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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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으니 그저 무관심하다고
할 수밖에...그의 시를 읽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기 시작한 것
은 지인이 이 책만은 해마다 꼭 읽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책인지
호기심이 일어 보기 시작했다. 맨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로 읽을만했으며 나
도 해마다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다른 책에 순위를 뺏겨 밀리기 시작했다. 2004년 작
품집의 경우는 작가 김훈이 <화장>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때 김훈의 <화장> 이 한 작품만 읽고 더는
읽어 나갈 수 없었다.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작품에 실망해서는 더욱 아니었다. 오히
려 좋았으니까.

<화장>은 사람의 몸을 담담하고 건조하게 표현했다. 아내의 화장(火葬)과 그녀의 화장(化粧)은 극명한
대조를 보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삶과 죽음이 하나로 묶여있듯 말이다. 특히나 그녀를 표현하는
문장은 건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상형을 보는 듯 애처롭기까지 하다. 마음의 위안을 받으려는 것인지
주인공에게는 여신(女神)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아내와 병들고 늙은 주인공 그리고 생생
한 그녀를 오가며 삶을 보여준다. 진지함과 가벼움이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듯 그렇게 천천히...단편임에
도 오롯하게 느껴진다. 아내의 개를 안락사시키는 모습에서 별다른 감정을 못 느끼는 내 모습을 보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생명은 소중하지만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늙고 병든 그는 그런 결정을 한 거
라고 이해해본다. 오늘도 일 초의 시간까지 재생되고 있는 삶에서 내면을 들여다 본 시간은 과연 몇 초
나 될 것인가. 작가 김훈이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쓰기를 기대한다. 에세이 <가까운 숲이 신성하
다>도 좋았다.

길은 어디에도 없다. 앞쪽으로는 진로가 없고 뒤쪽으로는 퇴로가 없다. 길은 다만 밀고 나가는 그 순간
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산으로 가는 단독자의 내면을 완성한다. 그는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한다. 그
는 자신의 내면에 외로움의 크고 어두운 산맥을 키워나가는 힘으로 희말라야를 혼자서 넘어가고 낭가
파르바트 북벽의 일몰을 혼자서 바라본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ㅡ 김훈, 에세이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69쪽


특별상을 받은 문순태의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는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느낌이 끝까지 일치했다.
잘 발효된 된장처럼 작가의 역량이 조절된 글에서 숙연한 느낌도 받았지만 교과서적이라는 느낌은 지
울 수 없었다. 하지만,누구나 방식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기에 기억에 남는다.

소설은 낡고 오래된 것 속에서 새롭고 아름다움을 찾는 미학일지도 모른다. ㅡ 문작가의 말, 107쪽

김승희의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은 티타임(tea time) 분위기로 여성작가 특유의 느낌이 묻어난다.
현대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지나 구성은 떠밀려오는 물결처럼 지나간다. 구효서나 전성태의 글과
는 대조적이다. 고은주의 <칵테일 슈가>의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의 경고 같았다.
하성란의 <그림자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암시적인데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했다. 서론을 조금
풀어두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미경의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는 드라마를 보는 느
낌이다. 기러기 아빠와 불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은 좋았다. 마지막으로 박민규의 <고마워, 과연 너
구리야>를 읽으며 딱 한마디가 생각났다. 「고마워, 과연 당신은 박민규야」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건
언제나 마찬가지니 말이야.

작가들 모두가 문학은 환상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고 표현한 거 같다. 차이는 방식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등인데 독특한 시도가 이어지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이상문학상을 아끼는 독자
로 이 정도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무엇이 빠진 걸까. 독특하다는 말을 정확하게 쓰기에는 그 말이 조
금 아까운 것이다.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정도의 독특함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낡은 것이 꼭 나
쁘거나 새로운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님을(모든 것에 일장일단이 있듯) 인정하나 얼마나 제대로 그 세계
를 깨부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현상을 알고 있기에 궁지에 빠졌거나 고민하고 있
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깨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상문학상을 계속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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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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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중 4대 비극의 종착역으로 『리어 왕』을 택했다. 리어라는 인
물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정말로 많은 것을 다시 눈으로 쫓고 싶
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인생사의 굵직한 사건이 많이 들어있는데 사
랑, 죽음, 음모, 욕망 등은 물론이고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 또한 극을 풀어가는데 있
어서 중요하다. 통속적인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은 바로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되풀이되고 있는 우
리 인간의 모습 때문이다. 단, 우리가 그의 작품을 고전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아직도 유효한데다 제대
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는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이해되지 못하면 이후로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그렇더라도 가끔 그 이름값 때문에 손해 보는 고전작품이 많다는 사실이
때로는 우울하다. 많이 알려지고 이미 알고 있다는 이유로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오만하다.

리어가 세 딸에게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의 모든 부와 권력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랑을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표현도 마찬가지겠지만 리어의 성격상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 코딜
리아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바랬던 만큼의 분노를 퍼붓는다. 그 노인(리어)은 괴팍하고 강
렬하며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이라는 표현보다 효(孝)라는 개념을 적용해보니 그것
이 내 정서에는 더 들어맞았다. 리어와 세 딸 그리고 글로스터와 두 아들을 보면 너무도 자명하게 알 수
있다. 리어는 두 명의 불효녀를, 글로스터는 한 명의 불효자를 둔 셈이다. 다행하게도 리어나 글로스터
에게 한 명씩의 효녀, 효자가 있었으나 부모와 자식이 다시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멀고도 험난했다.

그러나 리어와 글로스터는 같은 상황이지만 그들의 성격이 다른 만큼 행동도 다르다. 리어는 코딜리아
에게 말을 바꿀 시간을 주었지만 글로스터는 당사자 에드거의 말을 확인하지도 않고 의심한다.
이 작품에는 큰 줄기로 리어의 이야기를 작은 줄기로 글로스터의 이야기를 함께 진행하며 그 밖에도 작
은 것들이 어우러져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얽히고설켜 정신없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다양성을 추구하
려고 했던 것 같다. 자식의 사랑을 알아채지 못해 고통받는 두 부모의 모습을 거꾸로 생각해 보았다. 부
모의 사랑을 모르는 자식의 경우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에서 글로스터의 눈이 뽑히는 장면은
처절했다. 왜 꼭 눈을 뽑았어야 했을까 생각했는데 셰익스피어는 신화를 살짝 넣은 것이다.
물론 오이디푸스와 상황은 다르지만 눈을 잃고, 코딜리아의 최후는 안티고네와 같다. (물론 코딜리아는
타인에 의해서다.) 그러나 이미 리어와 글로스터는 마음의 눈을 뽑힌 상태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 비극
은 시작되었다.

내게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보였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재치있으며 날카로운 송곳 같았으니 과
연 리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다. 물론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과 결말은 너무도 아쉬웠다. 재간둥이 바
보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리어는 코딜리아의 죽음에서 바보를 언급했다. 그가 바보를 사랑했음은 알
겠는데 왜 사랑했을까. 어쩌면 바보의 반은 들락거리는 정신을 사랑하진 않았을까. 바보였지만 누구보
다 현자였으며 왕을 사랑함은 두말할 것도 없고 결정적으로 바보는 리어가 실망감을 느낄 수 없는 대상
이기에 더욱 그랬던 거라 짐작한다. 바보행세를 하던 에드거와 바보의 만남은 그야말로 폭소를 자아냈다.

모든 등장인물은 리어를 제외하고는 한 방향으로만 걷는 모습이다. 즉, 결과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코딜리아부터 에드거, 바보, 충신 켄트... 지금 같으면 보이지 않는 사랑이야말로 희귀한
광경일 텐데 극에서의 모습은 반대다. 그래서 리어라는 인물이 독특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하고
화내고 반성하고 나약했다가 강해지니 말이다. 리어와 바보를 합친 인물이 나온다면 굉장하겠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사람의 마음 밭에는 얼마나 많은 씨가 존재하는가였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과정에는 삼라만상이 함께하니 과연 우주가 들어있다 하겠다.
어떤 식으로 가꾸어 나가건 중요한 것은 그저 육안의 눈으로만 쫓지 말 것이며 혜안의 눈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을 알면서도 육안의 눈이 먼저 마음을 지배한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작품은 현재 4대 비극이 전부인데 지속적인 관심으로 번역을 하는 모
습이 좋다. 그래도 더러는 읽고 넘어가기에 걸리는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계속 보완될 것으로 생각한
다. 또 군데군데 오타가 눈에 띄어 거슬렸고 에드거의 갑작스런 사투리 조(147쪽)의 말도 매끄럽지 않
다고 생각한다. 사투리를 조금만 줄였으면 좋을 거 같다. 과도한 사투리에 흐름이 잠시 멈춘 나 같은 독
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민음사에 감사한다.


* 에드거의 말을 기억하며...

최악을 말할 수 있는 한 최악은 아니다. (121쪽, 4막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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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2-21 13:31   좋아요 0 | URL
고전의 맹점은 책의 사상과 내용이 어느 정도 고착되어져버린다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워낙 유명하기에 개인의 주관적인 재해석이 가로막히는 모순, 그것이 고전의 딜레마인지도 모르겠군요. 저도 고전 다시 읽기를 늘 염두에 두면서도 항상 걸리는 것이 저런 문제랍니다.

은비뫼 2007-02-21 16:01   좋아요 0 | URL
동감합니다. 책 뒤편의 친절한 해설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고해야 할 거 같습니다. 해설과 주관을 혼동하지도 말아야겠고 의지하지도 말아야겠고...생각하기를 그만둘 수도 없고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데 어째 요즘 멍한 상태로 책을 보는 거 같습니다. 제 이야기죠. ^^
 

밤새 머릿속에서 책에 관한 것들이 떠다녔다.
잠들기 전에 책을 읽는 것은 행복한 습관이지만 그 생각 때문에 잠을 못 자기는 처음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 것을 하고 후회하지만 왠지 나도 모르는 힘에 끌리듯 그런 상태를 유지했다.
올해의 책읽기 계획은 어떠하며, 이것과 저것의 연결고리는 그것이며, 실질적인 이론으로 도움이 될만한
책은 이것이며, 알라딘과 예스는 어쩌고저쩌고...이쯤 되면 맛이 간 느낌마저 든다.
사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책에 푹 빠져 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의 내
꼴은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숨마저 푹 죽어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두어 시간을 자고 7시에 일어나서 쇠고기
떡국을 끓이고 점심때까지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오후가 되자 책을
몇 장 넘기다 병원에 다녀왔다. 그리고 컴퓨터 전원을 켜고 또 어떤 작가에 관한 책을 뒤적인다.

물론 오늘은 설날이라 올해의 계획을 점검하는 시간도 빼먹지는 않았다. 사실 지금 가장 급한 것은 그것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책으로 온 마음이 쏠리다니 도저히 주최하기 어렵다. 정말이지 난 다독을 싫어하고
읽지도 않은 책을 마구잡이로 쌓아두는 것을 경멸한다. 반대로 베스트셀러이건 최다판매량이건 관계없이
읽고 싶은 책만을 읽고 다시 읽기를 좋아한다. 무언가 변화의 시기에 놓인 느낌이다. 책에 먹혀버리기는
싫다. 내가 소화시킬 수 없는 책은 손대지 않고 적절한 시간을 찾으며 전시용 책장을 만들 계획은 더더구나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나 확고한데 삶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변화기가 자주 찾아오지는 않지만 그 변화가 발전적이지 않다면 무슨 소용일까.
이미 뇌와 몸은 퇴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삶을 바라보는 눈은 현명해지길 기대한다.

책! 앞으로도 내게 변함없는 벗이 되어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가끔 이런 열병을 앓는 것은 당연한 통과의례일지도 모르지.
책장을 날개 삼아 긴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것 또한 멋진 일이다.

올봄에 일을 어떤 식으로 치러 내든 간에 나를 믿는 쪽에 승부수를 두기로 한다.


-4340.02.18.해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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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만 권의 책을 돌파한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떠할까.

상당히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닌 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멍해져 버릴 것임에 틀림없다.

다행히 인간의 두뇌에는 한도가 있고, 기억의 용량도

정해져 있으므로ㅡ물론 사람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ㅡ

그 용량을 넘어선 만큼의 양은 잇따라 잊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독서란 참으로 부조리한 것이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잊기 위해 읽는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읽은 것을 모두 완전히 잊어버리는 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뇌리에 깊이 새겨진 인상은 약간이나마

무의식의 층에 침전하며, 뜻하지않은 때에 의식의 표면으로

불쑥 튀어 나오곤 한다. 그게 독서의 보수일것이다.'

 ㅡ 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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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씌어졌듯이

우리들 또한

책들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읽지 않으면 안된다.'

 

 

- 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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