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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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읽어야 제맛일줄 알았던 책.

작가도 책에 대한 정보도 전혀 모르고 시작했더랬다.

그저 지인이 "좋았다"라는 말 한마디에 선택한 책.

읽고 있는 동안 동인문학상 수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편집인지도 몰랐음.

끊어 읽기 좋네~라고 생각했더랬다.

"바깥은 여름"이 표제작인줄 알았는데 전혀 상관없는 제목에 의아했다.

제목을 왜 바깥은 여름이라고 했을까?

대체로 작품 분위기가 어둡고 가라앉아 있는데 작품속 그들의 안은 춥고 눈내리는데 그들의 바깥은 여름처럼 활기차다....이런 뜻일까?


읽는 동안 함께 마음이 무거워져서 정말로 "많이" 끊어 읽게 되었다.

너무 무거워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엄마라서 그럴까? 특히 '입동'과 '가리는 손'에서 감정을 이입하고 읽게 되었다.

너무 춥다.  지난 여름의 폭염은 벌써 잊은지 오래.

그래도 추운것 보다는 더운게 낫다며...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 입동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무고한 얼굴로 잤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은 잠을 청하고도 눈뜨면 그사이 살이 오르고 인상이 변해 있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 P18

- 입동
우리 부부는 등받이가 없는 벤치형 의자에, 영우는 유아용 접이식 식탁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 P20

-노찬성과 에반
‘네가 네 얼굴을 본 시간보다 내가 네 얼굴을 본 시간이 길어......알고 있니?‘
- P62

- 풍경의 쓸모
- 그죠? 그게 젊음이지. 어른이 별건가.
지가 좋아하지 않는 인간하고도 잘 지내는 게 어른이지. 안 그래요, 이선생?
(...)
- 호오(好惡)가 아니라 의무지. 몫과 역을 해낸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사람 재는 자가 하나밖에 없는 치들은 답이 없어요. 아주 피곤해.
- P163

- 가리는 손
시간이 매일 뺨을 때리고 지나가는 기분이었을 거야.
- P203

- 가리는 손
핸드폰 도우미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가 속한 세상이 염려되지만 참고 내색 않는다.
애가 어릴 땐 집 현관문을 닫으면 바깥세상과 자연스레 단절됐는데. 지금은 그 ‘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 아직까진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모바일 게임을 하고,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즐겨 보는 정도 같지만, 가끔 아이 몸에 너무 많은 ‘소셜social‘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이십사 시간 내내 연결돼 있는 듯해. 아이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그 억압과 피로를 경험해본 터라 걱정됐다. 지금은 누군가를 때리기 위해 굳이 ‘옥상으로 올라와‘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니까. 아이가 지금 나와 식사를 하는 중에도 실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얻어맞으며 피 흘릴지 몰랐다.
- P212

- 가리는 손
이걸 어찌 설명하나. 말한다고 네가 알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가.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 P213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한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그런데 무슨 말을 하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 엄마랑 아빠는...... 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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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서재지기 > 제18기 <독자 선정 위원회>를 모집합니다.

지원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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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는 돌들이 가득 The Collection 13
레오 리오니 지음, 정회성 옮김 / 보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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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처음으로 작가이름을 외웠던 레오 리오니.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일부러 찾아 보곤 했는데

'바닷가에는 돌들이 가득'이라는 작품이 있었는지는 이번 신간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직도 접하지 못한 레오 리오니의 작품들이 많다는 것도.)

기존의 레오 리오니의 작품들처럼 철학적 메세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도 전혀 다른 느낌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바닷가의 돌들.

왜 바닷가의 돌들이라고 했을까? 아이는 '바다'하면 모래가 더 먼저 생각나는데 왜 바닷가의 돌이냐고 반문한다.

음...그건...음...-.-;;




바닷가에는 평범한 돌들도 있지만, 재미있고 신기한 돌들도 있다.

돌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들은 경험으로 그걸 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자신들이 찾았던 돌들에 대해 또 맘껏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텍스트는 거의 없는 그림책인데도 할 이야기가 참 많구나.


특이한 모양이나 색깔의 돌들을 찾아봤지만 그 돌로 이런 놀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우와~ 우리도 당장 해보자며~



 



아이들이 그간 찾았던 돌들을 꺼내와 돌 하나에 얽힌 추억들을 또 소환한다.

아무래도 바닷가로 나가 함께 돌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바닷가에는 돌들이 가득'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자세히 관찰해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그림책이다.

평범한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진정 행복이겠지.

간결한 텍스트와 특히 흑백 연필선의 그림들은 사실적인 그림들보다 더 많은 상상의 여지를 준다.

실제로 돌을 가지고 독후활동을 할 수도 있고, 자신만이 상상의 돌을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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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행복한 빵, 행복의 빵 정도로 해석이 되겠다.

얼마전 <빨강머리앤이 하는 말>에서 언급되었던 영화인데 궁금해서 찾아봤다.

(이하 사진: 네이버 영화)

 

원작이 있는 영화이자, 작가가 직접 감독을 한 영화이기도 하다.


 

 


보는 내내 은은한 커피향과 고소한 빵냄새가 폴폴난다.

갓구운 빵냄새를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은 괴로울듯.

영화에서는 냄새대신 소리로 그걸 전달해준다.

사사삭~ 빵을 나눠먹을 때 나는 소리.

그 작은 것들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 부부가 사는 모습. 참 부럽다.

뭐하나 급하지 않고, 여유롭고,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간다.

어떻게 저렇게 살아갈 수 있지? 현실감은 완전 떨어지지만 그저 부럽고 보는 동안은 잠시 나도 해피해 진다.


영화 내내 언급되는 <달과 마니>라는 동화책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다.

검색해도 안나온다. -.-;;

'해피해피 브레드'의 부록으로 주었다는 얘기는 있다.

늘 밝지만 뭔가 상처가 있을것 같은 리에.

영화 후반부에 가면 뭔가 밝혀지리라 했지만, 그들의 비밀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나의 상상에 맡기는 거지.

리에가 나의 마니를 찾았다는 대목에서 그것이 아기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이후에 임신소식을 갖고 오는 걸 보면 '나의 마니'는 무엇일까, 그걸 듣고 남편도 같이 기뻐하는 걸 보면

내가 영화 속에서 뭔가를 놓친건 아닌지 답답하기도 했다.

무튼, 보는 동안은 잠시 행복해지는 영화.

에이~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어딨어! 딴지 걸지 말고 영화는 영화대로 그냥 보면 좋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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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인상깊게 봤던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다시 봤다
역시나 개운치 않은 기분이다
(영화 장르가 코미디라니! 헐...)
원작이 있다는건 최근에서야 알았다
뮤지컬로도 공연중인 작품이다
마츠코의 일생이 혐오스럽긴 하지만 마츠코가 혐오스럽냐? 그건 아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
마츠코가 도대체 왜? 라는 말을 자주 하듯 나도 묻게 된다

도대체 왜??
돌이켜 보면 역시 가정에서의 사랑과 잘못된 사랑방식에서 기인한다
(분명 마츠코의 아버지도 마츠코를 사랑하기는 했는데 말이다)
마츠코가 자신의 빈 집에, 고향에 있는 집에 돌아올때, 그리고 엔딩에서 하던 ただいま(다녀왔습니다)는 너무 슬프다
잘못된 사랑방식.
지금 내가 마츠코의 아버지는 아닌지 되돌아 본다

영화와 원작이 다르다고 해서 궁금은 하지만
이 끈적거리는 불편한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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