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클럽 - 싸우지 않고 성공하는 직장 서바이벌 가이드
김정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제가 <비굴클럽>에 대해 처음 안 것은 2002년 여름쯤이었습니다. 당시 다니던 회사가 여러 계열회사와 합병 절차를 거치고 있던 때였는데, 회사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하였습니다. 저녁에 삼삼오오 회사 근처에서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날들 중 어느 날, 우연히 김정선 팀장과 술 한 잔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 때의 멤버가 정확하게 누구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여하튼 그 때 그 자리에서 <비굴클럽>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많은 얘기가 오가던 중 김정선 팀장이 제게 "비굴클럽에 가입하지 않으시겠어요?"라고 했습니다.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 비굴클럽이라니!
비굴클럽은 말 그대로 비굴한, 비굴함을 솔직히 드러내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내가 거기에 왜 가입해? 이 천하의 나 잘난 손병목이 말이야!'

그 이후로 정선 팀장과는 술 마실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얼마 후 정선 팀장과 그의 팀이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내 기억 속에 비굴클럽은 그렇게 사라져갔습니다.
2004년 1월에 갓 창간된 《herstory》라는 여성잡지를 한 권 샀습니다. 한겨레에서 만든 조금은 다른 여성잡지라고 해서, 아내를 위해 한 권 샀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사 중에 <비굴클럽>이라는 꼭지가 있었습니다. '어라! 이거 정선 팀장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런 말을 사람들이 실제로 쓰네!'라며 신기해하며 기사를 읽었는데, 아뿔사, 글쓴이가 김정선 팀장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내용은 '내가 먼저,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비굴클럽에 대한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출간되었습니다. 인터넷 서점을 우연히 돌아다니다가 또 다시 '비굴클럽'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는 '혹시'하는 심정에 정보를 봤더니 예상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정선 팀장이 그 동안의 비굴클럽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herstory》에서 봤던 그 내용 역시 '한 박자 빨리 내가 먼저 움직이자'라는 소제목을 달고 책 속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비굴클럽》의 소제목으로 '싸우지 않고 성공하는 직장 서바이벌 가이드!'라고 적혀 있는데, 으악,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이드라! 이런 제목에 대한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 있는 저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자기관리와 성공학에 대한 내 사상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벤자민 프랭클린, 새뮤얼 스마일즈, 데일 카네기, 나폴레온 힐, 맥스웰 몰츠, 지그 지글러에서 우리나라의 공병호, 구본형에 이르기까지 내노라하는 '자기관리 전문가'들의 얘기를 정면에서 들이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의 성공학 책과는 근본부터 다릅니다. 차원을 달리하므로 같은 위치에 두고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잠깐 비굴하지 못해 부러지고 꺾이는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을 숱하게 보아온 13년차 직장인의 조언입니다. 그 조언의 화두는 '비굴'이며, '천하다'는 뜻까지 내포한 '비굴'에서 'Be Cool' 경지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정말 현실적으로 '직장 생활 잘 하기 위한' 방법이 정선 팀장의 특기인 톡톡 튀는 말빨(!)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직장의 활력소 뒷담화. 허를 찔러 회의실에서 회의를 가장하여 뒷담화를 즐겨라' '인사도 한 박자 빨리, 칭찬도 한 박자 빨리, 사과도 한 박자 빨리', '내가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잠시 자존심을 꺾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등 나름대로(?)의 직장 서바이벌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고, 반면에 심하게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마라톤이고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괜히 무거운 총대 메고 고단하게 동분서주하지 말고 차라리 한 발자국 떨어져서 문제를 들여다보자'와 같이 그 의도는 이해하지만 근본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명제들이 많습니다.

직장생활이 지겹거나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하신 분, 그러나 두툼한 원론 성공학 서적에 별 관심이 없으신 분들, 특히 여성으로서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느끼시는  분들! 내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책으로 가볍게 기분전환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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