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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 풍경》의 부제는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책의 제목과 부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보다 더 어울리는 제목은 없을 성 싶습니다. 이 책의 장르는... 이런 종류의 책을 처음 읽어봐서 혼란스럽지만, 여행기를 가장한(?) 심리학 입문서로 분류하면 어떨까 하네요.
김형경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가 책장에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결혼 전 아내가 읽었던 책입니다. 95년 경인가, 《세월》이라는 3부작을 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첫 권을 읽고 울었던 기억, 그리고 2권과 3권을 차마 읽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참 '아픈'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책은 지금 제게 없습니다. 김형경에 대해선, 그 '느낌'이 전부입니다.
그런 제가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어느 선배의 리뷰를 보고 나서입니다. 소설이 아니라는 것도 이 책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김형경의 소설은, 제대로 읽어본 것이 단 한 편도 없음에도, 가슴이 시리고 아파서 현실을 사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책 선정은 성공이었으며, 그녀의 여행기이지만 나를 되돌아 본 의미있는 심리 여행이었습니다. 책 뒷장에는 마치 내가 여행을 한 듯, 연필 메모가 빽빽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메모를 참조하여 리뷰를 쓸까 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유럽과 중국 등을 여행하며 느낀 것을 기록한 여행기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여행기는 그저 서점에서 책 분류를 쉽게 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자가 오랜 세월 감내해야했던 정신적 장애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 그러는 동안 또는 그 후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얘기들을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나 쓰일 법한 주제들로 다시 구성한 것입니다. 이 책 각 꼭지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의식, 사랑, 대상 선택, 분노, 우울, 불안, 공포, 의존, 중독, 질투, 시기심, 투사, 분리, 회피, 동일시, 콤플렉스, 자기애, 자기 존중, 몸 사랑, 에로스, 뻔뻔하게, 친절, 인정과 지지, 공감, 용기, 변화, 자기 실현
위의 주제는 모두가 제각각인 것 같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 연결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처음의 주제(무의식)를 심화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인간의 부정적 속성을 먼저 파헤치고 종국에는(다행히도!) 긍정적인 속성으로 끝을 냅니다.
그러나 책 읽는 내내 저자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대체 인간은 유년으로부터, 그리고 부모로부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p.55)
저자는 시종일관 현실의 모든 심리적 장애의 근원을 '유년기'의 경험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프로이트나 융의 심리학에서 빌어온 것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모든 것이 과거 유년기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가설' - 저자는 진리라고 믿고 있지만 - 을 저는 받아들이기 '싫었습니다.' 한마디로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왜 모든 심리적 장애의 일차적 원인을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유년기의 환경 탓으로만 돌릴까, 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그것은 한결같이 부정적인 경험이었으며, 그것은 사랑이 아닌 분노, 기쁨이 아닌 우울함의 근원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분노와 우울, 불안과 공포의 원인으로, 투사와 회피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책장을 덮을 때 쯤, 이러한 거부감은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책 속의 얘기들을 종합해 하나로 엮어보면, 결국은 모든 얘기가 저자 자신이 정신적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드러내기 싫은 치부를 가감없이 다시 드러내어 극복 결과를 확인하며 그 과정을 되새기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자의 '확신'과 '경험'에 대응할만한 저의 논리는 빈약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비록 책에서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저자의 정신분석을 통한 장애 극복 과정에서 터득한 혜안이 없이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을 얘기들입니다. 그 극복 과정의 핵심은 아마도 유년 시절로부터 비롯된 장애와 집착과 분노와 우울함을 '인정'하고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로부터 출발하여, 잠재된 분노를 쉽게 노출하여 없애버리고, '콤플렉스'를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의 근원으로 받아들이고,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인정과 지지'보다는 오히려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인 '공감'의 의미를 깨닫기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결국 그리하여 세상은 원래부터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坪만?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의 모든 부정적인 속성은 대개 유년기의 경험으로부터 형성되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기 존중감'은 결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천부적으로 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습득해서 터득해야 하는 삶의 기능이라고 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 새해를 맞이하며 나의 '사명 선언서'를 다시 쓸까 하는데, 이 기회에 나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 보고, 긍정적 속성을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이 없이 인정하며, 부정적 속성을 열등감이나 자기 비하감 없이 시인할 수 있는 시간도 함께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사니엘 브랜든의 말처럼,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은 이와 같은 과정이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으니까요. 또한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 없이 내가 바라는 모든 것들 중 단 하나도 이룰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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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나에 대해 생각해 보기]
극적으로 구성된 소설, 갈등 관계가 복잡한 드라마, 가슴 아픈 논 픽션 다큐멘터리... 저는 이런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김형경의 논리대로라면 이것 역시 유년기에 형성된 무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상황,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방어기제인 '회피'이거나, 위험 상황에 대한 반응의 일종인 '불안' 또는 '불안장애'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유년기에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경험이 나로 하여금 갈등 관계가 복잡하거나 선명한 이야기를 싫어하도록 만든 것일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짚이는 면이 있기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