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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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대학생 때「상실의 시대」로 처음 만났다. 최근 민음사에서「노르웨이의 숲」으로 새로 나왔던데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더 와닿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드는건 나만의 착각일까. 그만큼 기대가 크다. 아무튼 20대에 만난 하루키의 책 한권으로 난 도서관을 뒤져서 그의 책을 닥치는대로 읽어치웠다. 마치 굶주린 영혼의 양식을 찾아먹듯 말이다. 이런 책이, 이런 작가가 있었나 싶었던 시기였다.

 

 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책은「해변의 카프카」였다. 당시 새로운 직장와 환경에서 위로해준 책 중 하나여서였다. 그리고는 또 인상적인 작품으로「1Q84」가 있다. 명절에 친정에 가서 모두 잘 때 불을 켜기가 그래서 창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빛으로 집중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하루키 작품과는 재미있는 상황이나 인상적인 기억이 연결되어 있어서 잊지 못한다. 물론 내용도 그렇고 말이다.

 

 그의 소설 전부가 최고인 건 아니지만 대체로 좋아한다. 참 담담하게 나오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읽으며 좋아 미치는 건 아닌데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작가의 말처럼(21쪽.) 작가의 이야기를 내 안에 유효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만든 게 바로 하루키의 필력이리라. 그러다 이번에는 잡문집이라는 제법 두툼한 책을 손에 넣었다. 단편집도 아니고 지루할까도 싶었지만 역시나 하루키의 글인지라 즐겁게 읽었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좀 별로인 것도 있었지만 음악이나 번역 그리고 글쓰는 이야기 부분은 흥미롭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의 정신은 온갖 잡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란 정합적이고 계통적이면서 설명 가능한 성분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내 정신안에 있는 세세한, 때로는 통제되지 않은 것들을 긁어모으고, 그것들을 쏟아부어 픽션=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보강해갑니다.

 

15쪽, 머리말中 일부. 

 책을 읽노라면 하루키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드문드문 나오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아마도 난 그의 작품을 그래도 몇 권이라도 읽어서겠지만, 설혹 아직 접하지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읽고 싶은 작품이 생길 것 같다. 게다가 음악 이야기는 재즈뿐 아니라 비틀즈, 빌리 할러데이 등 여러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었다. 작품「노르웨이의 숲」은 이미 알려진 대로 비틀즈의 곡이고 <러버 소울>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곡 중 하나인 '노웨어 맨(Nowhere Man)' 부분도 좋았다. 정말로 별말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하루키와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라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 이야기에서 잊고 있던 이름들을 떠올렸다.

 

 새로운 음은note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

 

406쪽, 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의 말.

 멍크의 말처럼 새로운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 의미를 담아 삶을 지속한다. 누구는 그것을 글로 풀어내기도 하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어찌 보면 잡문집이라 거참 건질 거 없고 하릴없어 읽는 건가 싶기도 하겠지만, 하루키의 독자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게다가 역으로 잡문집이기에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제법 있으니까. 담백하고 싱겁지만 그런대로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캄캄하고 밖에서는 초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밤에 다 함께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소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제 온기고 어디까지가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온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자기의 꿈이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꿈인지 경계를 잃어버리게 되는 소설. 그런 소설이 나에게는 '좋은 소설'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밖의 기준은 내게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456쪽, 끝부분 인용.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8주에 만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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