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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여름 에디션)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휴남동 서점 – 잠깐 숨 쉬며 꿈꾸는 공간
이번이 소위 베스트셀러라 불리는 책을 접하는 두 번째이다. 아니나 다를까, 책은 구내 모든 도서관에서 대출 예약 불가라고 경고 메시지를 날리듯, 빨갛게 물들어 있고, 내 마음도 새빨갛게 타들어 버렸다. 처음,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본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기대보다 실망이 컸던 까닭이다. 물론, 그 책이 나쁜 책이란 말은 아니다. 다만 너무 잘 만들어진 기획 상품적 성격의 책이어서 조금 실망했다고 할까? 그런데 또, 베스트셀러를 빌리지 못해, 사야 한다니, 마음이 새빨갛게 타들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여러 포인트를 긁어모아, 대충 반값에 후려쳐서, 구매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정말 뜻밖이었다. 애초에 기대를 안 한 탓일까? 자꾸 실실거리고, 미소 짓는 나를 보면서, 이 책의 매력이 무엇인지 뜻밖에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주관적인 이유이고, 하나는 객관적 이유이다.
첫 번째 이유는 한 선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새벽이면 매일 만나는 불면 클럽의 인간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 클럽을 넘버 클럽이라고 불렀는데, 그때가 ‘넘버 쓰리’라는 영화가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따라 붙인 이름이었다. 그중 그 선배가 넘버 원이었고, 정말 약간은 재떨이처럼 생긴 선배가 넘버 투였고, 내가 넘버 쓰리였다. 학교에 적응도 못 해, 밤에 잠도 안 자고 만나는 백수들이 무얼 하겠는가? 정말 별 볼 일 없는 일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학기를 끝으로 넘버 원 선배는 학고 세 번으로 학교에서 잘리고, 넘버 투는 영화계로 진출하겠다고 자퇴하고, 나보다 두 학번 아래인 넘버 포 후배도 군대를 가버리고, 여전히 별 볼 일 없이 남은 나도 휴학을 하면서, 넘버 클럽은 안녕을 고했다. 애초에 어떤 의미로 우리는 인간쓰레기였고, 또 그 쓰레기임을 자처하면서 즐기는 그런 부류였다. 그런데 넘버 원 선배가 여자를 만나더니 갑자기 변했다. 학교에 다시 복학하여, 기어이 졸업장을 따더니, 신학 대학원을 가고, 우리 중 유일하게 목사가 되었다. 뭐, 사실 이런 일이 다반사이기는 하다. 신학대에서 신학생이 목사 되는 일 말고, 다른 일 하는 게 더 문제라면 문제이니까.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변화 중 하나는 그 선배가 갑자기 공동체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공동체? 솔직히 이야기하면, 신학교 시절 여러 공동체를 전전했던 건 선배가 아닌, 나였다. 물론, 방황의 이유도 있었지만, 그만큼 관심도 있었다. 수도원에서 수도 피정도 해보고, 어떤 수도 공동체에서는 1년 가까이 살아도 보고, 유명한 공동체 여러 곳을 탐방했다. 하지만 선배는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고, 실제로 아는 바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 공동체를 하겠다면서, 어디 시골 폐가를 빌려다가 보여주는데,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이 대체 공동체가 무언지 알고 이러는 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왜냐하면 공동체란 곳은 어디 피난처가 아닌, 지역과 소통하고 마주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곳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도 몇 년 후 나름 자신을 따르는 젊은 청년들을 모아 카페를 차리고, 그 사업을 통해 공동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땐, 나름의 희망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거의 대학생인 청년들이 그 카페를 유지하면서 공동체 교회를 추구한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결국 또 한 번의 실패와 여러 번 현실적 상황에 직면하고서, 선배는 직업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어느새 신앙심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람이 되었고, 선배는 이제 어엿한 목사가 되어 자신의 공동체를 시작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이라고 하는 국가 지원을 받은 사업이었다. 그 도서관에서 선배는 여기 이 글 휴남동 서점에서 나온 이벤트와 비슷한 소소한 이벤트들을 시작하고 있다. 블로그를 만들고, 강사를 초청하고, 독서 모임까지, 지역과 소통하는 진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그런 선배가 때론 너무 거룩한 느낌이 들어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마음속으론 늘 응원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휴남동 서점이 남 이야기 같지 않고, 내 친구의 이야기 혹은 내가 응원하는 사람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던 까닭은.
둘째로, 내 개인적인 잡설을 떨쳐내고 객관적인 측면에서 이 글의 장점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이 글의 장점은 진솔하고, 편안하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인물들이다. 물론, 조금은 색다를지도 모르겠다. 이혼한 여자, 공대생 작가, 취업을 포기한 바리스타, 진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등, 어딘가 부족하고, 나름의 사연이 있지만, 이 글은 그 부족함에 집착하지 않고, 사연에도 구구절절하지 않다. 각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버려 두고, 각자의 사연은 각자의 사연대로 거리를 조절한다. 그리고 그 무게추를 휴남동 서점이란 공간에 맡겨둔다. 작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하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추구하려고 하는 휴남동 서점이란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쓴다. 물론, 소설이기에 조금은 미화되어 있고, 조금은 희망적인 건 사실이다. 현실이란 게 여기서 이야기하는 노동과 여가의 문제처럼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닌 탓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로 고민하며, 그 고민을 공유하는 장소로 그들은 휴남동 서점을 선택하여, 자신의 고민을 예치해둔다. 얼마나 좋을까? 만약 이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조금의 그런 여유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해보고 싶다.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의 쉼을 갖는다는 그런 느낌으로.
P.S.
글 속 승우란 인물을 통해 올바른 문장에 관한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정말 제대로 된 문장이란 건 무얼까? 어법보다 중요한 건 마음과 솔직함이지만,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을 쓰는 건 대충 감정으로 억지를 부리는 일과 비슷할 것이다. 조금 더 진솔하게, 그리고 바르게, 문장 하나하나를,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