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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 2 - 중국편
정재서 지음 / 황금부엉이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를 읽고 '속편이 기대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편이 나오고 두 달 뒤에 2편이 출간됐지만 어쩌다 보니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역시 기대한 만큼, 일단 재미있습니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신화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만이 떠올랐던 씁쓸한 생각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동서양 신화를 편가르자는 것이 아닙니다. 서양 신화를 읽으며 허전했던 그 무엇이 채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상의 뿌리를 찾았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입니다.
1편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처음 읽을 때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조잡하고 단편적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가 연결이 잘 안되고, 신들의 계보가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수많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에서 하나의 신만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모든' 바다를 지배하지만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사방의 관념에 따라 네 개의 바다를 다스리는 네 명의 해신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신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과 비교할 때 그 수가 훨씬 많습니다. 신들의 수도 많은 데다가 수많은 한자漢字 이름으로 인해 등장 인물이 헷갈리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로 부터 시조가 태어난 난생卵生신화, 신비한 기운의 작용에 의해 탄생하는 감생感生신화, 동물을 종족의 조상으로 삼는 수조獸祖신화, 해와 달이 여러 개 있어서 인류에게 재앙을 끼쳤다가 결국 하나만 남기고 모두 제거된다는 사일射日신화 또는 일월조정日月調整신화 등 여러 형태의 신화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원형 또는 뿌리를 알 수 있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왠지 모를 친숙함은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입니다.
고대에는 토지신인 사社와 농신인 후직后稷을 함께 숭배하였는데 이후로 이 둘을 합친 사직社稷이 국가의 운명과 동의어로 쓰이게 되었고, 조선 시대에 사직의 신을 제사지내던 곳이 바로 사직단社稷壇이라고 합니다.
황하의 신 하백河伯은 고구려 건국 신화에 등장하여 딸 유화를 통해 시조인 주몽을 낳게 하고 나중에는 외손자 주몽이 적에게 쫓겨 강가에 이르렀을 때 물고기로 다리를 놓아 건너게 합니다. 하백은 이름을 빙이氷夷 또는 풍이馮夷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동이계東夷系 종족의 신이라는 추측을 합니다.
집 안의 부뚜막 또는 아궁이를 지키는 신인 조왕신은 1년 내내 집 안에서 일어나는 잘잘못을 관찰했다가 섣달 스무 사흘 혹은 나흘 되는 날에 하늘에 올라가 천제께 모든 일을 일러바쳤다고 합니다. 천제는 조왕신의 보고를 듣고 나서 사람들이 저지를 죄에 따라 원래의 수명을 깎았다고 하는데, 신은 아니지만 삼시충이라는 벌레도 조왕신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삼시충은 사람 몸 속에서 사는 세 마리 벌레인데 이놈들 역시 섣달 그믐날 밤에 천상에 올라가 사람을 잘잘못을 일러바쳐 수명을 깎게 만든다고 합니다. 우리 민속에 설날 전날 밤을 새우는 일은 바로 이 삼시충 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잠자는 사이에 삼시충이 올라가서 수명이 깎일까봐 못 자게 했던 것입니다.
책 완성도가 꽤 높습니다. 책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책 속의 풍부한 자료 그림이 압권입니다. 또한 중국 신화를 소개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모든 이야기 속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의 공통점과 차이점과 한국 문화와의 상관성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족으로 대표되는 현재 중국의 주류 신화 뿐만 아니라 소수 민족의 신화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읽기가 쉽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습니다. 저자의 높은 식견에 감탄을 넘어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신화에도 좌우의 날개가 있다면 이 책이 그 한 쪽의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