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자전거 앞 바퀴에 소형 발전기를 달아 움직였습니다. 자전거가 가만히 서있을 때는 불이 켜지지 않고 움직여야만 불이 켜졌습니다. 빠르게 달리면 최대 6볼트까지의 전압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는 1.5볼트 건전지 4개 분량으로 소형 후레쉬 하나는 거뜬하게 켤 수 있습니다.(정말 열심히 달릴 때 말입니다.)

느리게 달리는 자전거의 불빛은 겨우 몇 미터 앞만 보여줍니다.

어릴 때 느낀 자동차의 불빛은 정말 밝았습니다. 안방 천장에 일자로 들러붙어 있는 형광등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어두워지면 켜지는 도로변의 가로등은, 그래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의 불빛이 저리도 밝은데 자동차만 다니는 저 길가에 왜 가로등을 켜는 것일까? 그것도 얼마 건너 하나씩 촘촘히...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지만 한때는 그게 궁금했습니다.

가로등이 모두 꺼진 도로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만 의존하여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불빛이 겨우 20여미터밖에 안 비치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으며 속도를 낼 수도 없습니다.

가만히 서있을 때 그렇게 밝고 멀리 보이는 듯한 불빛도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는 겨우 1초 앞의 세상만 보여줄 뿐입니다.

나는 지금 어느 정도의 앞 날을 비쳐줄 수 있는 등(燈)을 가지고 있는가?
자전거 전등처럼 몇 발자국 앞을 겨우 쳐다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겨우 1초 앞의 세상만 보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게 전부라고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가는 길을 환히 비추고 있는 가로등이 언제나 나를 비쳐줄 것이라고 믿는 건 아닐까?
가로등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만 밝히고 있다. 모두들 그리로 가고 있고, 나 또한 그리로 가고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은 나의 집이 아니다. 내가 지나가는 길일 뿐이다.

어슴프레한 새벽녘 가로등 아래로 운전하며 별별 생각을 다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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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낙엽들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흩날리는 새벽 풍경은 음산하기까지 합니다.

올해도 채 두 달이 남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 출근하면서 도로 위를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낙엽을 보며 잠깐이나마 올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목표는 핏빛보다 선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명한 목표는 애초부터 없었고, 다만 '조금만 더 현실에 집중해 보자, 그러면 어떤 길이 보이겠지'라는 생각으로 비교적 현실을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올 한 해도 흘러가고 있지만, 아직 손에 잡히는 또렷한 나의 목표가 없습니다.

그러나 목표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선명해지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진정 내가 해야할 일을 알게 되고, 그 때 나의 가슴 한 복판을 넓게 차지할 그런 목표가 생기지 않을까요.

돈 10억을 만들자! - 정말 선명한 목표이기는 하지만 제 가슴을 '감동'시킬만한 것이 아니기에 이런 목표는 제게 별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요즘 들어 더욱 분명해 지는 것은,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에 몰입할 수 있을까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현실이 그렇게 불만족스럽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현실에 충실하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의 피끓는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을 정점으로 제 인생은 아직 저점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저점이 아직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손절매할 시기는 아직 아니라는 것입니다.
관망하되 좀 더 치열한 자기 노력이 뒤따라야 할 때입니다.
관망이 지나치면 무관심이 됩니다. 이를 깊이 경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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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전 새벽 풍경은 늘 아름답지만, 가을비가 내리는 오늘은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새벽에 일어나, 주말에 건너뛰었던 요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말이 요가이지, 옆에서 누군가 지켜본다면 엉성함 그 자체일 것입니다. 비디오 화면을 따라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그 자세는 참 다릅니다.
땅바닥에 닿아야할 손은 정강이 근처에서 힘겹게 떨고 있고, 허벅지에 닿아야할 머리는 허공에서 땀만 삐질삐질 흘려댑니다.

그러나 조급하지는 않습니다.
새벽부터 나의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 것은, 묘기를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과 몸을 갈고 닦기 위함이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요.
문제는 육체의 뻣뻣함이 아니라 정신의 번잡함입니다.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집중해야 함에도, 몸만 부처 자세일 뿐 마음은 온 사방을 요동치는 아수라 상태입니다. 잡념(雜念) 그 자체입니다.

다음은 원성 스님의 『마음』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마음이란 참 이상한 것이지요
나는 여기 있는데 천 리 밖을 나돌아다니지요
나는 가만히 있는데 극락도 만들고 지옥도 만들지요
장마철도 아닌데 흐려졌다 맑아졌다
부뚜막고 아닌데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온도계도 아닌데 높아졌다 낮아졌다
고무줄도 아닌데 팽팽해졌다 늘어졌다
몸은 하나인데 염주알처럼 많기도 하지요
소를 몰듯 내몸을 가만 놔두지 않게 채찍질하다가도
돼지를 보듯 내 몸을 살찌우게 하지요
마음 문을 열면 온 세상 다 받아들이다가도
마음 문을 닫으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지요

지혜로운 연꽃님 '마음이란 이것이다' 한 말씀만 해 주세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네요
어서 물동아리를 깨고 하산하세요




이번 한 주, 부지런히 연마하여 단 몇 분이라도 온전히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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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노 대통령은 측근 최도술씨 수뢰 의혹과 관련하여 비장의 각오를 밝혔습니다.(지금 밤 12시가 넘었으니, 벌써 어제네요.) 다름 아닌 대통령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어디 우리나라뿐이겠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과거 프랑스에서 어떤 정책적 문제로 인해 한 번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 아마도 재신임을 받지 못해 퇴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밤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다 오니, TV 뉴스 첫 꼭지부터 마치 금방이라도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질 듯이 대통령 재신임 기사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은 비록 겉으로는 부적절한 언사라고 비판하면서도 당장 국민투표를 하자고 합니다. 부적절하지만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한나라당에 아주 유리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나 봅니다. 부적절하면 그 말을 철회하라고 해야지, 오히려 국민들 모두 투표하자고 큰 소리 칩니다.

지금 이 시기가 어느 때보다 불리하다는 걸 잘 아는 대통령은 스스로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미 노 대통령의 말과 기존 정치권의 반응에서 그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너무나도 가벼운 처사?

한나라당이나 잔류 민주당의 공통된 목소리입니다.
한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 원수가 너무나 경솔했다. 늘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경솔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노 대통령은 '정치 개혁'과 '국민 참여'라는 구호를 앞세우며 태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정치 개혁'과 '국민 참여'는 현 정권의 '정체성(Identity)' 그 자체입니다.
정치 개혁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정권에서 측근 비리 문제가 심심찮게 터져나오고 있습니다.(물론 그 액수 면에서 보자면 한나라당과 비교도 안되지만요).
이것이 과연 쉽게 넘어갈 문제일까요? (물론 과거 정권은 쉽게 생각하여 오리발만 내놓았습니다.)

측근 비리가 터지자마자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앞으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부정 수뢰 등의 비리는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사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여나 재신임이 부결되어 안타깝게도 대통령직에 물러 나게 되더라도, 앞으로는 권력에 빌붙어 비리를 저지르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입니다.
측근 비리로 인해 대통령이 스스로 책임을 물어 물러나는 새 역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만약 재신임에 성공한다면, 앞으로 더욱 단호한 비리 척결과 정치 개혁을 하라는 국민의 뜻을 안아 정치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가벼운 처사이며 경솔한 행동이었을까요?
온갖 비리가 생활화된 기존 정치권이나, 그런 정치권에 익숙한 국민들에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적절하지만, 당장 국민투표하자?

한나라당과 잔류 민주당의 즉각적인 논평입니다.
왜 그렇게 경솔하냐고 꾸짖으면서, 그 경솔한 행동에 기름을 붓습니다.
"(헌법상으로 규정된 것이 없어) 재신임의 방법으로 국민투표가 적절할지 모르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일부러 흘려 듣고, "넓은 의미로 국가 안위에 관한 문제이니 국민투표가 가능하다"고 헌법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적절하다면 그 말을 취소하고 국정에 보다 더 전념하라고 훈계해야 할 일이지, 이 참에 국민투표까지 실시해서 온 국민을 그 '부적절한 처사'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국제 신인도가 추락하여 경제가 어려워진다?

국제 신인도를 추락시킨 장본인이 누군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대통령 취급하지 아니한 것이 누군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것이면, 진작부터 국제 신인도를 생각하여, 깨끗한 정치와 집값 안정을 위한 각종 정책에 협조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정책에 대해 어설픈 정책이라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정작 정치 개혁법을 뒤로 하고 부동산 가격 폭등에 가만히 팔짱끼고 있는 것이 누군지, 최소한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돌파하려는 특유의 승부수?

물론 승부수입니다.
일종의 배수진이지요. 물러날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물러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배수진이니까요.
대통령이 누구와 싸우기 위해 배수진을 친 것일까요?
최병렬 대표 말마따나 '아무 것도 모르는' 국민과 싸우려는 것일까요?
앞으로 남은 4년여의 국정 운영을 깨끗하게 원칙적으로 하는 데에 장애가 되는 온갖 세력들, 낡은 정치 구조와 싸우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마음만 앞서서는 안 된다구요? 좀 더 스킬이 필요하다구요?
지금은 스킬보다는 원칙이 필요합니다. 스킬이라는 스킬은 지금까지 역대 정권을 통해 다 써보았습니다.
원칙은 결코 독선이 아닙니다.



결국, 제가 보기에는, 노 대통령의 재신임 폭탄 선언은, 낡고 더러운 정치 개혁을 대통령 혼자만이 아닌, 정치권과 국민 모두의 책임으로 이관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취임 8개월만의 재신임 국민투표가 벌어질지, 그리하여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질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사건을 대통령 개인의 '경솔한 행동' 또는 대통령 개인의 특유의 '성격' 문제로 몰아갈 때 우리의 정치 개혁은 앞으로 더더욱 요원하리라는 것입니다.

17년만에 처음으로 '호외'가 나올만한 사건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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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빠들, 많이 바뀌었죠? 대한민국은 이미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의 요즘 광고 카피입니다. 참 신선하지요?
'바뀌어야 한다'가 아니라 '이미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늦은 저녁, 아내가 회사 회식으로 인해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전화합니다. 남편은 아들과 2차(?)를 한다고 응수합니다. 알고 보니 아들과 인라인 스케이트를 함께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미 새로워지는 사회 현상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라,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가사 부담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누군가는 말입니다.

최근의 '송두율 정국'을 지켜 보면서 '대한민국은 이미 새로워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아직도 지긋지긋한 색깔 공세가 이어지고, 이제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쾌재를 부르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寒나라당의 행태가 여전히 속을 울컥거리게 만들지만, 그래도 세상은 이미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J.R 매카시와 아마 열혈 친구인 듯한 정형근 의원은 이미 이 모든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사법부의 어리석음과 판단 미숙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이미 송두율은 현장 체포된 시대의 거물 간첩입니다.
불과 십수년 전만 같았어도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간첩을 옹호하거나 동정하거나, 적어도 섣불리 예단하지 말자는 여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활동중인 거물 간첩을 체포했는데 뭘 더 지켜보자는 말인가?
최병국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갑니다. 정연주 KBS 사장도 간첩 혐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첩인 듯한 사람이 공영방송 사장일 수 있는 나라.
그래서 이미 대한민국은 새로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 송 교수를 두둔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사실 송두율 교수가 왜 (지금) 한국에 왔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2000년에 문익환 목사를 기리는 늦봄 통일상 수상 대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역사적인 6/15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된지 채 한달도 되지 않은 그때는 왜 오지 않았는지도 의문입니다. 김정일과 김대중 대통령이 악수하던 감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그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그 때 송두율 교수는 국정원의 소환 조사를 거부하며 입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풀리지 않는 의혹은 더 있습니다. 노동당 입당이 통과 의례인 것으로 생각했다는 발표도 액면 그대로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영구 귀국을 원했으면 사전에 국민들에게 모두 솔직하게 얘기했어야 합니다. 국정원에서 마지 못해 얘기한 것이라면 이건 송교수의 크나큰 판단 착오입니다.
대한민국은 새로워지고 있지만, 아직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만큼 성숙하지는 않습니다. 남과 북이 대치되고 있는 이상 결코 '성숙'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할 것이니까요. 이것은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우리만의 현실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전 송교수를 무작정 두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송교수가 거물 간첩이므로 즉각 구속하거나 해외로 추방해야 한다는 것에도 분명 반대합니다.
검찰에서 조사하고 있는만큼 보다 철저하게 조사를 해서 사건 전말을 숨김없이 밝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뉴스에서처럼 송교수가 독일 국적을 포기한다고 하면, 그것을 전향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포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포용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물론 국민 정서와 실정법을 고려한 처벌도 감수해야 합니다.
구속보다 더 비참한 것은 해외 추방입니다. 이미 알다시피 송교수는 북한에서도 회색 분자로 낙인되어 북한으로부터도 배척받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또 다시 그를 해외로 추방한다면 그는 우주 미아가 될 것입니다. 전 세계 유일 분단 국가인 한반도를 상징하는 사건이 될 것이며, 역사도 이를 애통하게 기술할 것입니다.

얘기가 옆으로 샜네요.
여전히 냉전 시대의 색깔 공세와 이념 시비가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세태는 여전하지만, 그러나 과거와는 분명 많이 달라졌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것도 햇볕정책의 성과라면 성과입니다(주저하던 송교수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것은 결코 햇볕정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남북 화해와 국민 통합, 그리고 성숙된 국민 의식을 위해 참여정부가 어떤 판단을 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참여정부의 판단을 믿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새로워지고 있지만,
매카시가 부활하기에도 딱 좋은 시절입니다.

P.S) 뱀다리(蛇足~

    풀리지 않는 또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황장엽과 송두율의 차이는 무엇일까...
    황장엽은 들어올 때 "김정일 ×××"라고 했고, 송두율은 "나는 남과 북의 경계인"이라고 했습니다. 확실함과 아슬아슬함의 차이인가... 귀순용사 황장엽과 경계인 송두율의 문제는 앞으로 한동안 나의 관심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매카시, 매카시즘
    매카시즘은 미국 위스콘신주(州)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의 이름에서 나온 말입니다.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폭탄적인 연설에서 발단한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이 심각해지던 상황에서 전통적인 미국 자본의 시장이던 중국이 공산화되고 잇달아 발생한 한국의 6 ·25전쟁 등 공산 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낀 미국 국민으로부터, 그의 주장이 광범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후 매카시즘이란 비이성적인 마녀사냥식의 여론몰이 등을 지칭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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