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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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사상가로만 생각했던 버트런드 러셀의 이야기를 수학과 함께 볼 수 있다는 설렘이 컸다. 『로지코믹스』라는 제목만 보고 과연 어떤 내용일지 상상도 못했다. 어떠한 정의를 내려두었을까 내심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제작기간만 7년이 들었음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이건 러셀과 수학의 이야기에서 끝날 수 있는 내용이 아님을 눈치챈 것이다.
 

 러셀의 개인적인 가정사부터 그가 기하학에서 실제 접근하는 유일한 길을 보고 논리학에서는 완전한 앎의 즐거움을 경험하기까지 지적유희를 함께할 수 있다. 수학이나 논리학 혹은 철학까지 심도 있게 아는 독자라면 훨씬 빠져들었을 테지만 그렇지않더라도 독자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책이다.

 

 게다가 이 책은 만화가 아니던가. 교양만화를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화의 참신한 방법(가능성)으로 모두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편안함을 주는 게 장점이다. 사실 일반 글로만 쓰여있었다면 솔직히 다양한 사상 속에서 길을 잃었거나 흥미를 잃었을지 모르겠다.

 

 하나의 생각을 두고 정의하는 방법은 다르기 때문이며 특히나 상반대는 정의를 만났을 때 우리는 잠시 주저하게 된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고 각각의 생각에 흠뻑 빠져 그야말로 논리적이거나 감정이 이끌리는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새로운 길로 안내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정신에 관한 개념에 대한 견해로 칸트는 본래 있는 것이라 했지만 흄은 습득되는 것이라고 했다. (96쪽.) 재미있게도 이 내용이 나오는 부분은 러셀이 그녀의 부인과 연애하는 장면이다. 물론 실제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책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쉽게 하고자 약간의 변형을 가했기 때문이다.

 

 

무한은 인류의 정신을 가장 강하게 압박해요. 관념, 인간의 정신력을 절대 한계까지 몰아붙여온 관념이라는 점!

또 무한은 수학의 내면이 허약하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개념이기도 하죠. (134쪽.)

 

 

 수학의 원리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러셀과 자신이 논리학자라 깨닫고 증명에 몰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그는 수학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고 몰두한다. 위에 부분발췌한 글에 따라 무한을 정면공격하지 말라는 가우스의 경고를 듣지 않아 꿈에서 정신적으로 압박받는 모습을 보니 심적 고통이 컸음을 느낀다. 정신적 억압과 불안이 그의 능력을 천재적 광기로 몰아친 것일까. 어쩌면 어두운 가족사와 유년기를 거치면서 절대적인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천재와 광기는 따로 떼어놓을 수는 없을까. 그토록 찾아 해매던 것으로 인해 러셀은 행복했을까. 사람들은 행복에 연연한다. 수많은 행복에 관한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그의 행복론에 따르면 사실 그조차도 합리적이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합리성으로 말미암아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그의 마음이 더 힘겹지 않았을까. 그래서 조금은 안쓰럽다. 그럼에도, 나는 러셀을 좋아한다.

 

 부록으로 러셀뿐 아니라 비트겐슈타인(러셀의 제자), 폰 노이만(정말이지 잠시 볼 수 있지만) 등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특히 비트겐슈타인과의 대화에서 그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잘 모르는 상태이기에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설마 추상적인 개념을 논리적으로 세우는데 러셀이 이룩한 시간만큼 걸리지는 않을 테지. 한 사람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어려움은 인정하지만, 대략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러셀이 말했다. "진리에 이르는 왕도는 없다!"(300쪽.) 논리적 완전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뭐든 쉬운 게 없다. 그러나 『로지코믹스』를 통해 더 쉽게 여러 가지 사상의 맛을 볼 수는 있다. 싹을 심었다면 틔우는 일은 독자의 몫이리라. 흥미롭게 읽어서 후속편도 나왔으면 하고 바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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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용설명서 두 번째 이야기 - 내 삶을 희망으로 가득 채우는 일곱 가지 물음 인생사용설명서 2
김홍신 지음 / 해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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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김홍신의 『인생 사용 설명서』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나는 먼저 나온 『인생 사용 설명서』는 읽지 못했다. 그러나 얼핏 TV 프로그램에 나온 걸 잠시 본 기억이 난다. 열정적이고 소신 있는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이 책에는 그가 전하는 희망과 열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신의 경험, 세상 이야기 등을 하지만 곧 독자 자신만의 생각을 재차 묻는듯했다. 남을 따라 하지 않으면 무언가 소외감을 느끼는 기이한 유행 콤플렉스를 '앵무새 증후군'으로 이름 지었다는 말에 웃을 수만은 없었다. 점점 다양성이 추구되는 개성사회라지만 사실 무언가 유행하면 줏대 없이 따라만 가기 바쁜 세태를 꼬집었다.

 

 그래서 풍요 속 빈곤, 군중 속 고독 등의 말이 끊이지 않는다. 모두가 희망을 노래하지만 진정한 희망을 마음에 바로 세우지 못해 휘청거리는 이들이 많다.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사건·사고에는 자존감이 없어서 생기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다.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에서 "통즉불통(通卽不通)하고 불통즉통(不通卽通)"이라고 했습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못하면 아프다"는 표현이 어디 육신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가슴앓이인 것 같아 마음이 시립니다. (49쪽.)

 

 

 작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가슴앓이를 시리게 느꼈고 그래서 치유하는 희망을 제시하고 싶었던 거 같다. 법륜 스님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말은 내게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세상이 복잡합니까? 아니면 내 마음이 복잡합니까?" (59쪽, 법륜스님의 말.)

 

 개인적으로 작가의 역작인 『대발해』를 쓰는 과정을 읽으며 그야말로 뼈를 깎고 피를 토하며 작가들이 글을 쓴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다. 글을 완성하기 전에 작가가 먼저 쓰러질 것만 같은 상황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잊혀진 발해의 역사를 되살리고자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대발해』도 꼭 만나봐야겠다. 

 

 역사 교과서에서 우리가 배운 삼국통일 시대는 북쪽의 발해를 이미 제외시킨 명칭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국 시대로 부르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고구려, 부여 등 역사에서 소홀히 한 대가를 앞으로 톡톡히 치를 것이라는 걸 느낀다. 반면 중국은 자신들의 역사도 크게 부풀리고 동시에 다른 역사는 축소한다. 야금야금 우리의 역사까지 갉아먹는 모습을 보면서도 대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이는 소수 역사학자만이 관심 가질 문제가 아니며 정부 차원에서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눈치 보기 바쁜 거 같다. 중국, 일본 사이에서 우리의 역사 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지켜갈 것인지 의문스럽다.

 

 그가 떠난 역사여행 그리고 책의 완성까지 따라가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자신만의 목표를 정하고 열정적으로 온몸을 살라 불태우는 모습에 한 번 그리고 우리의 역사 이야기에 다시 한 번 뜨거워진다. 책띠지에서 묻는 '당신 삶의 온도는 얼마나 뜨겁습니까?'라는 말에 과연 자신 있게 대답할 이가 얼마나 될까. 아니 나부터 예측이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일곱 가지 물음에 대해 가만히 돌아보게 한 책이었다. 작가의 인생 사용 설명서를 통해 이번에는 나만의 인생 사용 설명서를 거듭 점검하며 잠시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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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메시지 - 지구와 인류를 살리려는 동물들의
개와 돼지 외 지음 / 수선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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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강렬하다. 『지구와 인류를 살리려는 동물들의 다잉 메시지』 그리고 책표지 또한 경고하듯 옐로우 카드색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는 이제 예측이 아니라 현실이 된 지 오래다. 게다가 최근 일본의 재앙은 아직도 그 여파가 강하게 작용한다. 환경문제가 주목받는 가운데 환경서나 다큐멘터리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만, 곧 잊히기 쉽상이다. 시기를 잘 타고 이 책이 나왔다. 현재 시점에서 만나는 다잉 메시지를 통해 다시 한 번 작은 실천이라도 꾸준하게 나부터 이어가자고 다독여보았다.

 

 책의 저자가 특이하게도 개와 돼지 외라고 쓰여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들을 대변한 환경서일까? 이 책은 명상을 통해 여러 동물과 교감하여 동물의 생각을 전하는 책이다. 그래서 다소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나는 무조건 신뢰하거나 그 반대인 것은 아니다. 다만,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책에는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앞부분의 휴대전화(휴대폰)의 전자파 영향 부분을 읽으며 놀랐다. 환경서를 여러 권 읽었지만 실제로 휴대폰의 전자파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는 이 책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4년 내 사라지리라고 말했었다. 꿀벌이 사라지는 정확한 이유를 우리는 모르지만, 환경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이치 출판사의『경이로운 꿀벌의 세계』를 읽은 이유도 꿀벌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작 이해해야 할 것은 지구환경이 심각한 상태에 놓였다는 점이다. 여러 이유로 방향감각을 잃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벌은 면역력이 약해서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또한, 지구의 허파로 알려진 아마존의 파괴에 대한 부분을 접하면서도 마음이 씁쓸했다. 소고기를 먹고자 소를 키우려는 공간을 확보하려고 열대우림을 파헤치는 장면은 시공사의『육식의 종말』이나 다큐멘터리 《고기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절로 떠오른다. 채식만이 대안이라는 생각에는 100% 공감하지 않지만, 육류를 줄여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육류를 줄이면 환경오염도 줄어들고 소나 돼지, 닭도 지금같은 공장화된 폐쇄공간에서 자라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항생제 먹인 육류를 다시 인간이 섭취하는 일이 덜해질 텐데 말이다.

 

 구제역으로 생매장당하는 동물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인간. 또 생매장 후의 환경오염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 알면서도 묵인하는 이런 폭력이 가장 무섭고 바꾸기도 어렵다. 왜 죽지도 않은 동물을 살처분(殺 處分)하냐는 동물의 말에 잔인한 인간의 모습이 떠올라 몸서리쳐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가벼운 책이었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전하는 방식이 다소 특이하긴 하지만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들어보라고 하는 거 같다. 오래전에 읽은 정신세계사의 『장미의 부름』과 통하는 책이다. 장미의 부름이 식물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동물의 이야기였다. 지구공동체로 살아가려면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겠다. 뒤편의 지구를 살리는 실천 열 가지만 꾸준히 해도 보다 나은 지구가 될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니 의식적으로 행동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지구의 몸부림치는 소리를 이제 그만 외면해야한다는 게 우리가 사는 지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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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교과서는 살아 있다
유영제.박태현 외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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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과학 중에서도 생물이 가장 좋았다. 그러나 대부분 학생에게 암기과목으로 통해서 시험 전에 벼락치기로 많이 외우던 과목을 대표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생물 수업시간이 즐거웠다. 신기하기도 하고 더 알고 싶은 게 많았던 탓이었다. 대학입시 때 생물 쪽과 환경공학 쪽도 살피며 미래를 전망해보기도 했다. 결국 흐지부지해졌지만, 다시 이 책을 만나며 생명과학이 거듭 꽃피고 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생명과학 분야는 조금씩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무궁한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책의 부제처럼 생명과학이 세상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인간을 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미생물 등을 활용해 자연환경을 되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망가뜨린 자연은 이제 재앙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이래서 미생물공학이 미생물 고문학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는데 과연 그럴만하다. 우리가 필요해서 멋대로 미생물을 귀찮게 하니 말이다.

 

 『생명과학 교과서는 살아있다』는 여러 명의 생물공학 교수들이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와 연계해서 만든 책이다. 그래서 일반인에게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우리와 상관없을 거 같은 생명공학이 일상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이야기를 통해 관심을 두게 된다. 고등학생들도 시간을 내서 읽는다면 생물 교과서에 대해 더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종 플루(신종 인플루엔자 A), 감미료 아스파탐과 자일리톨, 에스키모들이 주로 고기를 먹어도 심장병이나 혈관질환에 걸리지 않는 이유 등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 또한, 책을 통해 '안드로젠 내성 증후군'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즉, 남성이지만 체내의 남성 호르몬 수용체 이상으로 외형적으로 여성처럼 보이는 증후군인데 10만 명당 2~5명 정도의 발병 빈도가 있다는 사실(176쪽.)이었다. 오래전 학창시절 떠돌던 풍문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정보도 부정확했고 학생들 사이에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기도 하는 등의 돌연변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한참 있었다.

 

 과학이란 게 그런 거 같다. 당장 실체를 모를 때는 당시 사회의 반영 등에 비춰 오해와 이해를 받지 못한다. 그러다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나면 그 모든 오해가 사라진다. 아직도 풀어야 할 게 많으니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상상력 그리고 관찰력 등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 과학도 다른 것도 다르지 않다.

 

 또한, 생물 자원의 중요성만큼이나 생명윤리도 중요하다. 과학서를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과학기술의 진보만큼 과학윤리는 나아가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실은 이것은 사회전반적인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다. 도덕, 윤리라는 과목은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응용되지 않는 사회. 어떠한 잣대로도 이는 올바르지 않음을 알면서도 교육정책은 변함이 없다.

 

 마지막 장의 NASA의 발명품(내비게이션, 귀체온계 등)을 보며 실생활에서 쓰는 많은 것들이 첨단 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음을 새삼 알겠다. 생명과학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생명윤리가 바탕에 없다면 결국 우리는 그로 인해 반대로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 그런 부분이 더 많이 담겼으면 좋았을 거 같지만, 독자 모두에게 쉽게 다가서도록 만들었다는 장점만으로도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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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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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해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열심히 읽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 느낀 점은 세계인에게 회자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에는 멋모르고 재미로 읽었고 몇 해 전에는 재간둥이 셰익스피어의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그의 능력은 언어유희의 최고봉이라 판단될 만큼이었고 그래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어릿광대에게 관심이 갔다. 바로 광대의 모습에 셰익스피어의 모습이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담은 그지만 희비극을 아우르며 재치와 핵심을 짚고 현자와 바보 사이를 넘나드는 광대 모습은 곧 그였다.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작품 중 『베니스의 상인』이 문학동네에서도 나왔다는 소식에 가슴이 뛰었다. 4년 전에 읽은 전예원의 『베니스의 상인』까지 다시 들춰보게 되었다. 전예원이 책이 얇은데 아무래도 번역과정에서 간단하게 줄이며 핵심만을 옮겨서 그런 거 같다. 신정옥 교수의 번역과 이번 이경식 교수의 번역을 함께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법정에서 포오셔가 말하는 장면을 아래에 옮겨본다.

 




01 | 전예원의 『베니스의 상인』
 
02 | 문학동네의 『베니스의 상인』
     
이 증서엔 피는 단 한 방울도 적혀 있지 않소. 여기에 명기되어 있는 말은 '살 1파운드'요.
증서대로 살은 1파운드만 떼어 가시오. 단 살을 떼어내면서 기독교도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그대의 토지와 재산은 베니스의 법률에 의하여 국가에 몰수당할 것이오.

ㅡ 121쪽, 4막. (신정옥 옮김)



 
.잠깐만 기다리시오. 추가 사항이 있소이다. 이 차용증서에는 당신에게 피 한 방울도 준다는 말은 없고, '살 1파운드'라고 명기되어 있을 뿐이오.

자, 그러면 그 증서대로 하시오. 1파운드의 살을 취하시오. 그렇지만 살을 베어낼 때 단 한 방울이라도 기독교인의 피를 흘린다면 당신의 토지와 재산은 베니스 법에 의거 몰수되어 베니스 국가에 귀속됩니다.

 

ㅡ 124쪽, 4막 1장. (이경식 옮김)



 

 전예원 쪽은 간결하게 핵심을, 문학동네는 풀어써 주며 설명하는 차이가 느껴진다. 원문으로 읽지 않는 이상 우리는 번역자의 노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여러 출판사의 다양한 번역과 그리고 해마다 개역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옮긴이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작가 셰익스피어 자체만으로도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고 그가 의도하는 정확한 게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베니스의 상인 앤토니오가 친구인 바싸니오의 차용증서(보증)를 써주고 시작된다. 당시 기독교도에게 멸시와 억압을 받던 유대인과의 대립은 앤토니오와 샤일록의 관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샤일록은 평소 앤토니오에게 모욕받고 자신의 장사를 방해했기에 이를 갈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의도적인 차용증서를 작성하게 한 것이다. 법정까지 가게 된 이들과 사건을 유쾌하게 해결하는 포오셔의 기지로 희극으로 마무리된다.

 

 읽을 때마다 전체적인 흐름과 인물에 치중했지만, 이번에는 단어나 문장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기독교도, 유대인, 어느 쪽이 상인이고 어느 쪽이 유대인이냐고 묻는 포오셔의 물음에 힌트가 있었다. 예전에는『오셀로』의 이야고처럼 샤일록을 간교하지만 가엾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대사에 집중해보니 이해가 가더라는 말이다. 즉, 셰익스피어는 당시 시대상을 풍자하면서 실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정에서의 판결은 물론 승자들에게 통쾌하지만 샤일록에게는 관대하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나쁜 의도를 품었던 샤일록의 차용증서를 두고 공정하게 처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샤일록은 재산도 딸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물론 두 입장을 다 고루 공평하게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셰익스피어는 의도대로 당시 시대상에 맞게 해결하면서 미묘하게 현실을 꼬집었다는 게 훌륭하다. 게다가 다양한 등장인물과 재미까지 있으니 읽기에도 수월하다. 지금도 나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앤토니오보다 샤일록에 주목한다. 여기서 상인이란 앤토니오일까. 샤일록일까. 둘 다일까? 대부분 앤토니오라고 칭하지만 샤일록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고리 대금업자나 부자 유대인으로만 보기보다 함께 보는 게 더 흥미운 말이다. 물론 대부분 이야기에서 샤일록은 이름을 무시당하고 유대인으로 불린다.

 

 절대악과 절대선이라는 기준의 모호함이야말로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앤토니오와 샤일록을 보며 공감한다. 이 캐릭터가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하나의 정의로 끝내지 않고 혼재된 인간의 다양한 내면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즐겁다. 한담이지만 샤일록의 딸인 제시커와 연인 로렌조의 대사(5막 1장)가 귀를 간질이며 나른하지만 달콤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봄은 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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