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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피그 - 로마의 명탐정 팔코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22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는 역사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이라면 장르 불문하고 전부 읽지만, 세부 장르로 나눠볼 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분야가 역사 추리소설이다. 대학교도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사정상 그러지 못했는데 언젠가는 역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세계사, 동양사, 한국사...인류가 살아온 발자취가 그만큼 길어서겠지만, 역사는 한마디로 방대하다. 그 방대한 역사 중에 내가가장 좋아하는 분야가 로마사이다.
역사추리소설+로마라니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다 다름없다. T.T 그런 이유로 굉장히 기대하고 본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유명한 폭군 네로 황제가 사망한 직후, 별 시덥지 않은 황제들이 연이어 집권하다 살해당하는 로마의 혼란기를 거쳐, 성군으로 칭송받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집권기를 그리고 있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탐정 디디우스 팔코가 아직 세력을 완벽히 구축하지 못한 황제에게 반기를 드는 세력에 맞서 벌이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물론 팔코를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은 황제가 얽힌 권력 다툼이 아닌, 첫 눈에 반한 한 소녀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역사추리소설로서 이 작품이 조금 아쉬웠던 건, 작품의 배경이 꼭 고대 로마가 아니어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대강의 내용은 13세기 영국에도, 18세기 독일에도, 심지어 현대로 각색해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 그 시대가 등장하는 필연적인 이유 없이, 단순히 고대 로마가 독자들에게 인상적이고 이국적인 배경으로만 기능하고 있음이 아쉽다.
물론 작가의 꼼꼼한 리서치가 빛나는 부분, 이를테면 로마 시대의 생활상 같은 부분은 정교하게 재현되었지만 팔코를 비롯한 등장 인물들의 정신 세계는 현대 인물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고대인답지 않은 쿨한 감각의 대사와 사고방식 등은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버둥대는 사람을 보는듯한 부조화를 느끼게 한다.
단순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역사 추리소설을 잘 쓰는 폴 도허티라는 작가의 작품 '알렉산드로스의 음모'를 보면, 추리소설적인 음모의 플롯 속에서도 알렉산드로스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그 시대인들의 정신 세계(종교, 사상, 가치관 등)를 성공적으로 재현해내어 마치 진짜 역사의 한복판에 있는 느낌을 준다. 전쟁 장면도 장쾌하고, 물론 단순한 추리소설로서도 재미있다.
개인적인 잣대로 너무 혹평하는 것 같지만, '역사'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의 심정은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작품의 플롯과 배경, 인물들 모두가 다루고 있는 역사에 걸맞게 그려져야 함을 원한다고 믿고 있다.
이런저런 불만을 제외해 보면, 읽는 재미는 있는 작품이다. 작품 매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탐정 팔코는 귀엽고, 재치덩어리이다. 작품을 읽어보면 팔코를 미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노상 농담을 일삼는 팔코가 진실을 캐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하는 장면들은 안타깝고, 때로는 손을 불끈 쥐게 만드는 정서적 감흥을 안긴다.
그런데 추리소설적인 면(트릭, 반전 등)에서는 다소 평범하다. 다만 주인공 팔코와 헬레나의 개인적인 매력과 흥미진진한 로맨스, 곳곳에 스민 유머 등으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데 성공할 뿐이다.
앞으로 시리즈가 더 나온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관심있는 장르라 계속 읽어볼 생각이지만 1편 <실버 피그>는 확실히 기대에 못 미쳤다. 그래도 기분좋게 후속작들을 기대해 보련다.
별점: ★★★
P.S/ 전영도서관 대출 1순위라는 카피를 썼는데, 대출 많이 나가면 출판사로서는 안 좋은 거 아닌가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