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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 그리고나면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늘리기 위한 기나긴 협상이 시작되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 할아버지가 작은나무에게 들려주었던 저 이야기속에는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런데 나는 가끔씩 의문점이 생기곤 한다. 종종 다큐멘터리라는 공간속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모습때문이다. 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함께 숨쉬고, 자연속에서 자연이 주는 것만을 받아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사회도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도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도 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그들에게도 모두 있다는 말이다. 굳이 없는 것을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감히 문명이라고 말하는 그런 것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토록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 책은 그다지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선택했던 책이었다.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류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작은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책속의 소년 작은나무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작은나무의 발소리와 눈길을 따라 자연속에서 생활하다보면 우리가 정말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한번 돌이켜 보게 된다.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관념으로 본다면 사생아라는 테두리에 갇혀 너무도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내야 했을 작은나무가 체로키족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숲으로 간 건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올라 어두워지는 밤하늘에 하나둘씩 별들을 그리며 잠이 들 준비를 하는 산과 아침을 깨우며 벌겋게 솟아오르는 태양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던 작은나무는 그야말로 축복받은 아이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두개의 마음을 갖고 있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어서 몸을 위해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 써야하니 자기 몸이 살아가려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하지..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것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단다. 영혼의 마음이지. 만약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다른 사람을 해칠 생각을 한다면 그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작아지게 되지. 영혼의 마음을 잃게 되면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말아..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면서 영혼의 마음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들라던 할머니의 교육.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으니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던 할머니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작은나무가 아닌 내 마음속을 아프도록 깊게 각인이 되었다. 영혼의 마음이 밤톨만큼 작아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도 귀한 가르침 앞에서 나는 숙연해졌었다. 우리가 살면서 우리 곁을 스쳐지나는 계절들을 온전히 느끼면서 살아가는 순간이 얼만큼이나 될까? 그 한순간마다 함께 호흡하고 함께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또 얼만큼이나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단순히 계절만이 아니라 우리곁에서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해 얼만큼이나 제대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단순히 살기에 바빠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미안하고 죄스럽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작은나무에게로 전해지는 자연의 속삭임을 한번쯤은 온전하게 나도 느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수박을 두드려볼 때 알아두어야 할 점...'팅' 소리가 나면 아직 하나도 익지 않은 것이고, '탱' 소리가 나면 지금 익고 있는 중이며, '텅' 소리가 나는 수박이라야 완전히 익은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진리가 그러하듯이 이렇게까지 해도 수박을 잘랐을 때 원하던 결과를 얻을 가능성은 항상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작은나무는 과연 '팅','탱','텅' 소리에 얽힌 삶의 진리를 터득했을까? 그렇게까지 하고도 원하는만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며 살아왔을까? 세상의 모든 일중에서 내가 원하는만큼의 결과를 안아들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설령 원하는만큼의 결과였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백프로 만족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작은나무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는 욕심버리기였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만큼만 갖기.. 지금 필요한 것만 갖기..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고 아주 작은것들조차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이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을게다. 하지만 자연속에서 숨을 쉬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는 작은나무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렇게 아름답게 커가고 있던 작은나무에게도 시련이 찾아온다. 사회라는 커다란 악마가 의무라는 올무를 작은나무의 목에 걸었던 거다.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도 않고 아이를 혹사시키고 있다고 고아원에 수용시켜버린 것이다. 문득 할아버지와 함께 숲속에서 생활하던 하이디라는 어린 소녀를 떠올린다. 그 소녀가 숲을 떠나 문명의 그늘에 가려졌을 때처럼 그랬다면 괜찮았을까? 느닷없이 자신을 가둔 그 고아원에서조차 작은나무는 오래된 떡갈나무와 대화를 나누며 바람을 통해 자신이 있던 숲의 소식을 전해 듣지만 작은나무에게 가해지던 그 참혹한 매질의 흔적때문에 나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만약에 작은나무가 다시 숲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면 내 가슴속은 아마도 눈물바다가 되었을 것만 같다. 작은나무야 미안해!
행복했던 불행했던 계절은 바뀌고 세월은 간다. 죽음의 계절속에서 사랑했던 사람들을 하나씩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게 되는 작은나무가 나는 너무도 안스러웠다. 아직은 배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데... 아직은 곁에 있어주며 안아주어야 할 사람이 필요한데... 하지만 작은나무는 많이 울지 않았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작은나무의 곁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두 그랬다.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거라고.. 모든 일이 다 잘될거라고..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남은 겨울을 그곳에서 보낸 작은나무는 봄이 오자 길을 떠났다. 아득히 먼 서쪽 산들 너머에 있다는 인디언 연방을 찾아서. 가면서 함께 동행했던 두마리의 개 블루보이와 리틀레드를 묻어주게 되지만 작은나무의 가슴속에는 그가 떠나왔던 숲의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줄기의 희망조차도 버려지지 않은 채...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는, 자연이 부여한 축복의 시간이다. 이렇게 정리해나갈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했어야 했던 온갖 일들과.... 하지 않고 내버려둔 온갖 일들이 떠오른다. 가을은 회상의 시간이며.... 또한 후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하지 못한 일들을 했기를 바라고... 하지 못한 말들을 말했기를 바란다.... 나의 조그만 버릇중에 하나가 책을 잡으면 조급증이 인다는 것이다. 빨리 읽고 싶다는 조급함에 어떤 때는 숨도 쉬지않고 읽어내려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하면 좀 더 늦게 읽을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다. 한장 한장 넘겨지는 책장마다 왜 그리도 아쉬움이 느껴지던지... 그 아름다운 말들을 한번 더 읽고 또 읽고... 그 아름다운 문장속에 숨겨져 있는 풍경과 의미들을 조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은 또 왜 그렇게 컸었는지... 숲을 떠나 어쩔 수 없이 이 문명의 사회속으로 되돌아와야 할 작은나무에게 전해 줄 따스함 한자락을 우리가 품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작은나무가 들려주었던 그 따스함에 대해 우리가 먼훗날까지 잊지않고 간직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살 맛나는 세상이 다시 펼쳐지지 않을까? 이 가을에 작은나무를 만난 것이 나에겐 행복이었다. 작은나무와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간들 또한 나에겐 행복이었다. 그 따스함을 내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