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휴가 첫 날. 동주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으로 나의 휴가는 시작됐다.
어린이집이 방학을 했고, 아내의 일이 갑자기 많아져 - 책 만드는 일을 하는데, 가끔 마감 때면 매우 바빠진다 - 요 몇 일 동주를 외할머니께서 봐주고 계셨다. 겸사 겸사 장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딱 하루 아내와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을 했었다. 어디를 갈까, 동주가 생긴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어 계획 세우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를 미리 눈치 챘는지, 엄마 아빠 둘만의 시간은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그제 새벽에 열이 39.5도까지 올랐다. 해열제를 먹이고, 아침에 또 열이 올라 또 해열제를 먹이고 병원으로 갔다. 목감기에 축농증기가 좀 있다고 처방을 해주시는 대로 약을 지어 왔다. 낮잠을 자는 동안에도 열이 39도가 넘어 해열제를 먹였다. 다행인 것은 열이 올라도 아이의 표정이 밝고 노는 모습이 즐겁다는 것이다. 오로지 고마울 따름이다. 금방 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애들은 아프면 보통 일주일은 가는 것 같다. 그 일주일은 나의 휴가 기간이다. 으흐흐 ㅠ.ㅠ

뭐, 이왕 이렇게 된 것, 이번 달 들어 좀 저조했던 책읽기를 해야겠다. 아이와 함께 놀면서 책읽기는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밤에 잠자는 시간에만 좀 읽어도 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어야겠다. 이번 기회에 완독해야겠다. 서해문집에서 나온 걸로 전체 3권짜리를 사뒀다.
범우 문고 중에서 《문장강화》 《소크라테스의 변명》 《북학의》 《모택동의 실천론 外》 등등을 읽고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까지는 꼭 읽고 싶다.
아는 분이 추천해준 《채굴과 제련의 세계사》라는 책도 시간이 되면 봐야겠다.
참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TIME POWER 잠들어 있는 시간을 깨워라》도 있었지. 흐흐, 시간이 만만치 않겠는 걸.

다행히 동주가 좀 일찍 나으면 어디 잠깐 가족끼리 놀러갔다 오면 좋겠다. 그건 딸의 건강 상태를 봐가면서 해야겠다. 괜히 무리했다가 탈나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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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이 두 가지를 두고 내가 어느 유형이냐고 묻는다면 아침형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아침형 인간은 지지난해 말부터 작년 초까지 한창 유행했다. 이제는 한물 간 듯하다. 한물 간 유행일지 모르겠지만 내겐 진행형이다.

주위 사람들 중에는 - 아니 대부분 - 내가 선천적으로 잠이 없는 줄 안다. 네 시간을 자면 하루를 사는 데 별 무리 없고, 다섯 시간을 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가끔 내 입으로 말하면서 반복하여 상기하니, 노인네처럼 잠이 없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

세상에 어디 처음부터 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미 중고등학교 때 잠자는 것 역시 습관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던 것이 수면 시간을 비교적 내 뜻 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 이유라면 이유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일단 억지로 몇 번 새벽에 일어나 보니 그 성취감이 상상 이상이었다. 그 때는 열 두 시에 자서 새벽 네 시에 일어났는데, 새벽 네 시부터 여섯 시까지 하는 FM 라디오를 여유있게 들을 수 있었다. '나를 이겼다'는 성취감과 '새벽의 여유'는 그 어떤 느낌보다 강렬했다. 새벽 시간에 특별히 공부한 것 같지는 않다^^. 중학교 때 시작한 '네 시간 자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별 무리 없이 진행됐다. 내 머릿속에 수면은 통제 가능하다는 인식이 깊이 박히는 시기였다.

그러나 그 습관을 되찾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교 때의 흐트러진 생활, 사회 초년기의 무작정 일하기 기간을 거치는 동안 '새벽에 일어나기'는 먼 옛날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기를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01년이었던 것 같다. 갑작스레 시작한 사업이 허무하게 실패로 끝나게 됐을 즈음, 그 실패가 주는 패배감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패배감을 긍정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 그 처음은 Windows2000 Active Directory.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액(?)을 들여 주말반 수업을 들었다. 겨우 몇 번 듣지도 않았고, 수업 내용도 크게 마음에 들지도 않았지만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처음 몇 번 들은 것을 정리할 필요가 생겨 개인 홈페이지를 새로 만들었다. 그 때 만든 것인 바로 ww.itmembers.net 이다.
서버에 남은 낡은 파일을 살펴보니, 2001년 9월 18일에 <재미로 배우는 윈도2000 액티브 디렉토리>라는 강좌를 처음 개설했다. 사실 '강좌'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민망했지만, 내가 아는 것을 조금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 그렇게 붙였다. 이틀 뒤에 <재미로 배우는 리눅스 입문>, 몇 달 뒤에 <재미로 배우는 비주얼베이직 6> 등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인터넷 정보검색사, 오라클, PHP, XML, 자바스크립트 등등을 차례대로 시작했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 정리한 시간이 바로 새벽시간이었다.

패배감을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무언가에 몰입하기 위해 '배웠고', 이를 정리하면서 '익혔으며', 홈페이지를 통해 나의 지식을 '나누었다'. 전화위복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패배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배우고 익혀서 나누는 새로운 즐거움을 얻게 됐다. 소중한 나의 습관을 다시 찾았고, 새로 얻은 즐거움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세포분열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독서노트다. 홈페이지의 주제는 어느새 강좌에서 독서노트로 완전히 옮겨왔다.

말이 샜다. 원래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여전히 힘들 때가 많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데, 추억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아직도 새벽에 일어나면서 힘들어 할 때가 많다. 아마 주중에 최소 한 번 이상을 마시는 술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술을 마셨으니 오늘을 괜찮다는 식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 타협하고 싶지 않다. 타협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안의 내가 나를 무시하는 것 - 나는 그것이 싫은 것이다. 타협은 금연 중의 담배 한 모금처럼 한 순간에 좋은 습관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애써 다시 찾은 좋은 습관을 다시 잃어버리기는 정말 싫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새벽에 일어나기는 습관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훈련 프로젝트'이다.

성상근 습상원 性相近 習相遠 이라 했다.
가진 것도 없고 똑똑하지도 못한 내가 유일하게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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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내 생일입니다.
이미 한참 전에 회사 내 책상 달력에 빨간 글씨로 써두었던지라 그냥 지나칠 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늘 바라보면서도, 그 날이 오늘인지는 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 제가 써놓고도 헷갈리는 표현입니다. ㅎ) 그렇게 그동안 시간은 제멋대로 가고 저도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 선물

아내 선물을 뭘로 살까,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딱히 지금의 아내 뿐만 아니라 과거 그 누구에겐들 선물하고 감사를 표하고 칭찬을 하고... 뭐, 이런 것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산 지도 벌써 7년인데, 여전히 이런 기념일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저란 놈을 생각해 보건데, 뭐 깊게 생각할 것도 없지만서두, 능한 잡기 하나 없고 어디 감동 줄 만한 이벤트 하나 기획하지 못하는 놈입니다. 어휘로 보나 어투로 보면 (각고의 노력 끝에) 저를 경상도 놈이라고 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이런 면을 보자면 여전히 영락없는 '경상도 보리 문디'입니다.

회사에는 여자를 대하는 것 만큼은 자타 공인 프로페셔널이 한 사람 있습니다. 곧 장가갈 총각이구요, 물론 아무 여자한테나 껄떡대지는 않습니다. 한 1년 넘게 제가 봐온 바로는 그 '공인'을 어디서 받았는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어쨋든, 저보다는 한 수, 아니 백 수 위인 것만은 틀림 없습니다.
그 총각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참~ 속옷을 사가래두요! 제발 시키는 대로 좀 해봐요. 손해 안 본다니까요.' 나 참, 누가 뭐랬남...

땡퇴근을 해서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이리저리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정말 속옷을 사? 8호선을 타다가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성북행 국철을 타고 내릴 때까지 고민... 하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안 산다.

그리고 동네 전철역에서 내려 근처 빵집으로 갔습니다. 꽃집은 통과(집에 장미꽃 몇 송이 있는데 더 가져가봐야 처치 곤란. 그리고 오늘의 목표는 최대한 일찍 들어가는 것!).그리고 제일 작은 케익 하나 샀습니다. 케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그래서 차마 초 하나 달라고 하기도 뭣한 손바닥만한 케익을 사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결국 초를 달라는 말은 못했습니다. 한 두개 필요한 것도 아닌데...)

아내가 문을 열고, 저는 조막만한 케익 하나 내밀며,
"이번에 선물 따로 준비 못했어. 그래도 내 맘 알지?"

"그~으럼, 어여 들어와요. 오늘 덥지?"

이것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 끝.

# 외식

어제 약속하기로는, 오늘 저녁은 나가서 근처 스파게티 전문점에서 스파게티를 먹으려 했습니다. 제가 그런 이상한(?)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내가 자주 먹을 일이 없었던지라.
그런데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덥고, 게다가 딸의 몸 상태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아, 피자 한 판 시켜 먹는 것으로 오늘의 外食은 偎食으로 대체.
외식도 끝.
* 偎 : 가까이할 외, 사랑할 외. 고로 偎食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서 먹는다. (물론 방금 지어낸 말)

# 행복한 변명

쓰고 보니 웃깁니다. 제 못난 자랑을 이렇게 배실배실 실없이 할 수 있다니. 오늘 새벽까지 봤던 고우영의 만화 속 못난이 유방처럼 그렇게 웃으면서 글을 쓰다니. 아마 맘 속으로부터 행복해서겠죠?

이 즈음해서 저를 좀 삐딱하게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집니다. 저 위에 썼던 확인 불가능한 '공인' 총각의 눈이 그러할 것 같고, 올해 시집을 간 두 명의 회사 동료의 눈도 그러할 것 같고...

그래서 변명을 좀 할까합니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와, 정말 오랜만에 피자 한 판 시켜 먹은 것. 그냥 마음으로 축하한다고 말한 것. 진심으로 받아 준 것. 이것이 행복합니다.

큰 자극에 익숙치 아니하여 오히려 작은 울림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리 부부가 사는 법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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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은 한을 세웠다.
그 뒤에 子房(=張良)이 있었다.

장량에게 따라다니는 설화가 하나 있다. 늙은 노인의 변덕스러운 요구를 들어주어 책 한 권을 얻었다는 것이다. 아마 사기에 나와 있을 것이다. 사마천은 이 이야기를 통해 몸을 낮추는 것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러 준 것 같다. 또한 난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수용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자방에게는 기막힌 계책이나 간계가 없다.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 뿐이다.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유방의 기세가 등등하면, 아직 천하가 평정되지 않았으니 검소하게 입고 먹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직언한다. 민심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방의 코드는 공심위상攻心爲上이다. 민심을 사는 것을 으뜸으로 생각한다. 治國安家는 得人也요 亡國破家는 失人也라. 나라가 안정되고 집안이 평안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요,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몰락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유방은 천하의 날건달이다. 남들이 그렇게 평가한다. 그러나 속지 말자. 겉모습이 그러할 뿐이다.
유방은 들을 줄 안다. 천하의 날건달이지만 오로지 '들을 줄 아는 지혜'만으로 천하를 손에 얻는다. 훗날 유방 곁에 한신이 나타난다. 소하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다. 하급장교에 불과한 한신을 일약 대장으로 발탁한다. 결과론적으로 환상적인 시스템 구축이었다. 전체적인 전략은 늘 자방의 몫이었다. 야전사령관은 한신이 맡았고 후방의 행정관리와 병참은 소하가 책임졌다. 살다보면 '들을 줄 아는 지혜'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느낄 때가 있다. 말이 '듣는' 것이지 실제로는 '듣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갖추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참모는 말해야 하고 보스는 들어야 한다. 결정은 그 뒤의 문제다.

유방의 소탐으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유방은 항우 앞에 무릎을 꿇는다. 굴욕은 운명이 즐겨 사용하는 장난이다. 무겁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역사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항우와 맞붙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유방은 그마저도 다른 사람(한신과 팽월)의 손을 빌어 단 한 번의 승리로 45세에 천하를 얻었다. 유방은 수많은 '전투'에서 졌지만 결국 '전쟁'에서는 이겼다.
자방은 하나 하나의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는 데는 그리 탁월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전체 판도를 움직여 대세를 장악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한 전략가였다.
또한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그는 애당초 황제 유방의 소꼽친구도 아니요, 가신도 총신도 아니었다. 다만 역사가 자신에게 준 소명만을 완수했을 뿐이다.
새색시처럼 고운 얼굴의 병약한 장량은, 유방이 죽고 8년 뒤에 세상을 뜬다.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이름 하나 남겨두고.

나는 이 회사를 만들 때 자방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여전히 현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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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책을 뒤적이다 낯익은 책갈피 하나 발견했다.
책갈피에는 "함께 가자 우리" 시가 씌여 있고, "외대앞 죽림글방"이라는 상호가 분명하게 찍혀 있다.

상념에 잠긴다. 죽림글방은 외대 앞 사회과학 서점이다. 대학 초년 시절, 대학교 앞에는 사회과학서점이 있었다. 가까운 경희대, 성균관대를 비롯해 대부분의 대학교 앞에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성대 앞 풀무질을 포함해 겨우 몇 개 남아있는 것 같다.

죽림글방은 책을 사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주로 약속 장소로 활용됐다. 죽림글방 앞에서 만나든지, 아니면 죽림글방 앞에 메모를 해둔다는 식이었다. 휴대전화는 커녕 삐삐도 없던 때라 이런 식으로 약속을 정했었다.

나의 대학생활은 이 서점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그 때 책은 그리 많이 읽지 않은 것 같다. 전공서적보다 더 의무적으로(?) 읽어야했던 책들이 있어 주로 그것을 구입했다. 오히려 나에겐 책보다 민중가요 테이프를 사는 곳으로 더 애용했다. 비합법 테이프를 일상적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민중가요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테이프를 꽤 많이 사모았다. 전노협, 노동자노래단, 전교조, 노래마을, 새벽, 예울림, 전대협노래단, 조국과청춘, 민족음악연구회, 정태춘, 꽃다지 그리고 메아리, 노래얼을 비롯한 각 대학 노래패 공연 실황 등등
이 소중한 기록들은 군대에 갔다 오면서 사라졌다. 나의 짐을 분산해 놓았는데 제대하고 보니 책들이며 테이프며 많이 사라졌다. 테이프는 끝내 몇 개 건지지 못했다.

당시에 민중가요도 가려 불러야했다. 나와 나의 선후배들은 주로 노동자의 투쟁에 관한 노래를 자주 불렀다. 전대협에서 보급되는 노래는 잘 안 불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웃고 있지만, 그 때는 그랬다. 심각했다.

그러나 노래라는 것이 어디 의식적으로만 다가갈 수 있는 것이겠는가. 술자리에서 노래는 정파(?)를 뛰어넘었다. 최소한 나에게는.
통일노래한마당 실황 테이프에는 불멸의 곡 "진혼곡"이 있다. (이 테이프는 지금 내게 없으나 다행히 PLsong.com에서 들을 수 있다.)

    포연이 자욱히 피어오르는 저 언덕 묘지 위에
    피에 젖은 흐느낌 울려 퍼지어 살아 귓가에 넘실거린다
    피분수 솟구쳐 붉게 드리운 흰 옷에 꽃망울
    상처 남은 가슴 위로 분노의 염원이 숨쉰다
    떨리는 저 몸부림 목메인 그 함성으로
    쓰러져간 그대 원혼 가슴에 남아
    타올라라 복수 복수를 위해 굽이쳐라 해방을 위해
    ▶ 노래듣기
지금 보면 저 가사 섬찟하지만, 직접 들어보라, 아직도 살이 떨리는 전율을 느낄 것이다. 어디 섬찟한 가사가 저것 뿐이더냐. 대부분의 노래가 저러했다. 분명 저 시대는 - 비록 겨우 십 수년 전이었지만 - 피끓는 젊은이들이 저런 노래를 만들어 부를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지금 나에게 사회와의 투쟁은 현실이 아니라 향수다. 이것이 정당하다거나 당연하다거나 잘났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부끄럽지만 그러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투쟁이 삶이 되지 못하고 기억에만 남겨진 것이다.
가끔 옛 노래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 느껴진다. 부끄러워진다.
부끄러운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시선이 남이 아닌 나에게로 고정된 것과 삶이 치열하지 못하다는 것! 바로 그 때문이다.

* PLsong.com 사이트의 민중가요 노래패 바로가기를 링크합니다.


** 80년대에 나온 노래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90년대에 나온 "민들레처럼"과 "희망의노래"를 좋아했습니다.
▶ 민들레처럼 (꽃다지)
▶ 희망의 노래 (류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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