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으니 그저 무관심하다고할 수밖에...그의 시를 읽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기 시작한 것은 지인이 이 책만은 해마다 꼭 읽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책인지호기심이 일어 보기 시작했다. 맨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로 읽을만했으며 나도 해마다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다른 책에 순위를 뺏겨 밀리기 시작했다. 2004년 작품집의 경우는 작가 김훈이 <화장>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때 김훈의 <화장> 이 한 작품만 읽고 더는읽어 나갈 수 없었다.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작품에 실망해서는 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좋았으니까.<화장>은 사람의 몸을 담담하고 건조하게 표현했다. 아내의 화장(火葬)과 그녀의 화장(化粧)은 극명한대조를 보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삶과 죽음이 하나로 묶여있듯 말이다. 특히나 그녀를 표현하는문장은 건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상형을 보는 듯 애처롭기까지 하다. 마음의 위안을 받으려는 것인지주인공에게는 여신(女神)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아내와 병들고 늙은 주인공 그리고 생생한 그녀를 오가며 삶을 보여준다. 진지함과 가벼움이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듯 그렇게 천천히...단편임에도 오롯하게 느껴진다. 아내의 개를 안락사시키는 모습에서 별다른 감정을 못 느끼는 내 모습을 보고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생명은 소중하지만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늙고 병든 그는 그런 결정을 한 거라고 이해해본다. 오늘도 일 초의 시간까지 재생되고 있는 삶에서 내면을 들여다 본 시간은 과연 몇 초나 될 것인가. 작가 김훈이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쓰기를 기대한다. 에세이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도 좋았다.길은 어디에도 없다. 앞쪽으로는 진로가 없고 뒤쪽으로는 퇴로가 없다. 길은 다만 밀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산으로 가는 단독자의 내면을 완성한다. 그는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외로움의 크고 어두운 산맥을 키워나가는 힘으로 희말라야를 혼자서 넘어가고 낭가 파르바트 북벽의 일몰을 혼자서 바라본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ㅡ 김훈, 에세이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69쪽특별상을 받은 문순태의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는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느낌이 끝까지 일치했다.잘 발효된 된장처럼 작가의 역량이 조절된 글에서 숙연한 느낌도 받았지만 교과서적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누구나 방식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기에 기억에 남는다. 소설은 낡고 오래된 것 속에서 새롭고 아름다움을 찾는 미학일지도 모른다. ㅡ 문작가의 말, 107쪽김승희의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은 티타임(tea time) 분위기로 여성작가 특유의 느낌이 묻어난다.현대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지나 구성은 떠밀려오는 물결처럼 지나간다. 구효서나 전성태의 글과는 대조적이다. 고은주의 <칵테일 슈가>의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의 경고 같았다. 하성란의 <그림자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암시적인데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했다. 서론을 조금풀어두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미경의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기러기 아빠와 불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은 좋았다. 마지막으로 박민규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를 읽으며 딱 한마디가 생각났다. 「고마워, 과연 당신은 박민규야」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건 언제나 마찬가지니 말이야.작가들 모두가 문학은 환상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고 표현한 거 같다. 차이는 방식이나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등인데 독특한 시도가 이어지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이상문학상을 아끼는 독자로 이 정도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무엇이 빠진 걸까. 독특하다는 말을 정확하게 쓰기에는 그 말이 조금 아까운 것이다.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정도의 독특함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낡은 것이 꼭 나쁘거나 새로운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님을(모든 것에 일장일단이 있듯) 인정하나 얼마나 제대로 그 세계를 깨부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현상을 알고 있기에 궁지에 빠졌거나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깨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상문학상을 계속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