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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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잔잔하던 내 머릿속에 큼직한 돌 하나를 던져 넣었다.

남자와 여자를 바꿔본다면? 책을 있게 한 이 발상, 기발하긴 하지만 그다지 신선하다 할 수는 없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두 번은 떠올려 보는 생각이니까. 그러나 그 발상을 여성 운동의 관점에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책의 전반부는 읽어 내기가 순조롭지 않았다. 완전히 대치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익숙치 않아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수 많은 창의성의 집합체이기에 다소 산만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작가의 탓은 아닐터. 오히려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에게는 높은 점수를 매길만하다. 특히 말미에 삽입된 페트로니우스의 소설 <민주주의의 아들>에서 작가는 멋진 기지를 발휘한다. 무겁게 가라앉아 가던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유쾌하게 만들었을 뿐더러, 그즈음엔 <이갈리아의 딸들>에 푹 젖어 현실을 잊어가던 독자들에게 작품의 주제, 그 무거운 화두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단 두 페이지의 가상 소설로 그런 대단한 효과를 거두다니...!

글을 읽는 중간 중간 발견한 작은 장치들도 쏠쏠한 재미를 더해주었다. 이갈리아의 유명한 심리학자는 지그마 플로이드. 아마도 여자이겠지? 그들이 즐기는 술은 블러디 모리스, ㅋㅋㅋ 모리스는 필경 역사 속의 사악한 '남왕'일 것이다. 게다가! 이갈리아의 라푼젤은 머리카락이 아닌 턱수염을 길러 연인을 탑 위로 끌어올린다! 턱수염이 아프지 않았을까? 책은 이 외에도 수많은 블랙유머로 넘쳐난다. 몇 번은 내가 유럽문화권의 독자가 아닌 것에 안타까워 해야 했다. 원서를, 그리고 그 문화의 배경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갈리아의 딸들>을 더욱 즐길 수 있었을텐데...

<이갈리아의 딸들>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탄생궁전에서'였다. 탄생궁전에서 벌어지는 출산의식을 관전한 후 나는, 감지하고 있지도 못하던 나의 고정관념과 마주 서게 되었다. 그렇다, 언제부터 출산이 병이고 고통이었는가? 출산의 진통을 '독특하고도 황홀한 경험'이라고 하는 브램 장관이 작가의 무리한 억지는 아니다. 분명 현실에서도 '소프롤로지 출산'이라는 것이 있다. 임신과 출산을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여 통증을 최소화하는 출산법이다. 안타까운 현실에서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거의 득도에 가까운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임신기간의 유급휴가와 출산 후의 유급휴가가 기다리고 있다면? 그들의 입덧을 위해 남편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로 뛰어다닌다면? 출산이 병원이 아니라 탄생궁전에서 이루어진다면? 수 많은 하객들에게 둘러싸여, 사제와 성가대가 부르는 탄생캐롤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루어 진다면? 과연 무통 분만 해보자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명상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들은 다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일단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생각할 것은 많이 있었다. 맨움의 종속과 관련된 것은 특히 많아서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끔 생각 없이 수용하기만 했던것들의 현실을 볼 때는 완전히 어리석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처럼. 244p 중--- 나 역시 그랬다. 막상 생각을 시작하자 '꺼리'가 너무 많았다. 혼자 생각했다면 아마 금방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갈리아의 딸들>과 함께 했기에 여성의 직업, 결혼, 임신, 출산, 피임, 섹스, 심지어 마르크시즘과 여성운동의 관계까지, 수 많은 영역들을 모두 한 번쯤은 고민해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이 소설을 영화로 보고 싶다. 이 땅의 맨움들이 보드라운 턱수염과 뚱뚱한 몸을 가지려 애쓰고, 작은 페니스를 망사 페호로 얽어맨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비웃고 싶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이갈리아의 딸들>을 경험한 후 내 고정관념의 얇은 외벽 하나가 깨져버린 것 같다. 그래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모든 사실에 조금은 화가 났나 보다. 물렁한 나를 자극해 시니컬하게 만들었으니, 이 책에 '목적'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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