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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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독서가로서 회상해보면 2000년대 중반 이전까지 일본소설은 서점의 주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 등 당시에도 인기 작가를 제외하면 세계명작 코너에서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정도나 찾아볼 수 있었을까.

그런 흐름은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일본 장르소설(콕 집어 추리소설) 붐이 일면서 극적으로 반전된다. 처음 몇 권 나올 때만 해도 일본 이름에 익숙하지 않아 얘가 앞에 나온 얘가 맞나 계속 책장을 앞으로 뒤적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흥미로운 점은 80년대부터 이미 일본에서는 흥행 작가들로 평가받으며 수십 편의 전작이 있는 작가들의 출간작이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안팎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한 번 물 들어오면 노는 확실하게 젓는 우리나라 사람들답다. 특히 다작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은 아마 그 시기에 30~50편은 나온 것 같다. 한 작가의 작품을 그것도 수십 편씩 짧은 시간 안에 과다섭취해버리면 질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 나 역시 애초에 다양한 소재와 쉬운 가독성으로 읽기 부담 없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금도 즐기지만 미유베 미유키는 30편 언저리에서 끊어서 안 읽은 지 10년은 넘은 것 같다.

 

<스키마와라시>의 온다 리쿠도 일본 장르소설 출간 러시 때 쏟아진 작가군 중 한 명이다. 명확한 기억은 없지만 어린 시절 어딘가에서 본 듯한 세계명작 만화, 메르헨(동화), 순정만화, 하이틴소설 등 왠지 친숙한 과거의 정서를 기가 막히게 소설 속 세계관에 구현해내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란 별명이 있는 작가이다. 추리소설로서도 좋은 부분이 있고 독서 내내 그리움에 빠져드는 느낌이 좋아 한 15편쯤은 출간 족족 따라갔지만 역시 질리고 말아 신작 출간 소식에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잡은 온다 리쿠의 <스키마와라시>는 옛 친구와 재회하는 기분이었다. , 얘랑 옛날에는 친했는데 그동안 다른 데 관심이 팔려 잊고 있었구나 하는 후회도 들고, 여전히 좋은 얘기를 들려주는 괜찮은 친구구나 하는 반가움도 있었다. 추억을 간직한 오래된 건물을 철거할 때마다 나타나는 스키마와라시라는 존재의 비밀을 찾아가는 형제의 이야기로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겠는데 약간의 호러와 판타지, 추리를 섞어 흥미롭게 끌고 가면서도 작가만의 따뜻한 정서를 놓치지 않은 점이 딱 온다 리쿠스러웠다.

 

60년대부터 급속한 발전으로 이미 노후화된 건물이 많은 일본에선 어린 시절 부모와의 추억이 담긴 대중목욕탕이나 다방, 오락실, 분식집 등을 찾아 학창시절에 뻔질나게 찾았을 상가빌딩들이 하루 걸러 하나씩 철거되고 있을 터. 이제 쉰 중반이 된 작가가 느끼는 상실감과 쓸쓸함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구나 그 대부분의 건물들은 고도성장기에 하루 걸러 하나씩 올라간 것들일 테니 작가이기에 앞서 노년에 가까워지는 일본인에겐 마침내 일본의 여름(성장)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물론 작가는 주인공들에게 봄에 새롭게 움트는 뭔가를 쥐어주면서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는 응원의 마음도 잊지 않았지만 작품 전반적으로는 사라져가는 어떤 것에 대한 아쉬움의 정서가 지배적이다.

 

일본 못지않게 우리나라도 익숙하고 친밀한 것들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발전이나 속도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정상 온다 리쿠가 맞이한 풍경은 이미 우리에게도 낯선 것은 아닐 것이다. <스키마와라시>를 흥미롭게 읽은 분들은 가끔은 잠시 멈춰서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밀한 풍경을 한 번쯤은 돌아보면 어떨까. 분명 나쁘지 않은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기왕에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났으니 앞으로는 좀 더 자주 봐야겠다는 결심을 전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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