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술자리 한 구석에서 지겨워 하고 싶다. 취해서, 고장난 라디오처럼 같은 얘기를 되풀이하는 사람 옆에 앉아, 하품을 깨물고 싶다.
느긋하게 2차, 3차 장소를 결정하고 싶다. 좀 멀더라도 내키는 술집에, "술도 깰 겸 좀 걷자." 하며 씩씩하게 앞장서고 싶다.
입에서 술냄새는 나지 않는지, 얼굴은 붉어지지 않았는지 체크하는 것을 잊고, 기분 좋게 흔들리는 시야를 즐겨보고 싶다.
인심 좋은 노래방 주인장이 두 번, 세 번, 추가 시간을 넣어주면, 시계따윈 들여다보지 않고 매번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 그래서, 어설픈 신곡 말고, 십 년 전 켸켸묵은 그 때 그 노래까지 쉰 목소리로 불러보고 싶다.
자정이 넘은 새벽 거리에 서 보고 싶다.
자꾸 다리가 풀리는 친구의 팔짱을 꼭 낀 채, 기분이 나서 나이트에 간다고 설치는 선배를 웃음으로 만류하고 싶다. 뭐, 그러다 의기투합 하면, 까짓 거 못 갈 것도 없지.
요즘 나이트는 죄다 아줌마 아저씨 뿐이라지만 (아차, 나도 아줌마였지.^^;) 술안주로 두둑해진 배를 신나게 꺼뜨릴 수도 있을테니.
그런 날은, 변기 붙들고 꺽꺽대는 친구의 등짝도 덜 아프게 살살 두들겨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가끔은,
아무도 없는 빈 아파트에 열쇠를 꽂고 싶다.
엄마 기다리다 잠 든 아이들 들여다보며 미안한 마음 갖지 않아도 되도록.
어설프게 술이 깨서 잠도 안 온다고 투덜거리며, 맥주 한 캔, 혹은 커피 한 잔 끼고 거실 소파에 널부러져 책이나 한 권 읽고 싶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잘 짜여진 포근한 행복을 얼기설기 거친 외로움과 잠시 바꾸고 싶은, 그런,
바보같은 생각이 든다.
아주, 가끔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