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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 An Inspector Morse Mystery 1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정말 오랜만에 글을 남깁니다. 한 2주간 정신없이 바빠서요. 일도 일이지만, 거의 매일 이어지는 술자리가 특히 피곤합니다. 출판 관련자들은 기본적으로 다들 애주가시더군요..-_-;; 이제는 낮술을 안 먹으면 손이 떨리는 증상까지 왔어요. 술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답니다...-_-;;;
이렇게 바쁘고 피곤할 때면 늘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늘 생각했던 곳이죠. 진짜 건강이 안 좋으신 분들이 들으면 욕하시겠지만 저는 꼭 한번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일년쯤 요양을 했으면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모든 신경쓰이고 피곤한 것들을 다 잊고 경치좋고 물맑은 곳에서 책만 읽고 틈틈이 글도 쓰고...그렇지만 나름대로 튼튼한 편이라 감기도 잘 안걸리더군요..-_-;;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의 주인공 모스 경감은 부럽게도(?) 병원 신세를 집니다. 연일 계속되는 음주, 흡연과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위에 큰 탈이 나버린거죠. (갑자기 저도 불안해집니다. -_-;;)
병원에서 할일도 없고 심심한 모스 경감, 동료이자 친구같은 루이스가 가져온 <블루 티켓>같은 빨간 책을 뒤적이며 시간을 죽입니다. 물론 다른 환자들에게 걸려 망신도 당하지요..^^;;
그러다 그는 병원에서 우연히 책 한권을 선물받습니다. 야한 책이면 좋겠지만 이번 책은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이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입니다. 이 책은 120년전 옥스퍼드 운하 근처에서 뱃사공 4명이 한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받았다는 내용을 다룬 논픽션입니다.
그런데 비범한 모스 경감, 이 책에 나오는 내용 중 뭔가 앞뒤가 안맞는 내용을 발견합니다. 웬지 수상쩍어진 그는 침대에 누워 번뜩이는 추리력과 논리력만으로 120년전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우드스탁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와 <사라진 소녀>에 이어 세번째로 읽어보는 콜린 덱스터의 소설입니다. 한 사건에 대해 수가지의 가설들을 세우고 그것들을 수정하고 변형하기도 하는 등 그의 최고 재미는 역시 '가설의 향연'일 것입니다. 비록 그 가설들이 다 맞는 건 아니고, 오히려 틀릴 때가 많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논리로 이뤄진 가설들이 속속 등장할때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가설의 향연'이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약했습니다. 페이지가 적고 소품에 가까워 사건의 진상에 대해 한 가지 가설로만 단선적으로 흘러갑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죠...
물론 모스 경감 특유의 유머는 여전합니다. 엄청 재미있는 장면이 많습니다. 특히 야한 책을 읽다 걸리는 장면 등은 웃지 않고는 못 배기죠. 여전히 충실한 루이스와의 우정도 흐뭇하고요. 밝혀진 사건의 진짜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언급한대로 '가설의 향연'이라는 면에서 조금 약한 게 아쉽습니다. 내용도, 형식도 작가가 소품을 의식하고 썼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아마 콜린 덱스터판 <진리는 시간의 딸>을 쓰려고 했는지도 모르죠.
조금 아쉬웠던 건 과거 사건에서의 미스터리들이 완벽하게 풀리지는 않는다는 거죠. 예를 들어 뱃사공들이 여자를 희롱할 때, 여자는 비명을 지릅니다. "내 구두를 어떻게 하려는 거야!"
독자들은 구두에 얽힌 비밀이 궁금할 수 밖에 없지만 모스 경감은 구두에 얽힌 진실을 풀지 못합니다.(풀지 않습니다.)
120년이라는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쓴 사건이 현대의 사건들처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낱낱이 풀릴
수는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의도한 효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단점들도 있지만 저는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천사같은 피오나와 아일린 간호사들의 간호를 받으며 유유자적하는 모스가 너무 부러웠습니다. 병원, 나쁜 곳만은 아니라니까요!
별점: *** 1/2
p.s/ 올 여름에 모스 경감 후속 시리즈가 더 나온다고 하더군요. 3권이 한꺼번에 비슷한 시기에 나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붉은 언더라인>이라는 작품이 보고 싶은데 보기 힘들더군요. 해문 목록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