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한비 지음, 김원중 옮김 / 현암사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주말 잘들 보내셨나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오늘을 기점으로 풀린다 하니 이번 한 주 기분 좋게 출발해 볼까요? 명실상부 봄이 왔으니 미뤄뒀던 책도 좀 읽구요^^

주말에 《한비자韓非子》를 읽었습니다.  지난 번에 《물고기의 즐거움》을 읽고 꼭 한 번 한비자를 읽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밀린 숙제를 한 듯 후련합니다.

이 책은 적잖은 고전을 번역하여 그 역량을 인정을 받고 있는 김원중 교수가 번역하였습니다. 읽기에 막힘이 없고 매끄러우면서 고서古書의 맛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고전을 번역한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읽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전체 32편 각 편 첫 부분에 간략한 해설이 미리 있어 본문을 읽는 데 더욱 수월했습니다.

한비韓非는 전국시대 韓나라 명문 귀족의 후예입니다. 원래 말더듬이였으나 논리적인 문장을 갈고 닦는 데 힘써 매우 탁월한 문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습니다. 이사李斯는 진나라의 최대 공신이었지만 늘 자신의 능력이 한비만 못하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후에 진시황이 한비자에 깊이 감동하여 그를 진나라로 데려오려 했으나 동문수학한 이사의 모함으로 감옥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됩니다.
한비는 이 책 〈말하기의 어려움 - 난언(難言)〉과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어려움 - 세난(設難)〉등 여러 편에서 신하가 군주에게 유세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진언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말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죽음의 화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역자는 서문에서 이를 두고 한비를 '비운의 주인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사는 어떻게 됐을까요? 신영복 선생의 《강의》 〈한비자〉편에 보면, 이사 역시 기원전 208년 7월 함양의 거리에서 자신이 제정한 법령에 의해 허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고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표방한 법가의 공명함과 공평함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까지 불리는 한비는 스스로 권모술수의 희생자가 되었고, 이사 역시 간신 조고의 사악한 말에 부화뇌동하여 정도를 배반한 까닭에 자신이 만든 법의 심판으로 죽음을 당했으니, 전국시대의 그 혼탁한 모습이 가히 상상이 되고도 남습니다.

이 책 전반에 걸쳐 한비는 '강력한' 중앙집권 전제군주로서의 통치자를 염원합니다. 제가 '강력한'을 강조한 것은, 책 전체를 통해 흐트러짐 없이 일관되게 강력한 군주제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비가 말하는 법치의 핵심은 다름 아닌 통치자로서의 군주만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법가사상 비판의 핵심입니다.
한비는 〈내부를 방비하라 - 비내(備內)〉편에서 '군주의 재난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부부도 골육의 정은 없으며, 아내처럼 가까운 사람과 혈육의 친분이 있는 자식도 신뢰할 수 없는데 그밖의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비의 글을 읽자면 이처럼 한마디로 정이 뚝! 떨어지는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한비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사람은 사람이 요절하기를 바라는데, 이는 수레를 만드는 이들이 어질고 관을 짜는 이들이 악해서가 아니라,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부유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관을 짜는 사람은 사람이 죽어야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한비자 전반에 걸쳐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재앙은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막말로 하자면,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군주는 오로지 공명정대하고 신상필벌이 분명한 '법'만으로 세상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요. '오로지 군주만'을 위한 한비의 사상은 결국에는 가장 민본적인 통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감안한다면 다음과 같은 한비의 말이야말로 가장 개혁적이며 이상적인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요역이 많으면 백성들이 고통스럽고, 백성들이 고통스러우면 벼슬아치의 권세가 일어나며, 권세가 일어나면 백성의 부역을 면제해 주고 받는 대가가 커진다. 그 대가가 커지면 벼슬아치들은 부유해진다.
백성들을 괴롭혀 벼슬아치들을 부유하게 하고, 권세를 일어나게 해서 신하들에게 빌려주는 것, 이것은 천하의 이익을 위한 장기적인 방안이 아니다. 그래서 요역이 적으면 백성이 편안하고 백성이 편안하면 벼슬아치들이 권한을 강화하지 못하며, 벼슬아치들이 권한을 강화하지 못하면 권세는 사라지고, 권세가 사라지면 덕은 군주에게 돌아간다" (p.141)

책을 덮고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서 〈한비자〉편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예전에 처음 《강의》를 읽을 때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현대의 법가사상 비판의 핵심은 법가사상이 오로지 '군주를 위한' 사상이며,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법가가 추구한 부국강병의 방책에 민부民富의 기초가 없고 부강富强의 물적 토대가 허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법가 비판에 대하여 우리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 왜냐하면 어떠한 사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전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구성하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진한秦漢을 하나의 역사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진秦과 법가는 전국시대의 혼란을 통일하는 과정으로서, 그리고 한漢과 유가는 중앙집권적 전제군주국의 통치 과정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지요. 진과 한은 각각 창업創業과 수성守城이라는 그 역사적 임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어떠한 사상체계라 하더라도 그것을 전체 과정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묻고, 결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법가 사상에서 적극적 의미로 읽어야 하는 것은 개혁성과 법치주의입니다. (...) 미래사관과 변화사관이 그것입니다. (...) 이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발전입니다. 군주의 자의적 폭력에 대한 제도적 규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사회적 예측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한비자의 의의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설명할 길이 없어 신영복 선생의 말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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