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위 <너의 퀴즈> - 오가와 사토시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퀴즈 프로들이 제법 인기가 있었다. 온 가족이 TV에 둘러앉아 저녁 먹으면서 퀴즈를 보곤 했는데, <장학퀴즈>처럼 최상위권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나와서 문제를 풀 때면 너는 왜 저런 데 못 나가냐, 는 부모의 구박이 항상 뒤따르곤 했었다. 어느덧 우리나라에선 퀴즈 프로의 열풍이 거의 소멸했지만 좋게 말해 전통을 중시하고, 제대로 말하면 많은 부분이 정체된 사회인 일본에선 그 인기가 여전하다고 한다. 오가와 사토시의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너의 퀴즈>는 바로 일본에서의 퀴즈계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방송국 퀴즈 대회 결승전에서 맞붙은 상대가 사회자의 입에서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는데 정답을 맞췄다. 주최 측에서 짬짜미 의혹을 전면 부인하자, 퀴즈에 인생을 건 주인공은 마치 또 하나의 어려운 퀴즈를 풀어내듯이 그날의 진상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살인 등의 강력범죄는 아니지만 듣지도 않고 문제를 맞추는 사람은 충분히 흥미로운 미스터리 소재이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파헤치는 가운데 퀴즈에 살고 죽는 이른바 '퀴즈 플레이어'들의 삶이 자세히 그려진다. 그냥 지식을 많이 쌓아 퀴즈를 잘 푸는 게 아니라 문제들의 경향성에서 출제자의 논리 프로세스를 파악하고, 여러 가능성을 하나씩 쳐낸 다음 유사한 사고 과정에 도달했을 상대 플레이어보다 먼저 버저를 누르는 도박에 나선다. 전국의 퀴즈대회를 쫓아다니면서 기량을 겨루는 그들의 삶은 마치 프로 스포츠맨을 방불케 한다. 이런 퀴즈 플레이어들의 모습은 어디서도 다뤄진 적이 없기에 대단히 흥미진진했고, 최종적으로 제시된 해답도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주인공을 비롯해 듣지 않고 문제를 맞추는 라이벌, 각기 다른 두 명의 인생사가 모두 밝혀지는 순간 그들이 겪어온 아픔에 가슴이 조금 먹먹해지기도 했다. 결국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퀴즈는 '인간'이라는 복잡다단한 종의, 그보다 훨씬 천변만화하는 '마음'의 양상이 아닐까 싶다.

4위 <폭탄> - 오승호












진지하고 첨예한 사회 문제를 오락소설의 대명사인 추리소설과 결합시켜 문학성과 재미를 동시에 도모한다.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은 창시자인 미쓰모토 세이초 이래로 일본 추리소설의 또 하나의 경향성을 대표하는데, 재일교포 3세 오승호 작가를 현재 가장 촉망받는 사회파 추리 작가라고 봐도 틀림이 없을 것 같다. <폭탄>은 도쿄 시내 곳곳에 장착된 시한폭탄을 해체하려는 경찰들과 폭탄 살인마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말 그대로 시한폭탄이기 때문에 사태는 분초를 다툰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민간인이 희생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생겨나는 서스펜스가 굉장하다. 물론 오승호는 진지한 사회파 작가로서 이러한 오락물로서의 설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노숙자를 양산하는 빈부 격차, 범죄자 가족에 대한 집단 괴롭힘, 군중 속의 고독 등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녹여내면서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탁월한 건 폭탄 테러를 계획하고 일부러 경찰에 잡혀와 수사진에게 두뇌싸움을 거는 악역의 인물 조형인데 정말이지 이렇게 징그러운 악당은 오랜만에 본다. 과공비례라는 옛말처럼 지나치게 공손한 것도 예의가 아닌 법이거늘, 매사 비굴함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을 낮추다가 은근슬쩍 수사진을 갖고 노는 악역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아마도 일본이나 한국에서 영화화될 확률이 높은 소설이라 토드 필립스의 <조커>를 연상시키는 메인 빌런을 누가 맡을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더라. 의외로 결말부에서 사건이 한 번 뒤집히는 반전이 있는데 이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오승호 작가는 스토리텔러로서 타고난 감각이 있는 듯하다. 영화로 치면 컷, 클로즈업, 롱테이크 등의 기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재미있는 부분은 세밀하고 길게 보여주고, 좀 지루한 부분은 빨리 쳐내는 등 한마디로 소설을 재미나게 쓸 줄 알아서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것으로 보인다.

3위 <명탐정의 제물> - 시라이 도모유키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난해한 사건을 쾌도난마처럼 해결하는 명탐정의 활약이야말로 흔히 말하는 본격 추리소설의 정수가 아닐까. 그러나 본격 추리소설에는 구조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소설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맨 뒤쪽 해결편에 '몰빵'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내 지인은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들을 뒤쪽 30페이지만 읽는다. 액기스만 읽으면 되지 뭐하러 시간 아깝게 다 읽느냐는 게 그놈의 요지. 아직도 본격 추리소설이 꽤 인기가 있는 일본의 추리 작가들 역시 이 문제점을 잘 알고 있을 터. 결국 그들은 하나의 해결책을 고안해냈으니 이른바 '다중추리'이다. 사건 발생, 용의자 취조, 현장 단서 수집 등의 과정을 지난하게 따라가다 최후반부에 모든 트릭이 밝혀지고 사건 해결의 카타르시스가 집중되는 기존 추리소설은 위에도 말했듯이 뒷부분만 짜릿하다. 다중추리는 '찐 명탐정'에 비해 한 수가 떨어지는 가짜 명탐정들을 다수 배치해 중간중간 다양한 해결편을 선보인다. 지루해질만 하면 탐정이 등장해 기발한 추리를 제시하니 질릴 틈이 없다. 그렇게 2~3번의 다소 허점은 있지만 매력적인 가설들이 이어지다 찐 명탐정이 최후에 참 진상을 밝혀주고 끝내는 것이다. 다중추리는 본격 추리소설의 뒷부분 몰빵 구조를 타파하는 참신한 구성이지만 하나도 아니고 몇 개의 그럴싸한 추리를 준비해야 하니 난이도가 몇 배로 높아지는 어려움이 있다. 한마디로 읽기에는 재미있지만 쓰기에는 어려운 것인데 현재 이 곡예와도 같은 난도의 작품들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이 <명탐정의 제물>의 시라이 도모유키라고 생각한다. 다만 같은 사건을 놓고 여러 가지 스타일의 추리를 선보여야 하므로 살짝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고, 설명이 필요한 살인사건이 무려 네 개일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복잡하다 보니 읽다가 지치는 감은 있다. 레이어드 룩에서 한 세 가지 옷만 매치하면 이쁠 텐데 무려 일곱 가지를 겹쳐 입은 사람을 보는 것 같달까. 물론 희대의 테크니션으로서 기예를 뽐내고 싶은 마음은 일견 이해가 가고, 개인적으로 그 탁월한 능력이 부럽기도 하다. 아무튼 <명탐정의 제물>이 최상급의 다중추리 소설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2위 <테스카틀리포카> - 사토 기와무










일상계에 가까운 추리소설, 라이트한 대중문예, 어깨에 힘을 뺀 이야기 일변도의 최근 일본 추리소설 시장에 모처럼 압도적인 작품이 등장했다. 멕시코와 인도네시아, 일본을 아우르는 마약 카르텔 사가로 직구 승부에 나선 <테스카틀리포카>에 그야말로 제압당하고 말았다. 마약 카르텔, 장기밀매, 아즈테카 신화 등의 주요 소재를 다루는 밀도에서 엄청난 취재와 자료 조사가 선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잘 모르는 부분은 상상으로 때우면서 작가적 허용이라고 변명하는 요즘 작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자세가 아닐 수 없겠다(왜 내가 찔리지?). 물론 너무 밀도가 높다 보니 조금 뻑뻑한 감도 없진 않았다. 대사도 거의 없이 설명과 지문으로만 수백 페이지가 이어져서 단숨에 읽기 쉽지는 않다. 그러나 아즈텍 문명의 심장 공양과 현대의 심장 밀매를 연결시킨 대담한 상상력과 피의 복수를 위해 힘을 모으는 나르코(마약 밀매자)의 강렬한 서사를 외면할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흔히 피카레스크라고 하는 악한소설은 그 부도덕성으로 인해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무단횡단 한 번 하면서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소시민들에게 나름의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역할도 해준다. 갱스터 조폭영화, 건달소설 등이 꾸준히 인기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을 텐데 현대의 조폭 중에서 으뜸이라면 역시 수백억 달러를 움직이는 멕시코의 나르코 카르텔이 아닐까. 아즈텍 신화에 심취해 자신을 신의 전사라고 생각하는 광신도 나르코가 조직을 재건하고 암살자를 키우면서 전쟁을 준비한다. 매 페이지마다 불길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감돌아 악당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열광할 만하다. 한편 <테스카틀리포카>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창작되어 온 국제 모험소설의 전통을 잇는 작품이기도 하다. 90년대 들어서야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우리나라와 달리 60년대 말부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일본은 다양한 나라와의 비즈니스로 국제적인 감각을 길러온 덕분에 작가들도 해외 각국에서 위기를 겪거나 모험을 벌이는 국제 모험소설을 위화감 없이 잘 써낸다. 우리나라 밖에서 주인공이 활약하는 한국 소설이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집요하게 신성(神性)을 추구하던 등장인물이 마침내 인간성을 회복하고 불의를 혁파하는 후반부도 흡사 소나기처럼 시원하다.

1위 <방주> - 유키 하루오









제목의 <방주>는 '노아의 방주' 할 때 그 방주가 맞다. 흔히 본격 추리소설의 왕도를 '클로즈드 서클'이리고 한다. 폭풍우나 눈보라, 화재, 기타 사유로 고립된 산장 같은 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므로 범인은 반드시 그들 안에 있고,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도 소수의 내부자들 안에 있다. 일종의 닫힌 원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만 내용을 진행시키기에 독자의 몰입도가 올라가고, 작가도 쓸데없는 외부 변수를 차단할 수 있으니 이야기의 집중력이 높아진다. 이 장르의 완성자는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애거서 크리스티일 텐데 <오리엔트 특급살인>, <나일 강의 죽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위에도 썼지만 클로즈드 서클을 만들 때 자연재해를 주로 쓰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등장인물들을 한곳에 모으는데 자연재해만큼 편리한 설정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전까지는 그랬다. <방주>가 나오기 전까지는... 거대한 바위로 출입구가 막힌 지하시설에 갇힌 내부자들 속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방주>는 닫힌 원을 만드는 바위를 이야기의 주요 추동력으로 사용했으며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작품의 핵심과도 강렬하게 연결시킨다. 개인적으로 클로즈드 서클을 만드는 장치에 별로 주목해본 적이 없는데, 이토록 참신하게 사용한 유키 하루오 작가에게 살의에 가까운 질투를 느꼈다. 특히 반전은 근 몇 년 사이에 읽은 모든 추리소설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다. 분량도 짧아서 읽기도 편한데 동기의 기저에 불륜 같은 축축한 내용이 있으니 아마 늘려 쓰기는 어렵지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작가는 본인이 떠올린 반전과 핵심 트릭, 통렬한 결말을 얼른 선보이고 싶어 줄달음질친 듯하다. 마무리에 강력한 폭탄을 준비해놨는데 곁가지를 길게 쓸 맛이 나겠는가. 끝까지 읽어보면 그냥 강력한 폭탄이 아니다. 숫제 핵폭탄이다. 책을 다 읽고도 한동안 1인칭 화자인 주인공이 느꼈을 당혹감이 생각나 이따금 쿡쿡거렸을 정도. 글솜씨나 인물 조형 면에서 아직 완성된 작가 느낌은 안 나지만 꿩 잡는 게 매라고 결국 추리소설은 트릭과 반전을 즐기는 장르이다. 이 수준의 트릭과 반전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당대의 추리소설 1인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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