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독서 10분이 기적을 만든다 - 초등학생을 위한 책 읽기 실천 매뉴얼
하야시 히로시 지음, 한상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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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제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 백제 고분을 걸었습니다. 이제 정말 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아침의 봄기운을 느끼며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온다고 하네요. 현재 서울 기온 1.5도, 낮 최고 기온 7도 정도. 전국적으로 비가 온 후 오후부터 차차 개다가 내일 밤부터는 좀 많은 비가 온다고 합니다.

일본의 '아침독서 운동'의 사례를 담은 《아침독서 10분이 기적을 만든다》를 읽었습니다. 일본에서 아침독서 운동을 제창한 하야시 히로시라는 분이 지은 책인데, 부제가 '초등학생을 위한 책 읽기 실천 매뉴얼'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 제목만 보고 궁금해서 샀습니다. '아침독서 운동'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15년 전부터 시작된 일본에서는 18,000 여 초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책이 전반적으로 비슷한 사례를 반복적 나열한 것이라 중언부언하는 글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이 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각 장마다 몇 꼭지씩만 읽어도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아침운동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책 값도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비록 책의 구성 자체는 여러 사례와 인터뷰를 주로 모아 놓은 것이라 다소 지루한 면이 있지만, 저 또한 아이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 우리나라에도 하루 빨리 '아침독서' 운동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서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데, 독서습관을 학교에서 자연스레 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미취학 어린이를 둔 부모로서 만약 주위에 아침독서 운동을 실천하는 학교가 있다면 우선적으로 그 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초등학교에서는 많은 지식을 쌓기 보다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작지만 소중한 습관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아침독서의 4원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모두가 한다. (전교생이 모두, 교사도 함께!)
- 매일 한다. (매일 10분씩!)
-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학생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직접 골라서)
- 단지 읽기만 한다. (학생과 교사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글을 읽으며 처음엔 '겨우 10분' 동안 책읽는 것 가지고 독서운동이라고 할 수 있냐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아침에 10분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이 꽤 힘들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우선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교사들이 모두 공감하여 독서운동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힘들며, 전교생에게 강제적(!)으로 10분의 시간을 공식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 같았습니다. 10분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JR(일본국철)의 전차 시간까지 바꾼 일본의 사례는 그들의 열정도 열정이거니와 단 10분 시간의 확보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책 말미에 우리나라의 사례도 소개하고 있는데 충북 미원초등학교 단 한 곳의 이야기만 싣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 책의 역자가 운영하는 아침독서운동 카페(http://cafe.daum.net/morningreading)에 가보니 중평초등학교, 군산 신풍초등학교, 전남 구례초등학교, 광주 살레시오 초등학교 등에서 아침독서 시간을 운영하는 사례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이 책의 사례가 널리 알려져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에도 아침마다 책 읽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요즘 한창 우리나라를 휘몰아치고 있는 논술과 독서 열품의 도度가 지나쳐 자칫 강압적이고 의무적인 '책읽기 강제'로 변질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괜한 기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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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한비 지음, 김원중 옮김 / 현암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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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잘들 보내셨나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오늘을 기점으로 풀린다 하니 이번 한 주 기분 좋게 출발해 볼까요? 명실상부 봄이 왔으니 미뤄뒀던 책도 좀 읽구요^^

주말에 《한비자韓非子》를 읽었습니다.  지난 번에 《물고기의 즐거움》을 읽고 꼭 한 번 한비자를 읽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밀린 숙제를 한 듯 후련합니다.

이 책은 적잖은 고전을 번역하여 그 역량을 인정을 받고 있는 김원중 교수가 번역하였습니다. 읽기에 막힘이 없고 매끄러우면서 고서古書의 맛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고전을 번역한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읽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전체 32편 각 편 첫 부분에 간략한 해설이 미리 있어 본문을 읽는 데 더욱 수월했습니다.

한비韓非는 전국시대 韓나라 명문 귀족의 후예입니다. 원래 말더듬이였으나 논리적인 문장을 갈고 닦는 데 힘써 매우 탁월한 문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습니다. 이사李斯는 진나라의 최대 공신이었지만 늘 자신의 능력이 한비만 못하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후에 진시황이 한비자에 깊이 감동하여 그를 진나라로 데려오려 했으나 동문수학한 이사의 모함으로 감옥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됩니다.
한비는 이 책 〈말하기의 어려움 - 난언(難言)〉과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어려움 - 세난(設難)〉등 여러 편에서 신하가 군주에게 유세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진언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말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죽음의 화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역자는 서문에서 이를 두고 한비를 '비운의 주인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사는 어떻게 됐을까요? 신영복 선생의 《강의》 〈한비자〉편에 보면, 이사 역시 기원전 208년 7월 함양의 거리에서 자신이 제정한 법령에 의해 허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고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표방한 법가의 공명함과 공평함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까지 불리는 한비는 스스로 권모술수의 희생자가 되었고, 이사 역시 간신 조고의 사악한 말에 부화뇌동하여 정도를 배반한 까닭에 자신이 만든 법의 심판으로 죽음을 당했으니, 전국시대의 그 혼탁한 모습이 가히 상상이 되고도 남습니다.

이 책 전반에 걸쳐 한비는 '강력한' 중앙집권 전제군주로서의 통치자를 염원합니다. 제가 '강력한'을 강조한 것은, 책 전체를 통해 흐트러짐 없이 일관되게 강력한 군주제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비가 말하는 법치의 핵심은 다름 아닌 통치자로서의 군주만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법가사상 비판의 핵심입니다.
한비는 〈내부를 방비하라 - 비내(備內)〉편에서 '군주의 재난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부부도 골육의 정은 없으며, 아내처럼 가까운 사람과 혈육의 친분이 있는 자식도 신뢰할 수 없는데 그밖의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비의 글을 읽자면 이처럼 한마디로 정이 뚝! 떨어지는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한비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사람은 사람이 요절하기를 바라는데, 이는 수레를 만드는 이들이 어질고 관을 짜는 이들이 악해서가 아니라,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부유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관을 짜는 사람은 사람이 죽어야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한비자 전반에 걸쳐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재앙은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막말로 하자면,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군주는 오로지 공명정대하고 신상필벌이 분명한 '법'만으로 세상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요. '오로지 군주만'을 위한 한비의 사상은 결국에는 가장 민본적인 통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감안한다면 다음과 같은 한비의 말이야말로 가장 개혁적이며 이상적인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요역이 많으면 백성들이 고통스럽고, 백성들이 고통스러우면 벼슬아치의 권세가 일어나며, 권세가 일어나면 백성의 부역을 면제해 주고 받는 대가가 커진다. 그 대가가 커지면 벼슬아치들은 부유해진다.
백성들을 괴롭혀 벼슬아치들을 부유하게 하고, 권세를 일어나게 해서 신하들에게 빌려주는 것, 이것은 천하의 이익을 위한 장기적인 방안이 아니다. 그래서 요역이 적으면 백성이 편안하고 백성이 편안하면 벼슬아치들이 권한을 강화하지 못하며, 벼슬아치들이 권한을 강화하지 못하면 권세는 사라지고, 권세가 사라지면 덕은 군주에게 돌아간다" (p.141)

책을 덮고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서 〈한비자〉편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예전에 처음 《강의》를 읽을 때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현대의 법가사상 비판의 핵심은 법가사상이 오로지 '군주를 위한' 사상이며,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법가가 추구한 부국강병의 방책에 민부民富의 기초가 없고 부강富强의 물적 토대가 허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법가 비판에 대하여 우리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 왜냐하면 어떠한 사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전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구성하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진한秦漢을 하나의 역사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진秦과 법가는 전국시대의 혼란을 통일하는 과정으로서, 그리고 한漢과 유가는 중앙집권적 전제군주국의 통치 과정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지요. 진과 한은 각각 창업創業과 수성守城이라는 그 역사적 임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어떠한 사상체계라 하더라도 그것을 전체 과정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묻고, 결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법가 사상에서 적극적 의미로 읽어야 하는 것은 개혁성과 법치주의입니다. (...) 미래사관과 변화사관이 그것입니다. (...) 이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발전입니다. 군주의 자의적 폭력에 대한 제도적 규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사회적 예측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한비자의 의의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설명할 길이 없어 신영복 선생의 말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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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 2 - 중국편
정재서 지음 / 황금부엉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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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를 읽고 '속편이 기대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편이 나오고 두 달 뒤에 2편이 출간됐지만 어쩌다 보니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역시 기대한 만큼, 일단 재미있습니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신화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만이 떠올랐던 씁쓸한 생각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동서양 신화를 편가르자는 것이 아닙니다. 서양 신화를 읽으며 허전했던 그 무엇이 채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상의 뿌리를 찾았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입니다.

1편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처음 읽을 때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조잡하고 단편적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가 연결이 잘 안되고, 신들의 계보가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수많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에서 하나의 신만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모든' 바다를 지배하지만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사방의 관념에 따라 네 개의 바다를 다스리는 네 명의 해신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신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과 비교할 때 그 수가 훨씬 많습니다. 신들의 수도 많은 데다가 수많은 한자漢字 이름으로 인해 등장 인물이 헷갈리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로 부터 시조가 태어난 난생卵生신화, 신비한 기운의 작용에 의해 탄생하는 감생感生신화, 동물을 종족의 조상으로 삼는 수조獸祖신화, 해와 달이 여러 개 있어서 인류에게 재앙을 끼쳤다가 결국 하나만 남기고 모두 제거된다는 사일射日신화 또는 일월조정日月調整신화 등 여러 형태의 신화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원형 또는 뿌리를 알 수 있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왠지 모를 친숙함은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입니다.

고대에는 토지신인 사社와 농신인 후직后稷을 함께  숭배하였는데 이후로 이 둘을 합친 사직社稷이 국가의 운명과 동의어로 쓰이게 되었고, 조선 시대에 사직의 신을 제사지내던 곳이 바로 사직단社稷壇이라고 합니다.
황하의 신 하백河伯은 고구려 건국 신화에 등장하여 딸 유화를 통해 시조인 주몽을 낳게 하고  나중에는 외손자 주몽이 적에게 쫓겨 강가에 이르렀을 때 물고기로 다리를 놓아 건너게 합니다. 하백은 이름을 빙이氷夷 또는 풍이馮夷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동이계東夷系 종족의 신이라는 추측을 합니다.
집 안의 부뚜막 또는 아궁이를 지키는 신인 조왕신은 1년 내내 집 안에서 일어나는 잘잘못을 관찰했다가 섣달 스무 사흘 혹은 나흘 되는 날에 하늘에 올라가 천제께 모든 일을 일러바쳤다고 합니다. 천제는 조왕신의 보고를 듣고 나서 사람들이 저지를 죄에 따라 원래의 수명을 깎았다고 하는데, 신은 아니지만 삼시충이라는 벌레도 조왕신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삼시충은 사람 몸 속에서 사는 세 마리 벌레인데 이놈들 역시 섣달 그믐날 밤에 천상에 올라가 사람을 잘잘못을 일러바쳐 수명을 깎게 만든다고 합니다. 우리 민속에 설날 전날 밤을 새우는 일은 바로 이 삼시충 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잠자는 사이에 삼시충이 올라가서 수명이 깎일까봐 못 자게 했던 것입니다.

책 완성도가 꽤 높습니다. 책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책 속의 풍부한 자료 그림이 압권입니다. 또한 중국 신화를 소개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모든 이야기 속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의 공통점과 차이점과 한국 문화와의 상관성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족으로 대표되는 현재 중국의 주류 신화 뿐만 아니라 소수 민족의 신화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읽기가 쉽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습니다. 저자의 높은 식견에 감탄을 넘어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신화에도 좌우의 날개가 있다면 이 책이 그 한 쪽의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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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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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대표작인 《남자 vs 남자》를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남자 vs 남자》의 속편이라 하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 오늘이라도 당장 《남자 vs 남자》를 사서 봐야겠습니다.
8쌍의 사람을 비교 분석한 책의 내용은 두 말할 필요없이 압권인데, 책에 등장하는 16인보다 더 관심이 가는 생기는 건 정혜신이라는 사람입니다. 문장력이 예사롭지 않은데, 그녀의 전공인 정신과적 분석력이 결합하여 '심리 평전'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 정착시킬만한 파워를 가졌습니다.
그녀의 홈페이지(www.hyeshin.co.kr)을 방문해봤습니다. 아주 많은 글을 쓰진 않지만 매달 한 두 편씩의 칼럼을 기고하고 있고, 세 권의 단행본을 발간했습니다. 현재는 진행중인 연구작업과 충전을 위해 진료 활동을 중단하고 안식년 中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도 안식년 중에 발간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네이버의 인물 검색을 보니 '정신과 의사, 남성 심리 전문가'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신문 기사를 검색해보니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씨는...'으로 시작되는 그녀에 대한 말 인용이 꽤나 많았습니다. 


올초에 김진애의 《남녀열전》을 보며 두 인물을 쌍으로 두고 비교해가는 재미를 맛보긴 했었지만, 정혜신의 이것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진애가 한 권에서 23쌍(46명)을 비교한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8쌍(16명)만 등장하는 것도 분석 비교의 깊이가 다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정혜신의 전문가적 지식과 치밀한 자료 조사에 바탕을 둔 글쓰기, 게다가 거침없는 문장 구사력이 어우러진 그녀만의 글맛이 주는 매력에 끌리게 됩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그녀의 전공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문학, 문화, 예술, 정치 전반에 대한 폭넓은 식견에 놀라게 됩니다.

이명박과 박찬욱, 정몽준과 이창동, 박근혜와 문성근, 심은하와 김민기, 이인화와 김근태, 나훈아와 김중배, 김수현과 손석희, 김대중과 김훈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제가 만약 이들 중 한 명이었다면, 어쩌면 몸서리치는 날카로움에 치를 떨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비록 당사자 입장에서 오해이고 왜곡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심리 분석 전문가의 눈에 비친 '또 하나의 자기'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혜신의 말마따나 남이 보는 '자기'와 내가 보는 '자기'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실존 인물을 두고 - 그들이 아무리 남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연예인이거나 정치인이거나 문화 예술인이라고 하더라도 - 공개적으로 분석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무모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정혜신은 책 머리에 "나는 대체로 용감한 편이다. 거칠게 말하면 '겁대가리'가 없고, 다르게 말하면 거침이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 그녀는 글에서 수 많은 겁대가리 없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표현'이라고 한정한 것은, 다소 표현은 거침이 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 표현의 이면에는 놀라우리만치 예리한 전문가적 분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정몽준에 대한 글에서 그녀는 "청소년들이 흔히 쓰는 말로 '졸라 개념 없어' 보인다."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배꼽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현실'에 갇혀 커뮤니케이션과 현실 감각에 장애가 있다는 정몽준에 대한 글 전체의 내용으로 볼 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있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요컨데 《사람 vs 사람》은 200자 원고지 8700매 가량의 심은하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수백편의 김대중 칼럼을 빼놓지 않고 읽고 글을 쓰는 '강준만식의 성실한 글쓰기' 습관을 가진 정혜신이, 십수 년의 세월 동안 8,00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상담한 전문가적 분석력과 만만찮은 수준의 문장력으로 만들어낸 그녀만의 심리 평전입니다.

*
요즘 들어 아침 시간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시간에 쫓겨 서평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몇 십 분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한들 김훈의 문장이 나올 리도 없고... 그저 많이 읽고 부지런히 쓰는 연습을 하여 짧은 시간에 보다 알찬 내용을 실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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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추고 사는 즐거움
조화순 지음 / 도솔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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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조화순 목사님하면 떠오르는 것이 동일방직 사건입니다. 6,70년대의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조 목사님을 빼놓고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던 동일방직으로 시작하여 노동자들과 함께 '낮은 곳'으로만 찾아 다녔습니다. 마치 예수가 최후에는 선동가로 몰렸듯이, 그렇게 선동가로 살아가고 싶다고, 서슬 퍼런 안기부 지하실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18년을 지내온 산업 선교의 현장을 떠나 또 다른 현장, 농촌교회로 내려가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할 바를 실천하고, 또 13년이 지나고 이제는 홀연히 목회도 목사라는 이름도 버린 채 강원도 봉평 태기산 자락에 있는 750m 고지, 아무도 없는 산속에 흙집을 짓고 산 지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왜 산 속으로 들어갔냐는 물음에는 세상이 변한만큼 자신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고, 그래서 '더 낮은 곳'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늘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신 예수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살려고 흉내라도 내는 것이 목회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그렇게 살아오다 이제 운동의 종착점으로 "땅의 문제와 환경의 문제와 생명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이 책은 불꽃같은 삶을 산, 지금은 칠순이 된 백발의 처녀가 들려주는 삶과 자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 글은 마치 맨밥에 상치쌈 같습니다. 말의 기교같은 양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이 살아오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저 옆의 사람이 얘기하듯이 덤덤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글쓴이가 그러했듯이 이 책을 읽는 사람도 마음을 털어버려야 제대로 읽힙니다. 조미료 맛에 길들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상치쌈같은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마다 죽음을 기꺼이 맞이할 주문을 외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가 문득 수십 년 전의 일화를 떠올립니다.
산업 선교 활동을 하던, 그러니까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도록 노동현장을 누비던 그 때, 갑자기 함석헌 선생이 조 목사를 불렀습니다. 그러더니 화분 하나를 주며 잘 키우라는 말만 하더랍니다. 주위 사람이 툭 하면 끌려가고 심하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는 판국에 화분에 물을 줄 여유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처음 가져온 상태에서 최대한 버티다가 죽었을 것이라고 회상합니다. 그런 화분을 준 함석헌 선생이 '노망이 걸리지나 않았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지금 산에 들어와 살면서, 벌써 수십년 전의 그 일이 새삼 떠올라 함석헌 선생의 그 뜻을 알 것 같다고 말합니다.
"어디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랴. 각박한 세상일수록 더 여유를 부려야하는 법이다. 그랬더라면 나와 함께 울고 웃으며 무수한 고난과 어려움들을 헤쳐 온 이들을 조금 더 사랑했을 것이고, 그들에게 조금 더 웃음을 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저는 제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 목사님은 요즘 "나는 오늘 죽을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생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을 열어 말을 하다 보니 그 의미가 더 각별해졌다고 말합니다.
"물론 오래 살고 싶고 죽고 싶지 않은 것은 인간 본연의 모습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낙엽이 썩어 거름이 되고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듯이 자연 속에서 그런 순환을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나는 점점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죽음도 삶의 한 방편이며, 그것이 남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몸으로 느끼게 되니 하루를 여는 의미가 남달라지고 일분 일초가 더없이 소중해진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다가 그대로 소파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문득 눈을 뜨니 이른 새벽입니다.
'나는 언제쯤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불꽃처럼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이런 모습이 내게도 올까?'
책을 읽으며 내내 들었던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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