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스펜서 존슨의『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이 책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껍데기만 소개하자면), 1998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어 1년만에 "아마존 비즈니스 부문 베스트셀러 1위" "「이코노미스트」「포춘」「워싱턴 포스터」등의 세계 언론이 새 천년의 필독서로 추천!" "GM, 시티뱅크, 제록스, 코닥 등의 세계적 기업들이 교육용 매뉴얼로 채택!"이라는 꽤 유명한 책입니다.
그래서 만약 기대에 잔뜩 부풀어 본다면 기대한만큼 실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책입니다.
고등학교 국어 식으로 '이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라고 한다면 그저 '변화에 적응하자' 정도밖에 달리 이끌어낼만한 교훈도 없습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새로운 치즈를 마음속으로 그리면 치즈가 더 가까워진다" "과거의 사고방식은 새로운 치즈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 "작은 변화를 일찍 알아차리면 큰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치즈는 읽는 사람들의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시대가 변화하고 있으니 우리도 변화에 잘 감지하고 적극 대처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이솝 우화의 각색판이라고 깎아 내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 아는 얘기를 두꺼운 하드 커버에 가격까지 만만찮게 팔다니...

그러나 복잡하고 무언가 특별해야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마치 수능 고득점자들이 '교과서에 충실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과서에 충실했다는 말이 교과서만 봤다는 말로 이해하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누가 내 치즈…』에서 주는 '변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교과서 수준입니다. 그런 텍스트가 누구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서점에서 서서 읽을만한 책'정도 밖에 안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삶이나 비즈니스에 지침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체적인 대안을 주는 것도 없습니다. 도움이 될만한 지식을 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삶의 자세와 비즈니스를 하는 자의 마음가짐을 바꾸어야 한다고 넌지시 우회하여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전에 잠시나마 회사를 경영할 때 이 책을 직원들과 함께 읽고 토론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내 딴에는 직원들이 변화에 적응하고 오히려 그 변화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스니퍼, 스커리라는 작은 생쥐와 햄과 허라는 꼬마 인간에 대해 서로의 느낌을 얘기했습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동일한 책을 읽고 토론을 했던 것이 대학을 졸업한 이래 처음이었습니다.
그러한 독서 토론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되지 않아 회사는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 책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한 책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치즈는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었다. 치즈의 양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남아있는 치즈는 오래되어 맛이 변해가고 있었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치즈는 오래되어 곰팡이까지 피어 냄새가 났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도, 허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53p.)

자신이 책 속의 '허'임을 깨닫지 못했던 동주아빠 손병목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굴클럽 - 싸우지 않고 성공하는 직장 서바이벌 가이드
김정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제가 <비굴클럽>에 대해 처음 안 것은 2002년 여름쯤이었습니다. 당시 다니던 회사가 여러 계열회사와 합병 절차를 거치고 있던 때였는데, 회사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하였습니다. 저녁에 삼삼오오 회사 근처에서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날들 중 어느 날, 우연히 김정선 팀장과 술 한 잔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 때의 멤버가 정확하게 누구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여하튼 그 때 그 자리에서 <비굴클럽>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많은 얘기가 오가던 중 김정선 팀장이 제게 "비굴클럽에 가입하지 않으시겠어요?"라고 했습니다.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 비굴클럽이라니!
비굴클럽은 말 그대로 비굴한, 비굴함을 솔직히 드러내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내가 거기에 왜 가입해? 이 천하의 나 잘난 손병목이 말이야!'

그 이후로 정선 팀장과는 술 마실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얼마 후 정선 팀장과 그의 팀이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내 기억 속에 비굴클럽은 그렇게 사라져갔습니다.
2004년 1월에 갓 창간된 《herstory》라는 여성잡지를 한 권 샀습니다. 한겨레에서 만든 조금은 다른 여성잡지라고 해서, 아내를 위해 한 권 샀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사 중에 <비굴클럽>이라는 꼭지가 있었습니다. '어라! 이거 정선 팀장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런 말을 사람들이 실제로 쓰네!'라며 신기해하며 기사를 읽었는데, 아뿔사, 글쓴이가 김정선 팀장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내용은 '내가 먼저,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비굴클럽에 대한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출간되었습니다. 인터넷 서점을 우연히 돌아다니다가 또 다시 '비굴클럽'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는 '혹시'하는 심정에 정보를 봤더니 예상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정선 팀장이 그 동안의 비굴클럽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herstory》에서 봤던 그 내용 역시 '한 박자 빨리 내가 먼저 움직이자'라는 소제목을 달고 책 속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비굴클럽》의 소제목으로 '싸우지 않고 성공하는 직장 서바이벌 가이드!'라고 적혀 있는데, 으악,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이드라! 이런 제목에 대한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 있는 저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자기관리와 성공학에 대한 내 사상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벤자민 프랭클린, 새뮤얼 스마일즈, 데일 카네기, 나폴레온 힐, 맥스웰 몰츠, 지그 지글러에서 우리나라의 공병호, 구본형에 이르기까지 내노라하는 '자기관리 전문가'들의 얘기를 정면에서 들이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의 성공학 책과는 근본부터 다릅니다. 차원을 달리하므로 같은 위치에 두고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잠깐 비굴하지 못해 부러지고 꺾이는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을 숱하게 보아온 13년차 직장인의 조언입니다. 그 조언의 화두는 '비굴'이며, '천하다'는 뜻까지 내포한 '비굴'에서 'Be Cool' 경지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정말 현실적으로 '직장 생활 잘 하기 위한' 방법이 정선 팀장의 특기인 톡톡 튀는 말빨(!)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직장의 활력소 뒷담화. 허를 찔러 회의실에서 회의를 가장하여 뒷담화를 즐겨라' '인사도 한 박자 빨리, 칭찬도 한 박자 빨리, 사과도 한 박자 빨리', '내가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잠시 자존심을 꺾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등 나름대로(?)의 직장 서바이벌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고, 반면에 심하게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마라톤이고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괜히 무거운 총대 메고 고단하게 동분서주하지 말고 차라리 한 발자국 떨어져서 문제를 들여다보자'와 같이 그 의도는 이해하지만 근본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명제들이 많습니다.

직장생활이 지겹거나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하신 분, 그러나 두툼한 원론 성공학 서적에 별 관심이 없으신 분들, 특히 여성으로서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느끼시는  분들! 내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책으로 가볍게 기분전환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생명 이야기 - 반양장
황우석.최재천.김병종 지음 / 효형출판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최근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농생대와 연세대 등 다른 대학 의대나 약대에 동시에 합격한 수험생 네 명이 수시 2차 최종 등록에서 의대와 약대를 포기하고 서울대 농생대에 등록했다고 합니다. 정시 모집에서는 7.5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농대'라는 이미지 때문에 서울대에서 비인기 학과였던 농생대가 이처럼 '뜨는' 데에는 황우석 교수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이를 두고 '황우석 효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동아일보, 문화일보는 '2004년 올해의 인물'로 황우석 교수를 선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시사 주간지 TIME이 선정한 '2004년 화제의 인물 Who Mattered 2004)' 14인 중의 하나로 선정됐습니다. 그 외의 국내 일간지에서 뽑은 2004년의 주요 뉴스에 황 교수 연구팀의 줄기세포 배양 성공 소식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12월 27일, 황 교수가 국제특허관련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특허권이 외국으로 넘어갈지 모른다는 중앙일보 보도 후, 익명의 기업가가 6억을 쾌척하고 할머니와 촌부를 비롯해 많은 후원자들 덕분으로 특허 출원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기사가 나간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관악구민은 지난 4월부터 황우석 교수 후원 모금을 시작해 1억원을 모았습니다. 엇그제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 타종 때에도 황 교수가 참석했습니다.

《나의 생명 이야기》는 세 명의 1953년 동갑내기 서울대 교수가 '생명'을 화두로 엮은 책입니다. 황우석 교수가 책의 2/3를 쓰고, 최재천 교수가 나머지 1/3을, 김병종 교수의 그림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황우석 교수는 1999년 2월 한국 최초의 체세포 복제동물 '영롱이'(젖소)를 탄생시켰고, 2004년 2월에는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복제 유래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함으로써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최초의 석좌교수로 임명되어 재직하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생명공학자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많은 교양과학서를 출간하고 여러 매체에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칼럼을 쓰면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김병종 교수는 1989년 화실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몇 차례 위험한 수술을 받고 퇴원한 후에 '생명'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여, 지난 10여 년 동안 <생명의 노래> 연작을 발표해왔습니다. 서울대 미대를 나와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 미대 동양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최재천 교수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게는 황 교수의 글이 훨씬 감동적이었습니다. 최 교수야 원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예전부터 많은 글을 발표해왔지만 황 교수의 글 중 대부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것들입니다. 무엇보다 촌놈의 순수함과 소처럼 우직한 그의 성품을 느낄 수 있어 때론 즐겁게 때론 감동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과학도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과학책을 보고 실험을 하기 전에 먼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고 말합니다. 숲과 나무와 그 숲에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벗이 되라고 말합니다. 과학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고리타분한 말로 들릴 듯한 이 말도, 황 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침, 수탉이 홰치는 소리에 단잠이 깨어 따뜻한 이불 속에 대한 미련이 남아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방문을 여는 순간 마음을 두드리던 여명의 감동…" 생명과 자연을 단순히 과학의 '대상'으로만 여길 수 없는 까닭을 황 교수는 논리가 아닌 생생한 五感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의 소를 키워내는 것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탓에 소와 더불어 지낸 어린 시절의 이야기, 그래서 소와 함께하겠다고 선생님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수의학과에 지원했던 사연,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480 명 중에 400 등을 한 뒤 친구들과 '등 안 대기 클럽'을 만들어 졸업할 때까지 거의 땅바닥에 등을 안 대고 공부만 했던 사연을 듣자면, 누가 사람이며 누가 소인지 헷갈립니다.

그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복제 유래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습니다. 전세계 연구자들이 벽에 부딪쳐 중도에 포기한 과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방법이 아니면 난치병 치료에 새로운 치료법이 없다는 신념으로 시도를 합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자. 하늘을 감동시키자" 그가 불안해하는 연구팀원들에게 한 말입니다. 결국 하늘은 감동을 했습니다.
그의 연구팀은, 다른 건 몰라도 성실 하나는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성실은 우리가 믿는 최고의 능력이며 가치다" - 소를 닮은 황 교수의 말입니다.
"교수님, 그만 두겠습니다. 능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학생이 이렇게 울면서 말을 하면, 알면서도 소리를 버럭 지릅니다.
"이 사람아, 웃기지 마시게. 차라리 자네 성실함에 한계가 있다고 말해! 그럼 내 받아들이지."

소를 닮은 황 교수는 사리사욕과도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입니다.
인간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복제 실험에 관련된 몇 가지 노하우를 국제 특허로 신청했는데, 그 특허권자를 개인이나 연구팀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했습니다. 모든 연구결과를 대한민국에 귀속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입니다. 그의 글 곳곳에 조국 대한민국 예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강연의 주제를 '애국'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왜냐고 하면, 그저 "내게 피와 살을 준 내 조국과 민족이 좀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2월 이후 세계 각국에서 황 교수를 초청합니다. 대개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 비행기표로 끊어주겠다고 하는데, 황 교수는 굳이 일반석으로 요구합니다. 나머지 돈으로 연구원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기 위함입니다. 비단 비행기 삯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비용을 아껴서라도 연구원 한 명 더 데려가 국제적 경험을 쌓도록 만듭니다. "바이오 코리아"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 황 교수의 바람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생명 '복제'에 대한 세간의 우려에 대한 황 교수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탁상공론으로 복제의 잠재적 위험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말보다는 '진정한 생명 윤리는 고통 받는 사람을 구해주고 사회비용을 줄이는 것'이라던 세계윤리학회 위원장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것이 바로 내 생각이다."

시간이 없어 최재천 교수의 글은 소개드리지 못하네요. 이제 출근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2005년, 하늘을 감동시킬만큼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 풍경》의 부제는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책의 제목과 부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보다 더 어울리는 제목은 없을 성 싶습니다. 이 책의 장르는... 이런 종류의 책을 처음 읽어봐서 혼란스럽지만, 여행기를 가장한(?) 심리학 입문서로 분류하면 어떨까 하네요.

김형경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가 책장에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결혼 전 아내가 읽었던 책입니다. 95년 경인가, 《세월》이라는 3부작을 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첫 권을 읽고 울었던 기억, 그리고 2권과 3권을 차마 읽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참 '아픈'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책은 지금 제게 없습니다. 김형경에 대해선, 그 '느낌'이 전부입니다.

그런 제가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어느 선배의 리뷰를 보고 나서입니다. 소설이 아니라는 것도 이 책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김형경의 소설은, 제대로 읽어본 것이 단 한 편도 없음에도, 가슴이 시리고 아파서 현실을 사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책 선정은 성공이었으며, 그녀의 여행기이지만 나를 되돌아 본 의미있는 심리 여행이었습니다. 책 뒷장에는 마치 내가 여행을 한 듯, 연필 메모가 빽빽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메모를 참조하여 리뷰를 쓸까 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유럽과 중국 등을 여행하며 느낀 것을 기록한 여행기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여행기는 그저 서점에서 책 분류를 쉽게 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자가 오랜 세월 감내해야했던 정신적 장애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 그러는 동안 또는 그 후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얘기들을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나 쓰일 법한 주제들로 다시 구성한 것입니다. 이 책 각 꼭지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의식, 사랑, 대상 선택, 분노, 우울, 불안, 공포, 의존, 중독, 질투, 시기심, 투사, 분리, 회피, 동일시, 콤플렉스, 자기애, 자기 존중, 몸 사랑, 에로스, 뻔뻔하게, 친절, 인정과 지지, 공감, 용기, 변화, 자기 실현

위의 주제는 모두가 제각각인 것 같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 연결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처음의 주제(무의식)를 심화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인간의 부정적 속성을 먼저 파헤치고 종국에는(다행히도!) 긍정적인 속성으로 끝을 냅니다.

그러나 책 읽는 내내 저자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대체 인간은 유년으로부터, 그리고 부모로부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p.55)
저자는 시종일관 현실의 모든 심리적 장애의 근원을 '유년기'의 경험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프로이트나 융의 심리학에서 빌어온 것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모든 것이 과거 유년기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가설' - 저자는 진리라고 믿고 있지만 - 을 저는 받아들이기 '싫었습니다.' 한마디로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왜 모든 심리적 장애의 일차적 원인을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유년기의 환경 탓으로만 돌릴까, 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그것은 한결같이 부정적인 경험이었으며, 그것은 사랑이 아닌 분노, 기쁨이 아닌 우울함의 근원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분노와 우울, 불안과 공포의 원인으로, 투사와 회피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책장을 덮을 때 쯤, 이러한 거부감은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책 속의 얘기들을 종합해 하나로 엮어보면, 결국은 모든 얘기가 저자 자신이 정신적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드러내기 싫은 치부를 가감없이 다시 드러내어 극복 결과를 확인하며 그 과정을 되새기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자의 '확신'과 '경험'에 대응할만한 저의 논리는 빈약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비록 책에서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저자의 정신분석을 통한 장애 극복 과정에서 터득한 혜안이 없이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을 얘기들입니다. 그 극복 과정의 핵심은 아마도 유년 시절로부터 비롯된 장애와 집착과 분노와 우울함을 '인정'하고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로부터 출발하여, 잠재된 분노를 쉽게 노출하여 없애버리고, '콤플렉스'를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의 근원으로 받아들이고,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인정과 지지'보다는 오히려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인 '공감'의 의미를 깨닫기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결국 그리하여 세상은 원래부터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坪만?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의 모든 부정적인 속성은 대개 유년기의 경험으로부터 형성되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기 존중감'은 결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천부적으로 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습득해서 터득해야 하는 삶의 기능이라고 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 새해를 맞이하며 나의 '사명 선언서'를 다시 쓸까 하는데, 이 기회에 나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 보고, 긍정적 속성을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이 없이 인정하며, 부정적 속성을 열등감이나 자기 비하감 없이 시인할 수 있는 시간도 함께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사니엘 브랜든의 말처럼,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은 이와 같은 과정이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으니까요. 또한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 없이 내가 바라는 모든 것들 중 단 하나도 이룰 수 없으니까요.

*
[잠깐 나에 대해 생각해 보기]

극적으로 구성된 소설, 갈등 관계가 복잡한 드라마, 가슴 아픈 논 픽션 다큐멘터리... 저는 이런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김형경의 논리대로라면 이것 역시 유년기에 형성된 무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상황,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방어기제인 '회피'이거나, 위험 상황에 대한 반응의 일종인 '불안' 또는 '불안장애'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유년기에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경험이 나로 하여금 갈등 관계가 복잡하거나 선명한 이야기를 싫어하도록 만든 것일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짚이는 면이 있기는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공하는 사람들의 다이어리 활용법
니시무라 아키라 지음, 권일영 옮김 / 황금부엉이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또 월요일입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갑니다. 게다가 연말이 다가옵니다. 곧 있으면 새해가 시작됩니다. 지나간 날을 정리해야하고 새로운 날들을 설계해야 합니다.
살면서 수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짧게는 하루의 일을 설계하고, 한 주의 계획을 세우고, 한 달의 목표를 점검합니다. 길게는 1년의 목표를 세우고, 몇 년 혹은 몇 십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계획과 실천에 관해서는 살면서 점점 더 확신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루를 충실히 살지 아니하고 한 주를 부지런히 살지 아니하면서 일년의 목표를 이루고 수 년 뒤의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는 것입니다. 단 하루, 단 일주일의 계획조차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면서 인생의 목표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 굳이 성공한 아무개들의 이름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자명한 진리입니다.

직장인이 일을 잘한다는 것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적극적으로 일처리를 하면서 무엇보다 계획한 임무를 제때에 실수 없이 완수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는 고위 간부나 경영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은 일들 중에서 해야할 일을 취사선택하고 일의 경중을 나누고 우선순위를 매겨 제시간에 완수하는 것 - 이는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로는 의지가 없어서, 때로는 잘못된 관리 방법으로 인해 중요한 일을 놓치거나, 잘못된 시간 배분으로 인해 제시간에 끝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록하고 메모하는 습관이 없이는 현실의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가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연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새 다이어리를 마련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과 인맥을 관리하기 위해, 나아가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다이어리를 하나씩 장만합니다. 걔중에는 다이어리라는 말에 반기(?)를 들고 차별화를 선언하여 '플래너'라는 이름으로 출시되는 고가의 제품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고가의 <프랭클린 플래너>를 포함하여 많은 다이어리를 써 본 결과,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을 관찰해본 결과, 다이어리를 제대로 사용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는 결국 쓰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대개 <프랭클린 플래너>와 같이 보다 전문화된 다이어리를 구매하는 사람의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 계획과 관리의 중요성을 보다 중요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플래너에 담긴 철학을 이해하고 그 활용법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잘 만나 보질 못했습니다. 그저 보통의 다이어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이 책의 저자는 평범한 - 시중에서 널리 파는 일반적인 A5 사이즈의 다이어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활용하여 상당한 '경지'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다이어리나 메모 습관, 활용 방식 따위에 관해서는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느낀 저 역시 저자로부터 한 수 배웠습니다.

저자가 터득한 다이어리 활용법의 핵심은 '포스트잇'에 있습니다. 하루에 100장이 넘는 포스트잇을 사용하면서, 거기에 정보와 아이디어, 해야할 일들을, '한 장에 하나씩' 적습니다. 그리고 다이어리의 적당한 부분에 붙입니다. 급하게 해야할 일, 오늘 중으로 해야할 일, 그리고 몇월몇일에 해야할 일 등, 자신의 경험으로 정리한 방식에 다라 포스트잇을 붙입니다. 그리고 일을 끝낼 때마다 하나씩 떼어냅니다. 즉 해야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적어 작은 포스트잇에 적어 다이어리에 붙여놓고, 일을 완수할 때마다 떼어냅니다.
책을 보니 저자는 주간 스케줄을 주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다이어리를 펼쳤을 때 왼쪽에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날짜별로 칸이 마련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메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다이어리를 이용하는데, 이 오른쪽 공간에 메모지를 붙입니다. 이 공간 역시 둘로 나누어 한쪽은 오늘 중으로 해야할 일, 또 한쪽은 주말까지 완료해야할 일을 붙여둡니다. 정말 급한 일은 왼쪽면의 주간 스케줄 위에 붙여 둡니다. 그에게 있어 일을 한다는 것은 붙여둔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어내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날 밤에 하루 일을 점검하여, 아직 끝내지 못했거나 마감 일정이 바뀐 일들이 적힌 포스트잇은 또 적당한 자리로 옮겨 놓습니다.

그의 포스트잇 활용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왠만한 메모는 모두 포스트잇을 사용합니다. 특히 커다란 다이어리를 펼쳐들고 메모하면 어색한 대화 자리에서는 와이셔츠 주머니의 포스트잇이 톡톡히 그 역할을 다합니다. 재빨리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다이어리에 붙여둡니다. 따로 메모해두었다가 다시 옮겨적는 불편이 없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의 다이어리는 '정보'와 '인맥'과 '시간'을 관리하는 둘도 없는 도구입니다. 그는 일본에서 꽤 유명한 정보통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NHK와 TV도쿄에서 근 20년 간 경제캐스터와 프로듀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연간 300여 차례의 강연회와 10여 권이 넘는 책을 쓰면서 작은 컨설팅 회사까지 운영할 정도로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살아가는 시간관리의 프로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의 공병호 소장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이 저자의 《퇴근 후 3시간》이라는 책을 리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참 '독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었는데^^
☞ 관련 리뷰 보기)

아직 내년 다이어리를 마련하지 못했다면, 이번 주에는 다이어리 하나 장만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이왕 큰 맘 먹고 장만하려면, 나의 일에 가장 적합한 다이어리는 어떤 것인지, 나만의 정리 방식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미리 고민하고 장만하는 것은 어떨까요? 겨우 몇 일 끄적거리다가 그저 '비싼 공책'으로 전락할 수도, '업무'와 '인생'을 설계하는 훌륭한 도구로 거듭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이 다이어리 사용에 대한 유용한 길잡이 또는 사고 전환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