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두달 전 도서관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이, 스밀라님의 글을 읽으며 떠올라 옮겨본다.
한창 미술 관련 서적에 열을 올리고 있던 터라, 도서관 서가에서 <팝아트>라는 제목의 컬러풀한 책을 보고는 무척 반가웠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그림책마냥 큼직한 사이즈에 두께도 얇아 가뿐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팝아트에 대해서, 마릴린 먼로의 얼굴 외에는 문외한이던 나, 화면에 가득한 도판들을 열심히 들여다 보았는데...뭔가 좀 이상했다. 친절한 존대말의 설명은 그렇다 치고, <이 그림을 보고는 이렇게 해봐요~>하는 식의 상자글은 도대체 뭐지? 설마하며 앞장을 들여다 보니...아이들 책으로 유명한 보림 출판사의 책.
허걱...이 책은 어린이용이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참 피곤하다. 이젠 공부만 잘 해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월드컵 열풍 때문인가...아이들도 멀티플레이어를 만들려고들 한다. 예전에 사교육 열풍을 꼬집는 어떤 프로그램을 보니, 애들은 심지어 풍선 아트 과외까지 받고, 자격증을 따고 있었다. 이제 아이들은 팝아트의 기법과 정신까지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팝아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비정상은 아니다. 그러나, 팝아트의 대표작들을 어찌 몇 줄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도 일종의 주입식 교육이 아닌가? 아이들이 자라서 전시회나 박물관에서 충격적인 팝아트 작품과 마주쳤을 때, 자신만의 감상을 채 갖기도 전에 '리히텐슈타인, 기법은 이렇고 제작 시기는 저러하며...'하는 지식이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면...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일까?
도서관의 사서도 나만큼이나 헷갈렸나보다. 이 책은 분명히 그림책마냥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성인 열람실의 미술 서가에 꽂혀 있었다. 그것이 담당 사서의 어떤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혹시, 설마 <팝아트>라는 제목의 어린이용 도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