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타령



물에 빠질 때나 붙잩는

지푸라기라고 수월히들 여기지마소

꽃 피우는 데 벼 무르익는 데

시궁창 가새든 어데든

낄 때 안 낄 때 가리지 않고

마구 굴러먹는 잡것이지만

물에 빠져죽고 싶지 않고서야

꽃가지를 꺾어 들 순 없지 않것소

가파른 벼랑 우에서

장작개비 모냥 몰기 하나 없는

마른 나뭇가지에 매달려

질기게 버티고 있을라고 함 해보소

어느 누군들 물가에 빠지고 싶었것소

어느 누군들 벼랑 우에 매달려있고 싶었것소

어데 귀하디귀한 몸뎅이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버선발로 곱게 강나루 건너

술 익는 마을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세월 좋은 나그네 팔자이것소.


물에 빠질 때나 붙잡는

지푸라기라고 수월히들 여기지 마소

낄 때 안 낄 때 가리지 않고

마구 굴러먹는 잡것이지만

징하게 질기게고롬 버티고 있을랑게

당신네들도 한 번 징하게 버텨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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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의 은총



어딘가에서 떨어진 공허한 무게에 짓눌려

모두 떨어지기 시작한다.

처마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떨어진다.

항문에 걸린 똥이 떨어진다.

아파트 옥상에서 중학생 소녀가 떨어진다.

비듬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진다.

꽃잎이 떨어진다. 단추가 떨어진다.

목이 떨어진다. 눈이 떨어진다.

귀가 떨어진다. 입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시를 쓰던 내 고개가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무언가 자꾸 떨어진다.

헐겁게 매달리지 못하고

애원하며 발버둥 치며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

.

.


모두 어디로 떨어지는 걸까?

다 떨어진 부대자루를 기워

길 위에 떨어진 돌멩이들을, 쓰레기들을

하나 가득 주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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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선인장



어디에서 권태를 배운 걸까

물 한 모금 주지 않아도

뾰족한 오기로 깊숙이

뿌리 내려

온갖 화사한 꽃들이

갖은 교태를 부리며

벌과 나비를 모으던 시절에도

아무런 표정도 향기도 없이

꼬박 하루만 꽃을 피우던

꿋꿋한 정절은 어이하고

벌써 마른 몸짓으로 비스듬히

몸을 누이고 있는 걸까

모르게 목이 말랐던 걸까


속살을 감추었던 여인이

옷을 벗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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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세상에 인질은 나 하나

머리통에 총을 꽂고선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관자놀이 관통하지 못할

러시안 룰렛게임, 그리고

뇌수를 터뜨리는 총성의

짜릿한 쾌감, 극대화된

공포는 삶을 가장하기 위한

비극적 희극, 이제 우리

총 끝에 얹힌 연기 사이로

사라진 넋들을 추모해 보자!

아주 오래된 기억들, 몽상들, 불면들

망각하면 모든 건 소용없는 법

예리한 기억의 촉수들로 들쑤셔

한 방 한 방 터뜨리고

마법의 나무 치솟아 오르듯

환각의 새싹을 싹둑 잘라내면

남는 것은 오직 난무하는 문자뿐,

진실을 위해 그리고 완벽한 거짓을 위해

샤롯데의 눈물을 위해

총성을 울려라! 젊은 베르테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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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



남몰래 혼자 담배를 피우러 다니던

학교 뒷길 옆 조그만 담벼락 위로

봄이면 새하얀 목련이 피어올랐습니다.

아직은 설운 바람에 잔가지를 털어내며

눈부신 햇살에 반짝거릴 때면

눈보다 새하얀 꽃잎은 파르르 떨리며

날아오를 듯 천천히

그렇지만 무겁고 거대하게

바닥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왜 그토록 눈부시게 새하얀 꽃잎이

붉게 물들어 퍼렇게 문드러져 가는지를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까닭도 모를 신음이 ‘아’하고 터져 나와

긴 읊이 되고 읊조림이 되어

목멤 같은 슬픔이 울컥 오금을 적시며

양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부끄러웠는지도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두려워 도망치듯 그 거리를 내지르며

연신 두 볼을 적시는 눈물을 닦아내며

겨우 멈춰선 어느 조용한 공원 벤치

누구도 오지 않을 그곳에서

불현듯 북받쳤던 울음을 엉엉 터뜨리며

그제야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을 내 생의 절정이

그렇게 끝나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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