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머릿속에서 책에 관한 것들이 떠다녔다.
잠들기 전에 책을 읽는 것은 행복한 습관이지만 그 생각 때문에 잠을 못 자기는 처음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 것을 하고 후회하지만 왠지 나도 모르는 힘에 끌리듯 그런 상태를 유지했다.
올해의 책읽기 계획은 어떠하며, 이것과 저것의 연결고리는 그것이며, 실질적인 이론으로 도움이 될만한
책은 이것이며, 알라딘과 예스는 어쩌고저쩌고...이쯤 되면 맛이 간 느낌마저 든다.
사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책에 푹 빠져 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의 내
꼴은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숨마저 푹 죽어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두어 시간을 자고 7시에 일어나서 쇠고기
떡국을 끓이고 점심때까지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오후가 되자 책을
몇 장 넘기다 병원에 다녀왔다. 그리고 컴퓨터 전원을 켜고 또 어떤 작가에 관한 책을 뒤적인다.

물론 오늘은 설날이라 올해의 계획을 점검하는 시간도 빼먹지는 않았다. 사실 지금 가장 급한 것은 그것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책으로 온 마음이 쏠리다니 도저히 주최하기 어렵다. 정말이지 난 다독을 싫어하고
읽지도 않은 책을 마구잡이로 쌓아두는 것을 경멸한다. 반대로 베스트셀러이건 최다판매량이건 관계없이
읽고 싶은 책만을 읽고 다시 읽기를 좋아한다. 무언가 변화의 시기에 놓인 느낌이다. 책에 먹혀버리기는
싫다. 내가 소화시킬 수 없는 책은 손대지 않고 적절한 시간을 찾으며 전시용 책장을 만들 계획은 더더구나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나 확고한데 삶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변화기가 자주 찾아오지는 않지만 그 변화가 발전적이지 않다면 무슨 소용일까.
이미 뇌와 몸은 퇴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삶을 바라보는 눈은 현명해지길 기대한다.

책! 앞으로도 내게 변함없는 벗이 되어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가끔 이런 열병을 앓는 것은 당연한 통과의례일지도 모르지.
책장을 날개 삼아 긴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것 또한 멋진 일이다.

올봄에 일을 어떤 식으로 치러 내든 간에 나를 믿는 쪽에 승부수를 두기로 한다.


-4340.02.18.해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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