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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10 ㅣ 심야식당 1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가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던 여중생이 여고로 진학할 무렵 예정된 듯 하나둘씩 대여점이 사라진 후에 데이트코스로나 친구들과의 수다나 약속시간 사이 기다림 중간중간 만화방을 잠깐씩 들락거린 스무살 초반 언저리를 빼면 만화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호흡계통의 기관이 약하고 일 년 열두 달 환절기마다 비염과 축농증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체력 탓에 폐쇄된 공간이나 담배연기는 웬만하면 피하고 싶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게 만화책과 멀어진 결정적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자연스런 이별의 이유를 굳이 들으려는 언론을 향해 '성격차이'라는 뻔한 말을 늘어놓는 유명인마냥 지어낼 필요는 없겠지. 나는 과정이나 이유 따위 불문한 채 그저 그림과 대사의 혼합으로 이뤄진, 사춘기를 함께 통과해 온 단지 그것뿐일 상징적 의식을 놓아버렸다. 만화책 읽기가 그런 거라면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흰 종이에 검은 글씨를 죄악으로 여길 만큼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이나 로맨스나 판타지에 한 시절 바쳤던 조숙하고 되바라진 아이들에게나 허락될 법한 만화가 점점 그 수준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사정을 띠게 되었다. <심야식당>이 그런 만화 축에 든다면 이건 분명 '로미오와 줄리엣'을 능가하는 비극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라는 장르는 종이와 영상 가릴 것 없이 하루하루 멀어져만 갔으니, 이럴 수가. 책을 공수할 빠릿빠릿한 능력이나 부지런함이 내게는 없다. 만화는 붙잡으면 몇 권이든 동이 나야 잠이 들 게 뻔하고, 추리소설은 숨 놓는 날까지 끝없이 쏟아질테니 시작은 있으되 끝은 없을 그것에 목매지 않은 건 내 마지막 자존심 아니, 다양한 장르와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나 왕성했고 시간은 부족했다 정도로 요약하고 넘어가자.
사실 드라마로 먼저 본 <심야식당> 역시 만화책은 오랫동안 뒷전이었다. 드라마를 만화책 보다 더 좋아하기도 했으니 굳이 찾아읽을 이유가 없었는데, 이 소박하고 쓸쓸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 문득, 미친 듯이 그리워질 때가 온다. 이 세상에 나만 홀로 깨어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더없이 아득하고 막연한 순간이 살다보면 생기기 마련이다. 추운 겨울 밤, 마침 나와있던 만화책을 앉은 자리에서 후다닥 해치운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10권인가 보다. 굉장히 반갑다고 하기에도 아쉽고 섭섭하다고 하기에도 언제나 이프로 부족하지만,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딱 그만큼 기다려온 이야기와 사람들. 심야식당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활짝 팔을 벌려 나를 맞는다. 그동안의 나는 꽤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로 그렇게 여전히 여기로 몰려든다. 자기 것을 모두 내어줄 것처럼 그렇게. 금세 뭉클하고 배가 따뜻해진다.
올빼미 기질로 밤에 늘 뭔가를 주워먹는 나로선 근처에 하나 생기면 좋겠다 생각하는 곳이다.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을 때와 누군가와 친밀하고 싶을 때 모두를 커버할 수 있는 편안하고 따뜻한 가게, 꼽아보면 별로 없다. 돈과 자본이 잠식한 밥집이란 것의 대표적인 형태인 푸드코트, 셀프서비스, 패스트푸드와 테이크아웃. 일상 속 깊이 들어와 있는 간단과 편리의 식생활을 즐기게 된지 오래다. 대학가 앞 골목길을 파헤치고 들어가 두루치기와 된장찌개, 계란말이와 김을 배가 터질 때까지 먹던 시절. 세월을 거슬러보면 아직 한 자릿 수일 뿐인데도 이토록 아득하고 아련한 까닭은 뭘까. 우린 무얼 얻었고 또 무얼 잃어버렸을까. 어디에나 그득그득 차 있는 식당과 화려한 간판의 카페가 반기지만 때로 현대인은 다 가졌으면서 아무 것도 갖지 못한 무주지 주민들처럼 갈 곳을 헤맨다. 정이 넘쳐 간섭과 충고가 난무하는 곳도, 정 없이 먹을 것과 돈이 바꾸어지는 곳도 잔인하고 서글프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심야식당의 한결같은 영업방침은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빛처럼 정겹고 포근하다. 바로 그 흐뭇하고 나른한 분위기 속에 더없이 소박하면서도 추억이 생생한 음식을 몇 그릇이고 배부르게 먹고 나면 비록 간접이지만 흡족한 포만감이 들곤 한다. 누가 묻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를 드러내고 싶은 가게'인 것도 감동이지만 아픈 사연과 즐거운 사생활, 어려운 고민을 두런두런 나누는 일이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뒤섞인다는 건 거의 기적적이다. 모두들 사전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 토닥이고 울어주고 기뻐한다. 음식과 사람, 이 황홀한 조합이 웃고 울린다. 매번 미묘하게 달라지는 감동이다.
일본남성, 모두 그런 질문 합니다. 서니는 마음이 아주 깨끗한 사람. 그래서 눈도 깨끗하죠. 그렇게 깨끗한 눈을 한 사람, 나는 본 적 없습니다.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절망해서 울기만 하던 나를 서니는 조용히 지켜보고 손을 뻗어 주었습니다. 그 눈은 더 깊은 슬픔을 경험한 눈이예요.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第140夜 버터감자' 편에서)
간간이 웃음과 눈물을 흩뿌려 촉촉하게 적셔주는 와중에도 한 권 다 넘기는 동안 절대 가시지 않는 허기에 덮는 즉시 시장이나 마트 아니면 부엌으로 달려가야 한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누군가는 룸메이트가 실연과 외로움에 아플 때마다 냉장고를 탈탈 털어 재료를 꺼내 오코노미야끼를 해먹였다고 했고, 나는 오래도록 외국에서 먹은 간단한 두부김치와 소주팩을 잊지 못한다. 음식은 그런 것이다. 거의 모든 것. 잊혀진 시간과 추억을 폭풍처럼 몰고왔다가 단 1초만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승화해버리는 황홀경. 같은 음식을 먹는 것 또한 그러한데,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그것도 모두가 잠든 한밤 중에 함께 먹는다는 것은 현란하고 찬란한 일이다. 순간의 고독과 절망 혹은 기쁨의 시간, 희망과 열의를 다함께 나누는 축복의 파티이기도 하기에. 나는 또 잊겠지만 심야식당은 여전히 밤을 환히 밝힌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올해가 내년으로 넘어가는 날 해넘이 국수를 대접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마스터를 떠올리면 나이 먹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피식 웃음이 난다. 가야지, 어디로든. 먹어야지, 살기 위해. 멋지게 쓰고 싶었던 에세이는 이렇게 진부한 글로 마무리하며 날려먹고 만다. 뭐 이렇게 난감하고 의욕 떨어지는 시점에 힘을 내려면 먹는 수밖에. 으쌰으쌰. 도대체 겨울이 왜 이렇게 긴 거야. 밤은 또 왜 이렇게 길고. 싫증나게. 밤은 언제까지나 환희와 증오의 대상이다. 그래서 아름답기도 처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