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몇 해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열심히 읽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 느낀 점은 세계인에게 회자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에는 멋모르고 재미로 읽었고 몇 해 전에는 재간둥이 셰익스피어의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그의 능력은 언어유희의 최고봉이라 판단될 만큼이었고 그래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어릿광대에게 관심이 갔다. 바로 광대의 모습에 셰익스피어의 모습이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담은 그지만 희비극을 아우르며 재치와 핵심을 짚고 현자와 바보 사이를 넘나드는 광대 모습은 곧 그였다.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작품 중 『베니스의 상인』이 문학동네에서도 나왔다는 소식에 가슴이 뛰었다. 4년 전에 읽은 전예원의 『베니스의 상인』까지 다시 들춰보게 되었다. 전예원이 책이 얇은데 아무래도 번역과정에서 간단하게 줄이며 핵심만을 옮겨서 그런 거 같다. 신정옥 교수의 번역과 이번 이경식 교수의 번역을 함께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법정에서 포오셔가 말하는 장면을 아래에 옮겨본다.

 




01 | 전예원의 『베니스의 상인』
 
02 | 문학동네의 『베니스의 상인』
     
이 증서엔 피는 단 한 방울도 적혀 있지 않소. 여기에 명기되어 있는 말은 '살 1파운드'요.
증서대로 살은 1파운드만 떼어 가시오. 단 살을 떼어내면서 기독교도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그대의 토지와 재산은 베니스의 법률에 의하여 국가에 몰수당할 것이오.

ㅡ 121쪽, 4막. (신정옥 옮김)



 
.잠깐만 기다리시오. 추가 사항이 있소이다. 이 차용증서에는 당신에게 피 한 방울도 준다는 말은 없고, '살 1파운드'라고 명기되어 있을 뿐이오.

자, 그러면 그 증서대로 하시오. 1파운드의 살을 취하시오. 그렇지만 살을 베어낼 때 단 한 방울이라도 기독교인의 피를 흘린다면 당신의 토지와 재산은 베니스 법에 의거 몰수되어 베니스 국가에 귀속됩니다.

 

ㅡ 124쪽, 4막 1장. (이경식 옮김)



 

 전예원 쪽은 간결하게 핵심을, 문학동네는 풀어써 주며 설명하는 차이가 느껴진다. 원문으로 읽지 않는 이상 우리는 번역자의 노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여러 출판사의 다양한 번역과 그리고 해마다 개역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옮긴이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작가 셰익스피어 자체만으로도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고 그가 의도하는 정확한 게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베니스의 상인 앤토니오가 친구인 바싸니오의 차용증서(보증)를 써주고 시작된다. 당시 기독교도에게 멸시와 억압을 받던 유대인과의 대립은 앤토니오와 샤일록의 관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샤일록은 평소 앤토니오에게 모욕받고 자신의 장사를 방해했기에 이를 갈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의도적인 차용증서를 작성하게 한 것이다. 법정까지 가게 된 이들과 사건을 유쾌하게 해결하는 포오셔의 기지로 희극으로 마무리된다.

 

 읽을 때마다 전체적인 흐름과 인물에 치중했지만, 이번에는 단어나 문장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기독교도, 유대인, 어느 쪽이 상인이고 어느 쪽이 유대인이냐고 묻는 포오셔의 물음에 힌트가 있었다. 예전에는『오셀로』의 이야고처럼 샤일록을 간교하지만 가엾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대사에 집중해보니 이해가 가더라는 말이다. 즉, 셰익스피어는 당시 시대상을 풍자하면서 실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정에서의 판결은 물론 승자들에게 통쾌하지만 샤일록에게는 관대하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나쁜 의도를 품었던 샤일록의 차용증서를 두고 공정하게 처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샤일록은 재산도 딸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물론 두 입장을 다 고루 공평하게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셰익스피어는 의도대로 당시 시대상에 맞게 해결하면서 미묘하게 현실을 꼬집었다는 게 훌륭하다. 게다가 다양한 등장인물과 재미까지 있으니 읽기에도 수월하다. 지금도 나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앤토니오보다 샤일록에 주목한다. 여기서 상인이란 앤토니오일까. 샤일록일까. 둘 다일까? 대부분 앤토니오라고 칭하지만 샤일록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고리 대금업자나 부자 유대인으로만 보기보다 함께 보는 게 더 흥미운 말이다. 물론 대부분 이야기에서 샤일록은 이름을 무시당하고 유대인으로 불린다.

 

 절대악과 절대선이라는 기준의 모호함이야말로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앤토니오와 샤일록을 보며 공감한다. 이 캐릭터가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하나의 정의로 끝내지 않고 혼재된 인간의 다양한 내면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즐겁다. 한담이지만 샤일록의 딸인 제시커와 연인 로렌조의 대사(5막 1장)가 귀를 간질이며 나른하지만 달콤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봄은 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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