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방주>는 '노아의 방주' 할 때 그 방주가 맞다. 흔히 본격 추리소설의 왕도를 '클로즈드 서클'이리고 한다. 폭풍우나 눈보라, 화재, 기타 사유로 고립된 산장 같은 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므로 범인은 반드시 그들 안에 있고,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도 소수의 내부자들 안에 있다. 일종의 닫힌 원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만 내용을 진행시키기에 독자의 몰입도가 올라가고, 작가도 쓸데없는 외부 변수를 차단할 수 있으니 이야기의 집중력이 높아진다. 이 장르의 완성자는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애거서 크리스티일 텐데 <오리엔트 특급살인>, <나일 강의 죽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위에도 썼지만 클로즈드 서클을 만들 때 자연재해를 주로 쓰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등장인물들을 한곳에 모으는데 자연재해만큼 편리한 설정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전까지는 그랬다. <방주>가 나오기 전까지는... 거대한 바위로 출입구가 막힌 지하시설에 갇힌 내부자들 속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방주>는 닫힌 원을 만드는 바위를 이야기의 주요 추동력으로 사용했으며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작품의 핵심과도 강렬하게 연결시킨다. 개인적으로 클로즈드 서클을 만드는 장치에 별로 주목해본 적이 없는데, 이토록 참신하게 사용한 유키 하루오 작가에게 살의에 가까운 질투를 느꼈다. 특히 반전은 근 몇 년 사이에 읽은 모든 추리소설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다. 분량도 짧아서 읽기도 편한데 동기의 기저에 불륜 같은 축축한 내용이 있으니 아마 늘려 쓰기는 어렵지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작가는 본인이 떠올린 반전과 핵심 트릭, 통렬한 결말을 얼른 선보이고 싶어 줄달음질친 듯하다. 마무리에 강력한 폭탄을 준비해놨는데 곁가지를 길게 쓸 맛이 나겠는가. 끝까지 읽어보면 그냥 강력한 폭탄이 아니다. 숫제 핵폭탄이다. 책을 다 읽고도 한동안 1인칭 화자인 주인공이 느꼈을 당혹감이 생각나 이따금 쿡쿡거렸을 정도. 글솜씨나 인물 조형 면에서 아직 완성된 작가 느낌은 안 나지만 꿩 잡는 게 매라고 결국 추리소설은 트릭과 반전을 즐기는 장르이다. 이 수준의 트릭과 반전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당대의 추리소설 1인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