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5, 118p 中
책을 버리고자 책을 고르면서 어떤 책을 버려야 하는지 또 왜 책을 버리는 일이 좋은지 심사숙고하게 되었다.
첫째, 명작을 버리는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1류급에 들어가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과 알려지지 않은 1.5급의 소설 가운데 한 권을 버려야 한다면 밀란 쿤데라의 것을 버려야 한다. 까닭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도서관이나 도서대여점에 비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친구의 책장에 꽂혀 있을 수도 있으나, 알려지지 않은 1류와 2류의 경계선에 있는 소설은 필요해서 찾으면 없을 수 있다. 때문에 쿤데라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진 명작을 좁은 집안에 둘 필요가 없다.
둘째, 책은 독자에게 읽힘에 의해 '죽음/부활'을 동시에 하지만 많은 번역서들은 읽혀서 죽는 게 아니라 자연사한다. 한때 독서를 즐겼으나 지금은 독서로부터 멀어진 사람의 서가의 특징은 새로운 판본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십 년 전에 세로쓰기로 조판된 <이방인>이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 등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훈장처럼 서가에 꽂혀 있다. 새로운 판본에 대한 정보를 접하거나 입수하는 즉시 옛 판본은 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컴퓨터는 업그레이드하면서 그 동안의 연구 성과와 새로운 해석이 축적된 산물인 번역본에 대해서는 태무심하다.
셋째, 독서는 혼자 하는 것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평론집은 물론이고 입문서 종류의 책이나 문학사 종류의 책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책이고 읽더라도 가장 늦게 읽어야 할 책이다. 세익스피어를 읽는 게 중요하지 이글턴의 세익스피어 연구서가 필요한 게 아니며 브레히트를 읽는 게 먼저지 서사극에 관한 잡다한 책을 끌어 모으는 일이 의미있지 않다. 입문서나 평론집을 읽느니 텍스트를 한 번 더 읽고 직접 그것을 쓰는 게 낫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독서일기를 쓴다면, 그것은 언젠가는 출판될 수 있다. 예전에는 책을 한 권 내기 위해서 집을 한 채 팔아야 할만큼 비용이 들었으나 출판기술의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책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졌고 그래서 '커트라인'이 없어졌다고 할만큼 출판의 관문이 넓어졌다.)
이 원칙을 지키면 좁은 방을 두 배로 넓힐 수 있다. 방 안에 책이 가득하면 책이 귀한 줄 모르게 된다. 재미있게도 나는 드문드문 비어 있는 책장을 보면서 독서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비어있어야지 채우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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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얼마 전 오프모임에서 마태님에게 농담 삼아, 알라딘 삼류 소설과 뉴스레터를 제본해서 이벤트 선물로 돌리라고 말했다. 마태님이 "체리북에서 만들까요?" 하셨다.
둘. 아영엄마님은 리뷰를 모아 둔 자신만의 리뷰 노트를 갖고 계신다. 보물 1호란다.
셋. 책울님이랑 몇 몇 분은, 자신들의 소중한 일기장인 이 공간이, 알라딘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없어지게 되는 경우를 가끔 걱정하신다. 나도 그렇다.
결론.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내 페이퍼와 리뷰들을 그러모아, 책으로 만들어 한 권 갖고 있자는...매력적인 계획을 하나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