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은 한을 세웠다.
그 뒤에 子房(=張良)이 있었다.

장량에게 따라다니는 설화가 하나 있다. 늙은 노인의 변덕스러운 요구를 들어주어 책 한 권을 얻었다는 것이다. 아마 사기에 나와 있을 것이다. 사마천은 이 이야기를 통해 몸을 낮추는 것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러 준 것 같다. 또한 난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수용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자방에게는 기막힌 계책이나 간계가 없다.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 뿐이다.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유방의 기세가 등등하면, 아직 천하가 평정되지 않았으니 검소하게 입고 먹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직언한다. 민심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방의 코드는 공심위상攻心爲上이다. 민심을 사는 것을 으뜸으로 생각한다. 治國安家는 得人也요 亡國破家는 失人也라. 나라가 안정되고 집안이 평안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요,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몰락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유방은 천하의 날건달이다. 남들이 그렇게 평가한다. 그러나 속지 말자. 겉모습이 그러할 뿐이다.
유방은 들을 줄 안다. 천하의 날건달이지만 오로지 '들을 줄 아는 지혜'만으로 천하를 손에 얻는다. 훗날 유방 곁에 한신이 나타난다. 소하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다. 하급장교에 불과한 한신을 일약 대장으로 발탁한다. 결과론적으로 환상적인 시스템 구축이었다. 전체적인 전략은 늘 자방의 몫이었다. 야전사령관은 한신이 맡았고 후방의 행정관리와 병참은 소하가 책임졌다. 살다보면 '들을 줄 아는 지혜'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느낄 때가 있다. 말이 '듣는' 것이지 실제로는 '듣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갖추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참모는 말해야 하고 보스는 들어야 한다. 결정은 그 뒤의 문제다.

유방의 소탐으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유방은 항우 앞에 무릎을 꿇는다. 굴욕은 운명이 즐겨 사용하는 장난이다. 무겁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역사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항우와 맞붙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유방은 그마저도 다른 사람(한신과 팽월)의 손을 빌어 단 한 번의 승리로 45세에 천하를 얻었다. 유방은 수많은 '전투'에서 졌지만 결국 '전쟁'에서는 이겼다.
자방은 하나 하나의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는 데는 그리 탁월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전체 판도를 움직여 대세를 장악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한 전략가였다.
또한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그는 애당초 황제 유방의 소꼽친구도 아니요, 가신도 총신도 아니었다. 다만 역사가 자신에게 준 소명만을 완수했을 뿐이다.
새색시처럼 고운 얼굴의 병약한 장량은, 유방이 죽고 8년 뒤에 세상을 뜬다.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이름 하나 남겨두고.

나는 이 회사를 만들 때 자방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여전히 현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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