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동방 김소진 문학전집 6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에 선물 받은 책인데 내가 모르는 작가의 책이라 오래도록 책표지와 제목만으로 내용을 유추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 무렵 이제는 읽어보고 싶어졌다. 참 희한한 버릇이지만 새로운 작가의 책은 그 어떤 선입견이나 기대도 없기에 나름 제목과 책표지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대부분 보기 좋게 빗나가지만 더러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재미있어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리움이 주는 아련함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있어서인지 쉽게 이해가 간다. 다만 동방을 나 혼자 동아리방이라고 생각한 게 우습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소진 전집 중 마지막 6권인「그리운 동방」은 산문이다. 그래서 작가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요절한 작가의 작품을 만나면 아쉽다. 그가 삶을 끝낼 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왜 진작 작가가 살아있을 때 읽어보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렇게나 왕성하게 글을 남긴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아직 읽지 않은 5권의 책이 남아있지만, 더 많은 작품을 읽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는 건 역시나 슬프다.
 
 산문의 중심은 작가의 아버지이다. 자전소설이라고 해야 맞을 거 같다. 그가 그려낸 가족의 모습에서 부모님을 돌아보았다. 사연 없는 가족은 없겠지만, 시대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오게 된 아버지의 삶의 모습을 따라가노라니 내 가족이 아니어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작가가 사람 냄새나게 그렸기 때문이리라. 기억, 추억, 유년기라는 단어에서는 향수가 어려있어서인지 한없이 푸근하면서도 쌔하다. 우리가 소설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 유독 유년기의 추억은 더 정겹다. '유년 시절은 생애 최대의 풍경'(125쪽)이라는 말에 한없이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김연수의「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도 떠오르면서 글에 빠져들었다.
 
  작가려면 정녕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솜씨가 뒷받침돼야 하지 않을는지. 그러나 나는 작품을 하나 다듬어서 내놓을 때마다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냈다는 보람보다는 아슬아슬한 기억을 하나 되살려놓았구나 하는 느낌이 먼저 들곤 한다. 이것은 앞으로 나의 글쓰기 작업에 한계로 작용할 것인가, 아니면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될 것인가?
 
- 32쪽, 원체험, 기억 그리고 소설 일부발췌.
 
 
 
 사라져가는 것들. 어쩌면 소설이란 그런 것들을 추억하는 기억 위에서 구축됐다가 또다시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움과 안타까움 없이 소설을 읽는 간 큰(?) 사람이 요즘 아무리 많아졌다 해도.
 
- 36쪽, 원체험, 기억 그리고 소설 일부발췌.
 
 

  1부 산문이 끝나고 2부 습작소설과 시에서 <아버지의 슈퍼마켓>에 빠져들었다. 끝나서 무척이나 아쉬움이 들었을 정도이다. 학회지에 실린 <소외>도 인상적이었다. 3부 책글에서는 여러 작가의 책이 나온다. 내가 읽은 책이 몇 권 되지 않지만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책을 찾아 있고 싶어졌다. 여기까지는 제법 개인적인 느낌인지라 작가 김소진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4부 인물글 또한 흥미롭다. 문예지 등에 있던 글모음인데 저자가 기자였을 때 만난 인물글 같다. 우리밀살리기 운동본부의 누구, 서울토박이회의 누구, 도시 코디네이터 누구를 비롯하여 대중에게 친근한 개그맨 전유성까지 만날 수 있다. 글을 쓴 때는 내가 대학생일 때였다. 20대의 질풍노도 속에 철없이 고심하고 있었을 어린 나와 당시의 인물과 시대를 만날 수 있어서 새롭게 느껴진다. 저자는 요절했지만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음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하다.

 

 마지막 5부 대담글은 글, 소설에 대한 대화형식이다. 개인적으로 5부를 읽을 수 있어서 또한 좋았다. 작가들의 문학과 소설에 대한 치열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소진, 김형경, 박상우 세 작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저는 문학을 공부할 때, 문학이란 사사로운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되, 그것이 이 사회와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들과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다 큰 의미망을 가진 이야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제 체험을 소설 속에 그리 많이 풀어내지 않았습니다.

 

                                        (…이하 중략…)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썼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완성되어 있으며, 얼마나 독자에게 진실성있게 다가가느냐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293쪽, 원체험, 현실 그리고 독자中 김형경의 말 일부발췌. 

 작가 김소진과 대조되는 김형경의 소설 쓰는 방식이지만 결국 어떤 방식이건 상관없이(김형경 작가의 말처럼) 독자에게 작가들의 책은 공평하게 다가온다.

 

 모르는 작가의 마지막 전집과의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마지막 권부터 읽은 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격이다. 바로 완전한 장편 혹은 단편의 책을 읽었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거꾸로 만나는 김소진 편으로 계획해서 읽어봐야겠다.「관촌수필」처럼 구수함이 어린 우리소설이었다. 작가의 어머니 영향으로 얻은 구수한 입담과 아버지와 유년기를 쏟아낸 김소진. 소설과 아내 함정임까지 김소진을 둘러싼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더욱 오롯하게 글로 만나고자 다음에는 소설을 꼭 읽어야겠다.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11주에 만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 신영복을 처음 만난 책은「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첫 권의 묵직하고 진지한 성찰력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좋은 또한 생각이 끝없이 이어지는 책.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그곳을 대학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넓혀갔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나름의 희망을 안고 인간성도 상실하지 않으며 자신을 지켜간다는 것.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근본적으로 희망을 항상 품고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한 사람이다. 책장에 있는 저자의 책은 바로 이 책「처음처럼」과「엽서」까지 3권을 갖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이 더 있지만 이 책들을 가끔씩 펴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마음이 든든했다. 
 
 이 책은 '처음처럼'에서 시작하여 '석과불식碩果不食'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획 의도를 필자는 물론 많은 독자들도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필자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일관된 주제가 있다면 아마 역경逆境을 견디는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경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省察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하생략)
 
 
7쪽, 저자의 여는 글 중에서.
「처음처럼」은 저자의 글과 글씨, 그림이 어우러진 한 편의 잠언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글씨를 정말 좋아한다. 그의 글만큼이나 마음을 움직이는데 글에서 성찰력이 돋보인다면 글씨에서는 여유와 행복이 느껴진달까. 말랑하면서도 굳건함까지 느낄 수 있어서 너무 딱딱하거나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18쪽. 

 
 짧은 글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데 여운은 길다. 잠시 멈추고 호흡하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을 돌아본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들인지 읽는 것만으로 치유가 된다. 살면서 주어지는 시간 속에서 이런 순간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사람인지라 알면서도 지나친다. 자꾸 되새겨야겠다. 깨어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떠올리며 그럴수록 노력해야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절반折半과 동반同伴
 
피아노의 건반은 우리에게 반음半音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半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동반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에 있습니다.
'절반의 비탄'은 '절반의 환희'와 같은 것이며,
'절반의 패배'는 '절반의 승리'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환희와 비탄,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對敵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40쪽.
  책장 잘 보이는 곳에 늘 두었지만 생각만큼 자주 꺼내보지 못 했다. 그래서 제목만 읽지 말고 이제는 펴들 수 있도록 작은 책장으로 옮겨두었다. 의식하고 익숙해지려는 노력없이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곱씹는 생각의 시간을 늘리자고 계획하며 책을 읽은 게 여러 해. 권 수는 확실하게 줄었는데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지는 미지수이다. 아무튼 반성도 하며 기쁨의 시간을 준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맨 끝에 쓴 석과불식에 대한 글을 남긴다. 해마다 가을의 끝자락에 과수원에서 남겨두는 사과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서 사진으로 찍고는 했는데 이젠 사진을 담지 않아도 저자의 석과불식이 늦가을과 겨울까지 생각날듯하다. 공감하며 그 따스함이 세상으로 진하게 번지길 기원한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희망의 언어'입니다.
무성한 잎사귀 죄다 떨구고 겨울의 입구에서
앙상한 나목으로 서 있는 감나무는 비극의 표상입니다.
그러나 그 가지 끝에서 빛나는 빨간 감 한 개는 '희망'입니다.
그 속의 씨가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그 봄을 위하여 나무는 엽락분본葉落奮本
잎사귀를 떨구어 뿌리를 거름하고 있습니다.
 
229쪽.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10주에 만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현영의 슈퍼맘 잉글리시
박현영 지음 / 예담Friend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스타영어강사 중 떠오르는 이름 몇 명. 그중 박현영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영어뿐 아니라 말투, 표정 등의 생기발랄함이 아닐까 싶다. 조금은 과장되어 보이면서도 그래서 또한 인상적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게 와 닿은 기억은 많지 않았다. 그녀의 방송을 들은 적이 없어서 그런 거 같다. 내가 들은 건 그저 굿모닝 팝스와 EBS 영어교육뿐이었던 거 같다. 그러다 아이를 키우며 알아보니 저자 박현영의 책이 대단히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더구나 유아영어 부분에서 좋은 책이 많다. 이 책은 영어교육보다는 영어철학과 육아관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물론 엄마표 영어교육에 관한 훌륭한 내용이지만 그 속에 품은 열정과 철학도 특히나 돋보인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저자의 네이버 카페 회원으로 활동은 없지만 열정의 글을 고맙게 읽고 있었다. 머지않아 참여하게 될 거 같다. 어찌나 열정적인지 정말 읽다 보면 내 삶을 돌아보게 될 정도이다. 나도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서 더욱 그렇다. 영어뿐 아니라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관심이 많고 스페인어 등까지. 번역이나 통역사가 되려는 게 아니라 관심분야를 파고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어를 알고 싶어진 경우였다. 그러나 육아에 치여 나만의 외국어 공부는 전혀 못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적어도 내 아이는 어떤 분야에 관심을 쏟을 때 외국어에서 막히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관심이 가면 저절로 공부하게 마련이지만 어릴 때부터 익숙하다면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사설학원이 아니라 엄마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엄마가 영어를 꼭 잘해서가 아니라 꾸준하게 함께 이어갈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저자의 딸 현진이처럼 다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공부가 아니라 놀이로 다가와 정말로 즐겁게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하는 시간이라니 더 알차다.
 
 Home is the first schoo. Mom is the first teacher Mama's words are the first dictionary.
 
가정은 생애 첫 번째 학교다. 엄마는 첫 번째 선생님이다. 엄마의 말은 생애 첫 번째 사전이다.
 
 
73쪽, 미국의 영부인이었던 바바라 부시의 말.
 나는 교육열이 많은 엄마가 분명 아니다. 엄마표 놀이도 별로 해주지 않으며 책을 좋아하지만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외국어는 어릴 때부터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동의한다. 알파벳, 파닉스 그런 건 부차적인 것이라 알려줄 생각조차 없다. 저자의 말처럼 함께 외쳐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혼자 외국어를 공부했던 나는 듣기는 잘했는데 말하기는 쉽게 터지지가 않았다. 책을 읽으며 내 아이는 인풋과 아웃풋 모두 쉽게 터지기를 기원했다. 그러려면 매일 5분이라도 아이에게 놀이로 편하게 함께 해주어야겠다. 자세한 방법은 책에 나와있으며 연령별 또 간단한 생활영어도 나와있으니 누구든 도전할 수 있다.
 
 아이를 천재로 만들고자 혹은 영어 신동을 만들고자 이 책을 읽지 말기를 당부한다. 외국어를 즐겁게 접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데 이용하길 부탁한다. 정말로! 저자의 열정처럼 내 속에서 열정을 끓어내면 좋겠다. 아이의 옹알이 하나하나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이해한 저자의 육아관도 본받고 싶다. 워킹맘도 하루 몇 분만 힘내본다면 엄마표 영어를 할 수 있으니(저자처럼) 도전해도 좋겠지 싶다. 좀 더 내 시간을 효율적이로 쪼개서 아이와 즐겁게 보내야겠다. 육아로 지치는 날이 많지만 교육은 최소 10년을 내다봐야 하니까. 그때를 생각하며 아직 어린 우리 꼬맹이들과 하루 3분, 5분만 힘써봐야겠다.
 

 엄마표 영어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의 틀린 점을 지적해서 교정해주거나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맘껏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고, 신이 나게 추임새를 넣어주며, 긍정적인 자극을 주어 용기를 북돋우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다. 그러니 영어 실력 자체는 뛰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32쪽中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9주에 만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대학생 때「상실의 시대」로 처음 만났다. 최근 민음사에서「노르웨이의 숲」으로 새로 나왔던데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더 와닿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드는건 나만의 착각일까. 그만큼 기대가 크다. 아무튼 20대에 만난 하루키의 책 한권으로 난 도서관을 뒤져서 그의 책을 닥치는대로 읽어치웠다. 마치 굶주린 영혼의 양식을 찾아먹듯 말이다. 이런 책이, 이런 작가가 있었나 싶었던 시기였다.

 

 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책은「해변의 카프카」였다. 당시 새로운 직장와 환경에서 위로해준 책 중 하나여서였다. 그리고는 또 인상적인 작품으로「1Q84」가 있다. 명절에 친정에 가서 모두 잘 때 불을 켜기가 그래서 창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빛으로 집중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하루키 작품과는 재미있는 상황이나 인상적인 기억이 연결되어 있어서 잊지 못한다. 물론 내용도 그렇고 말이다.

 

 그의 소설 전부가 최고인 건 아니지만 대체로 좋아한다. 참 담담하게 나오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읽으며 좋아 미치는 건 아닌데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작가의 말처럼(21쪽.) 작가의 이야기를 내 안에 유효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만든 게 바로 하루키의 필력이리라. 그러다 이번에는 잡문집이라는 제법 두툼한 책을 손에 넣었다. 단편집도 아니고 지루할까도 싶었지만 역시나 하루키의 글인지라 즐겁게 읽었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좀 별로인 것도 있었지만 음악이나 번역 그리고 글쓰는 이야기 부분은 흥미롭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의 정신은 온갖 잡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란 정합적이고 계통적이면서 설명 가능한 성분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내 정신안에 있는 세세한, 때로는 통제되지 않은 것들을 긁어모으고, 그것들을 쏟아부어 픽션=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보강해갑니다.

 

15쪽, 머리말中 일부. 

 책을 읽노라면 하루키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드문드문 나오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아마도 난 그의 작품을 그래도 몇 권이라도 읽어서겠지만, 설혹 아직 접하지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읽고 싶은 작품이 생길 것 같다. 게다가 음악 이야기는 재즈뿐 아니라 비틀즈, 빌리 할러데이 등 여러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었다. 작품「노르웨이의 숲」은 이미 알려진 대로 비틀즈의 곡이고 <러버 소울>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곡 중 하나인 '노웨어 맨(Nowhere Man)' 부분도 좋았다. 정말로 별말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하루키와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라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 이야기에서 잊고 있던 이름들을 떠올렸다.

 

 새로운 음은note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

 

406쪽, 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의 말.

 멍크의 말처럼 새로운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 의미를 담아 삶을 지속한다. 누구는 그것을 글로 풀어내기도 하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어찌 보면 잡문집이라 거참 건질 거 없고 하릴없어 읽는 건가 싶기도 하겠지만, 하루키의 독자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게다가 역으로 잡문집이기에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제법 있으니까. 담백하고 싱겁지만 그런대로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캄캄하고 밖에서는 초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밤에 다 함께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소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제 온기고 어디까지가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온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자기의 꿈이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꿈인지 경계를 잃어버리게 되는 소설. 그런 소설이 나에게는 '좋은 소설'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밖의 기준은 내게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456쪽, 끝부분 인용.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8주에 만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 스케치북에 손대지 마라 - 상위 1% 인재로 키우는 10년 투자 성공 비결
김미영 지음 / 동아일보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아이를 키우며 육아철학을 나름 만들어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거기에 발맞추려 할 수도 있겠고 전통육아방식을 선호할 수도 있고 선진국 엄마들의 육아방식을 참고하기도 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아이에게 걸맞은 엄마의 방법이겠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갈등한다. 지나치면 아니 한 것만 못하다는 말처럼 아이에게 부담을 주거나 엄마가 버거운 방법은 차라리 깨끗하게 포기하거나 잊어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그다지 열정적으로 아이에게 올인하는 엄마가 못 되는지라 자유롭게 풀어주고 관찰하는 편이다. 세워둔 계획은 조금 있지만 다 실행하며 살 수는 없더라는 게 지금까지의 경험이었고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국엄마와 외국엄마를 비교한 이야기 가끔 들어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요지는 이렇다. 한국엄마는 연애인 매니져처럼 하나하나 모든 것을 코치하는 선생님(teacher) 형이라는 것. 언제던가 EBS 방송에서도 비교실험했던 장면을 보며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가끔 나도 그렇다. 기다리지 못하고 시간이 없어서, 동생을 돌봐야해서, 피곤해서 등의 이유로 아이의 생각 혹은 상상의 시간을 단축시켜버린다. 반성한다 정말로. 
 
 이 책은 2008년 출간된 책으로 저자가 파리와 런던에서 8년간 아이를 키우며 유럽의 교육지침, 육아관을 경험하면서 우리나라도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을 엄마의 마음으로 담았다. 그사이 우리나라도 많이 변화해서 다양한 체험의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먼 거 같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은 국가 차원에서 보완할 문제가 많다. 아이를 키워보니 알 거 같다. 아무튼, 출간한 지 좀 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수긍할 내용이다. 물론 이미 아는 내용도 있지만 말이다.
 
프레네(Freinet)식 교육법
 
프랑스 진보 교육자 셀레스탱 프레네의 교육 실천에서 비롯된 교육 방법론이다. 프레네 교육은 학생들의 동기와 자발성을 중시한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배운다. 학생을 능력에 따라 가르치거나 차별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와 리듬을 존중한다. 또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한 교실에서 경쟁이 아닌 협동 원리로 가르친다. 교사는 아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하 생략)
 
 
74쪽, 일부 발췌.
 우리가 읽기에는 이상적인 교육관이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실행 중인 교육론이다.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교육 특히 예·체능 사교육을 싼 가격(소득수준에 따른 차등 금액.)에 질 좋게(능력 있는 선생님.) 받는 부분이 부러웠다. 한국의 사교육은 공교육을 넘어 일상이 된 지 오래이며 그야말로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받는 교육이니 말이다. 벌써 유아시기부터 사교육은 시작되고 있다. 휘둘리지 않고자 마음을 다잡으며 내년에 유치원 가는 첫째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본다.
 
 책제목(아이 스케치북에 손대지 마라.)만 보더라도 그림 그리기를 워낙 좋아하는 아이에게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그림 그려달라는 말에 그려주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어릴 때 엄마가 함께 그림 그렸던 기억이 아주 좋은 추억이어서 내 아이에게도 즐겁게 그려주었는데 다르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려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느 정도 수긍하지만 아이에게 맞게 대응해야겠다. 생각지 못했던 이면을 알게 되었으니 더 고심해볼 일이다.
 
 루브르 박물관 어린이 아틀리에는 꼭 참고해보려고 한다. 아이에게 소리로 이야기를 먼저 들려준 후 그림으로 표현해보게 하고 마지막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그 작품을 직접 보게 해주기! 처음부터 그림으로 보여주며 상상의 기회를 뺏지 않는다는 게 요점이다. 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집 근처에 9월이면 시립미술관이 개관하니 기대가 크다. 요즘 한참 색칠 공부하기에 재미 붙인 아이와 자주 놀러 가야지~
 
 유럽의 교육이 무조건 최고이거나 좋은 건 아니겠지만 아이 중심으로 배려하며 문화를 이끄는 만큼(아이는 구경꾼이 아니고 주체가 된다.) 참고할만한 이야기가 많다. 좋은 장난감이나 교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의 감성을 이끌어 주며 경험하고 표현하게 해주는 것이니까.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육아철학과 맞닿아 여운이 긴 책이었다. 사교육비 줄여서 그 돈을 모아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데려가는 것도 하나의 계획인데 어디로 갈지 도움이 될 책이다.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7주에 만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