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책을 뒤적이다 낯익은 책갈피 하나 발견했다.
책갈피에는 "함께 가자 우리" 시가 씌여 있고, "외대앞 죽림글방"이라는 상호가 분명하게 찍혀 있다.

상념에 잠긴다. 죽림글방은 외대 앞 사회과학 서점이다. 대학 초년 시절, 대학교 앞에는 사회과학서점이 있었다. 가까운 경희대, 성균관대를 비롯해 대부분의 대학교 앞에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성대 앞 풀무질을 포함해 겨우 몇 개 남아있는 것 같다.

죽림글방은 책을 사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주로 약속 장소로 활용됐다. 죽림글방 앞에서 만나든지, 아니면 죽림글방 앞에 메모를 해둔다는 식이었다. 휴대전화는 커녕 삐삐도 없던 때라 이런 식으로 약속을 정했었다.

나의 대학생활은 이 서점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그 때 책은 그리 많이 읽지 않은 것 같다. 전공서적보다 더 의무적으로(?) 읽어야했던 책들이 있어 주로 그것을 구입했다. 오히려 나에겐 책보다 민중가요 테이프를 사는 곳으로 더 애용했다. 비합법 테이프를 일상적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민중가요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테이프를 꽤 많이 사모았다. 전노협, 노동자노래단, 전교조, 노래마을, 새벽, 예울림, 전대협노래단, 조국과청춘, 민족음악연구회, 정태춘, 꽃다지 그리고 메아리, 노래얼을 비롯한 각 대학 노래패 공연 실황 등등
이 소중한 기록들은 군대에 갔다 오면서 사라졌다. 나의 짐을 분산해 놓았는데 제대하고 보니 책들이며 테이프며 많이 사라졌다. 테이프는 끝내 몇 개 건지지 못했다.

당시에 민중가요도 가려 불러야했다. 나와 나의 선후배들은 주로 노동자의 투쟁에 관한 노래를 자주 불렀다. 전대협에서 보급되는 노래는 잘 안 불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웃고 있지만, 그 때는 그랬다. 심각했다.

그러나 노래라는 것이 어디 의식적으로만 다가갈 수 있는 것이겠는가. 술자리에서 노래는 정파(?)를 뛰어넘었다. 최소한 나에게는.
통일노래한마당 실황 테이프에는 불멸의 곡 "진혼곡"이 있다. (이 테이프는 지금 내게 없으나 다행히 PLsong.com에서 들을 수 있다.)

    포연이 자욱히 피어오르는 저 언덕 묘지 위에
    피에 젖은 흐느낌 울려 퍼지어 살아 귓가에 넘실거린다
    피분수 솟구쳐 붉게 드리운 흰 옷에 꽃망울
    상처 남은 가슴 위로 분노의 염원이 숨쉰다
    떨리는 저 몸부림 목메인 그 함성으로
    쓰러져간 그대 원혼 가슴에 남아
    타올라라 복수 복수를 위해 굽이쳐라 해방을 위해
    ▶ 노래듣기
지금 보면 저 가사 섬찟하지만, 직접 들어보라, 아직도 살이 떨리는 전율을 느낄 것이다. 어디 섬찟한 가사가 저것 뿐이더냐. 대부분의 노래가 저러했다. 분명 저 시대는 - 비록 겨우 십 수년 전이었지만 - 피끓는 젊은이들이 저런 노래를 만들어 부를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지금 나에게 사회와의 투쟁은 현실이 아니라 향수다. 이것이 정당하다거나 당연하다거나 잘났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부끄럽지만 그러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투쟁이 삶이 되지 못하고 기억에만 남겨진 것이다.
가끔 옛 노래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 느껴진다. 부끄러워진다.
부끄러운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시선이 남이 아닌 나에게로 고정된 것과 삶이 치열하지 못하다는 것! 바로 그 때문이다.

* PLsong.com 사이트의 민중가요 노래패 바로가기를 링크합니다.


** 80년대에 나온 노래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90년대에 나온 "민들레처럼"과 "희망의노래"를 좋아했습니다.
▶ 민들레처럼 (꽃다지)
▶ 희망의 노래 (류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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