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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룬파 유치원 ㅣ 내 친구는 그림책
니시우치 미나미 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 한림출판사 / 1997년 7월
평점 :
구룬파 유치원은 첫 페이지부터 마법이 스며 있습니다. <구룬파 유치원>이라는 삐뚤삐뚤한 먹물 글씨 아래에 <이것은 구룬파가 쓴 글자입니다.>라는 간결한 한 마디. 구룬파가 책 속의 코끼리가 아니라고, 이웃 나라, 아니면 한 차원 다른 곳일지라도 꼭 존재하고 있는 친구라고 주문을 거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실, 마쯔이 다다시님의 극찬이 아니었다면 저도 이 그림을 보고 조금은 당혹스러워 했을 것입니다. 원근법도 없고, 구도나 크기 비율도 무시한 채 아이가 그린 듯이 제 멋대로이지요. 그러나 하나 하나 들여다보면 그림은 동심 그 자체인듯 자유롭고 생기 있으며 유쾌합니다. 존 버닝햄도 동심에 호소하기 위해 일부러 미숙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잖아요. 구룬파 유치원은 버닝햄의 그림에 비하면 훨씬 예쁘지 않습니까?^^ 구룬파와 친해진 이제는 어느 아름다운 수채화보다도 정이 가네요. 그림만 봐도 즐거울 정도로요.
그리고 이야기.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오랜 세월 아이들 마음에 파고들어 이젠 감히 <고전>이라고 말할 만 하니까요. 굳이 제일 큰 매력 요소를 하나 짚어 내자면, 반복이 있습니다. 반복, 그것도 비스킷- 비스킷과 접시 - 비스킷과 접시와 구두... 하나씩 더해가는 반복의 묘미는 아이와 더불어 엄마까지 묘하게 흥분시키지요. 그래서 더욱에 이어 더, 더, 더, 더욱까지 이르면 목소리가 저절로 커집니다.
막바지, 아이와 함께 구룬파의 노래를 부를 때 즐거움은 절정에 이르지요. 무슨 가락인지 대충 짜맞춘 노래지만, 음악성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모-두 볼이 빨갛네. 손은 진흙으로 시커멓네. 나는 커다란 코끼리라네~'
마쓰이 다다시님에게 편지를 보낸 어느 여고생이 그랬다는군요. 서점에서 우연히 <구룬파 유치원>을 발견하고 행복했다구요. 어린 시절, 마지막 장에서 비스킷이 아직 많이 남은 것을 확인하며 즐거워했던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나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책이 유년의 행복했던 기억에 빠질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해준다면...더 바랄 것이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