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전>은 1억1만3천 번을 읽었고, <노자전> <분왕> <벽력금> <주책> <능허대기> <의금장> <보망장>은 2만 번을 읽었다. <제책> <귀신장> <목가산기> <제구양문> <중용서>는 1만8천 번, <송설존의서> <송수재서> <백리해장>은 1만5천 번, <획란해> <사설> <송고한상인서> <남전현승청벽기> <송궁문> <연희정기> …(중략)… <장군묘갈명>은 1만3천 번을 읽었다. <용설>은 2만 번을 읽었고, <제악어문>은 1만4천 번을 읽었다. 모두 36편이다.
…(중략)…
갑술년(1634)부터 경술년(1670) 사이에 《장자》와《사기》,《대학》과《중용》은 많이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읽은 횟수가 만 번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독수기>에는 싣지 않았다.

위 글은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의 <독수기(讀數記)>에 나오는 일부입니다. 만 번 이상 읽은 36편의 문장을 나열하고, 만 번 이하로 읽은 것은 아예 꼽지도 않았다고 쓰고 있습니다. 처음엔 좀 과장이 심하다 싶었는데, 책(《미쳐야 미친다》,정민著)을 읽다보니 허튼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단, 당시 1억은 오늘날 10만에 해당되는 숫자입니다.)

제가 즐겨 쓰는 말 중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現)'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글을 백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는 뜻으로 후한 헌제 때 동우(董遇)라는 학자가 처음 제자들을 받아들일 때 하던 말입니다. 제자들이 시간이 없다고 볼멘 소리를 하면 '세 가지 여분'을 갖고 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 세 가지 여분이란, '겨울, 밤, 비오는 때'입니다. 한 해의 여분인 겨울과, 한 날의 여분인 밤, 한 때의 여분인 비오는 때가 있는데, 시간이 없다는 말은 변명일 뿐이라는 게 그의 뜻입니다. '삼국지(三國誌)' 위서(僞書) '왕숙전(王肅傳)'의 주(注)에 나오는 말입니다.

다산 정약용이 천주학쟁이로 몰려 강진으로 귀양 가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때 스스로 열 다섯의 나이에 제자이기를 자청하고 온 황상은 다산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선생님!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이에 다산이 말합니다.
"…(생략)…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진다.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된다.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뚫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최근 몸이 너무나 힘들고 지쳐 다른 이들에게 '나만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일을 차근차근 챙기지 못하고, 생각하기를 건너 뛰고 행동하기를 미루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게으름은 마약과도 같습니다. 게으름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다산의 말 대로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는 일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부지런히 산 세 사람의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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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사람에 관한 일들입니다. 하기야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에 관한 일 아닌 게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사람들 때문에 많이 힘든 날들이었습니다.

1.
동료 몇 명이 회사를 떠납니다. 작은 회사에서 몇 명이면 적지 않은 인원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근본은 인간 관계였습니다. 함께 있는 사람들로 인해 많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리더십의 요체는 인간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를 포함해, 반성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사람이 꽤 있습니다. 여러 말이 필요 없습니다. 현 상황을 빨리 수습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조금만 길게 보면, 지금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회사는 한층 성숙해져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있음으로 인해 회사는 유지되었고, 그들이 나감으로 인해 회사는 마땅히 겪어야 할 큰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요.
함께하는, 그리고 함께했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정말 끝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지난 주에 가까운 친지께서 돌아가셔서 급히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마지막 한 줌의 재로 남아 납골당에 안치되는 순간까지 같이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많은 얘길 할 수는 없습니다. 워낙 사적인 얘기들이라 이런 자리에서 할 만한 얘기가 못 되지만, 그래도 꼭 하고 싶은 말은, 부모의 내리사랑에는 그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끈을 놓으시는 최근의 순간까지 그분이 보여 주신 자식에 대한 한없는 애정은,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할만큼 숭고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큰 경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새벽 세 시 반.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났습니다. 더 잘까 생각하다가, 그거 얼마 더 자서 뭐하겠냐는 생각에 그냥 일어났습니다.
정신 없이, 그리고 몸까지 아픈 상태에서 지난 주를 보내면서 미처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합니다. 일찌감치 출근하여 쌓이고 엉킨 일들을 하나씩 풀어나가야겠습니다.
어려운 일일수록, 언제나 쉬이 해결할 방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해결할 수 없는 일들 또한 없었습니다.
새벽 공기처럼 신선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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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일종의 '아침을 여는 의식'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의식이 깨어나기도 전에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합니다. 한 7~8분쯤 받으면 작은 욕조에 반 정도 물이 찹니다. 대개 그때까지 반수면 상태에 있습니다. 나의 뇌는 아직까지는 잠을 자고 있는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욕조에 물이 어느 정도 차면 수온계로 온도를 잽니다. 반신욕을 하기에는 경험상 38~40도 정도가 적당합니다. 이미 이 자리를 빌어 몇 번 언급했던 반신욕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처음 반신욕에 대해 안 것은 작년 10월 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맘 먹은 것은 올 3월부터입니다. 아내가 반신욕을 위한 욕조 덮개를 사왔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다소 불규칙하게 해오던 것을 두어달 전부터는 이렇듯 잠이 완전히 깨어나는 매우 중요한 '의식'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미지근한 물에 몸을 반도 안 담그고 있지만 15분여 지나면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나 나의 몸과 마음은 이제 새로운 아침이 왔음을 자각하면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삼십 여분 지나면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됩니다. 그때 몸을 씻고 나옵니다. 요즘은 아침 공기가 선선하여 더없이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이때 쯤 되면, 말은 하지 않아도 "자! 이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라는 강력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 느낌은 매우 중요합니다. 미지근한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어찌보면 매우 평범한 이 행위가 나에게는 '아침을 여는 성대한 의식'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느낌 때문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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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을 하면서 참 많이 답답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의 모두가 '리더'가 될 수 있으까를 고민하면서, 나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은 건 아닌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스스로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직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 나의 이 의지가 또 꺾여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것이 회사 뿐만 아니라 실제 개인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우리 회사의 '리더' 또는 '리더가 되고 싶은 분'들과 꼭 함께 하고 싶은 말들입니다.

  1. '세일즈'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항상 '클로징'을 염두에 두어라.
    It's as easy as A.B.C - Always Be Closing. -《10년 후》中에서

    열심히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제 판매 완결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클로징이 없이, 그저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위안하는 것은 실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끝'을 보는 것입니다.

  2.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하느냐이다.
    What is important is how well we perform a task, not how big it is.-《10년 후》中에서

    자신의 일에 대해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보다 높은 곳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신의 일은 하찮으며, 누구나 할 수 있으며, 그래서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일을 제대로 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잘 못봤습니다.
    쉬운 일일수록 마음의 장벽을 뛰어 넘지 못합니다. 세상에 정말 쉬운 일은 없습니다.

  3. 리더로서 마땅히 취해야할 행 동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감성적 장애요소로 인해 적지 않은 리더들이 행동에 제약을 받거나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사실은 심리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갈등을 회피하거나 결정을 미루거나 골치 아픈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유쾌하지 못한 상화을 모면하려는 경향 역시 감성적 장애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더 심한 경우에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굴욕감을 느끼게 만들어 사기를 저하시키고 불신을 조장하는 역기능까지 초래합니다. -《실행에 집중하라》中에서

    리더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 기준은 역시 '감성 의지(emotional fortitude)'입니다. 감성 의지가 약해 감성적 장애요소에 제약을 받는 사람은 결코 리더일 수 없습니다.
    미국의 경영학 교수이자 컨설턴트인 램 차란(Ram Charan)은 이런 말을 합니다.
    "최고의 리더로 손꼽히는 사람들 중에 머리가 똑똑하지도 그렇다고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들이 과연 어떤 점 때문에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은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리더로서 인정받는 것일까요?"
    그의 답은 바로 감성적 장애요소를 딛고 감성 의지가 풍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땅히 취해야할 행동을 마땅히 취하는 바로 그 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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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다녀왔습니다.
휴가 기간이었으나 겸사겸사 업무차 다녀왔습니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업 아이템이 실제 수행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저와 사장님, 그리고 다른 업체 사장님, 이렇게 세 명이서 다녀왔습니다.
8월 5일에 출국해서 8월 10일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마자 글을 쓰려고 했으나, 몸이 매우 피곤하고 지친 상태라 오늘에서야 겨우 원기를 회복하여 글을 씁니다. 모든 기억을 되살려 상세하게 써도 되겠지만, 그래봐야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고, 간략하게 5박 6일간의 여정을 소개하려 합니다.

  1. 2004.8.5(목) 서울→北京

    휴가 시즌이라 비행기 잡기가 너무 어려워, 8월 5일 저녁 비행기로 베이징(北京)에 갔습니다. 공항에서 다른 업체 사장님 친구와 요녕일보 조선어판 기자를 만났습니다. 숙소인 베이징 호텔(北京飯店)로 바로 향했습니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라 다른 약속은 잡지 못하고 저녁에 술한잔 하며 중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2. 2004.8.6(금) 北京

    둘째날, 요녕일보 기자 덕분으로 중국중앙라디오 관계자 세 명을 만났습니다. 한국 식당에서 만나서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족(漢族), 한 사람은 조선족이었습니다. 마침 조선족 기자(기자이지만 실제로는 PD에 아나운서 등 모든 역할을 함)의 딸이 이번에 대학에 들어가서, 중국의 대학 입시 제도와 입시 지도 방법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전에 중국의 대학입시제도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부하고 간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여러 대학들이 모여 있는 우따오코우(五道口) 입구에 위치한 中國應用技術大學 軟件學院의 呂軍 이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중국 IT 산업에 대해 뭣 좀 물어보려고 했는데, 다소 우리의 의도와는 다른 대답을 하는 바람에 매우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곳은 주로 일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청받아 개발하는 곳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인터넷 교육 서비스 사업에 대해 질문하기에는 분야가 너무 달랐습니다.

    이어서, 북경사범대학 대학원에서 어떤 분을 만났는데, 요녕일보 기자의 친구였습니다. 대학 구내 매점에서 두 시간 가량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얘기 주제는 대학 입시에서부터 인터넷 교육 서비스, 중국 대학생들의 화장품 사용 실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

    저녁에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장님 선배를 만나 술한잔하면서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3. 2004.8.7(토) 北京→天津

    우따오코우(五道口)에 한국 유학생들에게 유명한 곰집(식당 이름)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 곰집 사장님께 친구가 선물을 전해주라고 해서 왔는데, 결국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몇 일 동안 계속 전화를 했으나 무엇이 그리 바쁘신지... 결국 선물과 메모만 남겨두고 왔습니다.

    다시 숙소인 베이징 호텔(北京飯店)로 돌아와 현재 중국에서 대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 학생을 만났습니다. 중국 온 첫날부터 후배에게 실제 학생을 섭외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호텔 옆의 東方新天地(이거 정말 무지무지 큰 건물) 지하 어느 가게에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학생으로부터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는 있었으나, 사업적으로 고민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습니다.
    Q : 입시 부담이 크냐?
    A : 무척 크다.
    Q : 그래서 어떻게 준비하냐?
    A : 뭐, 달리 준비하는 건 없다.
    Q : 학원에는 다니냐?
    A : 학원같은 거 없다.
    Q : 그럼 과외를 받느냐?
    A : 과외를 받지는 않는다...
    이런 식의 얘기였습니다^^

    이날도 원래는 베이징 호텔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지만, 사장님 선배가 천진에서 사업하는 관계로, 천진에 한번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일정을 바꿔, 천진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천진까지 갔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천진까지 가긴 갔는데, 거기서 사장님 선배와의 약속 장소로 가기까지 그야말로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이놈의 택시 기사가 원래 몰랐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랬는지 약속 장소인 호텔에 내려주지 않고 그 선배의 공장 앞에다 데려다놓았습니다. 그것도 택시비가 100원 넘게 나왔구요.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천진 온천 호텔로 갔고, 곧바로 북한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북한 사람... 호기심에 괜히 몇 마디 말을 걸어봤습니다. 호기심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뭔가 애틋하고 가슴저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과거 같았으면 아주 큰일날만한 일일텐데 말입니다.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우리 테이블의 주문을 받고 서비스를 했던 북한 복무원의 이름은 유종미였습니다^^

    천진의 모습은 북경과 사뭇 달랐습니다. 중국의 3대 도시치고는 너무나도 시골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곳곳에서 우뚝우뚝 솟아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면서, "중국은 지금 건설중"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4. 2004,8.8(일) 天津→北京→上海

    아침에 일어나 택시를 타고 베이징 공항으로 바로 갔습니다. 택시 기사와 사전에 협의하여 350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약 2시간 남짓 달려서 공항에 도착했고, 처음 약속대로 350원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까지 모두 합해 깔끔하게 350원에 마무리했습니다.

    공항까지는 순조롭게 왔으니, 상해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발권을 해야하는데, 표를 사는 곳에서 한참동안 기다리다가 시간을 보내고, 발권은 했는데, 막상 비행기 타는 곳으로 가려니 공항세를 내지 않았다고 하여 또 다시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항세를 내려고 돌아다녔는데 물어보는 사람들마다 모두 대충 저~쪽으로 가라고만 할뿐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지 않아 한참 헤맸습니다. 차라리 그냥 표지판 보고 가는 것이 더 빠를 뻔 했습니다.

    상해에 도착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포서에 있는 상해 힐튼 호텔로 갔습니다. 여기까지는 매우 순조로왔는데, 막상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전화 연락을 해도 되지 않고... 결국은 우리끼리 손짓발짓하여 예약한 방을 잡았습니다. 급하게 상해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저녁 안내를 해달라고 부탁해서, 저녁을 해결했습니다. 중국에 온지 만 3년 정도 된 친구인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우리 입맛에 맛는 광동 음식을 먹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다 같이 근처에서 발마사지를 받았습니다. 1인당 50원.

  5. 2004.8.9(월) 上海

    휴가를 반납하고 온 것이니만큼(^^) 상해에서는 다소 여유있게 보내려고 했습니다.
    오전에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홍구 공원(지금은 노신 공원으로 개명)과 상해 임시 정부 청사를 들렀습니다. (예전에 다 봤던 것이라 별로 재미없었음)
    점심 때에는 상해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고 있는 선배를 만났습니다. 중국의 인터넷 발전 속도와 인프라, 기타 인터넷 사업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배는 중국에서 화상 채팅 사이트를 만들어 곧 론칭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음란 사이트 단속 때문에 화상 채팅 자체가 엄청난 감시의 대상이 되어 오픈을 다소 늦춘다고 합니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후에는 예원과 옥불사에 갔습니다. 역시 예전에 다 보았던 곳이라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우리 말로 짝퉁 시장이라고 불리는 곳에도 가봤습니다. 허름한 골목으로 들어가 아무나 못들어가게 만들어놓은 철문으로 들어갔는데, 쩝~ 허접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저녁에는 상해에 있는 동기들을 만나 정말~ 오랜만에 술한잔 했습니다. 역시 수년을 못봐도 친구는 친구인가 봅니다. 그저 반갑고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6. 2004.8.10(화) 上海→서울

    이날은 특별한 일정이 하나도 없어 시간이 좀 여유로울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오전에 상해 박물관을 들렀다가,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살겸 진주 파는 가게에 들렀다가 시간을 다 써버렸습니다. 저도 아내를 위해 큰맘 먹고 선물 하나 샀습니다.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하여, 상해에서 가장 높은 동방명주 타워에 헐레벌떡 올라가서 대충 한바퀴 돌고 다시 내려와 바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5박 6일간의 중국 방문기를 비록 이렇게 짧게 썼으나, 서울 돌아오던 날, 마치 몇 달여를 중국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 출국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알차게 보내기도 했거니와 중국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돌아오기 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셨던 탓에 시간 감각이 없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비록 육체적으로 다소 힘들기는 했으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다음에 또 가고 싶습니다. 그 사이 또 얼마나 발전되어 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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