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6
옐라 마리 지음 / 시공주니어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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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 보다 창의성이 떨어지는 사람인걸까? 글자 없는 그림책들을 사 주자, 사 주자 몇 번 마음 먹으면서도 결국은 장바구니에서 보관함으로 보내버린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책을 펴들고 그림에 맞추어 이야기를 지어 줘야 한다는 것이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데 <나무>를 만나고 나서 그동안 단단히 잘 못 생각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자 없는 그림책 읽어 주기는 대단한 문장력이나 창의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장면들을 읽어내 주면 되는 일이었다. 이야기를 짜 내는 것이 아니라 화면을 설명해 주노라면 매번 이야기가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하면서 대강의 공통 맥락을 갖게 된다. 그 맥락을 따라가면서 아이나 엄마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끼워 넣기도 하고, 책 읽어주기가 피곤한 날은 과감히 생략하기도^^; 한다.

요즘 한글 몇 자 깨우쳤다고, 긴 글에서 한 두 토막 잘라먹으면 기세등등 추궁하는 무서운 딸래미, 그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심지어, '네가 읽어 봐.'하는 요구도 가능하다! 글자 있는 그림책을 읽어 보라 하면 우선 글자를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싫다고 하거나 떠듬떠듬거리기 일쑤인 딸아이도 <나무>만은 자신만만 읽어낸다. 아이가 <나무>를 읽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그 어떤 글자들을 읽어낼 때보다도 즐겁고 뿌듯하다.

나무 한 그루와 동물, 풀 몇 포기만으로도 이런 훌륭한 그림책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너무 궁금한 사실 하나...도마우스는 도대체 어떤 동물인걸까?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봐도 <나무> 책에 대한 설명만 뜰 뿐 도마우스 자체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가 없으니...도대체 어느 지역에 서식하는 동물인지, 딸아이가 그저 다람쥐라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음에 안심하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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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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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잔잔하던 내 머릿속에 큼직한 돌 하나를 던져 넣었다.

남자와 여자를 바꿔본다면? 책을 있게 한 이 발상, 기발하긴 하지만 그다지 신선하다 할 수는 없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두 번은 떠올려 보는 생각이니까. 그러나 그 발상을 여성 운동의 관점에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책의 전반부는 읽어 내기가 순조롭지 않았다. 완전히 대치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익숙치 않아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수 많은 창의성의 집합체이기에 다소 산만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작가의 탓은 아닐터. 오히려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에게는 높은 점수를 매길만하다. 특히 말미에 삽입된 페트로니우스의 소설 <민주주의의 아들>에서 작가는 멋진 기지를 발휘한다. 무겁게 가라앉아 가던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유쾌하게 만들었을 뿐더러, 그즈음엔 <이갈리아의 딸들>에 푹 젖어 현실을 잊어가던 독자들에게 작품의 주제, 그 무거운 화두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단 두 페이지의 가상 소설로 그런 대단한 효과를 거두다니...!

글을 읽는 중간 중간 발견한 작은 장치들도 쏠쏠한 재미를 더해주었다. 이갈리아의 유명한 심리학자는 지그마 플로이드. 아마도 여자이겠지? 그들이 즐기는 술은 블러디 모리스, ㅋㅋㅋ 모리스는 필경 역사 속의 사악한 '남왕'일 것이다. 게다가! 이갈리아의 라푼젤은 머리카락이 아닌 턱수염을 길러 연인을 탑 위로 끌어올린다! 턱수염이 아프지 않았을까? 책은 이 외에도 수많은 블랙유머로 넘쳐난다. 몇 번은 내가 유럽문화권의 독자가 아닌 것에 안타까워 해야 했다. 원서를, 그리고 그 문화의 배경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갈리아의 딸들>을 더욱 즐길 수 있었을텐데...

<이갈리아의 딸들>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탄생궁전에서'였다. 탄생궁전에서 벌어지는 출산의식을 관전한 후 나는, 감지하고 있지도 못하던 나의 고정관념과 마주 서게 되었다. 그렇다, 언제부터 출산이 병이고 고통이었는가? 출산의 진통을 '독특하고도 황홀한 경험'이라고 하는 브램 장관이 작가의 무리한 억지는 아니다. 분명 현실에서도 '소프롤로지 출산'이라는 것이 있다. 임신과 출산을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여 통증을 최소화하는 출산법이다. 안타까운 현실에서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거의 득도에 가까운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임신기간의 유급휴가와 출산 후의 유급휴가가 기다리고 있다면? 그들의 입덧을 위해 남편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로 뛰어다닌다면? 출산이 병원이 아니라 탄생궁전에서 이루어진다면? 수 많은 하객들에게 둘러싸여, 사제와 성가대가 부르는 탄생캐롤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루어 진다면? 과연 무통 분만 해보자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명상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들은 다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일단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생각할 것은 많이 있었다. 맨움의 종속과 관련된 것은 특히 많아서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끔 생각 없이 수용하기만 했던것들의 현실을 볼 때는 완전히 어리석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처럼. 244p 중--- 나 역시 그랬다. 막상 생각을 시작하자 '꺼리'가 너무 많았다. 혼자 생각했다면 아마 금방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갈리아의 딸들>과 함께 했기에 여성의 직업, 결혼, 임신, 출산, 피임, 섹스, 심지어 마르크시즘과 여성운동의 관계까지, 수 많은 영역들을 모두 한 번쯤은 고민해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이 소설을 영화로 보고 싶다. 이 땅의 맨움들이 보드라운 턱수염과 뚱뚱한 몸을 가지려 애쓰고, 작은 페니스를 망사 페호로 얽어맨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비웃고 싶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이갈리아의 딸들>을 경험한 후 내 고정관념의 얇은 외벽 하나가 깨져버린 것 같다. 그래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모든 사실에 조금은 화가 났나 보다. 물렁한 나를 자극해 시니컬하게 만들었으니, 이 책에 '목적'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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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벨 이마주 4
이언 포크너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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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디자인, 일러스트로 더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서일까? 캐릭터와 전체적인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기존의 그림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세련되고도 창의적인 느낌. 그 느낌에 확 빠져서 영문판 <올리비아>를 구입하고, <그래도 엄마는...>은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다른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영어그림책도 나름대로 좋아한다는데, 딸래미는 같은 책이 두 언어로 나란히 있으면 꼭 국내판 번역본을 선택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어그림책을 읽을 때면 아직도 어깨와 목에 조금은 힘이 들어가는 나. 그리고, 사실을 고백하자면 이 그림책으로 영어 한 두마디쯤은 깨우쳤으면...하는 흑심을 완전히 버리질 못했다. 예리한 넘...그걸 어찌 눈치챘누.

각설하고, 기발하고 독창적인 그림과 에너지 충만한 캐릭터 올리비아가 주는 재미는 쏠쏠하다. 많은 엄마들이 입을 모으듯이, <여자아이판 데이빗>인 올리비아. 하는 짓을 면면히 들여다보면 정말 딸래미와 똑같다. 딸래미 먼저 쿡쿡 웃으며 말한다. '엄마, 나는 자기 전에 책 열 권 읽어달라고 하지, 응?' 그러면서 올리비아와 엄마의 책 권수 흥정이 재미있어 보이는지 꼭 따라해보려고 한다. 기껏 공들여 세 권으로 깎아 놓으면 홀랑 무시하고 열 권을 들고 오는 매너 빵점의 독재자. -.-

그러나 그런 매력과 더불어 약간 거슬리는 점이 있다. 지나치게 세련되어서 차가운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리고 무슨 의도인지 깔끔치 못하게 길~어진 제목도 내 취향은 아니다. <올리비아>라는 간결한 제목이 훨씬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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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룬파 유치원 내 친구는 그림책
니시우치 미나미 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 한림출판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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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룬파 유치원은 첫 페이지부터 마법이 스며 있습니다. <구룬파 유치원>이라는 삐뚤삐뚤한 먹물 글씨 아래에 <이것은 구룬파가 쓴 글자입니다.>라는 간결한 한 마디. 구룬파가 책 속의 코끼리가 아니라고, 이웃 나라, 아니면 한 차원 다른 곳일지라도 꼭 존재하고 있는 친구라고 주문을 거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실, 마쯔이 다다시님의 극찬이 아니었다면 저도 이 그림을 보고 조금은 당혹스러워 했을 것입니다. 원근법도 없고, 구도나 크기 비율도 무시한 채 아이가 그린 듯이 제 멋대로이지요. 그러나 하나 하나 들여다보면 그림은 동심 그 자체인듯 자유롭고 생기 있으며 유쾌합니다. 존 버닝햄도 동심에 호소하기 위해 일부러 미숙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잖아요. 구룬파 유치원은 버닝햄의 그림에 비하면 훨씬 예쁘지 않습니까?^^ 구룬파와 친해진 이제는 어느 아름다운 수채화보다도 정이 가네요. 그림만 봐도 즐거울 정도로요.

그리고 이야기.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오랜 세월 아이들 마음에 파고들어 이젠 감히 <고전>이라고 말할 만 하니까요. 굳이 제일 큰 매력 요소를 하나 짚어 내자면, 반복이 있습니다. 반복, 그것도 비스킷- 비스킷과 접시 - 비스킷과 접시와 구두... 하나씩 더해가는 반복의 묘미는 아이와 더불어 엄마까지 묘하게 흥분시키지요. 그래서 더욱에 이어 더, 더, 더, 더욱까지 이르면 목소리가 저절로 커집니다.

막바지, 아이와 함께 구룬파의 노래를 부를 때 즐거움은 절정에 이르지요. 무슨 가락인지 대충 짜맞춘 노래지만, 음악성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모-두 볼이 빨갛네. 손은 진흙으로 시커멓네. 나는 커다란 코끼리라네~'
마쓰이 다다시님에게 편지를 보낸 어느 여고생이 그랬다는군요. 서점에서 우연히 <구룬파 유치원>을 발견하고 행복했다구요. 어린 시절, 마지막 장에서 비스킷이 아직 많이 남은 것을 확인하며 즐거워했던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나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책이 유년의 행복했던 기억에 빠질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해준다면...더 바랄 것이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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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그림책 - 그림책을 선택하는 바른 지혜 행복한 육아 15
마쯔이 다다시 / 샘터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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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아이의 그림책을 제대로 알고 바르게 읽어주자는 결심 아래, 관련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린이와 그림책>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 하게 되는 것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네요.

저도 그림책을 통해 아이가 숫자나 한글을 깨우치기를, 과학상식을 터득하기를 바랬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바램은 오직 하나, <아이와 나의 즐거움>을 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00나라> 방문 한글학습을 이 달을 마지막으로 해서 끊었습니다. 물론 이젠 떠듬떠듬 한글을 읽게 되었다는 얄팍한 계산이 깔리긴 했지만 그림책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없었다면 결정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아이가 얼른 한글을 읽게 되어 지능과 창의력을 쑥쑥 키워준다는 갖가지 전집을 곁에 두고 한 권 한 권 읽어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전집에 대한 유혹도 깨끗이 털어냈습니다. 욕심나는 단행본을 구입하기도 벅차고,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도 한 번이라도 더 읽어주고 반납해야 되는걸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집은 무릎에 앉히고 한 권 한 권 읽어주기가 벅차지 않겠습니까?

이런 저의 변화에는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 <어린이와 그림책>을 통해 거듭거듭 주입된 마쓰이 다다시님의 주장이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림책은 즐거움을 위한 책이다', '그림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세 권을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되는데도 지겹지 않은 것은 왜일까요? 경험에서 우러나서 진심으로 당부하는 저자와 그런 저자를 존경하는 엮은이의 정성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언급한 세 권의 책이 모두 가치가 있지만 중복되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중 한 권을 고르라면 <어린이와 그림책>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최근에 새로 나온터라 소개된 그림책의 도판도 깔끔하고 수월하게 읽힙니다.

중간에 소개된 어떤 학생의 편지처럼, 우리 아이도 나중에 서점에서 우연히 한 권의 낯익은 그림책을 집어 들고 그 책을 읽어주던 엄마의 목소리와 체취, 당시의 느낌에 흠뻑 빠지게 된다면... 그래서 그 기분좋은 느낌이 어쩌면 팍팍할 생활에 조그만 힘이 된다면... 더 이상 어떤 효과를 바라겠습니까? 그렇지요?

아이의 그림책이 꽂혀 있는 서가에 나란히 두어야할 책입니다. 간간히 다시 읽어보면서 초심을 되살려야 하니까요. 아니, 다시 읽어보지 않고 표지만 보더라도 책 읽어달라고 조르는 아이를 귀찮고 힘들다고 밀어내는 것을 멈칫하게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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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roKid 2004-03-2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주문한 책인데...얼른 읽어보구싶네요. 지금 아마 수원에서 분당으로 오고있지않을까?
아이들때문에 내리 사흘을 잘 못잤더니.. 이렇게 컴을 켜놓고 잠시 저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책고르기... 아직도 울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둔한 엄마에게 많은 도움이 되엇으면 좋겠네요. 다 읽고 다시 이야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