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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인류학의 고전이라 일컫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드디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책이 제 책가방 속에서 한 달이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주제 의식이 뚜렷하고 그 내용에 깊이가 있어 다른 책에서 얻기 힘든 것을 새롭게 안다는 의미에서는 재미가 있었으나 단숨에 완독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당장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구입한 동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하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씩 역사 공부에 관심이 생기면서 일본을 이해하지 않고는 더 이상의 진척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그 선택이 옳았음을 느낍니다. 일본에 대해 알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텍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을 겨우 몇 차례 방문한 경험 또는 사유하지 않은 채 날것의 정보를 조합하여 어설프게 쓴 책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저자는 일본을 단 한 차례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1946년, 그러니까 종전 직후였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이 책의 집필이 이루어진 것은 '아직 전쟁중'인 상황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적국敵國에 들어가 연구를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류학의 고전이 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이로 인해 루스 베네딕트는 인류학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류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책의 서문격에 해당되는 제1장 <연구과제> 편에서, 저자는 현지 조사를 포기하는 대신 취할 수 있었던 여러 방법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대한, 또는 일본인에 의해 씌어진 방대한 자료(문학, 잡지, 연구논문 등)와 영화, 인터뷰 등 현지 조사를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일본인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연구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아마 타문화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 훈련된 문화인류학자만이 가진 재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루스 베네딕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를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전쟁의 막바지이긴 했으나 당시로서는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연구를 위촉받았는데, 그 동기가 재미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지금까지 싸워온 그 어떤 나라와도 '다른' 별난 나라 일본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적'의 행동에 대처하기 위해 '적'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습니다. 저자가 분석한 주제는 크게 전쟁 중의 일본인, 메이지유신, 덕의 딜레마, 인정의 세계, 자기수양, 패전 후의 일본인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에 대해 매우 심도 깊은 연구 결과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 마디로 말해야 한다면, 책의 제목으로 풀이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제목이 '국화'와 '칼'입니다. 이 둘은 극단의 상징입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 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인 '동시에',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리는 것과 같이 결코 일반적이지 않으며 이해하기 힘든 속성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일본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러나 또한(but also)'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도'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양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어휘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책 내용 요약은 인터넷에 떠도는, 누군가가 쓴 레포트로 대체하겠습니다^^
(
<국화와 칼> 내용 요약 다운로드 - 클릭)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에서 저자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미국이 할 수 없는 것 - 어느 나라에서도 할 수 없는 것 -은 명령으로 자유로운 민주적 일본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러한 방법은 어떠한 피지배국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을 거둔 일이 없다. 어느 외국인도 자기와 같은 습관이나 가정을 가지지 않은 국민에게 자기와 같은 생각이나 생활 방식을 따르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법률의 힘으로 일본인에게 선거에 의해 뽑힌 사람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의 계층 제도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알맞은 위치'를 무시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p.382)
지금의 부시 정권이 다시 읽어봤으면 하는 구절입니다.
슬슬 출근 준비를 할 때가 다가 옵니다^^ 이쯤해서 마무리하지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다 보고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정작 책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보다 오히려 손가락에 관심이 갔습니다. 바로 루스 베네딕트의 연구 방법론입니다.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수많은 자료들 속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내용을 끌어내는 능력 또는 그 방법. 이것을 실현해 낸 저자가 존경스럽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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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 책을 읽으실 때는 책 말미에 부록으로 들어있는 이광규 교수의 해설을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 책이 씌어진 배경과 의의, 그리고 '인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개관을 쉽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