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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 ㅣ 인물로 읽는 한국사 (김영사) 1
이이화 지음 / 김영사 / 2008년 1월
평점 :
사마천의 《사기》가 오늘날까지 즐겨 읽히는 까닭은 열전(列傳)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기》는 곧 <사기열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2,100년 전에 지어진 책이지만 열전에는 생동생동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열전이 없었다면, 물론 그래도 사료적 가치가 충분히 있어 역사학자들에게 참고서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이렇듯 비전공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는 곧 '사람'의 역사입니다. 역사에서 사람이 빠지면 건조하여 목이 마릅니다. 이이화 선생이 작년에 써낸 《역사》는 그 충분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무미건조하여 읽기 어려웠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전 역사를 한 권에 담았으니, 비록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의 기록을 위한 방편일 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책이 그러하지만, 역사책은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길면 지루하다 하고, 짧으면 내용이 없다 할 것이고, 사건 중심으로 쓰면 사람 향기가 나지 않는다하고, 사람을 중심에 두면 계통이 없다고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지식은 종횡으로 엮어야 제대로 서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예로 들면, 상고사에서 현대사까지 그 흐름도 알아야 하고, 각 시대의 미시사도 깊이 있게 봐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책을 재미있게 보고는 있지만, 저는 아직 이론이나 틀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이번에 나온 이이화 선생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는 저의 역사 지식을 종횡으로 엮기 위한 소중한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사기열전>을 읽고 동아시아 고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일어 나름의 지식을 조금 가질 수 있었듯이, 이 책으로 인해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 크게 일어 지식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목 :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
지은이 : 이이화
펴낸곳 : 김영사 / 2008.1.18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2,000원)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의 첫권이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입니다. 머리말을 보면, 선생이 지금까지 역사서를 쓰면서 모은 약전(略傳) 형식의 역사인물 전기가 260여 명에 달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32명의 약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약전은 소전(小傳)이라고도 하는데, 줄여서 간단하게 쓴 전기를 일컫습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32명의 인물에 대해 비교적 짧게 다루고 있습니다. 곶감 빼먹듯이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짧은 분량이다 보니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는 바가 적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우 신선합니다. 제게는 철종, 김방경, 이목, 유운룡, 강홍립, 이덕형, 김육, 양득중, 원경하 등의 이야기가 그러했습니다.
헌종이 젊은 나이에 후사 없이 죽자 세도를 부리던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때 안동 김씨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지를 만들기 위해 강화도에서 땔나무를 하며 푸성귀로 연명하던 원범을 철종에 앉힙니다. 철종은 헌종의 7촌 아저씨뻘 됩니다. 그러니 종묘에서 조카뻘 되는 헌종에게 절을 하는 이상한 꼴이 연출된 것입니다. 왕가의 법도도 세도를 위해 깡그리 무시한 것입니다. 무식꾼인 철종이 궁중에서 온갖 법도를 배웠으나 그가 정사를 제대로 알 턱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14년 간이나 재위했으니. 결국 그는 왕비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정사에 싫증을 느끼고 여색에만 깊이 빠져 요절하게 됩니다. 허수아비로 14년을 재위한 셈입니다. 철종의 등장은 곧 조선왕조를 비추는 해가 석양으로 기울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몽골에 맞서 처절한 투쟁을 벌였던 고난의 시대의 주역 김방경. 대몽항쟁의 상징인 삼별초를 토벌하였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고려 왕조를 지키고자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무신이면서도 절대 무신정권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항몽(抗蒙)과 부몽(附蒙) 사이에서 번민과 눈물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고려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를, 이이화 선생은 새롭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했던 한재 이목. 당시 김일손은 곧은 붓끝으로 권력을 쥐고 횡포를 부리던 이극돈의 비행을 사서에 낱낱이 기록하자, 이극돈이 연산군을 꼬드겨 무오사화를 일으켰습니다. 변방의 한직을 맡고 있던 이목은 김일손 등과 한 패거리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당했씁니다.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에.
유운룡은 명재상 유성룡의 형입니다. 당시에 이미 부기장부를 만든 행정의 달인이며 명리를 떠나 민중을 위해 봉공하였습니다. 강홍립은 광해군 시절 명과 청 사이에서 실리외교로 전쟁을 조율하며, 청에서 8년간 억류생활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왔으나, 인조반정 이후 3개월만에 죽고 맙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은 원만한 성품으로 임진왜란을 지휘했으며, 김육은 공물의 폐단을 바로잡는 등 민중의 고통을 풀어주기 위해 생애를 바쳤던 인물입니다. 이러한 인물을 역사속에서 찾기가 흔치 않다고 이이화 선생은 평합니다. 양득중은 송시열 등 노론이 주장하는 북벌론의 허구성을 정면 비판하였고, 원경하는 노론이면서도 노론의 일방적인 독주를 반대하여 대탕평을 주창하였습니다. 양득중과 원경하는 영조의 든든한 조력자였습니다.
새벽에 이 글을 쓰다보니 출근 시간에 쫓기어 늘 마무리가 엉성합니다.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