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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 인물로 읽는 한국사 (김영사) 1
이이화 지음 / 김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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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가 오늘날까지 즐겨 읽히는 까닭은 열전(列傳)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기》는 곧 <사기열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2,100년 전에 지어진 책이지만 열전에는 생동생동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열전이 없었다면, 물론 그래도 사료적 가치가 충분히 있어 역사학자들에게 참고서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이렇듯 비전공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는 곧 '사람'의 역사입니다. 역사에서 사람이 빠지면 건조하여 목이 마릅니다. 이이화 선생이 작년에 써낸 《역사》는 그 충분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무미건조하여 읽기 어려웠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전 역사를 한 권에 담았으니, 비록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의 기록을 위한 방편일 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책이 그러하지만, 역사책은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길면 지루하다 하고, 짧으면 내용이 없다 할 것이고, 사건 중심으로 쓰면 사람 향기가 나지 않는다하고, 사람을 중심에 두면 계통이 없다고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지식은 종횡으로 엮어야 제대로 서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예로 들면, 상고사에서 현대사까지 그 흐름도 알아야 하고, 각 시대의 미시사도 깊이 있게 봐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책을 재미있게 보고는 있지만, 저는 아직 이론이나 틀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이번에 나온 이이화 선생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는 저의 역사 지식을 종횡으로 엮기 위한 소중한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사기열전>을 읽고 동아시아 고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일어 나름의 지식을 조금 가질 수 있었듯이, 이 책으로 인해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 크게 일어 지식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목 :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
   지은이 : 이이화
   펴낸곳 : 김영사 / 2008.1.18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2,000원)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의 첫권이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입니다. 머리말을 보면, 선생이 지금까지 역사서를 쓰면서 모은 약전(略傳) 형식의 역사인물 전기가 260여 명에 달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32명의 약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약전은 소전(小傳)이라고도 하는데, 줄여서 간단하게 쓴 전기를 일컫습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32명의 인물에 대해 비교적 짧게 다루고 있습니다. 곶감 빼먹듯이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짧은 분량이다 보니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는 바가 적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우 신선합니다. 제게는 철종, 김방경, 이목, 유운룡, 강홍립, 이덕형, 김육, 양득중, 원경하 등의 이야기가 그러했습니다.

헌종이 젊은 나이에 후사 없이 죽자 세도를 부리던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때 안동 김씨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지를 만들기 위해 강화도에서 땔나무를 하며 푸성귀로 연명하던 원범을 철종에 앉힙니다. 철종은 헌종의 7촌 아저씨뻘 됩니다. 그러니 종묘에서 조카뻘 되는 헌종에게 절을 하는 이상한 꼴이 연출된 것입니다. 왕가의 법도도 세도를 위해 깡그리 무시한 것입니다. 무식꾼인 철종이 궁중에서 온갖 법도를 배웠으나 그가 정사를 제대로 알 턱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14년 간이나 재위했으니. 결국 그는 왕비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정사에 싫증을 느끼고 여색에만 깊이 빠져 요절하게 됩니다. 허수아비로 14년을 재위한 셈입니다. 철종의 등장은 곧 조선왕조를 비추는 해가 석양으로 기울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몽골에 맞서 처절한 투쟁을 벌였던 고난의 시대의 주역 김방경. 대몽항쟁의 상징인 삼별초를 토벌하였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고려 왕조를 지키고자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무신이면서도 절대 무신정권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항몽(抗蒙)과 부몽(附蒙) 사이에서 번민과 눈물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고려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를, 이이화 선생은 새롭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했던 한재 이목. 당시 김일손은 곧은 붓끝으로 권력을 쥐고 횡포를 부리던 이극돈의 비행을 사서에 낱낱이 기록하자, 이극돈이 연산군을 꼬드겨 무오사화를 일으켰습니다. 변방의 한직을 맡고 있던 이목은 김일손 등과 한 패거리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당했씁니다.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에.

유운룡은 명재상 유성룡의 형입니다. 당시에 이미 부기장부를 만든 행정의 달인이며 명리를 떠나 민중을 위해 봉공하였습니다. 강홍립은 광해군 시절 명과 청 사이에서 실리외교로 전쟁을 조율하며, 청에서 8년간 억류생활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왔으나, 인조반정 이후 3개월만에 죽고 맙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은 원만한 성품으로 임진왜란을 지휘했으며, 김육은 공물의 폐단을 바로잡는 등 민중의 고통을 풀어주기 위해 생애를 바쳤던 인물입니다. 이러한 인물을 역사속에서 찾기가 흔치 않다고 이이화 선생은 평합니다. 양득중은 송시열 등 노론이 주장하는 북벌론의 허구성을 정면 비판하였고, 원경하는 노론이면서도 노론의 일방적인 독주를 반대하여 대탕평을 주창하였습니다. 양득중과 원경하는 영조의 든든한 조력자였습니다.

새벽에 이 글을 쓰다보니 출근 시간에 쫓기어 늘 마무리가 엉성합니다.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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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이다 -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대왕 세종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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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 보면 간혹 흘려들었던 선인들의 말이 새삼스레 가슴에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말, 지겨우리만치 당연한 말에 담긴 뜻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 당연하여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가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신은 항상 낮은 곳에 둡니다. 결코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다투지 않기 때문에 허물이 없습니다. 지극한 선은 마치 물과 같아, 노자는 일찌기 上善若水라 했습니다. 말은 쉽지만 알기 어렵고, 알기 쉬워도 저리 살기는 힘듭니다. 저리 살지 못하면서 알았다고 하는 것은 진정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올 한 해, 제 삶이 물과 같기를 바랍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사극의 인기는 줄 것 같지 않습니다. 사극이 인기를 끌다보니 과거에 다루지 않았던 시대를 다루게 됩니다. 올해 주목할 만한 주제는 '세종대왕'과 '선덕여왕'입니다. 세종대왕은 <대왕세종>이라는 이름으로 1월5일 첫방송을 한다고 하고, 선덕여왕은 MBC에서 준비중이라는 데 언제쯤 볼 수 있을지는 미정입니다. 그 외에도 홍길동, 평강공주, 일지매, 허난설헌, 신사임당, 호동왕자와 관련된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극이 준비중인 것은 어정쩡한 소재보다는 고정 팬이 많은 사극을 다뤄 시청률을 확보하겠다는 방송사의 계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책들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습니다. 역사 이야기는 이미 결론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것을 알게 될 때보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것,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제대로 알게 될 때의 지적 흥분이 더 크고 잘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모르는 것을 새로이 익히면 모든 것을 학습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반면, 어느 정도 줄거리를 알고 낯익은 인물들이 등장하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나 책이나 역사에서 많은 소재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은 새롭습니다. 너무나 많이 듣고 배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숙하지만, 정작 그 면모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로 대표되는 여러 업적들의 일부를 알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위대한 업적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여러 원인을 분석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될 때 그 의미가 있으니까요.




   제   목 : 나는 조선이다
   지은이 : 이한
   펴낸곳 : 청아출판사 / 2007.12.10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2,000원)



세종대왕을 다룬 책은 대개가 어린이용입니다. 어른을 위한 책은 정말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세종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작년말에 출간된 <나는 조선이다>가 돋보입니다. 세종에 대해 특정한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매우 대중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세종과 그 주위 사람, 세종 시대와 그 후의 명암에 대해 쉽게 풀어 쓰고 있습니다. 세종에 대한 입문서로 적당할 것 같습니다. 곧 방영될 드라마 <대왕세종>을 보기 전에 가볍게 읽어봄직합니다. 출판사에서도 이것을 염두에 둔 듯 띠지에 '2008년 1월 5일 KBS 1 TV <대왕세종> 방영!' 이라고 표시해두었습니다. <대왕세종>의 원작이 아니면서, 그래도 이 분위기에 묻어 가려는 생각인 것 같은데, 밉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상업적이라고 비판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대중적으로 읽히길 목적으로 만든 책들은 그 속성상 원래 상업적입니다. 내게 필요한 책, 즐거움을 주는 책이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이 책이 온라인서점에서 '세종' 또는 '세종대왕'이라고 검색해도 검색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목에 그런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검색이 안 된 것입니다. 세종대왕이라고 검색했을 때 제일 위에 노출되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보면 제가 이 출판사 직원인 줄 알겠습니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한 것 뿐입니다.

책 내용을 간단히 말씀 드리면, 앞부분에서는 인간 세종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왜 첫째인 양녕대군을 선택하지 않고 셋째인 충녕대군(세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버지 태종이 그렇게 공들인 양녕대군을 폐하고 "너는 할 일이 없으니 편하게 좋은 것만 마음껏 해라"고 했던 충녕을 세자로 책봉하게 된 사연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 전까지 세종대왕은 실록에 기록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수많은 왕자들 중 하나였을 뿐이니까요.

다음으로 세종과 함께 한 전문가들을 소개합니다. 명재상 황희, 소를 타고 다녔다는 맘씨 좋은 재상 맹사성, 제3이 정승이자 꼰대 허조, 바람과 같이 일처리를 했던 도승지 안숭선, 천민 출신으로 조선의 시간을 발견한 조선 유일무이한 과학자 장영실, 양반 출신의 공돌이 이천, 음악의 대가 박연 등.

나머지는 세종 시대와 세종 사후의 어두운 면을 조금 다루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종이 죽고 아들 문종이 즉위 후 3년도 되지 않아 죽고, 그 아들 단종이 세종의 동생 수양대군에 의해 쫓겨나게 됩니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멧돼지 한 마리가 30년 동안 세종이 키워왔던 인재의 꽃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 채 3년도 걸리지 않았다. (p.294)

물론 여기서 멧돼지는 수양대군, 즉 세조를 가리킵니다.

세종대왕에 대해 '가볍게' 훑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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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
시바 료타로 지음, 김성기 옮김 / 창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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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새벽 2시 경에 자꾸 눈이 떠집니다. 그제는 2시에 일어나 독서유감 500호를 썼었고, 어제 새벽에도 2시에 일어났다가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코감기가 심하니 잠을 좀 더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2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냥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몸이 시키는 대로 놔둬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일어나서 움직일만 하니 눈이 떠졌겠거니,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습관적으로 '오늘은 무엇에 대해 쓸까?'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시바 료타로의 《미야모토 무사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달 중순경에 《오륜서》에 대해 쓴 다음,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읽었던 책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 책 표지를 보다가 문득 달마가 생각나 책장에서 라즈니쉬의 달마어록 강의집인 《달마(정신세계사,1992)》를 찾았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사시키 고지로와의 마지막 결투 이후 선(禪)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야모토 무사시 → 선(禪) → 달마'라고 연상했나 봅니다. 《달마》를 펴서 중간중간 대충 훑어 보았습니다. 책을 이렇게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큰 부담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띄엄띄엄 읽다가 가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인 구절을 만나기도 합니다. 홀로 깨어있는 새벽의 여유이기도 합니다.  

라즈니쉬의 해설이 마음에 참 와닿습니다. 달마어록은 달마의 제자들이 쓴 것입니다. 스승인 달마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라 달마의 말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서 참다운 달마를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달마 제자들의 논리이지 달마의 생각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심지어 달마어록을 쓴 달마 추종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달마의 추종자는 있을지언정 제2의 달마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달마가 진정 무엇을 깨달았는지 깨닫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이 달마가 깨달은 것과 같은지는 모릅니다. 그는 제2의 달마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일 뿐입니다. 라즈니쉬도 어쩌면 또 한 명의 달마 추종자일지 모릅니다. 그가 설명하는 것 역시 달마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깨달음은 전수가 되지 않습니다.

스승도 없이 홀로 수행했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천성적으로 선 수행에 적합한 체질이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의 검법은 선을 닮았습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법은 후세에 전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니면 구사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로 전해질 수 없는 성질의 검법이었습니다. 마치 선 수행과 같습니다. 스승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깨달음은 자신의 몫입니다. 깨달음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무사시의 후반부 인생은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지위를 얻으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요구한 것은 녹봉 3천 석이었습니다. 당시 무사시와 같은 로닌(낭인)은 200석 정도 받는 게 일반적이었고 효고노스케와 같이 일급 무사들도 600석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쿠가와 가문의 요시나오가 그 제의를 수락하려 했습니다. 천하제일의 검객이라면 그 정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반대한 사람은 요시나오의 검술 사범인 효고노스케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사시의 검법은 타인에게 가르쳐주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만의 고유한 기(氣)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시나오가 다시 물었습니다.

"좀더 알기 쉽게 소상히 설명해보게."

효고노스케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무사시는 역시 천하제일의 검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검법은 기술적인 면보다는 철학적인 면이 다분합니다. 그가 시합에 강한 이유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정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은 개구리보다 민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뱀에게는 고유의 정기가 있어, 단지 노려보기만 해도 개구리는 풀숲에서 정신을 잃고 꼼짝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뱀은 개구리에게 다가가 삼키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사시는 그 뱀이나 사자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는 만 명 가운데 한 명에게나 있음직한 고유의 정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효고노스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사시의 검법은 남에게 가르쳐주기 어렵다는 겁니다. 무사시가 자신의 검법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시나오는 그제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시사의 검법은 남에게 가르칠 수 없는 거란 말이지 ……."

남에게 가르치지 못하는 검법이라면 높은 녹봉을 주고 검술 사범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요시나오는 결국 무사시를 고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사시가 죽자마자 그의 검법은 니토류, 엔묘류, 무사시류 등의 이름만 남긴 채 명맥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보건대, 무사시의 검법에는 원래 결함이 있었지만 무사시가 자신만의 고유한 정기로 그 결함을 메웠던 것이 아닌가 싶다. (p.237~238)
이 책은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무사시는 아주 흠이 많은 사람이자, 선(禪)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세속적 욕망 또한 강했습니다. 무사시는 관직에 오르고 싶어 했고 결국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가 결국 동굴에서 좌선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인간 미야모토 무사시와 그가 살았던 시대를 편견 없이 알 수 있는 참 좋은 책입니다.

구마모토 외곽의 긴포 산(金峰山) 산중에 있는 레이간도(靈嚴洞) 동굴에서, 속세의 욕망을 다 이루지 못하고, 조용히 앉아 죽음을 맞이하면서 미야모토 무사시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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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명대시야 세트 - 전4권
베이징대학교 중국전통문화연구중심 지음, 장연 외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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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 드릴 책은 <중국문명대시야>입니다. 중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질(전 4권) 정도 소장할 만한 작품입니다. 제가 아직 1권밖에 읽지 못해, 1권을 중심으로 소개 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탄생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1994년 베이징대 국가연구기관인 ‘중국전통문화연구중심(센터)’이 112명의 대표 석학을 초빙해서 4년간 역사, 자연, 생활, 사회, 예술 등 중국문화 각 분야에 대한 원고로 정리하게 했습니다. 이 원고를 바탕으로 중국 국영 CCTV가 150부작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1995년부터 국내외에 방영했습니다. 이후 추가 사진 촬영과 자료 수집을 통해 2,000여개의 도판을 마련했고 5년 간의 작업 끝에 2002년 <中華文明大視野>라는 이름으로 출간하게 됐습니다. 한글 번역본 작업도 내용의 방대함 때문에 번역·편집에만 2년을 소요했다고 합니다. 일단 내용을 차치물론해도 이 정도의 정성을 쏟은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책 전체는 염제와 황제로부터 시작하여 근대 5.4운동까지의 방대한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1권은 중국의 신화에서부터 한나라 시대까지의 문명입니다. 기본적으로 역사를 다루고, 해당 시기의 인물, 문화, 철학, 지리, 문학 등을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다룬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을 순서 대로 읽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필요할 때 꺼내 보면 됩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묵혀 뒀다가 꺼내 읽기에는 참 아깝습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순서 대로 읽었는데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5,000년의 방대한 역사를 담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책 4권에 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5,000년 역사 중에서도 중국인들이 생각하기에 꼭 알아야 할 알짜만을 추려 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내용이 방대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본문 문장도 평이해서 결코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만 유독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을 읽다 보니 남의 나라 얘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아마 중국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우리 역사, 즉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 뿐만 아니라 열두 띠 이야기와 청명, 한식, 설날 풍속 등의 문화를 다룬 부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절기와 풍속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데, 우리에게 들어와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하며 읽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목적을 가지고 중국을 공부합니다. 중국을 알기 위한 방법은 많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문학, 여행기 등 중국에 관련된 책을 보거나 직접 중국을 다녀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 단시간에 가장 포괄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이 책보다 더 유용한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가히 중국에 관한 지상(紙上) 박물관이라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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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헤로도토스 역사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2
권오경 지음, 진선규 그림, 손영운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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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 대한 인식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저부터 그러합니다. 일전에 허영만 선생님을 만나뵐 기회가 있었는데, 여러 얘기 중에서 60,70년대 연례 행사 중 하나였던  '불량만화 화형식'이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동대문운동장, 남산 등에서 만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량만화 화형식'을 했습니다. 지금은 어른들이 직접 만화책을 사서 읽게 합니다. 물론 이른바 '학습' 만화라 불리는 것에 한정되긴 하지만요.

따지고 보니 제가 최근에 접했거나 재미있게 읽은 것 역시 크게 보면 '학습' 또는 '역사' 만화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 시리즈가 그러하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 고우영의 『삼국지』, 『초한지』, 『십팔사략』, 백무현의 『만화 전두환』, 『만화 박정희』 등이 그러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만화로 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서울대 선정 인문 고전 50선'이라는 부제가 달린, 선뜻 손이 가기 힘든 책들이지만 만화라서 부담이 없었습니다. 『군주론』은 예전에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었지만,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이번에 만화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앞으로 나올 50선의 목록을 보니 제가 읽어본 책들보다 그렇지 않은 책들이 더 많았습니다. 약간의 자괴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지금 어른들 중에서 그러한 고전을 제대로 읽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에게도 입문서는 필요합니다.

혹자는 이러한 '입문서'가 저자의 주관적 평가가 심해 처음부터 고전을 곡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저는 이런 '입문서'야말로 꼭 필요한 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 처음부터 매운 김치를 주지 않고 물에 씻어서 주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에 씻은 김치가 무슨 김치냐고 하시는 분들 계시면 2~3살 애들에게 시뻘건 김치를 직접 한번 먹여보세요. 아마 십중팔구 그 애는 앞으로 영영 김치와 인연을 끊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논어』, 『맹자』, 『장자』, 『주역』, 『사기』 등을 읽을 때 처음부터 (물론 한글 번역본이지만) 두터운 원문부터 읽지 않았습니다. 해당 고전의 입문서로 적당한 책을 골라 그 책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 저자는 어떠한 사람이고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씌어졌는지를 먼저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두터운 고전이라도 원문을 꼭 읽고 싶다는 충동과 읽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읽고 싶고,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많게는 수천 년 전에 씌어진 고전을 읽을 수 있게 만듭니다. 원본을 읽고 싶게 만드는 힘, 이것이 입문서의 가장 큰 역할이자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입문서의 폐단을 우려하는 전문가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예전에 동양 고전을 읽기 위해 여러 입문서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함량 미달의 책들이 참 많았습니다. 부피가 작다고 입문서가 아닙니다.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 내용, 가치를 곡해해서는 안 됩니다. 흥미 있는 일부의 내용만 소개하여 마치 그것이 그 책의 전부인 양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레 미제라블』의 극히 일부를 들어내어 『장발장』으로 소개한 예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은촛대를 훔쳤다가 밀리에르 신부의 자비로운 마음에 감동하는 것이 『장발장』 이야기의 끝인 줄 알고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그 다음부터인데 말입니다. 원칙주의자 자베르, 비련의 여인 팡틴, 그의 딸 코제트, 코제트가 사랑한 공화주의자 마리우스,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있게 한 당시 시대적 배경 등.

그런 의미에서 주말에 읽었던 만화 『군주론』과 『역사』는 입문서로서 충분한 함량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함량을 측정하고 평가할 만한 능력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군주론』을 직접 읽고, 그에 대한 여러 소개서를 함께 보았던 적이 있기에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양의 텍스트가 포함된 촘촘한 그림을 보면서 마치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인문고전편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문가가 풀어 쓴 내용 또한 지루하지 않게 그 핵심적 내용과 배경지식을 익힐 수 있게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군주론』을 나름대로 흥미 있게 읽고 감명을 받았지만, 저라면 이렇게 풀어 쓸 능력이 없습니다. 두 책의  글쓴이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아들 딸에게 읽혔다거나, 읽힌다는 심정으로 썼다는 그 말이 머리말을 쓰기 위해 그저 뱉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군주론』보다 『역사』를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이유보다는 『군주론』은 이미 전에 읽었었고, 『역사』는 이 만화를 통해 처음 접했기 때문입니다. 전체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2장에서는 '역사(history)'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헤로도토스에 대해, 그리고 그 역사라는 말에 담긴 뜻에 대해, 『역사』라는 책의 의의에 대해 참 쉽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0장까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300〉에서 보았던 스파르타의 왕 레오디다스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가 지휘한 테르모필라이 전투는 이 책 9장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물론 영화 〈300〉의 장엄함을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근육질의 배우들 대신 앙증맞은 캐릭터들이 주인공들입니다^^.

어른들이 먼저 교양 삼아 읽어봄 직합니다. 집에 만화책을 두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읽게 됩니다. 일석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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