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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과 당신 - 서울대 빗물연구소 한무영, 그가 밝히는 빗물의 행복한 부활
한무영 지음, 강창래 인터뷰 / 알마 / 2011년 4월
평점 :
- 책을 읽기 전에
빗물 박사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첫 느낌은 이랬다. 비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겠다는 반가운 생각 또 나 역시도 비를 좋아해서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할 거 같았다. 어쩌면 빗물 박사가 전하는 다소 낭만적인 비와의 연관성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책표지도 정말 유쾌해 보이는 모습이어서 그랬을까.
- 책과 마주하며
'비'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산성비'에 대해서부터 그동안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가를 깨는 일부터 시작된다. 하나의 관습이 오래도록 이어져 그 생각의 틀을 깨끗하게 부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기존의 진실은 굳어질 대로 굳어져 왔고 은연중에 우리는 그것을 의심 없이 믿는다. 전문가의 말이니까. 내가 모르는 분야이니까. 그야말로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오염이 심한 현대사회는 산성비 괴담이 주를 이룬다. 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된다는 말이 가장 흔하게 들리는 소리니까. 그래서 비를 좋아해도 선뜻 맞지 못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중학생 때 비가 내리면 기분이 좋아서 친구랑 신발을 벗고 맨발로 돌아다니며 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뒤집어쓰고 다녔다. 시골도 아니고 도시에서 말이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서는 산성비라는 말과 다소 약해진 몸을 핑계로 비가 오면 맞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부질없는 짓이었다니!
그러나 빗물 박사 한무영은 말한다. 산성비의 산성수준은 우리가 마시는 오렌지 주스나 콜라보다도 낮은 산성이며 과거 산업화가 될 때의 오염이 심하고 환경에 대한 각성이 없었을 때의 이야기라고. 다른 나라에서는 산성비라는 개념 자체도 없으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그렇다 한다. 또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산성비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 유럽 북단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이야기였고 그곳은 비가 내리면 중성화될 것이 없어서이고 우리나라는 흙이나 기타 환경이 다르기에 같은 이야기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산성비에 대한 심각성이나 그로 말미암은 생태계 파괴나 숲의 황폐화 등의 보고가 없단다. (대략의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정확하게 알고 싶으면 책을 꼭 읽기를 권합니다.)
이 개념부터 깨는 일이 시작이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계속 이어지는 내용에 비하면. 다행히도 나는 저자의 이야기에 반론의 여지를 찾지 못했고 이어지는 이야기에 더욱 저자를 믿고 지지하게 된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옆지기에게 책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공감하며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고 모두가 바르다고 믿는바 대로 자신만의 필터 없이 사는지 잠시 이야기를 했다. 옆지기가 들려준 다른 이야기 하나. 어느 날부터 이를 닦을 때 빨랫비누를 사용하는 걸 발견했다. 나는 경악했다. 장난하는 거로 생각했지만, 진지하게 나도 해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 책의 이야기 후에 옆지기가 들려준 말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 날 치과에 가니 의사가 권하더라. 그래서 긴가민가해서 직접 써보았더니 좋았다고. 어떤 원리로 그런지는 전문가처럼 몰라도 그랬다고. 그러다 뉴스에서 비슷한 내용을 보고 확신하게 되었노라고. 즉, 전문가의 말대로 행동했고 직접 체득해서 느낀 거에다 뉴스에서 어떤 정보를 토대로 나름의 확신이 더 생긴 거였다. 아마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내게까지 권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문적으로 치약의 성분과 기능 이야기도 했었지만, 이야기를 줄이겠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처럼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많으며 그 중 하나인 빗물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확실한 의식전환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이 밖에도 여러 가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비판적인 책읽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한 강창래처럼 했던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는 빗물 박사 한무영을 인터뷰하는 동안 관계된 논문, 책 등을 읽으며 물어가며 실제로 체득하며 진행했다. 일반적인 묻고 답하기 형식을 훨씬 앞서는 인터뷰임이 틀림없다. 책임감이 강하다고 할까. 그저 누군가의 생각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거르고 전달하며 독자에게도 끊임없이 사고의 물꼬를 트라고 간접적으로 독려한다.
- 새롭게 알게 된 많은 진실과 판단
서평이 길어지게 되었다. 사실 나 혼자만 알기에는 엄청나게(!) 아깝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읽어야만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산성비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환경적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아 대기오염 등의 기준을 올리고 개선했다는 점에서 장타를 쳤다. 환경론자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떤 결과이든 이제 산성비에 대한 오해는 풀렸으면 좋겠다. 2011년 중학교 교과서에는 저자의 빗물 이야기가 실린다니 그야말로 다행이다. 이 밖에도 주목해야 할 사실이 많은데 이미 댐이나 원자력 등에 대한 순기능보다 역기능에 주목하는 시대이니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희망차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빗물 박사 10년인데 나 같은 일반인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안타깝다. 오래전 쏟아져 내리는 비에 대해 생활에 응용해 볼 방법이 없을지 나름 고민한 적은 있지만 그뿐이었다. 전문지식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없어서도 그렇지만 사회분위기 또한 다르지 않은 거 같다. 그러나 광진구 자양동의 스타시티는 현재 정말로 빗물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수돗물과 하수도, 고층건물을 지을 때 뽑아내기만 하는 지하수, 해수의 담수화, 강에서 끌어오는 지금의 방법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뿐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주목해야겠다. 그에 비해 빗물은 자연에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는 이를 받아 잘 걸러 보관하고 이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찌 보면 정말 간단해서 일반인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빗물이 그만큼 깨끗하고 안정한지에 대한 판단인데 저자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 이다.
이쯤 되면 산성비에 대한 오해를 푼 후에는 문명의 혜택에 길들어져 살아온 우리에게 지금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정말이지 공개토론을 대중매체에서 하고 널리 알려져 화제가 되었으면 하지만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반대파에서는 이겨야 본전이고 지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책을 통해 독자들을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니 판단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겠지만 일단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 책을 내려놓으며
가볍게 여겼던 한 권의 책에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육식의 종말> 정도가 아니었다. 물론 그 책도 그런 충격과 경악을 준 것은 분명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여러 권의 책을 다 찾아 읽지는 못해도 적어도 몇 권은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원자력은 아니다>> 작가/ 헬렌 칼디코트, 출판/ 양문, 발매/ 2007
- 이 책을 검색하니 나란히 또 한 권이 뜬다. 바로 <원자력은 공포가 아니다>인데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펴냈다. 두 책의 상반된 관점이 재미있을 거 같지만 일단 이번 일본의 원자력 사태도 있고 하여 <원자력은 아니다>에 우선 주목한다.
<<회의적 환경주의자>> 작가/ 비외론 롬보르, 출판/ 에코리브로, 발매/ 2003
- 지나친 생태주의에 치우친 관점을 잠시나마 내려둘 수 있다는 책. 무엇이든 한쪽으로만 기울면 위험하다.
<<들풀에서 줍는 과학>> 작가/ 김준민, 출판/ 지성사, 발매/ 2006
- 저자는 작년에 돌아가셨다는데 한무영 박사의 의견에 힘을 실어줄 내용이 담긴 책. 식물생태 분야 1세대 학자의 말이니 무게감 있게 느껴진다.
<<인간없는 세상>> 작가/ 엘런 와이즈먼, 출판/ 랜덤하우스코리아, 발매/ 2007
- 출간 당시에도 관심이 가서 읽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났다. 읽을 책 목록 위쪽에 올려두기.
![](http://image.aladin.co.kr/product/198/39/cover/8981631409_1.jpg)
<<문명의 엔드게임 1>> 작가/ 데릭 젠슨, 출판/ 황권, 발매/ 2008
- 문명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그 장단점을 차근하게 뜯어보고 싶다.
생각나는 대로만 옮겼다. 지금 내가 가진『빗물과 당신』에 수많은 인덱스 표시(읽다가 표시해둔 곳.)를 다 펼쳐볼 시간이 없어서이다. 내가 쓴 이 글로 한 명이라도 이 책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출판사 알마와는 관계가 없다. 그저 한 명의 독자일 뿐이다. 전문가도 아니고 사회정의로 불끈 뭉친 사람도 아니다.
내 관점에서 정말 읽어야 하고 중요한 책은 바로 이런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시는 생명의 물이 정치, 기업 등과 얽혀 있는 건 알겠지만, 누구를 위한 무엇이 되기 전에 모두를 위한 무엇이 되는 세상이면 좋겠다. 그 한발에 다가서는데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간다. 직접 읽으면 수많은 것들이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느낄 것이며 이해관계로 연결된 것들을 생략하고 자금도 적게 들고 무한히 공급되며 누구에게나 내리는 빗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불러들일 테니까. 자, 이제 선택은 나의 손을 떠나 이 서평을 읽는 당신에게 달렸다.
:: 빗물 박사 한무영 블로그 = http://blog.daum.net/drrainwater
* 다시 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읽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이 책이 튼 물꼬를 따라 꼬리를 무는 책읽기를 더디더라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놈의 생각, 생각하다가 어찌 되려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무지해서 무관심했던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작이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