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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학교 - 학교는 어떻게 아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나
이치석 지음 / 삼인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경희대학교가 있는 서울 회기동에 늘 쓰레기를 줍는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지금도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본 기사가 2002년 2월자인데, 그 때 그 분의 나이가 여든 둘이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서울 청량초등학교(옛날에는 청량국민학교)에서 평교사로 정년 퇴임을 하신 김남식 선생님이신데, 퇴임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민족 반역자입니다. 저는 일제시대 때 우리 한글을 말하지 말라고 아이들한테 가르쳤고,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라고 독려하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그러고도 이제까지 교단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반민족 처벌이 있었다면 저는 분명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이런 부끄러운 삶을 살았지만 여러분은 자랑스런 교사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삶이 부끄러워, '내가 버린 쓰레기를 내가 줍기' 위해 30여 년 동안 쓰레기를 주우면서 사신 분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김남식 선생님에 대한 기사를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 김남식 선생님 기사 읽기 ("나는 벌받아 마땅한 친일 반역자" - 오마이뉴스 2002.2.11) 클릭
이치석 선생님이 쓴 《전쟁과 학교》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 머리말에 "자칭 민족 반역자라면서 벌써 45년간 시대의 넝마를 줍고 계신 김남식 선생님"이라는 말이 있어, 책을 다 읽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다행히 오마이뉴스 인터뷰 기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김남식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 이치석 선생님도 머리말에서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빌었다. 새봄이 돌아온 날 늦은 저녁, 퇴직금으로 산 술을 앞에 놓고 나는 내가 가르친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빌었다. 그 옛날 학교 운동장에서 '빨갱이'를 증오하라고 웅변하던 아이들 앞에서였다. 뿐만 아니라, 솔직히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내가 가르친 모든 아이들을 불러내서 깊이 속죄하고 싶었다."
이 책은 학교사(學校史), 특히 양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의 학교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글이 학교사가 아니라 학교사를 반성한 조그만 에세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모기만 한 목소리라도 과거에 학교가 저지른 전쟁폭력의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정말 이 책을 읽다 보면, 학교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 뿐인데도, 그 사실을 밝히는 것 자체가 아픈 과거에 대한 반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김남식 선생님의 기사 중에 '국민학교'라는 명칭의 연원에 대해 짧게 언급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국어 상용패'에 대한 아픈 기억을 언급하면서 '어찌 민족반역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쟁과 학교》는 '국민학교'의 연원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민학교'의 '국민'이라는 단어의 뜻과 '국민교육'의 유래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김남식 선생님의 말을 빌어 '국어상용패'를 나눠줬던 '간호당번' 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자는 이를 "병영화된 학교에서 감시와 처벌을 통해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완벽하게 해체시키는 고도의 술책"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내용을 포함하여, 책은 크게 우리 학교 100년의 풍경과 세계대전을 전후한 유럽의 학교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시 관심은 우리 학교 100년의 역사인데, 일제 시기와 남북 분단을 겪으면서 '국민교육'이 어떻게 발생하고 변모해 왔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그토록 오래 지속된 사실 자체가 부끄러웠습니다.
더 상세한 이야기는 여러분들도 직접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책을 다 읽고 <서론>을 다시 봤습니다. 저자가 이 책 전체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국민은 구한말의 대한제국 국민, 식민지 친일 국민, 분단시대의 반공 국민의 세 가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 국민은 아직 국민국가의 '피플'(people)로 변모하지 못했고, 친일 국민은 식민지 노예 상태에서 자주독립을 못했으며, 분단국민은 스스로 민족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말하자면, 국민의 이미지는 시대마다 한국 사람의 참다운 집단자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것은 20세기 국민국가들이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전쟁 등을 통해 인류의 자기파괴를 감행해 온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기에 학교교육이란 그 자기파괴의 인류사를 압축하고, 민족 분열을 가중시킨 역사적 주범이었던 것이다."(p.56)
결국 그 학교교육의 현장에 있던 저자 자신이 부끄럽다는 말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스스로 민족 반역자라고 평생 쓰레기를 줍고 계신 분이나, '국민교육'의 역사적 근원을 파헤침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는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국민교육'을 지상의 목표로 하는 '국민학교'에 우리의 아이들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누군가 김남식 선생님을 두고 '아름다운 친일파'라는 말을 썼습니다. 친일파가 아름답지는 않겠지요. 그 아름다움은 '현재'를 두고 말하는 것을 겝니다.
현재가 과거를 규정합니다. 두 분의 아름다운 현재가 과거의 상처를 씻고 통일과 미래발전지향적인 교육으로 거듭나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어렵지만, 다행히도 대한민국은 점점 그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