일 수용소 안에 유머가 있다고 하면 더욱 놀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유머 치고는 지극히 하찮은 것이었고 단지 몇 초 몇 분에 그치는 것이었다. 유머 또한 자기 유지를 위한 싸움에 있어 마음의 무기인 것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오른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죽음을 눈 앞에 둔 삶에서도 유머가 있다는 건 모순이다. 그래도 사는 게 의미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3. 

"다른 장소(이를테면 군대 생활)에 있어서의 집단생활과는 반대로 이 곳에서는 남자들끼리의 성적 장난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죄수의 꿈에서까지도 성적인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다."  

성욕은 사라져도 자연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유머를 유지한다는 건 참으로 충격적인 이야기다. 성욕보다 앞선 본능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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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길 -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 자유주의시리즈 60 나남신서 1157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지음, 김이석 옮김 / 나남출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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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의 길(The Road to Prosperity)>이라는 제목은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패러디한 듯하다. 단지 제목만 패러디한 것이 아니라 내용자체도 패러디한 듯하다. 왜냐하면 책 속에서 하이에크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 시장주의자, 개방주의자가 매우 자주 인용되기기 때문이다."  


공병호의 <번영의 길>을 읽고 나서 썼던 서평의 앞 부분이다. 이처럼 공병호가 사랑하는 신자유주의자 하이에크의 고전 <노예의 길>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굉장한 반감을 들 것이라는 선입견은 잘못이었다. 반감이 전혀 안 들었다. 그 까닭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재미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설득력도 없다. 


하이에크는 자유를 신봉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진 독재자(파시즘, 소련공산주의)나 돈을 가진 자본가(자본주의)나 힘없는 시민의 자유를 빼앗는다는 점에선 똑같다. 따라서 시장자유주의는 자유주의가 아니다. 
 

공산주의, 파시즘을 노예의 길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도 똑같이 노예의 길이다. 자발적 노예도 노예는 노예니까. 

 

다만, 의외로 시장자유주의자 답지 않은 말들이 있어 적어둔다. 

“경쟁이 적절하게 작동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전제가 사기나 (무지한 사람에 대한 착취를 포함한) 기만의 방지다.” (81쪽)

“단지 소유권으로부터 얻은 개인적 소득이 철폐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근로소득간 격차가 현재처럼 유지된다면, 대개의 사회주의자들이 지닌 정의의 이상이 충족될 것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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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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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재벌을 키웠고, 재벌 덕분에 경제가 컸다. 물론 민주주의와 노동자를 탄압했지만 이윤을 사리사욕 채우거나 쓸모없이 쓴 것이 아니라 중공업에 투자했기 때문에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에 금융중심, 주주중심의 신자유주의가 들어와 성장이 멈췄다. 스웨덴처럼 노사정이 대타협을 해야 한다” 거칠게 정리해 본 이 글의 요점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1. 민주주의와 노동자를 탄압하지 않고도 ‘고도’성장할 방법은 없을까?

2. 민주주의와 노동자를 탄압하지 않으면 심지어 ‘저도’성장할 방법도 없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성장을 안 하면 죽는가? 살더라도 불행한 삶인가?

3. 스웨덴 같은 노사정 타협을 이루려면 스웨덴처럼 노조가입률이 80%가 되어야 할텐데, 즉 노조가 힘이 있어야 사용자나 정부가 협상을 하자고 할텐데, 노조가입률을 80%로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을 읽고난 소감은 한마디로 ‘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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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5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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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이 자유를 거부하고 복종을 택하는 까닭을 심리학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 기대한 만큼의 명쾌한 해석은 없었지만, 또는 있었어도 이해를 못했지만, 매우 많은 인용문들을 접할 수는 있었다. 인상적인 것을 남기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 안락한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부를 추구하는 사업은 옳다. 그러나 그 이상을 추구하면 그것은 사업이 아니라 탐욕이다. 탐욕은 큰 죄악이다. 거래는 정당한 일이다. 각각의 나라에 서로 다른 자원이 있는 것은 신의 섭리이다. 또한 거래는 위험한 일이다. 사람들은  모름지기 거래란 공공의 복지를 위해 하는 일이며, 자기가 취하는 이익은 노동에 대한 보수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사유재산제도는 적어도 타락한 세계에서는 필요한 제도이다. 사람들은 물품이 모든 사람들의 공유로 되어 있는 경우보다도 사유로 되어 있는 경우에 보다 더 일하며 다툼도 보다 더 적어진다.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기 위해 허용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는 결코 칭찬할 만한 것은 아니다. 만일 인간의 성격이 상승되는 것이라면 공산주의야 말로 이상적이다. 그라티아누스는 그의 칙령에서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모든 인간을 위하는 공공적인 쓰임새가 되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사실 재산이란 말썽을 일으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합법적으로 획득되어야 하며, 또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고루 가져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주어야 한다. 재산의 사용은 가능한 한 공공적이어야 하며, 그 소유자는 비록 실제로 빈곤에 허덕이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 재산이 필요한 자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주어야 한다. - R.H.토니




인간이라는 불쌍한 동물은 타고난 자유라는 선물을 가능한 한 빨리 양도해 줄 수 있는 상대방을 찾아내고자 하는 강한 염원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에서




대중이 요구하는 것은 강자의 승리와 약자의 소멸, 또는 무조건 항복이다. 약한 남자를 지배하기보다는 강한 남자에게 복종하려는 여자와 같이 대중은 탄원자보다는 지배자를 사랑하고, 자유를 부여받기보다 어떤 적대자도 용서치 않는 교리 쪽에 훨씬 더 만족을 느낀다. 대중은 수시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쉽사리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대중은 잘못된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에 대한 정신적 폭행의 파렴치함도, 자기들의 인간적 자유에 대한 악랄한 억압도 깨닫지 못한다. - 히틀러 <나의 투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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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7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 / 책세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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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이 책의 번역자인 주경복 교수의 재판을 어제 참관하였다.  
서울시교육감 후보였던 그는 선거법위판 혐의로 피고인 자리에 앉아있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주경복 교수를 보면서, 그리고 한편으론 괴물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공정택 교육감을 떠올리면서, 세상 참 불공평하는 생각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문명인들은 항상 활동하면서 땀을 흘리고 불안해하며 더욱더 힘든 일을 찾아 끊임없이 번민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때때로 살아 있는 상태에 놓여 있기 위해 죽음으로 내달리며, 불멸을 찾아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증오하는 세력가와 자신이 경멸하는 부자들에게 아부하며, 그들에게 봉사하는 영예를 얻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비굴과 그들의 보호를 거만하게 자랑한다. 자신의 노예 상태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는 그 노예 상태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경멸감을 가지고 얘기한다.  

힘은 들어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유럽의 대신(大臣)들의 일이 카리브인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 이 게으른 미개인들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기쁨을 가지고도 위안받을 수 없는 그런 끔찍한 생활보다는 차라리 잔혹하게 죽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카리브인들이, 왜 사람들이 그토록 애를 쓰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그들의 정신 속에서 ‘권력’과 ‘명성’이라는 단어가 일정한 의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또 자기에 대한 세상의 평판을 매우 중시하여 자기보다 타인이 판단해주는 것에 오히려 행복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것이다. 사실상 이 모든 차이들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이런 데 있다. 즉 미개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는데,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 타인의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 루소(주경복 옮김),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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