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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정혜신의 대표작인 《남자 vs 남자》를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남자 vs 남자》의 속편이라 하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 오늘이라도 당장 《남자 vs 남자》를 사서 봐야겠습니다.
8쌍의 사람을 비교 분석한 책의 내용은 두 말할 필요없이 압권인데, 책에 등장하는 16인보다 더 관심이 가는 생기는 건 정혜신이라는 사람입니다. 문장력이 예사롭지 않은데, 그녀의 전공인 정신과적 분석력이 결합하여 '심리 평전'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 정착시킬만한 파워를 가졌습니다.
그녀의 홈페이지(www.hyeshin.co.kr)을 방문해봤습니다. 아주 많은 글을 쓰진 않지만 매달 한 두 편씩의 칼럼을 기고하고 있고, 세 권의 단행본을 발간했습니다. 현재는 진행중인 연구작업과 충전을 위해 진료 활동을 중단하고 안식년 中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도 안식년 중에 발간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네이버의 인물 검색을 보니 '정신과 의사, 남성 심리 전문가'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신문 기사를 검색해보니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씨는...'으로 시작되는 그녀에 대한 말 인용이 꽤나 많았습니다.
올초에 김진애의 《남녀열전》을 보며 두 인물을 쌍으로 두고 비교해가는 재미를 맛보긴 했었지만, 정혜신의 이것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진애가 한 권에서 23쌍(46명)을 비교한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8쌍(16명)만 등장하는 것도 분석 비교의 깊이가 다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정혜신의 전문가적 지식과 치밀한 자료 조사에 바탕을 둔 글쓰기, 게다가 거침없는 문장 구사력이 어우러진 그녀만의 글맛이 주는 매력에 끌리게 됩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그녀의 전공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문학, 문화, 예술, 정치 전반에 대한 폭넓은 식견에 놀라게 됩니다.
이명박과 박찬욱, 정몽준과 이창동, 박근혜와 문성근, 심은하와 김민기, 이인화와 김근태, 나훈아와 김중배, 김수현과 손석희, 김대중과 김훈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제가 만약 이들 중 한 명이었다면, 어쩌면 몸서리치는 날카로움에 치를 떨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비록 당사자 입장에서 오해이고 왜곡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심리 분석 전문가의 눈에 비친 '또 하나의 자기'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혜신의 말마따나 남이 보는 '자기'와 내가 보는 '자기'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실존 인물을 두고 - 그들이 아무리 남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연예인이거나 정치인이거나 문화 예술인이라고 하더라도 - 공개적으로 분석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무모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정혜신은 책 머리에 "나는 대체로 용감한 편이다. 거칠게 말하면 '겁대가리'가 없고, 다르게 말하면 거침이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 그녀는 글에서 수 많은 겁대가리 없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표현'이라고 한정한 것은, 다소 표현은 거침이 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 표현의 이면에는 놀라우리만치 예리한 전문가적 분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정몽준에 대한 글에서 그녀는 "청소년들이 흔히 쓰는 말로 '졸라 개념 없어' 보인다."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배꼽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현실'에 갇혀 커뮤니케이션과 현실 감각에 장애가 있다는 정몽준에 대한 글 전체의 내용으로 볼 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있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요컨데 《사람 vs 사람》은 200자 원고지 8700매 가량의 심은하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수백편의 김대중 칼럼을 빼놓지 않고 읽고 글을 쓰는 '강준만식의 성실한 글쓰기' 습관을 가진 정혜신이, 십수 년의 세월 동안 8,00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상담한 전문가적 분석력과 만만찮은 수준의 문장력으로 만들어낸 그녀만의 심리 평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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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아침 시간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시간에 쫓겨 서평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몇 십 분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한들 김훈의 문장이 나올 리도 없고... 그저 많이 읽고 부지런히 쓰는 연습을 하여 짧은 시간에 보다 알찬 내용을 실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